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병호씨는 신문은 보고 사나?
        2007년 02월 12일 12: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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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병호 박사(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전 자유기업원 원장)는 지난 1월 23일자, 29일자 <한겨레>를 통해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의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성찰』을 비판했다. 김동춘은 그 책에서 전 사회가 기업화하고 있는 데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 공병호는 그런 현상이 올바른 것이라며, “경영원리의 도입이 모든 영리단체 뿐만 아니라 비영리단체의 효율성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사회의 효율성은 자연히 뒤를 따르게 된다”고 주장한다.

       
      ▲ 공병호 박사 (사진=공병호 블로그)
     

    기업의 경영원리가 전 사회를 지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공병호가 펴는 부수적인 주장과 논거들은 경제학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의 것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수준이다. 경제학 박사학위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신문이나 TV는 보고 사는지, 심히 걱정된다.

    “김동춘 교수는 계층이나 집단 간의 갈등으로 사회를 바라본다. 흔히 다수의 사회학자들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나는 계층이나 집단이란 개념은 학자들의 머릿속에 창조된 개념이라고 본다.”

    그런데, 김동춘을 비판할 때 이외의 공병호는 계급 계층 갈등관으로 이 사회를 바라 본다. 이론적으로는 하이예크의 ‘경제적 개인’ 관점을 표방하면서도, 그 역시 ‘학자들의 허상’이라는 계층 갈등론에 입각해 사회를 분석하며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곳곳에서 엉뚱한 정책 선택들이 이뤄지게 되고 이를 두고 사회적인 갈등과 분쟁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파이낸셜뉴스>, 2006. 06. 25).” “한국 사회의 권력과 계급을 구분하는 잣대는 이제 ‘영어’(<한국일보>, 2006. 03. 06)” “산업혁명의 영구한 유산 가운데 하나는 정규직 직업을 포기하고 새로운 노동방식을 찾아서 떠나는 새로운 노동계급이다(<동아일보> 2007. 1. 10).”

    “진보적인 색채를 가진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광폭한 신자유주의(?)’ 원리의 확산은 놀랍게도 특권을 누리고 있던 사람들의 낭비를 줄여감으로써 다수의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 나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공병호가 “특권을 누리고 있던 사람들”이라 지적하는 것은 공공 영역이다. 공공의 민영화가 과연 “다수의 사람들의 삶의 수준”을 개선하고 있을까? 민영화 이후 KT 주식의 2/3는 외국인에게 넘어 갔고, 그들에 대한 배당은 다섯 배나 늘었다. 반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비 축소, 감원으로 인해 전국 곳곳에서 통신 두절 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조차 “KT가 민영화 이후 소비자 권익보다 주주 이익을 먼저 살펴 유선전화에 대한 설비투자를 게을리한 것도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적할 정도에 이르렀다(이해관, 「사회책임의 관점에서 바라본 민영KT의 주주가치 경영」, 2006).

    사상 최고의 이익을 내고 있는 하이닉스에서 정규직에게는 1천만 원의 성과급을 지급하면서 비정규직에게는 단 한 푼도 주지 않는 현실이 공병호가 이야기하는 “다수의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 나아지는 것”이다. 소득과 소비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지고, 부유층의 명품 소비와 호화로운 해외 여행이 폭증하는 것이 공병호가 말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던 사람들의 낭비를 줄여가는” 실상이다.

    공병호는, 눈 감고 귀 막지 않고서는 절대 모를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한다. 지금 막 동면에서 깨어났거나 북한에서 월남한 모양이다. ‘기업 파업론’에 대한 그의 반박 역시 황당무계하기 그지 없다.

    “기업의 파업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 그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원자적인 존재들이기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기업가들이란 돈이 될 수 있다면, 각자가 알아서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무리를 만들어서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그런 자들이 아니라 대부분은 개인적인 이익을 앞세우는 자유주의자들이다.”

    작년에는 CJ, 삼양사, 대한제분 등이 “무리를 만들어서” 밀가루와 설탕 가격 담합을 했음이 드러났다. 최근에는 거대 정유회사들의 기름값 담합과 70만 원짜리 교복이 문제되고 있다. 이런 회사들은 기업이 아니고, 그 경영자들은 기업가가 아닌가? 공병호가 몸 담고 있던 자유기업원은 요즘 사회적 기업 육성법 폐기, 어린이집 국공립화 반대, 한미 FTA 관철을 위해 투쟁 중인데, 이런 것이 ‘원자적인 이익 활동’인가?

    공병호가 양심적인 이야기를 했던 때도 있다.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1년 반만에 실업자가 됐던 시절이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전 그 ‘아사리판’에서 몸 하나 무사히 빠져나온 걸 하늘의 도우심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 이전에 저는 기업가란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생각했어요. 한마디로 기업가에 대단히 호의적이었죠. 지나치게 규제하지 않아도 시장이 알아서 보완해 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인간이란, 사업이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더군요. 무조건 선한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시장은 시장대로 돌아가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더라 이거죠. …… 옛날의 저는 정말 순진했습니다. 이젠 재벌이니 뭐니, 그렇게 기업가 편에 서서 논쟁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신동아> 2001년 12월호).”

    그랬던 공병호가 지금은 다시 “대기업의 엘리트가 (사회를 압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며, 그 ‘아사리판’을 전 사회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병호는 재벌의 피고용인일 때는 재벌을 극구 옹호했고, 비합리적인 경제에 상처 입은 중소기업가였을 때는 재벌을 비판했고, 지금은 다시 재벌 편을 든다.

    왜? 지금의 공병호가 극우적인 경제이론을 팔아먹는 ‘1인 자영업자’ – 책장사이기 때문이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는 개인’이라는 공병호의 이론은 자신에 한해서는 완벽한 진실이다.

    “김 교수가 비판하는 개방과 유연화는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 내는 가치 이상으로 무임승차에 익숙한 사람과 조직이 자신의 가치 창출에 합당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다.”

    나는, 공병호의 위 주장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자신이 만들어 내는 가치 이상으로 무임승차에 익숙한 사람”,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대기업을 부당 지배하는 재벌 총수들은 물러나야 한다. 공병호가 존경해 마지 않는 하이예크의 시장 작동 전제인 ‘법의 준수’를 위해 이건희, 정몽구 같은 사람들은 감옥으로 가야 한다.

    “자신의 가치 창출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공병호다. 공병호의 주장과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그냥 우긴다. 자신의 주장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면, 신문에 나거나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명백한 사실조차도 무시하고, 자신의 허무맹랑한 공상을 마음껏 편다. 따라서 한 달에 한 편 꼴로 쏟아져 나오는 그의 책들은 ‘경제’ 분야 서가에서 ‘공상소설’ 부스로 옮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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