• 한국판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필요
    [정의 경제] 기후위기, 에너지 위기, 경기침체 막는 길
        2022년 10월 11일 09: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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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전보다 더 가혹한 경기침체 위기가 오고 있다

    매년 10월 무렵이면 늘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내년 얘기들이 올해도 선보이기 시작한다. 김난도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가 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23>을 보면, 내년에 유행하는 개념으로 ‘선제적 대응기술’, ‘공간력’, ‘뉴 디맨드’, ‘체리슈머’, ‘디깅 모멘템’, ‘오피스 빅뱅’ 등 기술변화나 소비추이 변화 등을 말솜씨를 엮어가며 화려하게 나열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상술이 가득 묻은 이런 유형의 뻔한 트렌드들은 전혀 2023년을 말해주는 키워드가 아닐지 모른다. 2020년에도 그랬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코로나19의 전세계 확산으로 인해 사람들이 예상하고 기대했던 트렌드는 모조리 휴지통에 들어갔다. 2023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실 2023년의 최대 화두는 에너지 위기-인플레이션-과격한 금리인상의 경제적 귀결이 무엇으로 판명될지 아닐까? 불행하게도 상당히 길고 깊은 경기침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총재는 얼마 전, “현재 세계경제는 전쟁과 인플레이션 등 다중 충격”에 빠져 있음을 확인하면서, 2023년 “세계 국가의 3분의 1은 적어도 두 분기 이상의 침체”를 경험하게 될 것이며, 얼마간 성장이 된다고 쳐도 “실질소득이 줄고 물가가 올라 경기 침체처럼 느껴질 것”이라는 극히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세계은행(WB)도 비슷한 전망을 했다. 두 기관은 이번 주에 연례총회를 열고 올해보다 최소 1% 이상 하락한 경기침체 전망을 공표할 것으로 확실시 된다.

    글로벌 경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가 시작되었다?

    한편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2차대전 후의 케인지언 경제의 등장, 1990년대의 자유시장주의로의 전환에 비견될 정도의 세계경제의 고통스런 레짐 체인지” 순간이 왔다고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졌다.

    40년 만에 발생하고 있는 세계적 인플레이션, 미국 밖에서의 대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20년만의 강달러, 시가총액의 1/4이 사라져 1980년 이후 최악의 해를 기록하고 있는 세계 주식시장, 1949년 이후 최악을 기록하고 있는 채권시장, 에너지 시장의 균열과 가격 폭등 등을 사례로 들면서, 이들은 모두 ‘저투자, 저성장, 저인플레이션, 초저금리’등으로 특징지워진 2010년대의 경제 양상이 끝났음을 명백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다음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사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각국 정부들은 재정건전성에 매달리면서 보수적인 재정정책과 동시에, 이례적으로 초저금리에 양적완화까지를 포함한 과격하게 완화적인 통화정책를 지속해왔다. 지금까지 기조가 ‘긴축적 재정정책 – 완화적 통화정책’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기조가 완전히 뒤집어져 ‘완화적인 재정정책과 긴축적인 통화정책’으로의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 전망이다. 이런 반전은 아마도 2023년에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가운데 기조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경제환경이 도래한 것이다.

    그림1 주요국의 금리와 정부부채 추이(출처: 이코노미스트)

    왜 한국판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준비하지 않나?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인플레를 잡기 위해 중앙은행이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돌아섰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긴축적 통화정책-완화적 재정정책이라는 세계적 흐름과는 반대로 긴축적 재정정책으로 가면서, 시대적 흐름과 보조를 맞추지 않을까? 한국은 예외적으로 보조를 맞추려는 것 같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인구 고령화로 인한 복지지출 자동 증가, 기후위기 대처를 위한 지출, 그리고 군비경쟁 격화 등의 요인이 정부부채 증가 위험에도 불구하고 재정팽창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욱이 당장 시작된 경기침체 위험 앞에서 한국 정부가 하는 감세와 긴축은 더욱 경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최근 영국 정부가 내놓았던 감세-긴축정책이 영국 경제를 일대 혼란에 빠뜨렸던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사실 세계는 기후위기와 에너지위기, 경기침체 위기라는 새로운 위험에 직면해서 이미 발 빠른 대응을 시작했다. 상황이 가장 심각한 유럽은 지난 5월 ‘리파워 유럽 계획(REPowerEU Plan)’을 공표한 바 있고, 미국 역시 잘 알려진 ‘인플레이션 감축법(일명 IRA법)으로 돌파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이 대책 없이 임시변통으로 에너지 위기를 한전과 가스공사의 부담으로 넘겨 버린 채 손을 놓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 정책은 심지어 거꾸로 방향을 틀어,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당초 목표 30%에서 21%로 후퇴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고작 미국에서 시행되는 IRA법의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우리 수출 전기차가 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로 정치 쟁점화가 되고 있다. 정말 한심한 일이다.

    특히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화석연료 중심 에너지 의존 구조는 현재 에너지 가격 폭등과 높은 환율로 인해 심각한 무역적자의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재생에너지 전환 목표를 대폭 상향시켜야 옳다. 알려진 것과 달리 유럽은 EU의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를 현재의 40%에서 45%로 높일 예정이며 그에 따라 당초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당초 1,067GW에서 1,236GW로 상향시킬 전망이다. 특히 2025년까지 태양광 발전용량을 현재의 두 배인 320GW까지 올리고, 2030년까지는 다시 두 배에 가까운 600GW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더욱이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를 예방함은 물론, 닥쳐올 경기침체에 대비하고 경제 안정화와 일자리 안정화를 위해 한국은 미국 이상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한국판 IRA법을 서둘러서 준비해야 할 때이지 미국 IRA법에 밥숟가락 얹을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과감한 재생에너지 도입과 녹색일자리 창출에 공공이 파격적 지원해야

    보수적인 이코노미스트지조차도 기후위기 대처와 에너지 전환에 공공의 파격적인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녹색전환은 경로 의존성이 있는데, 탈-탄소 기술, 녹색 인프라와 산업에 투자하면 할수록 효율과 개선이 일어나서 비용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들은 먼저 투자해서 초기 비용부담을 안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공공투자로 초기 비용과 위험부담을 국가가 안아줘야 기업들이 뛰어들 수 있다. 미국의 IRA법이나 유럽의 REPowerEU 계획도 모두 그런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판 IRA법에는 무엇이 담겨야 하는가? 무엇보다 먼저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지원책이 들어가야 한다. 정부나 언론은 태양광과 풍력 혐오 분위기 조성을 그만두고 태양광 풍력 신규투자에 대해 과감한 직접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다만 이 과정에서 주민 참여를 필수로 하여, 주민 삶과 에너지 전환이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에너지 가격 폭등을 전기요금 등의 에너지 요금인상으로 반영하되, 이를 에너지 복지와 연계해서 서민들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줘야 한다. 예를 들어 전기료의 과감한 인상과 동시에,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대규모 그린 리모델링을 병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린 리모델링의 일정 비율을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해주는 것이다. 대중교통과 자가용의 전기화에 대한 인센티브 역시 미국의 IRA법 이상으로 우리에게도 유사한 방식이 필요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녹색일자리‘의 질과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정부의 지원정책이 결합한다면 경기침체가 고용불안과 실업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국회에서 제출된 ’에너지전환 지원법‘이 있지만 이는 너무 소박하므로 그 내용을 흡수하고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도 편입해서 새로운 환경에 맞게 제정해야 한다.

    이 과정이 꼭 GDP 성장률을 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장률에 집착하게 되면 신공항 건설 같은 익숙한 회색토건에 매달릴 수 있고 내연기관차 개별소비세 감면 같은 화석연료 지원정책을 다시 끄집어낼 수 있다. 한국판 IRA법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우리 경제사회가 떠 빠르고 과감한 탈-탄소경제사회로, 기후위기와 에너지위기, 그리고 고용불안에 안전한 사회로 이행하도록 돕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해야 한다.

    미리 가본 2030, 쇠퇴하는 한국?

    하지만 지금 우리 정부여당이나 거대 야당 모두 한국판 IRA입법을 고려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진보정당도 아직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금 한국은 태양광과 풍력이라는 주력 재생에너지를 혐오시설로 몰고가는 한편, 핵발전 수명연장과 신설에 몰두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세계적 추이를 한번 보라. 10여년 전인 2010년대초 까지만 해도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태양광과 풍력 비중이 대체로 1~3% 정도를 벗어나지 못할 만큼 비슷비슷했다.

    하지만 지난 10여년 사이 눈에 띌만한 변화가 있었다. 유럽국가들을 중심으로 풍력과 태양광 비중은 급팽창하여 2021년 현재 유럽은 평균 18.6%에 달한다. 미국도 12.8%이며 하다못해 일본 11.9% 중국 11.7% 그리고 아시아가 10.0%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은 4.9%로서 5% 안될만큼 크게 뒤처져 있다. 재생에너지 후진국인 것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목표를 다시 하향 조정한 것이다.

    그림2 2021년 기준 전력생산에서 태양광과 풍력 국가별 비중(출처: Enerdata)

    이 상황에서 잠시 시간표를 미래로 돌려 2030년까지 가보자. 이대로라면 2030년에 한국은 목표대로 간다고 해도 재생에너지 비율이 20%밖에 안되어서 주요 OECD 선진국에서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될 것이다. 태양광 발전기술, 풍력기술, 스마트 그리드 등의 기술력과 산업은 이제 현저히 뒤처질 것이고, 중국 등 녹색산업 선진국에서 대부분 관련 제품 수입을 당연시 할 것이다.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전력생산과 산업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 변동이나 환율에 따라 무역수지가 급변하는 취약한 경제구조가 개선되지 않게 될 것이다. 한편 그 사이 수명 연장한 핵발전과 늘어난 핵발전으로 핵폐기물 처리에 대해서 더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

    지금도 압도적으로 많은 탄소집약산업의 산업공정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고, 기업들이 RE100을 선언해봤자 그들에게 공급할 재생에너지는 부족할 것이다. 이들은 탄소국경세에 걸려 수출경쟁력을 점점 더 잃어갈 것이다. 2030년 무렵이 되면, 더욱 크게 성장해 있을 글로벌 녹색산업에서 한국경제의 위상은 더 추락해 있을 것이고 산업경쟁력은 악화되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 이미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기후악당국가라는 낙인을 지우지 못할 것이다. 2030년 무렵이면 온난화가 더 심화되어 이미 1.5도 경계선을 넘나들 것이고 홍수, 폭염, 가뭄 등 극단적인 기후에 훨씬 더 노출이 될 터이지만, 그에 대한 대응력 수준은 뒤처질 것이다. 왜 우리가 이런 미래를 앉아서 기다려야만 하는가?

    * <정의로운 경제>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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