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헹 씨의 죽음 이후에도
    농업 이주노동자 현실, 변화 없어
    모호한 근로계약, 열악한 주거현실, 성폭력의 위험까지...
        2022년 09월 27일 05: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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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2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자다가 숨진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 씨의 죽음 이후에도,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구인의정류장, 이주노조, 금속노조 경남지부 등이 연대하는 ‘이주노동119사업단’과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27일 오전 국쇠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업 이주노동자 상담사례를 발표하고 주거·노동환경 대책을 촉구했다.

    사업단은 지난 1년간 농업 이주노동자 300여 명에 대한 상담 활동을 진행했고 그 중 약 50건의 사건에 대해 행정 사법적 구제 권리 활동을 지원해왔다.

    상담을 진행한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대표는 “이주노동자들이 채 입국하기도 전에 맺는 근로계약서에 근로 장소 주소가 없거나, 일부러 지번을 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이주노동자를 마을 머슴처럼 여러 경작지에 돌려쓰는 일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가 밝힌 사례를 보면, 이주노동자 A씨의 근로계약서의 사업장 주소는 ‘밀양시 상남면’으로 기재돼있다. A씨는 최소 6곳 이상의 다른 경작지에서 자신의 고용주 혹은 다른 고용주에게 노동을 제공해왔다.

    현행 고용허가제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알선하고 관리한다. 노동부가 ‘부실 근로계약서’로 이 같은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근로계약서에 명시한 노동시간을 속이거나, 노동시간을 모호하게 기재한 근로계약을 노동부가 알선한 문제도 있었다. 김 대표는 “경남 밀양시에서는 ‘1일 휴게시간을 3시간’으로 정한 근로계약이 맺어지고 있으나, 정작 그 고용을 알선하는 노동부는 ‘그 3시간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전했다. 최근 전라북도 익산에서는 휴게시간을 ‘6시간’으로 정한 근로계약도 있었다.

    김 대표는 “노동력을 부당하게 착취하기 위한 편법 서류가 노동부의 비호에 의해서, 혹은 집단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며 “소위 ‘공제동의서’엔 비닐하우스 안 숙소의 공제액을 28만원으로 적었는데, 이는 노동부의 지침보다도 과도함에도 노동부는 그 적정성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고 처벌하지도 않았다”고 짚었다.

    2020년 속헹 씨가 추운 겨울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자다가 숨진 사건이 벌어진 후에도 이주노동자의 주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 사건 당시 정부의 실태조사 결과, 이주노동자 70%가 임시 가건물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정부는 사업주가 이주노동자 신규 고용허가를 받을 때 비주거용 불법 임시 가건물을 기숙사로 쓰지 못하게 하고, 쓰려면 반드시 지자체에 등록하거나 건축대장에 등록할 것을 요건으로 하는 개선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비닐하우스, 샌드위치 패널, 컨테이너, 폐가 등 기숙사 숙소가 많았고, 심지어 서류상 일반 주택이나 빌라 등을 기숙사로 쓰고 있다고 신고하고 실제로는 농지 옆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쓰게 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열악한 숙소에 거주하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성폭력의 위험까지 있다. 김 대표는 “성폭력 사건도 11건이 접수됐고, 대부분 주거환경과 연관이 되어 있었다”고 전했다.

    전북 익산 딸기 농장에서 일한 메이메이 씨는 회견에서 “제가 목욕하는 중에 누군가가 그 구멍을 통해 여성 욕실을 훔쳐보았다. 그 사람은 바로 저의 고용주, 사장이었다”며 “우리는 계약서에 적힌 것과 다르게 적게는 30분, 많게는 2시간 가까이 추가 노동을 했지만 우리가 받는 월급에 추가 노동시간은 계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는 그 농장을 떠났다. 사장님이 우리 욕실을 훔쳐봤고, 사장님 문제로 농장에서 나왔다. 그 숙소에서는 더 이상 불안해서 지낼 수가 없는 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너무 질렸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해서도, 추가된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더 따질 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주노동119사업단은 속헹 씨 사건과 관련해 국가의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소송에 참여하는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4년 넘게 대한민국에 체류하면서 속헹씨는 단 한 차례도 병원 진료를 받지 못했다. 건강보험도 적용하지 않은 사업장에 속헹씨가 일하도록 알선한 사람, 열악한 숙소를 제공하는 사업장에 일하도록 할선한 사람은 바로 사설 직업소개소가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 고용노동부 공무원”이라며 “특히 속헹 씨 사망 이전부터 노동부는 이 사업장의 기숙사가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속헹씨가 사망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열악한 주거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오늘 속헹씨 유족의 위임을 받아 국가배상 소장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한다”며 “단순히 추가적으로 금전배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속헹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속헹 씨는 지난 5월 2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았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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