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성장? 어디 식민지 개척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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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08일 03: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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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나 이명박 같은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7% 성장을 제시하고 있다. 손학규는 6.4%를 제시하며 자신의 진정성을 알아주기 바라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십보백보다.

    경제도 사람처럼 성장추세가 있어서 5% 경제가 갑자기 7%로 뛰어올랐다면(그것도 5년 평균으로!) 그것은 어딘가에 식민지를 개척했다는 말인데 21세기에 한국이 식민지를 보유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으니, 경제학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인플레에 의한 성장밖에 없어 보인다.

    ‘근혜노믹스’는 버블경제론?

       
     

    7%성장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중앙은행에서 화폐를 찍어내어 시장에 돈을 풀면 된다. 이를 인플레적 성장이라 한다. 실제 70년대 선진 각국에서 통화정책으로 성장을 올리려 한 적이 있다.

    돈을 풀면 도처에 돈이 돌고 돌아 내수가 진작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너도 나도 물건을 사고 기업은 공장을 돌리고 사람을 채용하고 노동자는 그 돈으로 다시 물건을 사고… 우리도 최근에 경험한 적이 있다. 물론 그때는 화폐가 아니고 카드였지만. DJ 정부의 경제 관료들은 이미 터득한 방법이다.

    그러나 시장의 복수는 냉철하다. 노동자들은 인플레가 시작되었음을 알고 임금인상을 요구할 것이다. 기업의 비용은 다시 올라가고 물가도 오른다. 결국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플레와 정부에 대한 불신 말고는.

    따라서 이러한 방법을 OECD 가입국에서는 쓰지 않는다. 따라서 박근혜가 2%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공약은 버블경제가 아니고서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기에 가까운 공약이다.

    그렇다면 박근혜가 제시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박근혜가 노벨경제학상을 노린다?

    박근혜의 ‘사람경제론’은 고도성장의 향수를 자아내는 대표적인 버블공약 사례다. 최근 실질성장률은 4.5% 수준이다. 반면 잠재성장률은 4.9%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대한민국이 보유한 모든 자본과 노동, 기술을 투여해서 가능한 최대 성장치와 실제성장치의 차이가 0.4% 포인트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즉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도 5% 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7%라니?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그것도 유력대권주자 입에서? 잠재성장 추세를 극복하는 고도성장이 가능하다면 스웨덴의 왕립아카데미에서 노벨상을 줄지도 모를 일이다. 혹시 박근혜가 노벨경제학상을 노리는 것은 아닐까?

    하여 꼼꼼이 읽어봤다. ‘근혜노믹스’의 핵심은 2% 더 성장하기 위해 “성장 동력을 사람에게서 찾고(절대 동감!), 그 과실도 사람을 위해 나누자는 것(역시 동감!)으로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 정책 과제(100% 동감!)”라는 것이다.

    순간 나는 무슨 민주노동당 논평인 줄 알았다. 이렇게 생각이 같을 수가! 그러나 박근혜의 7% 성장의 논거들은 개발독재와 신자유주의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것들이었다. “국가기강 바로잡기, 과감한 규제완화, 외교안보역량 강화만 이뤄져도 2%포인트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

    박근혜의 ‘사람’경제론은 잡히지 않는 ‘신기루’경제

    경제성장은 노동의 숙련도, 자본스톡의 투자증대, 기술혁신, 연구개발과 같은 변수에 의해 견인되는 것이지 대통령이 시민들이나 노동자들을 윽박지른다고 해서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국가기강으로 경제성장을 한다는 얘긴 경제성장론을 접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들어본 적도 없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국가기강이라는 것이 어떻게 성장과 연관된 단 말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불법파업이나 불법시위를 원천봉쇄하면 그 사회적 비용을 절감한다는 보고는 간간히 들리지만, (사회적 비용절감이 경제성장의 주요변수로 들어가는지는 논외로 치고) 노조나 시민단체에서 근혜노믹스의 실현을 위해 얼마나 협조할지는 모를 일이다.

    따라서 가능하지 않은 자의적 상상만으로, 나아가 변수에 해당되지도 않는 자신의 신념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국의 성장률을 거론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지 근혜노믹스를 창안한 경제학자들은 반성해야 할 일이다.

    규제완화도 마찬가지다. 이는 아마도 수도권규제를 완화하면 추가성장이 가능하다는 어느 기관의 발표를 차용한 듯한데, 이는 규제완화의 밝은 면만 부각시킨 것이다.

    수도권 규제완화가 이루어지면 각종 환경오염으로 인한 ‘부의 외부효과(negative external effect), 교통 및 물류혼잡비용, 국가불균형발전으로 인한 지역갈등과 사회적 비용’ 등이 가산되는데 이는 계산치 않고 장점만을 부각시킨 것이다.

    정치인들이 버블공약으로 정치불신을 자초해서야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경제공약을 봇물처럼 쏟아 붓는다. 특히 보수유력후보들은 개발공약과 성장공약을 일종의 콤플렉스처럼 여긴다. 그러나 그 검증과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국민의 몫으로 돌아간다. ‘아니면 말고’식의 경제공약은 사회적 자본 형성에 역행하는 처사이며 그 결과는 정치불신 뿐이다. 노무현대통령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근혜나 이명박의 고도성장공약도 마찬가지다. 특히 근혜노믹스는 사회적 자본 강화에 영감 받아 자신도 국가기강이나 규제완화, 외교안보강화로 인해 성장할 수 있다고 공언한 듯 하다. 국가기강도 좋은 의미로 해석하자면 사회적 자본의 강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자본이라 함은 민주주의와 타협,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의 룰이 지켜지는 사회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시위나 파업을 군화로 짓밟는다고 해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소외되고 억울한 사연이 있는 사람이나 집단과의 꾸준한 대화와 협의를 통해 사회질서를 지켜나가는 것이 사회적 자본을 강화하는 길이다.

    그리고 확실히 해두자면 사회적 자본을 통해 성장추세를 안정되게 관리는 할 수 있되 성장률을 갑자기 2%나 끌어올릴 수는 없다. 그것도 지속적으로는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성장률을 끌어올리고자 한다면 잠재성장률을 올려야 하며 이는 흐리멍텅한 기업가 정신으로 성장 동력을 잃어버린 한국에선 단기간에 불가능한 일이다. 사회적으로는 국립대 무상교육 등 사람에 대한 지속투자를 제도화시켜야 하며, 기업 측에서는 지식화된 노동을 현장과 경영에서 배제시키지 않는 생산성 위주의 기업경영(이른바 하이로드형)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성장방식에도 ‘7%’ 운운하는 것은 목표는 될 수 없다. 사람경제론에서 사람을 대상화시켜 배제시키면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끝으로 충고하자면 ‘국가기강’을 강조하는 박근혜 같은 보수유력주자가 신기루와 같은 허황된 공약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사회를 안정시키는’ 길임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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