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택시 기사와 민주노동당 당원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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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08일 05: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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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듯한 형편에 택시를 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오늘은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탈 일이 있었다. 밑바닥 민심을 들으려면 택시 기사의 말을 듣는 것이 가장 좋다는데,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을쏘냐.

    “기사님은 댁이 어디세요?”

    일상적인 질문으로 시작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한 뒤에 민주노동당의 당원임을 밝히고, 요즘 살림살이는 어떤지 요즘 정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민주노동당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를 물었다.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도 요즘 살림살이 좀 나아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을 것이다. 아, 물론 강남 부근이나 요사이 잘 나간다는 신도시 쪽에 가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 택시 기사는 요즘 살림살이가 너무너무 힘들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그럴 테지. 반독재 투쟁 전력을 경력 삼아 집권한 이른바 민주개혁 세력의 광적인 신자유주의 숭배가 불러온 눈부신 성과가 바로 이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작금의 혹독한 서민 경제 상황을 오로지 노무현 정부의 탓으로만 돌리며, 한나라당의 현 정부 심판론을 그대로 읊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를 탓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왜 정권 교체의 대안이 겨우 한나라당이란 말인가.

    그가 케케묵은 전라도 혐오증과 레드 콤플렉스를 드러내며 열린우리당을 저주할 때에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물론 그는 얼마든지 열린우리당을 저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저주가 다분히 정신병적인 원인들에 기반한 것이라는 사실은 나를 슬프게 했다. 열린우리당을 저주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런 비정상적인 이유 말고도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나는 본의 아니게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을 비호해주었다. 그들이 경제를 망쳐놓은 것은 맞지만, 그것은 그들이 전라도당이거나 빨갱이라서가 아니라 철저히 자본주의 원리를 추종하며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이 만약 전라도당이라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을뿐더러, 심지어 빨갱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할지라도 서민 경제를 망가뜨리지만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욕먹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가 민주노동당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들었을 때에는 솔직히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북한에게 기밀을 넘겨주는 빨갱이당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설마 다른 대중들도 민주노동당을 겨우 이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 테지.

    아무리 스스로를 위로해도 앞이 캄캄했다. 조삼동-조선, 삼성(중앙), 동아-이 생산해내는, 기사라고 하기에도 우스운 너절한 소리들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양 착각하며 내뱉는 이 사람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해주어야 좋을까.

    “몇몇 사람들이 북한과 접촉했다고 해서 민주노동당 전체를 싸잡아서 빨갱이당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속으로는 울고 싶었지만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빨갱이당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뭐 사실 빨갱이당이면 어떤가. 일하는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사회민주주의 또는 민주적 사회주의라면(무슨 차이가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대중들은 더욱 관심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빨갱이라면 민주노동당은 빨갱이가 아니라 빨갱이 할애비라도 되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당원들이 NL이니 PD니 트로츠키주의니 하는 것들 따위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에는 별 관심 없어도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주장에 이끌려 당원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 같다. 당원이 아닌 지지자들이나, 지지층도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라는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말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민주노동당의 말하는 방식은 대중적이라기보다는 아직도 다분히 운동권적이다. 혼자서만 잘난 척 심각한 척 다하며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한 수 가르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재미가 없다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면서도 왜 노동운동이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지를 나름대로 끊임없이 분석한다. 내놓는 답들은 ‘자주 민족 통일’ 아니면 ‘노동자 계급 중심성의 회복’ 또는 ‘반제국주의 진영의 국제적 연대와 투쟁’ 등의 뻔하고 지겨운 것들뿐이다. 왜 진보가 끊임없이 고립되고 있는지를 스스로 가장 잘 보여주고 있으면서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내겠다고 하는 꼴이라니. 웃느냐 우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혹시 권영길 의원이 제시한 사회연대 전략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당연히 못 들어보았다고 한다. 예상대로다. 별로 놀랍지도 아쉽지도 않다.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보도해주지 않는다고 보수 언론만 탓할 것이 아니다. 달리 보수 언론이던가. 그들에게 기대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나가라. 민주노동당의 의원들과 중앙과 지역의 간부들은 거리로 나가야 한다. 거리로 나서서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조금이나마 나아지게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의 진보적인 정책들을 직접 홍보하라. 거리에서는 투쟁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 <레디앙>에 기고했던 「컨텐츠는 괜찮은데 마케팅이 약하다」라는 글에서도 말했듯이, 민주노동당의 괜찮은 컨텐츠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라. 그런 의미에서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과 권영길 원내대표, 심상정 의원, 이영순 의원이 민주노동당의 주택정책을 사가라며 ‘길거리 세일즈’에 나섰던 것은 높이 평가할만한 일이다.

    사회연대 전략을 비롯하여 민주노동당의 주택정책까지 열심히 설명했더니, 택시 기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도 역시 민주노동당이 서민들 힘든 건 제일 잘 아는 것 같다는 말을 무심히 내뱉는다. 그가 올해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후보에게 투표를 할까? 모를 일이지만 아마 그럴 확률은 적을 것 같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에 대한 그의 인식이 조금이라도 바뀌었다면, 나는 당원으로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해냈다고 믿는다.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길바닥에 혼자 두면, 서민들과 대화꺼리를 찾아서 10분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민주노동당 의원단 중에는 별로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럴까? 중앙과 지역의 간부들, 또는 열심히 운동에 헌신하고 있다는 일부 당원들도 그러할까?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다. 민주노동당은 대중과 대화하는 연습을 더 많이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대중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더 많은 대중을 만나고 더 많은 말을 들어야 한다. 대중의 곁으로 파고들어갈 수 있는 이야기꺼리와 말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이야기꺼리와 말하는 방식부터 바꿔라.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이 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현장에만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답은 길 위에도 있다. 나를 목적지에 내려두고 택시 기사는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나는 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길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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