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보수 시대 앞둔 진보 대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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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09일 04: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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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5.31 지방 선거에서 확연히 드러났던 현 정부로부터 민심 이반은 돌이키기 어려운 현상으로 보인다. 참여 정부는 성장 동력 제고, 일자리 창출, 그리고 사회 통합 모두에서 성공하지 못했고, 민생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열린우리당은 분당되었지만 그 이후 운명도 불투명하다. 이대로라면 한나라당으로 정권 교체는 역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민주화 20년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가 맞고 있는 전환기적 위기는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가.

    당면한 전환기적 위기의 성격과 진보

       
     ▲ 이병천 강원대 교수, 참여사회연구소장
     

    한나라당으로 정권 교체는 어떻게 보아야 하나. 민주주의의 새 길의 무게중심은 제도정치와 사회운동의 어디에 두어져야 하는가. 도대체 진보 쪽에 대안은 있는가.

    한국의 진보 진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단일하지 않고 복수(複數)의 중첩된 형태로 존재한다. 우리 시대 진보 담론은 서로 엇갈리고 때로 충돌하면서 자신을 단련시켜 왔다. 작년에는 백낙청 교수와 최장집 교수 간에 묵직한 논쟁이 있었다.

    최근 <레디앙>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진보 대 진보의 최신 소식의 일단을 전해 준다. 그런데 막대기를 반대방향으로 너무 많이 구부리는, 의외의 발언이 나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레디앙> 측의 요청도 있어서 간단히 나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쟁점은 많지만 이 글에서는 주로 한나라당 집권과 그것이 진보 진영에 던지는 의미와 관련하여 언급하고 싶다.

    최장집 교수의 발언은 상당한 의외

    한나라당으로 정권 교체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 제도정치 중심주의 대 사회운동 중심주의 논쟁은 작년부터 있어 왔지만, 조희연 교수가 최장집 교수의 견해에 대해 <레디앙> 지상에서 공개적으로 논쟁을 시작한 것은 최근 대두된 이 문제의 특별한 중요성을 생각한 때문이었던 것 같다.

    최교수의 한국 민주주의 위기 진단과 정당 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대안 민주주의론에 대해서는 나도 그 호소력과 함께 미진함을 몇 가지 지적한 적이 있다. (“다시 우리 시대 진보를 말한다”, 황해문화, 2006년 가을 ;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시민과 세계 9호,2006 ). 그렇지만 최근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교체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듯한 그의 발언은, 상당히 의외다.

    먼저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는 일이 여전히 우리 시대 진보를 위해 주요한 과제, 또는 ‘주전선’이고 따라서 이를 위해서 ‘대동단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동의하지 않음을 말해두고자 한다.

    사회경제 개혁에 실패한 중도자유주의로부터 진보는 단호히 분리 정립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 당의 집권은 기꺼이 받아들일 일은 못된다. 그것은 분명한 민주주의의 퇴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한나라당 집권은 분명한 민주주의의 퇴보

    또 한반도 평화의 길에서도 퇴보다. 남한 내부의 정치적 민주주의, 그리고 남북 관계에서 그간 우리가 이루어온 적극적 성취를 단지 집권 세력의 실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중도 세력과 진보 세력이 함께 힘을 합쳐 이룬, 한국 사회와 한반도 차원의 성취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평화와 정치적 민주주의 문제에서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럴까. 나는 한국의 보수 우익세력이 이 문제를 가지고 얼마나 ‘장난질’을 할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단지 ‘부차적 전선’이라고 밀어 내기에는 문제가 무겁다.

    민중의 정치의식의 한계를 깨기 위해 민중들이 한나라당 통치 시대를 직접 경험해 봐야 한다는 손호철 교수의 견해는 어떤가. 민중의 정치적 각성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싶다.

    억압이 심해진다고 해서 정치의식이 더 발전하겠는가. 오히려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 괴로워하면서도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면서 더 보수화될 수도 있다. 저항도 하겠지만 이 저항은 즉자적 형태가 될 수 있고, 정치의식의 발전과는 간극이 클 것이다.

    "한나라당 집권 민중학습 호조건" 손호철 교수 입장 동의 어려워

    한국의 민중은 민주적 훈련의 경험 기반이 얇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한나라당 통치시대가 민중의 학습에 호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경제 실적은 어떨까. 현재로서는 한나라당의 정책이 정확히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런데 예컨대 이명박식 ‘신개발주의’또는 박근혜식 사람 잡는‘사람 경제론’을 염두에 두면서 추측을 해 본다면, 대폭적 규제 완화를 통한 재계의 투자 촉진, 조직 노동자에 대한 억압의 강화, 돌진적인 토건(土建)성 사업의 대대적 전개 등의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민영화가 크게 진전될 것이고 세금도 대폭 낮출 것이다. 불평등은 더 심화될 가능성이 많다. 사회 복지는 후퇴하거나 기껏해야 정체되지 않을까. 생태적 악화는 아주 확실하다. 그러면서 경제 성장은 더 이뤄지고 양질은 아니지만 일자리도 더 생길지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경제성장간의 관계라는 해묵은 주제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민주주의는 실질적 내용을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경제 성장, 일자리 창출과도 병행 발전하지 못했다.

    한나라당 시대, 파시즘보다 고이즈미 신우익 연상

    시장질서의 정립도 중도반절이었다. 한나라당 정부가 된다면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시장질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성장과 일자리에서 경제 실적은 더 나아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나의 경우 한국의 한나라당 시대는 저 멀리 영국의 대처주의나 독일의 파시즘이 아니라, 가까운 일본의 신우익 고이즈미 시대를 연상시킨다.

    이것이야말로 한나라당의 역사적 기회이며, 한국 민주주의-정치민주뿐 아니라 사회경제민주에도-와 한반도 평화의 길에 대해서는 큰 위협이다. 과거사 청산 작업과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물론 한나라당에게도 주어진 보장은 없다. 그들은 자신에게 다가온 역사적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만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한국판 유사 고이즈미 정권이 출현한다면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더 나아가 환영할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막을 방법만 있다면 막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주 고통스러운 것은 뾰족한 대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합 신당이 한나라당과 경합하는, 어떤 새로운 중도 개혁 정당이 될 가능성이 있을까.

    필경 국민들은 이들을 열린 우리당과 50보 100보 차이로 볼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분열 이후 중도 정당 앞에는 아마 두개의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더 우회전하는 길이다. 이는 한나라당의 ‘2중대’가 되는 길이며, 전망이 없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개혁주의로 나아가는 길이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병행발전론 실패로 판명

    한국의 ‘구중도’는 경제정책에서 급진적 자유화와 개방화, 그에 따른 양극화의 모순을 사회정책에서 ‘생산적 복지’로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같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론은 오판이었고 실패로 판명되었다.

    이것이 참여 정부 실패의 근본 지점이고, 민주화 20년 한국 개혁 자유주의의 덫이며 그 실험의 가장 중요한 교훈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자유주의 경제 이념은 무늬만 참여일 뿐인, 탈정치적 동원 정치의 사고를 동반하고 있다.

    물론 최장집 교수와 조희연 교수가 의견을 교환한 바, 제도정치 중심주의 대 사회운동 중심주의라는 쟁점, 정치 전략문제이기도 하면서 민주주의와 ‘정치적인 것’의 본질 자체를 묻는 중요한 쟁점이 존재한다.

    나는 이에 대해 제도 정치, 공공영역 그리고 운동 정치가 상호 침투하는 ‘이중(dual) 민주주의’론을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중도 자유주의세력의 이념 골간에 내재된 근본 한계 지점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다.

    제도와 운동이 상호 침투하는 ‘이중 민주주의’ 

    만약 그렇다면 한국의 ‘신중도’는 더 나은 복지는 물론이지만 거기에 앞서 경제정책 수준에서 급진적 자유화와 양극화의 모순을 치유하고, 세계화 시대에 내발적 통합을 지향하는 사회경제적 개혁주의로 거듭날 때 비로소 새 전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중도는 이처럼 알을 깨고 나오는 산고(産苦)를 치러낼 각오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이 신보수시대의 개막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중도 개혁 세력, 더 정확히 말해 진정성을 가진 그 일부에게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좁은 길이긴 하지만, 사회경제개혁주의 ‘신중도’의 길과 그 정치적 공간을 열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 이런 질문을 한다.

    이같은 생각에는 ‘53년 체제’로까지 소급되는 ‘약한 노동’, 국가- 사회-자본의 관계, 성장주의로 각인된 국민 의식 등, 한국 특유의 정치적, 사회문화적 조건의 궁핍함에 대한 판단이 깔려 있다.

    최근 ‘미래 구상’의 움직임이 주목을 끌고 있다. ‘미래 구상’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나는 ‘미래 구상’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전혀 없다. 뉴라이트 쪽의 움직임과 비교해 본다면, 너무 늦은 대응이 아닌가 싶고, 무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와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후퇴를 막고, 사회경제적 개혁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 역할은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군소정당 전락과 대중정당으로 거듭나기 기로에선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은 어떤가. 민주노동당이 대중적 기반을 갖고 국회 안으로 진출한 것은 한국 진보 운동사의 보기 드문 쾌거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지금 큰 도전에 직면해 있고, 군소정당으로 전락하느냐 대중 정당으로 거듭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안으로는 복잡한 내부 정파 문제, 무엇보다 NL이 다수파가 되어 있는 현 상황을 극복하지 않는 한, 대중적 신진보정당으로 거듭 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한 핵문제에 대한 대응 방식은 민주노동당이 광장의 진보로 거듭나지 못한 채 여전히 구진보, 아니 보수와 다름없는 낡은 사고 틀에 갇혀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은 민주노동당이 큰 테두리에서 과연 어떤 실현가능한 대안 능력을 갖고 있는지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또 자신들을 어디로 데려 가려고 하는 조직인지 반신반의한다.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구호는 정말 멋진 구호였지만 구체적 진전을 보지는 못했다. 민주노동당은 구체적 진보로서 실력을 갖추어 가야 한다. 제도와 정책 차원의 대안이 중요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식인의 머릿속에 있는 대중과 판이하게 다른, 피와 살로 육화된 이 땅의 구체적 대중과 만나는 것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다. 민주노동당은 조세에 대한 저항의식이 강하고 성장주의에 크게 경도되어 있으며, 정체성의 부동(浮動)이 심한 독특한 대중들과 손발을 잘 맞추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도대체 왜 중도의 위기가 진보의 위기가 되는가

    다시 생각해 보자. 민주화 20년의 한 순환이 종말을 고하고 새 순환이 시작되는 상황에서 중도 자유주의의 위기는 민주노동당의 기회인가. 통상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에서도 그렇게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위기는 신보수의 기회가 되고, 민주노동당에는 동반 침체를 가져 왔다. 민주화 20년 중도의 위기와 신보수 시대의 임박한 개막은 민주노동당의 위기이기도 하다. 왜 도대체 중도의 위기가 진보의 위기가 되는가.

    나는 바로 여기가 민주노동당뿐만 아니라 한국의 진보 모두가 머물러 깊이 점검해 보아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현 정세, 한국 민주화 20년, 개발독재와 민주화 반세기, 분단⋅ 전쟁 ⋅냉전 반공주의의 역사적 중압, 그리고 밖으로는 세계적 진보 대안의 흔들림 등에 대한 세심한 검토가, 나아가 민주주의, 시민사회, 사회주의간의 관계에 대한 재성찰이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이 정치적 어둠 속으로 파묻히지 않고 21세기 한국 정치에서 ‘북극성’같은 존재가 되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허약한 중도, 강한 보수에 민주노동당의 기회가 있는가. 아니면 어떤 쇄신된 ‘신중도’, 그리고 시민사회 진지의 확장과 동반 성장하는 데 민주노동당의 새 길이 놓여 있다고 보는가.

    이것이 보수 일변도의 어둠을 뚫고 태어난 후 이제 다시 세계화 시대 지속가능한 성장, 양질의 일자리, 보편적 복지의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갈림길에 선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에 던지는 우리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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