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우에서 두들겨 맞은 ‘한나라 모델’
        2007년 02월 06일 06: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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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가 주최한 ‘21세기 한국의 발전모델’ 토론회. 쟁쟁한 좌·우파 학자들이 자리한 토론회 내내 ‘박근혜’라는 이름은 딱 한 번 나왔다. 그런데 왜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사람경제론’에 대한 한바탕 비판의 장에 다녀온 기분일까.

    여의도연구소장인 임태희 한나라당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 “’새로운 한국의 발전모델’을 모색하는 자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올해 대선에서 집권을 희망하는 한나라당의 국가발전전략 일단을 보여주는 토론회인 셈이다.

       
     ▲ 여의도연구소가 주최한 ‘21세기 한국의 발전모델’ 토론회
     

    ‘공동체적 발전국가’, 박근혜 ‘사람경제론’의 원판?

    나라정책연구원 김광동 원장이 ‘공동체적 발전국가’를 주제로 발제를 맡았다. 김광동 원장은 ‘한국적 위기구조의 원인’을 진단하며 그 첫 번째로 경제성장률 하락과 성장기반의 약화를 꼽았다. 그는 낮은 경제성장률을 지적하며 “노동생산성의 정체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낮은 사회통합 수준을 지적하며 “부자와 성공한 사람, 기업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원인으로 꼽았다. 또한 삼성의 8천억 사회 환원을 예로 들어 “기업은 마치 이익의 사회 환원을 위한 조직이라는 인식까지 확산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등주의와 친북좌파적 인식의 확산도 문제 삼았다. 대기업 규제와 중소기업육성, 지역균형발전정책, 농업 지원, 노동자는 약자라는 인식의 노사관계, 평준화 교육 등이 “평등주의가 짙게 배어있는 정책”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친북좌파 세력의 영향으로 기업과 시장경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 한국 현대사 폄하, 한미FTA 등 각종 사안에 대한 왜곡 등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 지향적 국가운영’을 제안했다. 핵심은 법치주의적 통치다. 그는 불법 시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12조원이 넘는다는 보고와 불법 시위를 통한 요구사항 수용률이 적법 투쟁 통한 수용률보다 높다는 주장도 보탰다. 더불어 분권화된 자율로 제도화된 틀을 통한 사회참여, 교육 기회의 균등, 경제 번영지역이 될 동아시아 문명권 전개 등을 주장했다.

    “성장 우선, 법질서 확립, 기업 중심” 똑같네

    구체적인 과제로는 “6.5% 중고성장 구조 정착”을 제시했다. 김 원장은 “성장을 통한 균형과 분배, 성장을 통한 복지와 고용, 성장을 통한 사회문화 발전”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세계화와 개방화, 평등주의·친북 좌파적 인식 극복, 기업중심적 사회구조의 정착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작은 정부를 강조하며 노동 유연성 확보와 노동운동의 정치성 억제, 과도한 복지 축소 등이 국가운영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의 이같은 ‘공동체적 발전국가’ 모델에 대한 설명을 듣다보니 전날인 5일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가 발표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사람경제론’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박 전 대표는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복지라며 이를 위해 경제성장률 7% 달성을 주장했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법질서 확립과 작은 정부론에 따른 기업 규제 철폐를 내세웠다. 불법 시위의 부담과 반기업정서 등을 본질로 문제 삼은 것 역시 똑같이 닮아있다. 김 원장의 ‘공동체적 발전국가’ 모델을 경제 분야로 집중하고, 핵심만 짚어보면 그대로 박 전 대표의 ‘사람경제론’으로 정리된다.

    박근혜 ‘사람경제론’에 대한 비판?

    자연 이날 ‘공동체적 발전국가’ 모델에 대한 비판은 박 전 대표의 ‘사람경제론’에 말만 조금 바꾸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지적들이라고 볼 수 있다. 송병락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손호철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등 좌·우파에서 쟁쟁한 학자들이 쏟아낸 비판들을 그런 차원에서 음미해보자.

    먼저 송병락 서울대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모델을 끌어와 현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는데 따른 문제점, 정확히 말해 ‘보완점’을 제시했다. 그는 “외국 모델보다 국산 모델의 장점을 살려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도 아직 성장은 많이 해야 한다”며 박정희표 성장 모델의 현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송병락 교수는 하지만 “박 대통령의 산업화 모델은 국가차원의 비전만 제시했지만 미국은 1776년 독립 이후 생명, 자유, 행복 등 국민의 직접 생활에 와 닿는 비전이 변하지 않고 발전하고 있다”며 “선진국 경제 진입은 국가차원에서만 설정돼 있고 국민들은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 차원의 비전만 설정돼 “국민은 없다”

       
     ▲ 토론회 공개 포스터
     

    송 교수는 또한 “산업화가 권위주의, 정부 규제 중심이었다면 선진국 발전모델은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더해 베푸는 배려가 기본 이데올로기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밖에도 기업의 국제경쟁력 강조에서 정부, 학교, 병원, 국민의 경쟁력 제고, 국가 대표 기업과 더불어 국가 대표 지역 육성으로 국토 균형 개발도 자율화, 종합연구대학의 사회 각 분야 전문가 리더 육성 등을 주장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는 보수의 논리가 되기에는 “선명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송호근 교수는 “공동체적 국가발전이라는데 집단주의적 인상을 풍기는 것을 과연 한나라당의 패러다임으로 추구할 수 있냐”고 말했다. 좌파는 집단으로부터 공동체에 접근하지만 우파는 개인으로부터 공동체에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동체’는 좌파 용어, 한나라당은 ‘경쟁 국가’ 써야

    송 교수는 “공동체적 발전국가는 열린우리당이든 한나라당이든 누구나 다 수용할 수 있는 가치”라면서 출발점의 차이에 바탕한 ‘다른 해석’을 주장했다. 그는 크게 “좌파는 계급과 부문을 그룹으로 만들어 정치화하는 반면 우파는 계급과 부문을 개별 그룹으로 만들어 놓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좌파는 정부와 학교, 기업을 모두 다 조정하고자 하고 우파는 시장주의로 접근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송 교수는 박근혜 전 대표의 작은 정부 주장을 언급하기도 했다.

    송 교수는 이러한 차이는 통치방식으로 나타나고 그 대표적인 것이 노조에 대한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좌파는 노조를 집단화, 정치화하고 우파는 개별성원으로 흐트러뜨려 놓는다”며 그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 대처가 노조의 투표 방식을 현장투표에서 집에서 하는 개별 비밀투표로 바꾼 것을 들었다.

    그는 ‘공동체적 발전국가’는 “열린우리당 쪽에서 즐겨 쓰려할 용어”라며 “보수를 대변하는 한나라당이라면 ‘경쟁 국가’, 경쟁력을 갖춘 국가, 경쟁을 촉발하는 국가라는 말이 더 좋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에서 가다듬어 내놓을 ‘공동체적 발전국가’의 진실은 사실상 ‘경쟁 국가’라는 것을 분명히 해준 셈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사람경제론’의 실체도 분명해진다.

    서강대 정치학과 손호철 교수는 이러한 모순을 “허공에 떠 있는 표어”라고 비판했다. 손 교수는 “제목과 내용이 정반대”라며 “있는 자, 소수를 대변한다는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중화시키기 위한 정치적 담론으로서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있는 자 대변 한나라당의 이미지 중화용”

    손 교수는 송호근 교수의 지적에 이어 “한국의 비극은 한국의 보수가 개인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라며 “한국의 보수는 집단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포기시켜 왔다”고 말했다.

    손호철 교수는 특히 작은 정부, 기업중심, 반기업정서, 노동운동 등에 대한 보수의 시각을 구체적으로 반박했다. 손 교수는 “기업 중심 사회는 국가는 비효율, 기업은 효율이라는 신화에 놓여있다”며 “시장주의의 결과는 대공황이고 자본주의의 위기를 구한 것은 뉴딜이었다. 이제 국가가 거꾸로 원인이고 시장이 처방이다. 무엇이 효율성인가”라고 지적했다.

    특히 성장 최우선주의와 관련 “기업이 잘 되면 일자리, 분배 떡고물이 흘러갈 것이라는 주장”이라며 “이미 버려진 떡고물 이론”이라고 일축했다.

    또한 손 교수는 김광동 원장이 기업의 성공에 배 아파하는 것이 반기업 정서를 만들고 사회통합을 해친다며 삼성 8천억 사회환원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한 것과 관련 “불법 상속 몇 조를 안내려고 8천억 내고 만 것이 아니냐. 이러한 탈세, 불법 상속 과정이 사회적 통합, 신뢰를 더 해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더불어 “배아픔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자본 축적 과정의 특수성 때문에 대한민국의 반기업 정서가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장만 되면? “이미 버려진 떡고물 이론”

    그는 노동운동에 대한 보수진영의 비판에 대해서도 “임금 문제를 제기하면 집단이기주의라고 하고 사회민주화를 이야기하면 정치적이라고 한다”며 “한국 노동운동은 너무 정치세력적이지 않은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지금 노조는 내용은 급진적이지 않고 방법만 전투적”이라며 “노동운동이 경제적 이해관계만 하면 안되고 사회공동체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아름다운 사회, 살고 싶은 나라는 기업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이 돼야 한다”며 “21세기 국가발전 모델에 핵심적인 요소인 에너지, 환경 등 지속가능한 발전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고 인간 중심의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박정희 모델은 더 이상 유용한 국가 발전 모델이 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소수 기득권의 이해만 대변해서는 안된다는 정당의 열망을 반영해 공동체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법치주의 확립에 대해서도 “모순이 보이지만 잘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재벌총재들이 엔론 사태 장본인처럼 23년 선고를 받아 형을 살고 하는데 한국도 전혀 그렇지 않는 현실을 바꾸고 법치주의로 사회적 신뢰를 높였으면 좋겠다”고 비꼬았다.

    기업중심 ‘사람경제론’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돼야”

    유 교수는 특히 21세기는 “혁신 주도형 성장인 ‘지식경제’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쟁 국가가 신자유주의 국가라는 것은 지식경제에서는 천만의 말씀”이라며 “단순히 국가 역할을 축소하고 기업 중심으로 세금을 깎고 하는 게 아니라 혁신 주도형 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 진영이 주장하는 기업 규제 철폐를 통한 투자 활성화는 “대단히 일시적”이라며 “한계성 체감에 따라 자본축적만으로는 안된다”고 일축했다.

    그는 “혁신이 리드하는 환경으로 가야 하고 이는 결국 사람이 중심”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역할도 직접 지원보다는 인적, 지적 자본을 축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특히 경제의 민주화를 강조하며 이를 통한 공정한 룰과 정부의 적극적인 인적 자본 형성을 주장했다.

    김광동 원장은 좌우파 학자들의 이러한 비판에 “정당 정치체제가 지향하는 모델이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보는 모델과 달리 정부가 무엇을 해야 될 것이냐 하는 정치적 고려가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대선에서 집권을 희망하는 한나라당의 입맛에 맞게 정치적으로 적당히 포장하고 분칠한 것에 대한 궁색한 변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쨌든 좌우파 학자들의 비판을 종합해보면 박정희 성장모델의 현대판은 국가는 있으나 국민은 없고, 좌파의 용어로 우파의 내용을 포장하고 있으며 사람이 아닌 기업 중심일 뿐이라는 결론이다. 뽑아 낸 듯 내용이 똑같은 박근혜 전 대표의 ‘사람경제론’ 역시 똑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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