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심에서도 승소,
    계란으로 바위를 깨다!
    [낭만파농부] 마음속의 동네잔치
        2022년 09월 30일 10: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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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보름 남짓 지났건만 그날의 흥분과 기쁨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비봉 돼지농장 재가동을 둘러싸고 펼쳐진 행정소송 2심에서도 우리 주민과 완주군이 승소한 걸 두고 하는 얘기다.

    1-2심 법원이 잇따라 업체쪽의 ‘가축사육업 불허가처분 취소 청구’를 기각함에 따라 농장 재가동을 반대해온 지역주민과 불허가 처분을 내린 완주군의 입지가 더욱 유리해졌다. 업체가 대법원에 상고할 게 뻔하고 심리과정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결과가 뒤집어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게 법조계 주변의 판단이다.

    2심 법원은 1심에 이어 완주군이 제시한 세 가지 처분사유 모두를 정당하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특히 ‘생태가치’를 중시하는 시대정신을 여러 차례 강조했고, 주민의 환경권에 대해 진전된 시각을 보여줬다. 1심 재판부가 “‘지역 주민의 극심한 반대 민원’을 불허가 처분사유로 든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 반면 2심 재판부는 “인근 주민들의 불편도 공익상 고려요소 중 하나에 해당함은 부인할 수 없다”고 판시한 것이다. 주민과 완주군이 그야말로 완승을 거둔 셈이다.

    ‘비봉 돼지농장 2심도 승리!’ ‘이겼다 또 이겼다!’ ‘주민과 완주군이 이겼습니다!’ ‘완주군 공무원 여러분! 애쓰셨습니다’ 고산과 비봉면 일대에 내걸린 현수막을 마주할 때마다 감흥은 새롭기만 하다.

    상대가 국내 유수의 농축산재벌 계열사인데다 역시 첫손에 꼽히는 대형로펌이 소송을 대리하는 통에 다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거둔 승리라 더욱 뜻이 깊다 할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풀린 건 아니다. 무엇보다 “법정다툼이라는 적대적이고 소모적인 방식보다는 완주군이 농장을 매입해 친환경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상생의 길”이라는 주민 대응조직 이지반사(이지바이오 돼지농장 재가동을 반대하는 완주사람들)의 시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해서 얼마 전 완주군과 지역주민, 완주군과 업체 사이에 농장부지 매매를 적극 추진한다는 협약이 체결된 건 무척 다행한 일이다. 물론 넘어서야 할 변수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슬기롭게 대응해나간다면 마침내 최종적 해결에 이를 것이다.

    어쨌거나 기쁜 건 기쁜 것이다. 지역 주민,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온 이들과 더불어 기쁨을 나누고 나서 흐뭇한 표정으로 들녘을 둘러보니 어느새 거기에 가을이 와 있었다. 지지난해는 여름, 지난해는 가을 장마에 휩쓸려 연 이태 흉작의 쓴맛을 봤던 데 견주면 올해는 논배미 때깔이 괜찮은 편이다.

    그새 누렇게 물든 벼이삭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지 아니한가. 가을걷이 준비를 서두를 때가 된 것이다. 급히 사람들을 불러 모아 트럭으로 나락을 실어나를 뚝방길 우거진 수풀을 쳐냈다. 아울러 주변 야산에서 끝없이 빗물이 흘러드는 샘골 둘레 도랑을 치는 작업도 빼놓을 수 없다. 논바닥 수평이 맞지 않아 물이 흥건히 고여 빠져나가지 못하는 곳은 벼포기를 줄줄이 뽑아서 물길을 내는 ‘도구치기’를 해줘야 한다. 그래야 콤바인(수확기계)이 진창에 빠져 허우적대는 걸 최대한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도랑치기 모습

    그러고 보니 나락이 무르익고 논배미에 황금빛 물결이 일렁일 즈음 벌어지는 ‘황금들녘 풍년잔치’가 머지않았다. 서둘러 벼농사두레 집행부 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올해는 이 잔치를 건너뛰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지난 2년 코비드19 국면을 지나면서 거푸 취소해온 점을 감안하면 무척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열리는 지역 행사가 너무 많다. 게다가 올해는 코비드 방역체제가 풀리면서 벼두레 자체로도 많은 행사를 성황리에 치르는 바람에 잔치를 치를 여력이 별로 없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실 ‘황금들녘 풍년잔치’가 아니라도 가을을 지나면서 이런저런 잔치가 줄줄이 이어진다. 사실 그걸 치러내는 일도 만만치가 않다.

    어쩌면 우리는 풍년잔치보다 더 풍성한 잔치를 이미 치렀는지도 모른다. 가슴을 졸이며 결과를 기다려왔고, ‘계란으로 바위를 깬’ 돼지농장 소송 ‘선고 잔치’ 말이다. 비록 이번에는 마음 속으로 잔치를 치렀지만 ‘대법원 승소’나 ‘농장부지 매매계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는 날 우리는 그야말로 흐드러진 동네잔치를 벌이고 말 것이다.

    * <낭만파 농부의 시골살이>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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