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학생이 생각하는 대통령 후보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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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09일 10: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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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은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 당내 경선 보도와 관련, 본격적인 선거운동 기간-후보들의 공식 출마 선언 시기를 기준으로-이후에는 후보들 관련 기사의 양적 균형도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삼을 예정입니다. 현재는 예상 후보들이 ‘사실상’ 출마 선언을 한 상태로 본격적 운동의 전단계 또는 준비단계로 보고 있습니다.

    이 시기의 예상 후보 관련 보도는 대선보도 관점을 중심에 놓지 않고 각 기사의 ‘뉴스 밸류’를 중심으로 다루며, ‘독자투고’ 등 형식의 자발적인 특정 후보 지지글의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게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노회찬 의원은 이달 25일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할 것을 공식선언할 예정이다. 또한 권영길, 심상정 의원 역시 경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두차례 대통령 후보에 나서며 진보정치의 좌장으로 떠오른 권영길, 지난 총선을 진두지휘하며 TV토론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 노회찬, 끈기 있는 의정활동으로 여성 정치의 가능성을 증명한 심상정 의원, 이 셋은 보수정당의 어지간한 선량들보다 높은 지명도를 갖고 있으며, 지지도 역시 슈퍼후보로 군림하는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 대선주자에 뒤지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원 모두 연출자가 돼야

    2002년에는 권영길 하나였다. 그러던 것이 둘도 아닌 셋이 되었다. 흥행성은 충분하다. 만일 이번 후보경선이 흥행에 실패한다면 민주노동당(원) 전체가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당(원)은 이번 경선의 관객이되 일어서 돌아다니는 관객, 그러니까 연출자이다. 정치는 연극이고 정치인은 배우이며 정치에 얽힌 모든 사람들이 무대를 오르내린다.

    통일부 장관 시절 사진촬영을 위해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미리 알고 있던 사실을 마치 방금 들은 것처럼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는 정동영씨는 연극배우일까? 그는 연기가 빤해 무대 위에 서나마나한 배우일 것이다.

    분별력과 감각을 갖추고 누구보다 앞서서 결단을 내리는 대신, 늘 고뇌어린 표정이나 지으며 신사소리 듣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김근태씨는? 그는 막후에 갇혀 클라이막스를 기다리는 배우일 것이다. 이회창, 이인제, 정몽준씨 등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그들은 배우가 외우거나 즉석에서 뱉어야 할 대사가 부실하고, 스토리와 플롯을 짚어내는 통찰력이 없다. 이념이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배우가 갖춰야 할 뜨거운 몰입력도 차가운 분석력도 없다. 어떤 이들의 정체성도 대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연출가나 관객도 그들을 살릴 수 없다.

    보수정치인 가운데 이 능력이 가장 뛰어난 자가 노무현이었고, 노무현의 인기는 떨어졌으되 ‘진정성’이라는 극적 코드는 여전히 ‘성장’이나 ‘진보’를 갈아치울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대중과 친해지는 배우로서의 정치인

    대중들은 민생경제를 해결해달라고 아우성치며 정치판에 침을 뱉고 있다. 그러나 경제에 몰입할 때 정치는 풀리지 않는 법이며, 선거가 열기를 띨 때 ‘경제제일주의’는 사라진다. 선거가 다가오고 정치가 또렷해질수록 고색창연한 과학과 이론으로 해석할 수 없는 심성과 에너지도 터져나가기 시작한다.

    설령 다수의 민중이 ‘계급투표’를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말끔하게 계산한 뒤 정치적 현실과 접합하여 내린 결론에 따라 일어난 현상은 아닐 것이다. 조지 레이코프가 그간의 선거관련 서적에서 강조했듯 유권자는 ‘정체성’에 투표한다.

    진보적 유권자는, 우유부단하고 점잖기만 하며 싸움에는 더없이 무능한 김근태, 손학규, 정동영을 (그들이 진짜 진보주의자로 변신한다고 해도) 찍지 않는다. 수구적 유권자는 학생운동 시절의 핵심사상을 간직하고 있다 여겨지는 원희룡, 고진화에 (이들이 수구냉전논리와 각을 세우지 않는다고 해도) 표를 던지지 않는다.

    ‘정체성’의 정치는 자주 진보정치를 곤경으로 몰아넣는다. 민중의 속을 뚫어주지 못한 채 경전과 간판에 매달린 진보정치인은 인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심지어 인민의 마음은 서민적 풍취를 짙게 풍기는 파시스트를 향하거나 자신의 생계를 압박하는 신자유주의자에게도 향한다.

    그래서 얼핏 ‘정체성’에 주목하는 일은 환상을 주고 표를 훔치는 짓으로 보이기도 한다. 자칫 포퓰리즘에 경도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체성의 표현이 이념, 정책을 타락시키지 않고 도리어 일으켜 세운다면 이것은 최선의 경우이다. 가장 훌륭한 정치인은 유권자의 이성적, 감성적 이입을 이끌어내는 강인한 배우이다. 그 배우는, 또한 유권자가 믿고 의지하고 싶어하며 한편으로는 투정부리고 화를 받아내줬으면 하는 온유한 대상이다.

    내가 노회찬을 염두에 두게 된 이유

    한국사회는 자유민주주의의 느릿느릿한 진척 속에서 신자유주의를 맞이하였다. 억압은 다차원적이고 ‘피해대중’은 ‘다중(多衆)’이나 ‘개중(個衆)’이라는 신조어까지 빚어낼 만큼 흩어진 채로, 그러나 겹겹이 쌓여 있다. 진보정치인은 노동자, 여성, 농민, 영세상인, 여성, 장애인, 성적 소수자이거나 그들의 대변자여야 한다.

    당사자가 아닌 부분이 있다면 대표자나 대리인을 뛰어넘은 대변자여야 하고, 대변자라면 허영과 계산을 솎아낸 대변자여야 한다. 당에 진정성 있는 대변자는 적지 않다. 그러니 그들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유능한 이를 골라야 한다. 레닌보다는 차라리 의적 홍길동이, 기왕이면 홍길동보다는 호민관 장 조레스가 좋다. 그래서 나는 노회찬을 염두에 두게 되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내 소속정당, 민주노동당을 보면 세계의 진보를 담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박용진 대변인의 몇몇 논평들 정도와 <레디앙>에 실리는 여러 기사들을 빼면 당과 인사들, 각 정파가 쏟아내는 상당수의 글들은 눈살을 찌뿌리게 한다.

    7년 전쯤인가 진중권씨는 한 계간지의 지면에서 민족해방계열과 민중민주파 출신 포스트 모더니스트를 각각 공격하며 ‘지배의 언어’와 ‘탈주의 언어’를 이야기했다. 맥락을 진중권씨의 원문에서 좀 더 확장시켜보자면, ‘지배’와 ‘탈주’는 민주노동당(원들)의 정치적 언어생활 중에 나타나는 구태들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지배와 탈주는 선후를 가리지 않고 얽혀 있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논쟁들은 배 쑥내밀고 제 자리만 지키기에 여념 없는 논객들의 탐색전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은 상대의 칼이 닿지 않을 만큼의 거리까지만 조심조심 다가가며 상대 앞에 연신 방어의 화염병을 던져댄다.

    그러다 불쑥 말을 섞어 정면승부가 닥쳐올 때 상대의 논리를 궤뚫어보고 해체하길 포기하고 자신이 지배하고 있던 고지로 탈주한다. 동지애와 품성에 호소하거나 익명의 진부함에 안주하는 언어, 또는 남이 알아듣기 힘들게 관념과 개념을 부어넣고 개념의 실들을 마구 엮어만든 언어를 짚고 말이다.

    ‘정파 사투리’ 난무한 최악 토론의 기억

    내부문건은 물론이고 대외적인 논평까지 ‘운동권 사투리’도 아닌 ‘정파 사투리’로 채워진다. ‘정파연합당’답게 당의 공식입장은 정파 사투리들로 짜집기되어 있다. 더구나 이 사투리에는 정감도 없다. 2004년 총선 직후 당대표를 뽑기 전에 펼쳐진 TV토론은 지방선거에서 격돌한 토호들의 토론에 버금가는 최악의 토론이었다.

    다만 생경하고 강렬한 언어로 시청자의 기를 죽이거나, 무관심으로 덮었을 뿐이다. 민주노동당의 평균적 실력으로는 홍준표류나 유시민류를 이길 수 없다. 그들이 저잣거리로 내려가 대중을 상대하는 풍경은 더 끔찍하다. 대중의 토론은 어떤 정치인보다 현란하다.

    "미국은 일본을 견제할 목적으로 남북의 통일을 주선하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했다"(대졸에 장교 출신인 어느 30대 직장인), "종씨라서 노무현 찍었는데 이제 싫다. 한나라당이 수조원을 차떼기해도 찍어줄 거다"(시골 미용실에서 만난 40대 주부)고 말하는 이들을 무슨 수로 당한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이 제 입과 손끝에서 나오는 언어를 숙고하는 데 게으르다. 서글프고 불행한 일이다.

    그렇게 보면 노회찬은 ‘어느 별에서 왔’나 싶다. 노회찬은 곡선을 그리며 휘두르되 정확하게 상대를 친다. 하지만 그의 훅은 많은 시간을 잡아먹지 않고 적재적소에서 빛난다. 지배하지도 탈주하지도 않고, 비유와 직설화법을, 논리적 토론과 정서적 만족의 맥놀이를 일으키는 그의 모습은 마치 피드백 주법을 연주하는 지미 헨드릭스 같다.

    지미 헨드릭스와 노회찬

    노회찬의 화법과 수사가 순전히 그 개인의 천부적 능력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한번 더 노회찬을 주목할 만하다. 고교 시절에 이미 친구들과 함께 유신반대 문건을 경기고 교실에 배포하였으며, (게다가 수사망에서도 벗어났다는) 노회찬은, 군대를 다녀와 뒤늦게 가장 데모를 많이 하는 대학의 가장 데모를 많이 하는 학과에 입학했다. 그후 그는 취업훈련소에서 용접을 배워 노동현장으로 들어갔다.

    노회찬이 나중에 주도적으로 결성한 노동운동조직은 두가지 측면에서 남한 진보운동사에서 이정표를 남긴다. 첫째 교조를 배격하고 비교적 권위주의를 낮추었으며, 둘째로는 진보정당 창당의 주춧돌을 놓았다. 그는 민중당이 좌절된 뒤에 세워진 진보정치연합의 지도자였는데, 어떤 네티즌의 회고에 따르면 구성원들은 소풍날 그를 짐짓 무시하는 말투로 ‘빛나리 아저씨’라고 불렀다고 한다.

    단지 노회찬의 인간미가 그런 재미있는 풍경을 그린 것은 아닐 것이다. 노회찬은 혁명에 대한 미련과 보수화에 대한 유혹이 교차하는 운동판에서 꾸준히 ‘진보정당’을 바라보며 버텼고 대중성을 부여잡고 자신을 키웠다. 그는 스스로를 ‘노동운동가’로 칭하기를 좋아하지만, 노회찬은 삶의 운동가였고, 그리하여 정치하는 예술인, 예술적 정치인이 되었다.

    비례대표의석 마지막 하나를 놓고 싸워 결국 9선의 김종필을 주저앉히고 국회에 입성한 노회찬은 변호사 자격증도 없는 처지에 보수정당에게 등 떠밀려 법사위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의정활동은 전방위적이었고 그가 쳐놓은 진은 놀랍다.

    그는 비정규직개악을 막기 위해 환경노동상임위에서 몸 날리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국방외교분야에서 정부의 대미굴욕을 폭로하며 물고 늘어졌다. ‘도굴된 문화재’ X-FILE의 내용 일부를 밝힘으로써 대통령도 감히 맞서지 못하는 삼성그룹 이건희일가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 지금은 서민 울리는 카드회사와의 일전에 돌입했다.

    북한과 민주노총에게도 할말은 하는 사람

    그는 북한과 민주노총에게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사람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도 희망을 느끼는데, 성역은 물론 역편향도 허용하지 않는 비판정신에서 바로 그가 미패권주의와 재벌에 대항하여 견결히 진보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노회찬에게서는 여느 중진의 대권주자에게서 느껴지는 안정감을 좀처럼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과도하게 짊어진 부담이 그의 성장을 가로막을까봐 걱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국회의원 4년하면 탈진하는 것이 정상"이다.

    우리는 노회찬이 탈진하기 전에 그를 2007년 격돌의 장으로 보내야 한다. 위에서 살폈듯 장담하건대 노회찬의 진보주의와 진실성은 백보양보를 하더라도 타 후보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보다 더 위에서 살핀 것처럼 그는 진보와 진정성을 뿜어내는 데 불세출의 역량을 지니고 있다.

    김대중-노무현의 후예인 언필칭 민주개혁세력은 이기든 지든 이번에도 드라마를 일으키려 할 것이고 한나라당의 의지도 만만치 않아서, 그 드라마의 인기가 높든 낮든 피해는 민주노동당에게 돌아올 것이다. 진실한 연극에 걸맞는 훌륭한 배우가 필요하다. 나는, 나와 더불어 많은 당원들이, 노회찬 배우의 연출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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