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역사상 가장 과격하고 근본적인...
        2007년 02월 10일 09: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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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중국 창춘에서 열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시상대위에 올라선 한국 선수들이 ‘백두산은 우리 땅’이라는 내용의 손글씨를 들고 올라가 화제가 됐다. 주장이 옳고 그른가를 떠나 두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시아인들의 화합과 단결이라는 아시안게임의 목적에 비추어 행사의 주최자인 중국인들의 면전에서 중국을 비난하는 행동이 과연 현명했는가와 함께, 스포츠가 자본의 포로가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이고 이제는 민족의 충돌이라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족이라는 틀에 갇힌 채 미래를 향해 한발자국 앞으로 가기는커녕 끊임없이 뒤로 가는 동아시아의 현실이 스포츠에도 짙게 깔려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국제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 다른 이들에게는 자긍심을 되살리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비슷하지만 전혀 맥락이 다른 광경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1968년 메히코(멕시코)에서 열린 하계올림픽 남자200m 경주의 시상식이다. 10월 17일 미국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1위와 3위로 결승을 통과했다.

    이어 열린 시상식에서 두 선수는 신발을 신지 않고 검은 양말채로 시상대위에 올랐다. 미국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두 선수는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높이 쳐들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자긍심과 함께 미국에 대한 거부를 시상대 위에서 표현한 것이다.

    은메달을 딴 오스트레일리아 선수는 연대의 의미로 흑인인권에 관한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이 광경을 보고 야유를 보내는 관중과 박수를 치는 관중들이 섞여 있었지만 야유의 함성이 압도적이었다.

    중국의 우리 선수들이 국내 언론에게 칭송에 가까운 호평을 받은데 비해, 백인들의 미국은 두 선수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 놨다. 심지어는 손을 치켜드는 방식이 나치식이라는 근거 없는 비판까지 나왔다.

    귀국하면 죽여버리겠다는 극단적인 협박전화도 두 선수의 집에 끊이지 않았다. 일부 흑인 지도자들도 이들의 과격함에 실망과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당사자인 토미 스미스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만약 내가 경주에서 이긴다면 언론은 나를 미국선수라고 부른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도 아니다. 그냥 미국인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사소한 잘못이라도 저지르면 금방 깜둥이로 바뀐다. 나는 흑인이고 흑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두 선수가 보여준 행동과 복장은 60년대 ‘블랙파워’라는 이름으로 대두된 흑인 급진주의 운동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급진주의가 가장 최고조로 표현된 운동은 누가 뭐라 해도 ‘블랙팬더당’이었다.

    블랙팬더당은 당원들을 무장시키고 훈련을 하는 이유가 흑인공동체의 ‘정당방위’와 자치, 치안을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이들이 마오주의의 영향을 받아 흑인 공동체의 봉기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비밀도 아니었다.

    그러나 블랙팬더당의 급진성은 그들이 들고 있는 총기나 검은색 일색으로 치장한 복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흑인들의 해방은 미국 백인들까지도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하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다는 이들의 사상이 기존의 흑인민권운동과 블랙팬더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였다.

    미국의 흑인들이 투표권을 얻거나 연금을 받게 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흑인사회의 빈곤과 저개발은 자본주의와의 작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블랙팬더당은 FBI의 오랜 공작과 내부분열 등으로 붕괴됐지만 그 영향은 흑인급진좌파운동으로 이어져 기독교에 기반한 온건주의, 백인사회와의 물리적 단절을 주장하는 미국이슬람교단과 함께 아프리카계 미국인 운동의 3축을 이루고 있다.

                                                           * * *

       
    "Lets Get Free"
    2000년
    1  Wolves
    2  I’m a African
    3  They Schools
    4  Hip-Hop
    5  Police State
    6  Behind Enemy Lines
    7  Assassination
    8  Mind Sex
    9  We Want Freedom
    10  Be Healthy
    11  Discipline
    12  Psychology
    13  Happiness
    14  Propaganda
    15  The Pistol
     
       
    "RBG: Revolutionary But Gangsta"
    2004년
    1. Don’t Forget Where U Came From
    2. Walk Like a Warrior
    3. I Have a Dream, Too
    4. D.O.W.N.
    5. Hell Yeah (Pimp the System)
    6. W-4
    7. Radio Freq
    8. F***ed Up
    9. 50 in the Clip
    10. Way of Life
    11. Don’t Forget Where U Goin’
    12. Hell Yeah (Pimp the System)[Remix]
     

    데드 프레즈Dead Prez는 M-1과 스틱맨stic.man으로 이루어진 힙합듀오다. 2000년에 데뷔한 이 팀은 21세기의 힙합 씬에서는 보기 드문 급진적인 주장과 가사를 보여줬다. 이들은 공공연하게 자신들의 음악과 정신은 블랙팬더당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한다.

    물론 두 청년은 블랙팬더당이 붕괴한 이후인 70년대 중반에 태어났지만 확실히 이미지로서의 블랙팬더운동이 아니라 흑인급진주의 운동의 사상적 핵심을 이해하고 힙합의 리듬에 담아 전파하고 있다.

    첫 앨범인 “자유를 위해Let’s Get Free”는 발표되자마자 주류/비주류 가릴 것 엇이 모든 매체의 주목을 받았다. 이제는 미국 민주당의 기관지로 전락한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조차도 퍼블릭 에네미 이후 사라졌던 힙합의 반역성을 되살린 시도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유는 음반을 들어보면 확실해 진다.

    “자유를 위해”는 아프리카민중사회당(African People’s Socialist Party)의 의장인 오말리 이쉬텔라의 연설로 시작한다. ‘우후루 운동’이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아프리카인 국제주의 운동’은 흑인의 해방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양쪽에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며 그 방법은 사회주의라고 주장한다.

    데드 프레즈의 멤버들은 아프리카민중사회당의 대중조직인 ‘국제인민민주우후루운동(The International People’s Democratic Uhuru Movement)’에 관련되어 있기도 하다.

    앨범의 실질적인 첫 곡인 ‘나는 아프리카인이다I’m a African’는 우후루운동의 사상을 요약하고 듀오의 음악적인 방향을 설정하는 성명서와 같은 곡이다. 이 곡은 ‘나는 아프리카인이지, 단 하루도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American으로 살지 않았다’는 자기 정체성의 선언과 함께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라’는 선전선동으로 가득하다.

    두곡의 히든트랙을 포함해 앨범의 18곡은 백인중심의 교육체계 속에서 흑인이 어떻게 배제되는지를 다룬 ‘그들의 가르침They Schools’처럼 흑인사회의 현실과 억압의 질서와 구조를 설명한다.

    나머지 곡들을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앨범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블랙팬더당의 지도자였던 프레드 햄튼을 노래한 ‘적진의 한가운데Behind Enemy Lines’처럼 블랙팬더운동의 정신이다.

    블랙팬더당의 정신적 지주였던 휴이 뉴튼의 이름은 앨범의 이곳저곳에서 계속 등장한다. 그만큼 이 운동이 이 힙합듀오에게 미친 영향은 너무 명백하다.

    데드 프레즈의 또 다른 특징은 흑인공동체의 분노를 원시적으로 드러낼 뿐 대안이 없는 다른 힙합 아티스트들과 달리 매우 지적인 가사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인용하는 ‘인간성의 동물성Animal in Man’이나 사회주의 경제의 원리를 기본단어만을 이용해 설명하는 가사(‘경찰국가Police State’)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앨범인 “혁명적인 갱스터Revolutionary But Gangsta”는 2004년에 발표됐다.

    다소 황당해 보이는 제목은 사실 이 듀오의 음악적인 방향을 상징한다. 혁명운동가와 갱단의 단원이 어떻게 공통분모를 지닐 수 있는지 의아할 수 있지만, 앞서 소개한 데뷔앨범의 수록곡 ‘나는 아프리카인이다’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N.W.A.와 퍼블릭 에너미의 중간 그 어디쯤에 우리가 있다.’

    미국 서해안에 기반한 갱스터 랩의 대부N.W.A.와 미국 동부 급진적인 힙합의 원조인 퍼블릭 에너미의 중간지대에서 정치와 음악의 양쪽 끈을 놓치 않는 것이 자신들의 노선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단순히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욕심의 표현이 아니다.

    한때 새로운 저항음악의 원천이라고 일컬어졌던 힙합이 어느새 갱스터와 대형음반사의 노예가 되어 자본의 음악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저항의 복원과 함께 자신들의 목소리가 흑인사회 안에서도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으로 끝나는 것을 막기 위해 ‘팔리는 음악’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업적인 타협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리듬을 만들어 대중들의 인정을 받겠다는 것인데 데드 프레즈가 주목을 받는 것은 정말로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때문이다.

    앨범의 제목은 다른 의미도 함축한다. 약자인 RBG는 아프리카인 단결의 상징인 붉은색, 검은색, 녹색을 나타낸다.

    이 앨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곡은 ‘나도 꿈이 있다I Have a Dream, Too’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 문구를 살짝 비틀은 제목이다. 경찰에게 살해당하는 흑인소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어나가면서 언젠가 흑인아이와 백인아이가 손잡고 언덕을 오르는 킹 목사의 연설이 얼마나 먼 나라 이야기인지 비판하고 있다.

       
      혁명(!)적인 힙합 듀오 ‘데드 프레즈’

    이 노래는 마지막에 암살당하거나 투옥되는 등 권력의 탄압에 직면했던 혁명가들과 단체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그런데 단지 흑인해방운동가들 뿐만 아니라 레오나드 펠티어 같은 미국원주민(이른바 ‘인디언’) 해방운동가와 투팍 아마루 같은 라틴아메리카 게릴라운동과 사파티스타 같은 메히코 원주민운동들도 등장한다. 아프리카인의 단결이 제3세계의 연대로 확장된 것이다.

    물론 이 제3세계는 1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1세계의 안에, 그러니까 뉴욕과 런던의 거리 안에 제3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음악적인 평가는 데뷔앨범에 비하면 다소 미진했던 두 번째 앨범이지만 “퍼블릭 에너미 이후 가장 정치적인 랩”을 들려주는 데드 프레즈의 노선에는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혁명적인 갱스터” 발표 후 데드 프레즈는 랩의 창시자라고 여겨지는 대선배 아티스트 라스트 포엣츠Last Poets와 함께 녹음한 싱글 ‘팬더스Panthers’를 발표했다. 블랙팬더 이후의 블랙팬더를 계승하고 있는 후배와 60년대 블랙팬더 당원들과 함께 투쟁하며 노래했던 선배가 손잡고 미국 역사상 가장 과격하고 근본적이었던 해방운동의 역사를 노래한 것이다.

    검은 표범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백인지배사회에 상처를 남겼던 운동은 이제 힙합의 무거운 비트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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