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석영이 손학규를 지지한다?
        2007년 02월 09일 08: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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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소설가 황석영씨의 ‘정치행보’가 논란을 낳고 있다.

    황씨는 연초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도론’을 제기하며 "새 정치질서 만들기에 나라도 총대를 멜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황씨는 얼마 전 <오마이뉴스> 기고문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상세하게 밝혔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를 맡고 있는 이승철 시인의 반론이 뒤따랐다.

       
     ▲ 소설가 황석영씨
     

    반론에서 이 시인은 몇 가지의 정황을 근거로 황씨가 손학규 전 지사를 대권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런데 시점이 미묘하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 김근태 의장 등이 손 전 지사를 ‘잠재적 우군’으로 분류하고 있고,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은 한나라당보다 여권 지지층에서 더 높다. 여기에 화답하듯 손 전 지사는 8일 햇볕정책 계승론을 공격적으로 내놓으면서 여권과의 사이에 놓인 장애물을 걷어 버렸다.

    물론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뛰쳐나와 여당의 품에 안길 가능성이 현재로선 많지 않다. 그러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도 보기 힘들다.

    그간 손 전 지사의 여권 합류설이 진화해온 경로를 봐도 그렇다. 손 전 지사의 여권 합류 가능성에 코웃음을 치던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바꾸는데 두 달이 채 안 걸렸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면 길이 되듯, 정치적인 말이 쌓이면 정치적인 길이 된다. ‘중도론’을 들고나온 황씨가 손 전 지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소문은 이런 맥락에서 개연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이른바 ‘진보개혁’ 세력의 내부에서 황씨의 구상은 어느마한 정치적 울림을 가질까.

    지금종 문화연대 사무총장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지금 ‘창조한국 미래구상’의 대변인을 맡고 있다. 지 총장은 황씨의 주장에 대해 시종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황씨가 제기한 ‘중도론’을 "대중영합주의"라고 일축했다. 또 "한국에서 중도는 보수를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됐다. (사회적 위기의) 원인이 있고 해법이 있다. 중도라는 말로 적당히 뭉갤 수 있는 게 아니다"고 했다.

    그는 황씨가 70, 80년대 민주세력의 재결집을 호소한 것에 대해서도 "잘못된 생각"이라고 잘랐다. 그는 "87년 이후 사회가 바뀌었고, 외환위기 이후 또 바뀌었다. 사회가 바뀌었는데 옛 사람들 모아서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이미 정치적으로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이다. 게중에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각자 살아온 길이 다르고 정치적 입장이 다른데 뭘 가지고 모아내느냐"고 반문했다.

       
     ▲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지 총장은 여권의 후보로 손 전 지사가 거론되는 것에 대해 "코메디다. 얘기할 가치도 없다. 정치엘리트의 이합집산적 발상이다. 국민의 이름을 팔면서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 총장은 황씨의 언행에 별반 정치적인 무게를 두지 않는 눈치였다. ‘황씨의 문제의식에 대해 시민운동이나 문화운동 진영에서 반응을 좀 보이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아는 한 전혀 없다"고 했다.

    ‘황씨가 미래구상에 정치적인 제안을 해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논의해 봐야 알겠지만 개인적인 판단으론 수용할 여지가 거의 없다고 본다"는 답이 돌아왔다.

    역시 ‘미래구상’에 참여하고 있는 카톨릭대 안병욱 교수에게 최근 황씨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안 교수는 "관심 없어 잘 모르겠다"고 했다.

    황씨의 구상은 ‘진보개혁’ 세력 내부에서 아직 별다른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이나 민중운동단체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황씨는 ‘개똥폼 잡지 말고 저잣거리로 내려오라’는 자신의 말대로 저잣거리로 내려섰다. ‘진보개혁’ 세력의 정치적 무기력과 문단의 정치적 엄숙주의를 깨기 위해 스스로 광대역을 떠맡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벌써 ‘얼룩’도 적지 않이 튀었다.

    황씨의 정치행보에 대한 평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다만 문학적으로건 정치적으로건 황씨를 ‘친구’로 여겨온 많은 사람들은 씨의 최근 행보에 대해 적지 않은 당혹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것은 내용 때문이기도 하고 소통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황씨는 폭 넓은 공감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제도권 명망가를 묶어세우는 정치적 기획에 주로 관심이 가 있는지 모른다. 황씨의 ‘친구’들이 가장 걱정하는 게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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