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역사를 날조하는가?
    By
        2007년 02월 12일 09:03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이재영 씨(이하 존칭 생략)는 내가 “악질적인 역사 날조”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누가 그런지 크론슈타트 반란 문제부터 살펴보자.

    1921년 크론슈타트 반란과 그 진압은 우익과 자유주의자, 이재영을 비롯한 온갖 사회민주주의 경향은 물론 일부 아나키스트들이 애호하는 쟁점이다. 이 사건이 볼셰비키가 자기 자신의 지지자들을 공격한 대표적 사례이자 러시아 혁명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레닌, 트로츠키 정치와 스탈린 공포정치의 연속성 명제를 가장 잘 뒷받침해 주는 호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재영은 “크론슈타트 반란자들이 ‘농민 신병’이라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말은 거짓”이라고 단정한다. 그런데 내가 크론슈타트 반란자들 대부분이 ‘농민 신병’이라고 말한 것은 실은 크론슈타트 반란 연구의 고전인 <1921년 크론슈타트>의 저자이자 반란군에 호의적인 아나키스트 역사가 폴 아브리치 저작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 소련 붕괴 후 공개된 비밀 문서들은 이 통설의 타당성을 입증하고 있다.

    또, 이재영은 크론슈타트 반란 직전인 “2월 페트로그라드에서는 푸틸로프 공장을 비롯한 노동자 파업이 줄을 이었고, 크론슈타트 반란자들은 파업 노동자들과 연계하며 그들의 요구 사항을 봉기에 내걸었다”고 주장하면서 크론슈타트 반란을 마치 ‘제3의 노동자 혁명’처럼 미화하는데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아브리치에 따르면, 크론슈타트 반란이 일어났을 때는 페트로그라드의 파업은 마무리되고 있었고, 노동자들은 반란을 지지하기는커녕 반란 진압에 동조했다. 최근 공개된 러시아 문서들도 크론슈타트 기지의 노동자들이 반란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인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사실, 내전 말기에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것은 주로 식량 부족 때문이었는데, 이들이 식량 배급을 더욱 악화시킬 게 뻔한 ‘곡물 징발 중단’을 요구했던 크론슈타트 반란을 지지할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 1921년 크론스타트 반란 당시의 자료사진 
     

    이와 관련해, 이재영은 당시 “‘노동자 반대파’들이 트로츠키를 짜르 시대 반동 장군이었던 트레포프에 견주어 비아냥댔”다면서, 그 증거로 바로 그 문장 다음에 “총알을 아끼지 말라” 운운한 <크론슈타트에 관한 진실>을 인용한다. 그런데 이재영은 그 인용문을 쓴 것은 ‘노동자 반대파’가 아니라 크론슈타트 반란 지도부인 ‘임시군사혁명위원회’인 것 정도는 알고나 인용했어야 했다.

    또, 이재영은 자신이 크론슈타트 반란군과 함께 노동자 민주주의의 구현체로 애지중지하는 ‘노동자 반대파’조차 크론슈타트 반란 사태가 터지자 당시 10차 당대회에 참석했던 ‘좌익공산주의’ 등 다른 반대파들과 함께 투하체프스키의 진압 부대에 자원 입대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야 했다.

    이재영은 또, “크론슈타트 반란자들이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를 주장했다”는 내 주장도 “거짓”이며 “악질적인 역사 날조”라고 공격한다. 하지만 볼셰비키와 공산당에 호의적일 리 만무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반란군이 “경제 개혁 이외에도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와 … 공산당 독재의 종식 … 등을 요구했다”고 서술한다. 실제로, 반란군은 군대, 공장 등에서 볼셰비키 기구들을 폐지하라고 요구했고, 당시 크론슈타트 함대에 있던 볼셰비키 정치위원 등 수백 명을 체포 구금했다.

    물론 반란군이 내건 15개 강령에 “소비에트 선거”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 반란군들이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지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어떤 초짜 운동가도 어떤 조직이나 운동의 정치적 성격을 그들이 내건 슬로건만을 갖고 판단하지 않는다. 진지한 역사가는 박정희와 공화당이 “한국적 민주주의” 기치를 내걸었다고 해서 그들을 민주주의자라고 보지 않는다.

    크론슈타트 반란은 다름 아닌 그 크론슈타트 기지의 노동자들조차 반대했던 반란이고, 1920년 노동조합 논쟁에서 트로츠키에 맞서 당시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가장 강력하게 옹호했던 ‘노동자 반대파’까지 무력 진압에 동참한 반란이다. 그런데 그 반란을 도대체 무슨 근거로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지향한 ‘제3의 노동자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재영의 주장처럼 크론슈타트 반란군이 “자유로운 소비에트 선거”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요구하고 실현하려 했다면, 도대체 왜 서방 제국주의 열강들, 로마노프 왕조의 복귀를 노리는 러시아 왕당파들, 자본가들의 자유주의 정당인 입헌민주당,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등이 모두 크론슈타트 반란을 지지했을까? 그들이 언제부터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지지자들이 된 것일까?

    이재영의 주장은 이처럼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고 따로 떼어내 그 자체로만 파악하려는 역사적 추상주의의 발로이다. 예컨대 이재영은 내전 시기 트로츠키가 제기했던 노동자의 군대화나 노동조합의 국가기관화 주장과 관련해 이 주장들이 제기된 역사적 맥락은 고려하지 않고, 당시 출판된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의 구절(트로츠키 자신은 곧 자기비판을 하며 이 주장을 철회했다)을 인용하면서 마치 트로츠키가 내내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부정”한 사람인 양 암시한다.

    비판 대상에 대한 무지

    이재영은 트로츠키가 1920년대 스탈린주의 관료에 맞서 당내 민주주의,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부활을 위해 투쟁하고 1936년 <배반당한 혁명>에서는 다당제를 주장한 사실(이는 정성진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 잘 서술되어 있다)은 피해 간다.

    ‘다함께’는 물론 정성진도 트로츠키 사상의 적잖은 부분에 대해, 또 다양한 정설파 트로츠키주의자들에 대해 비판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입지하고 있는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이론과 정치에 대해서도 중요한 쟁점들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재영은 이 역시 전혀 “보지 않는다”. 이재영의 억측과는 반대로 “흠집 없는 권위로의 도피”만큼 ‘다함께’의 정치와 거리가 먼 것은 없다.

    ‘다함께’는 이재영이 주장하듯이 우리와 다른 정치적 입장들에 대해 “트로츠키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결코 매도하지 않는다. 예컨대 정성진은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서 그가 21세기 사회주의의 대안 구상을 위해 중요한 자원으로 고려하는 참여계획경제의 세 가지 모델(‘파레콘’, ‘협상조절’, ‘노동시간 모델’)이 모두 트로츠키주의에 대해 적대적임에도 그들로부터 배울 것은 배운다.

    또, 같은 책에서 정성진은 때로 ‘다함께’보다 더 나아가,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의 이론적 발전을 위해 심지어 알튀세르주의자들로부터도 수용할 것은 수용한다.

    정성진과 ‘다함께’는 북한의 사회 체제를 노동자 권력과 혁명으로 타도되어야 할 국가자본주의적 착취․억압 체제로 규정하지만, 남한의 주사파가 북한 체제를 지지한다고 해서 이들을 이재영처럼 하나의 적으로 대하는 종파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이들이 반신자유주의, 반제국주의, 반전 투쟁에 적극 참여하는 한 이들과도 연대한다.

    이재영은 “‘다함께’ 같은 자칭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한 망명객 시절의 언행에 더욱 주목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성진은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서 트로츠키 사상의 정수는 1906년에 발표한 영구혁명론에 있는가 하면, “망명객 시절”, 즉 1930년대의 “언행” 중에도 ‘관료적으로 퇴보한 노동자국가’론이나 섣부른 제4인터내셔널 창건과 같은 오류들이 적잖이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반나치 공동전선의 필요성에 대한 글이나 프랑스, 스페인 인민전선 비판에 대한 글은 실로 탁월하다.

    이재영은 “스탈린주의라 불리는 체제의 이론적 기초와 정치적 토대의 상당 부분은 트로츠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라는 자유주의자들과 일부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을 반복한다. 그런데 정성진이 각종 자료와 논거를 동원해서 비판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이와 같은 종류의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마르크스-레닌-룩셈부르크-트로츠키)과 스탈린주의 간의 연속성 명제이다.

    1989~91년 붕괴된 소련권 사회의 실체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변형인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일 뿐임을 논증하는 작업은 정성진의 책이나 ‘다함께’의 이론적 작업의 핵심적 부분인데, 이재영은 이에 대해 완전한 노코멘트이다. 그러고는 사회주의 실험의 역사적 실패를 이유로 “실존하는 구체에서 검증되지 않은 추상으로 내려 앉았”다고 주장한다.

    정성진이 옛 소련의 국가자본주의적 본질을 논증하려는 시도, 그리고 이를 매개로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스탈린주의 간의 질적 단절을 논증하려는 시도, 그리고 이를 기초로 21세기 조건에서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창조적 발전과 한국적 착근을 모색하는 것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자인 이재영은 물론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왜 어떤 점에서 동의하지 않는지를 논리적으로 근거를 대며 지적해야지, 이런 시도와 모색이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애써 간과하며 논쟁을 원점으로 되돌려서는 우리 진보 진영의 이론과 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파주의

    한편, 이재영이 ‘다함께’와 범자민통의 “야합” 또는 “연대” 운운하면서, ‘다함께’가 당당하다면 “‘주사파와 어울려 논다’는 지적에 그저 ‘그렇다’ 라고만 답하면 되는 것”이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이재영이 인용했듯이, 나는 지난번 글에서 ‘다함께’가 범자민통 동지들과 “함께 연대해서 투쟁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광범한 대중운동을 건설하려면 자신과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람들과도 기꺼이 함께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야합’이라면 ‘다함께’는 ‘야합’을 결코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분파주의에 눈이 멀어 연대와 투쟁의 대의를 종파적으로 외면하는 것은 ‘다함께’의 정치와 거리가 멀다. 게다가 ‘다함께’는 민주노동당 선거에서 범PD 계열일지라도 지난해 하반기 이래 최대 쟁점인 북핵과 일심회 사건과 사회연대전략 문제에서 우리가 보기에 올바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면 그를 지지했고, 민주노총과 현 금속선거에서는 NL계열이 아니라 노힘 등 옛 PD계열 내 좌파를 지지하고 있다.

    이재영이 ‘다함께’의 정치를 “마르크스로 돌아가자”는 “마르크스 훈고학”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다함께’ 신문이나 홈페이지(www.alltogether.or.kr)를 잠깐 둘러보아도 ‘다함께’가 “마르크스 훈고학”자들이기는커녕 ‘지금 여기에서’ 구체적인 정세 분석과 반전․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투쟁에 헌신하는 투사들임을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재영 자신이 경멸해마지 않는 “마르크스 훈고학”도 이재영처럼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척하면서도 역사와 사상을 그 전체 역사적 맥락 및 진화 과정 속에서 판단하지 못하고, 뻔히 보이는 것조차 보지 않고, 자기 맘에 드는 것만 골라 보고, 그것도 멋대로 날조해서 진보를 호도하는 사람들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때로 유용하다.

    사회민주주의적 본질

    이재영은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지평에서 이륙을 위한 가속을 시작해야 한다. … 우리의 이륙이 성공했을 때 그 비행기에 어떤 이름이 새겨질지를 알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재영의 문제의식을 추적하다 보면 이재영이 타고 있는 ‘비행기’의 이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재영은 “지난 150여 년을 거슬러 반추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했지만,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이 비행기의 이름은 분명히 사회민주주의다.

    이는 이재영이 민주노동당의 집권이 “겨우 한두 걸음을 내딛는 것이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의 대장정이 아니다”라거나, 국유화 계획을 “앞으로 오랫동안 가질 필요도 없다”는 말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낡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자”며 이재영이 제시한 것은 전혀 새롭지 않은 사회민주주의행 비행기 티켓이다.

    그러기에 이재영에게는 “요즘 세계 진보 진영의 화두”로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다시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는 정성진의 지적이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 파악”처럼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이재영은 글 끝 부분에서 “무엇이 혁명을 배반케 했는가?”하고 자문하고 그 답은 “세상에 대한 무지, 무엇보다도 자신의 무지에 대한 무지”라고 주장하고, “우리는 사회혁명을 이룰 정보와 지식, 확신과 권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어림과 나약함, 무지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이재영은 고전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적 방법을 버리고 계급투쟁과 역사 발전을 지식의 문제로 환원하는 관념론을 채택했음이 분명히 확인된다. 이재영이 이륙을 시도하고 있다는 그 개량주의적 관념론의 비행기는 이미 지난 20세기 동안 무수히 되풀이된 이륙 실험에서 형편없이 실패한 바 있다.

    이재영이 글 끝 부분에서 “아직도 멀었다”며 일갈하며 자신의 “무지”를 시인한 것이 진심이라면, 그 이륙은커녕 추락할 것이 뻔한 고물 비행기에 동승하라고 어쭙잖은 말장난과 거짓말로 호객하는 짓은 당장 그만 두고, 먼저 마르크스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한 자신의 “무지”부터 깨쳐야 할 것이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