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의제로 ‘먹거리 문제’를 꺼내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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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12일 08: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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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녹색칼럼>의 필진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칼럼의 다른 필자들의 글을 계속 읽어오고 있었던 터라, 다른 필자들과 어떤 차별성을 갖는 글에 쓸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다. 나름의 결론은 “생태주의의 시각에서 민주노동당을 이야기해보자”다.

    한 생태주의자의 민주노동당에서 버텨내기

    어쩌면 내 칼럼은 한 생태주의자의 민주노동당에서 버텨온 2년 동안의 생존기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언제 기회가 되면 그 생존기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써봤으면 하지만, 오늘은 한가롭게 그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에서는 대선 5대 의제와 10대 과제를 제시하였고, 10일 개최되는 중앙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상정됐다. 5대 의제라는 것은 이렇다 : ‘한미FTA’, ‘비정규직’, ‘대안경제’, ‘사회연대전략’, ‘한반도평화’. 뭐, 다들 중요해 보인다. 10대 과제라는 교육, 문화, 산업, 여성…. 등 여러 분야가 나열되어 있다. 뭘 하라는 것인지 난감하다.

    그러나 5대 의제에 말들이 많다. ‘사회연대전략’에 대해 ‘당 보수화의 증후’라는 당내 의견그룹 ‘다함께’의 비판에 동감하지 않지만, 다른 이들의 비판은 수긍이 된다. 누군가는 ‘한미FTA’가 대선까지 가겠냐며 그게 무슨 대선의제냐고 힐난한다. 끄덕.

    또 누군가는 대체 ‘대안경제’가 뭘 말하는거냐며 난감해 한다. 또 끄덕. (논의되고 있는 ‘대안경제’의 내용에 대해서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고, 많은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지지한다. 하지만 의제의 명칭으로서 ‘대안경제’는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거나 마찬가지 않는가) 물론 ‘한반도평화’, ‘비정규직’ 너무도 중요하고 당연한 것이니 언급 생략. 아,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해줄 만한 새로운 것이 없다.

    정치적 상상력 빈곤한 민주노동당의 대선 과제

    난감해 하는 나를 위해 누군가는 10대 과제 속에서 ‘환경’이 포함되어 있다며 위로한다. 그 선의는 알겠지만, 그 위로라는 것은 “‘환경’게토 하나 만들어 줄테니 나오지 말고 그 안에서 만족하고 살아라” 이렇게 들린다.

    생태주의자의 관심을 ‘환경’이라는 틀 안에 가두어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통념이 끔직하다. 또 ‘환경’게토 하나 만들어준 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식의 전통좌파의 무식한 편리함에 넌더리가 난다. 사회주의자 혹은 좌파의 관심을 ‘노동’이나 ‘복지’에 가둘 수 있나?

    생태주의자를 자처하는 나는 민주노동당의 대선의제 혹은 과제에 ‘환경’의 ‘환’자도 들어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민중들의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잠재된 불만과 바램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의제화하고 동원하여 표로 결집시킬 것인가에 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주목해야 할 불만과 바램은 소위 ‘환경운동’ 등을 통해서 개발된 감수성과 발굴된 의제를 통해서 잘 포착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민주노동당을 통해 최소한의 정치적 의제화에 성공하여 지지받은 ‘아토피’ 문제를 생각해보자.

    환경운동의 시선을 빌리지 않고서는 부각하기 힘든 것이었다. 너무도 광범위하고 은폐되어 있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당연해 보이는 삶의 고통을 어떻게 세상 속으로 끄집어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 순간 소위 사회주의자 혹은 좌파들이 생태주의자가 되지 못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 미친소를몰아내는청소년들이란 청소년 단체 학생들이 지난해 12월 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앞에서 ‘광우병 우려 미국산 수입쇠고기 학교 급식,패스트푸드 사용 금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시민의 신문)
     

    전통 좌파들의 무식한 편리함

    요즘 관심사는 ‘환경’이라는 표딱지 없이도 당의 생태주의 대선의제, 보다 정확히는 적록동맹의 의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생태주의자인 <녹색평론>의 김종철 교수는 ‘생태주의는 농업’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의 강조가 아니더라도 농업의 생태적 가치는 주지의 사실이지만, 농업이 도시민에게 다가오는 ‘먹거리’는 생태주의의 전략적 거점이자 적록동맹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노동당이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민중들의 핵심적인 불만과 바램 중에 하나이고.

    ‘먹거리 안전’ 문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현재 진행중인 광우병 쇠고기 논쟁에서부터, 불량 만두 파동, 학교 집단식중독, 농산물 잔류농약, 유전자조작식품, 항생제 과다투여된 축산물과 생산 등, 먹거리 안전에 관한 목록을 적어서 칼럼을 대신할 수도 있을 정도로 많다.

    대다수 국민들도 먹거리 안전에 대해서 대단히 큰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러 조사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뭐 특별히 신선할 것도 없다. 지난 대선과 총선 때, 이놈저놈 모두 이야기한 것이고, 현 정부에서도 먹거리 안전에 대해서는 여러 정책을 제시해왔다. 그런데도 먹거리 불안은 잦아들지 않고 있지만.

    또 다른 먹거리의 모습이 있다. 사회가 양극화가 먹거리에도 나타난다. 보건복지부는 3년에 한번씩 ‘국민건강영양조사’라는 것을 한다. 최근의 조사(2005년)에 의하면, 소득계층에 따라서 국민들이 섭취하는 영양성분량이 차이나고 그 격차가 커지고 있다.

    저소득층에서 비만이 더 많이 발견되는 비극

    게다가 충격적인 사실은 배고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전체 중에 10%에 달한다는 점이다. 다이어트 열풍과 웰빙 식단을 안내하는 기사가 넘쳐나는 와중에서, 빈곤층은 배가 고프다. 또한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내에서도 비만이 저소득층에서 더 발생한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이젠 먹어도 뭘 먹느냐는 문제도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런 먹거리 불평등은 최종적으로 건강 불평등의 한 원인이 된다.

    이와 같은 ‘먹거리 복지’와 ‘먹거리 안전’이 수요의 측면이라면 공급 쪽은 어떤가? 농민운동이 오랫동안 주장해왔듯이, 농업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위한 희생양이었다. 그 결과 농민과 농경지가 계속 줄어들면서, 한국의 식량자급도는 쌀을 제외하면 5%대에 머물고 있다. 먹거리 생산과 공급 대부분은 다국적 곡물회사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은 오래다. 안정적인 먹거리 공급, 즉 ‘식량 안보’에 사실상 구멍이 뚫려 있는 상태이다.

    또한 농업의 몰락과 소농의 축출은 지역사회와 지역경제의 황폐화와 몰락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역의 물질적, 경제적 순환에서 농업을 제외시키고서 지역사회가 활성화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비판을 주목해야 한다.

    물론 농업은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하는 관행농업이 아니라 환경친화적인 농업으로 전환하여 지역의 자연적, 사회적 순환과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생태주의자들은 안전하고 안정된 식량안보/안전을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농업 회생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지역먹거리 시스템에 대해서 고민한다.

    적록동맹과 먹거리 동맹

    ‘먹거리’는 ‘먹거리 안전’, ‘먹거리 복지’, ‘농업회생’ 이라는 세가지 의제를 엮어준다. 물론 분절된 의제의 총합, 수요와 공급 양 측면의 결합은 그동안 분리되고 갈등해온 영역들 사이의 대화를 필요로 한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반대하는 농민에 대해서 한국 축산업의 과다한 항생제 사용을 들어 냉소하는 소비자. 식품안전 사고가 터질 때마다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소비자를 생뚱맞다는 눈으로 멀뚱히 쳐다보는 생산자.

    농업파탄의 위기 속에서 말로만 연대라며 분통을 터뜨리는 농민들을 뒤로하고 회식자리로 몰려간 노동자들(제주도 한미FTA 투쟁).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서 나선 소비자와 생산자들의 만남 속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먹거리 빈곤층의 배고픔.

    이 분열의 선들을 뚫고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에서 ‘먹거리 동맹’을 어떻게 이루어 낼 수 있을까. 나의 정치적 상상력은 여기에서 팔딱거린다. 그리고 이것이 ‘환경’ 두 글자 없어도 일궈낼 수 있는 적록동맹의 의제이자 민중들에게 희망의 의제이다. 민주노동당의 대선의제로 ‘먹거리’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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