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득 늘지 않는데 물가는 오르고,
    자산가격 떨어지는데 이자는 오르는...
    [정의로운 경제] 정치 실패와 정책 실패의 책임
        2022년 09월 06일 10: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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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격이 불안정한 시대

    가격 불안정이 점점 더 심해지고 예측도 불확실한 시대가 되고 있다. 시장의 가격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통상 소비자물가로 대표되는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다. 또 하나는 부동산, 주식, 가상코인 등으로 대표되는 자산 가격이다. 최근 이 두 가지 가격이 모두 매우 불안정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것도 서로 반대로.

    우선 소비자들이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물가가 2% 내외로 안정되었던 얼마 전과 달리, 최근 5~6%를 넘나들게 되자 서민들은 실질소득이 감소한 것과 동일한 체감을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두 자리 수까지 오른 영국 등보다는 양호하지만 일부 생활품목 등은 우리도 이미 두 자리 수를 넘겼다. 더 문제는 물가상승이 언제 끝날지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와 곡물가격이 급격히 오른 것이 가장 큰 물가상승 요인이었는데, 이 전쟁이 당분간 소모전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물가상승 압박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글로벌 공급망을 재구성하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가 계속되고 코로나 여파 역시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급측 물가 불안정은 더 증폭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공급측 요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이나 긴축재정으로 아무리 수요측 요인을 통제하려고 해도 중앙은행이 일반적으로 정해 놓은 2% 물가목표는 당분간 달성되기 힘들 것이다.

    자산거품은 확실히 꺼지고 있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뛰는 것과 정반대로 자산 가격은 지난해를 정점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동향은 짧은 시간 급격한 폭등을 일으켰던 코로나 자산거품이 전반적으로 무너지면서 전 세계 자산가격 거품의 정점이 지난해인 2021년이었을 개연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미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 부동산 가격이 올해 상반기부터 상승세가 꺾이고 거래량도 감소하고 있으며 7월부터는 하락세가 시작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로버트 실러는 “주택 가격이 10% 이상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면서 상당폭의 부동산 가격 하락을 전망하는 등 글로벌 부동산 시장의 대세 하락을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거대양당이 종부세 완화나 대출규제 완화 등 각종 부양책을 내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 하락도 확실해지고 있다. 코인 → 주식 → 부동산으로 이어지는 자산가격 하락이 드디어 부동산까지 도달한 것이다. 국민은행 주택통계에 따르면 지난 2개월 동안 아파트 매매가격이 서울은 도봉구 –0.72%를 최대치로 다수지역에서 하락하면서 전체 평균 –0.11%의 하락세를 보였다. 6대 광역시는 그보다 더 떨어져서 –0.56%였고, 경기는 –0.48%였다.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부동산 거래도 끊겼지만 가격도 확실히 정점을 지나 꺾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지난 8월 “날씨를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듯, 부동산 거래 위축이나 가격이 전반적으로 하향하는 것은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하긴 2022년 상반기 기준으로 노동자 연평균 임금(3600만)을 36년간 모아야 살 수 있는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12억 8천만원)은 분명 언제 떨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거품가격이지 않을까?

    부동산보다 앞서 추락했던 주가 역시 코스피 기준으로 보면 6월 이후 2400~2300선을 오가며 낮은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 2021년 6월 3300선을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30%까지 하락한 것이다. 하반기 금리 인상이나 경기침체 충격 정도에 따라 언제든지 추가적인 하락이 올 가능성도 높다.

    이미 지난해 11월 정점 이후 전체 가치의 2/3가 사라져버린 가상자산 시장의 폭락 역시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대부분 지난 2년 사이에 가상자산시장에 뛰어들었을 약 560만 코인 투자자들은 거의 대부분 큰 폭의 손실을 입었을 개연성이 높은데, 그나마 안정된 비트코인 가격이 고점대비 1/3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푼의 투자금액도 건질 수 없는 상장폐지(상폐)가 1년 사이 100건이 넘을 정도인 가상자산 시장은, 폭락장에서 늘 나타나는 사기나 불법 행각까지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짝퉁 코인’을 다단계 판매망을 통해 파는 사기나 알고리즘 사기 등의 불법행위가 크게 늘어나고 있으며, 투자 손실에 더해 사기 대출에 엮여서 ‘코인낭인’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기고 있는 중이다.

    은행 시스템 리스크는 없어도 가계파산 리스크는 있다

    소득은 늘지 않는데 물가는 오르고, 자산가격은 떨어지는데 이자는 오르는 상황은 일해서 살아가는 보통 시민들에게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일지 모른다. 지금이 실제로 그런 상황이다. 여기에 경기침체까지 뚜렷해지면서 일자리조차 불안해지면 심각한 삶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일단 진정되지 않는 급격한 소비자 물가상승 탓으로 당분간 금리인상 기조는 더 이어질 것이다. 미국 연준의장인 제롬 파월은 최근까지 거듭 상당 수준의 금리인상 의지를 밝힌 바 있어서 9월 중으로 미국 기준금리는 3%에 도달할 것이 거의 확실하고 연말까지 한두 차례 더 오를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기준금리 수준이 같은 한국은 불가피하게 미국 금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어 한국 역시 올해 안에 기준금리가 3%를 넘는 것 역시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2021년 상반기만 해도 0.5%라는 역사상 최저금리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1년 남짓 기간 동안의 금리인상은 그야말로 무서운 속도다. 이와 같은 추이를 종합해보면 2008년 금융위기로 시작된 약 14년 동안의 초저금리 시대는 확실히 막을 내린 것으로 봐야 하고 이제 완전히 다른 경제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금융권 등에서는 아직 연체율의 급상승 조짐이 없고, 은행들의 자본건전성에 큰 문제가 없으니 이른바 ‘시스템 리스크’를 걱정할 상황이 아니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여러 번 금융위기 위험을 넘긴 경험을 토대로 대비한 결과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은행 차원에서 시스템 리스크 개연성이 낮다고 위험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은행이 아니라 가계 차원에서 보면 가계파산 리스크는 분명히 상당한 수준에 와 있다.

    시중금리를 살펴보자.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지난해 6월 3.75%였던 신규취급액 기준 일반신용대출의 대출금리가 두 배 가까이 되는 6.0%까지 치솟았다. 금리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주택담보 대출금리도 마찬가지다. 은행연합회가 8월 22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이 7월에 신규로 취급한 주택담보 대출 변동금리 상단은 대부분 6%를 넘어섰고 평균금리도 5%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금리가 두 배 올랐고 연말까지 그 이상 오를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한국의 대출구조상 변동금리 비중이 너무 높아 금리가 올라가면 상당수의 대출자들이 곧바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국내 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 593조 원 중 변동금리 비중이 68%나 되었는데, 20대 차주의 경우는 그보다 더 높은 72.6%라고 하니 금리인상 충격이 곧바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이자부담 증가는 담보자산인 부동산 가격하락과 맞물리면서 특히 자영업자와 청년들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1% 상승할 경우 자영업자의 이자부담이 6.4조원 늘어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21년 말 기준으로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900조를 넘었는데 이는 전년에 비해 13.2%나 늘어난 것이다. 한편 자영업자들의 다중 채무자 비율도 70%에 달한다고 한다. 정부가 2023년 긴축재정을 펴려는 상황에서 자영업에 대한 충분한 재정지원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자산거품 중 가장 큰 폭으로 꺼진 가상코인에 주로 투자해왔던 2030 청년들의 파산위험은 그 어떤 계층보다 심각할 수 있다. 현재 법원에 접수된 개인회생 신청의 1/5이 20대라고 하는데 2020년에 이 비율은 10% 정도에 불과했다. 2030을 합치면 개인회생 신청자의 절반 이상 청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030들은 온라인을 통해 손쉽게 소액대출을 끌어 가상자산 등에 투자했는데, 최근 공동인증서만 있으면 3분 안에 비대면 대출이 가능하다는 ‘컵라면 대출’ 등 과잉대출이 성행했던 것도 한몫을 했다. 더욱이 ‘핸드폰깡’으로 불리던 대출 방식의 변종들이 생기고, 심지어 ‘쿠팡깡’ ‘네이버깡’으로 불리는 후불 결제를 이용해 소액을 끌어쓰는 방식까지 동원되었다. 이제 이들 모두에 대한 청구서가 높은 이자와 함께 되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가계부채와 정책실패의 책임

    가계부채를 공공정책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하면 늘 나오는 얘기가 ‘모럴해저드’다. 물론 부채를 끌어온 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손실이 나는 곳에 투자를 한 것도 개인의 책임이 맞다. 하지만 상환능력을 충분히 평가하지 않고 이자수익만 고려해서 대출을 남발하는 ‘약탈적 대출’ 성격이 있었다면 대출자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큰 손실을 볼 수 있는 투자임에도 불구하고 손실위험 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불완전 판매’를 했다면 투자상품 판매자나 중개자도 일정하게 책임을 나눠야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약탈적 대출 경향이나 불완전 판매나 중개 행위가 성행하는데도 이를 제도적으로 규율하지 않고 방치했다면 이에 대한 정부나 정치권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심지어 정치인들이 선거를 의식하면서 ‘가상자산 외면은 구한말 쇄국정책’과 같다고 주장한다든지, 자산시장 활성화한다고 각종 세금을 감면하고 대출규제를 완화해서 거품을 부추겼다면 명백한 정치 실패이고 정책 실패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여전히 법적 사각지대에 있는 가상장산 시장을 방치한 채 그나마 올라와 있는 ‘디지털자산기본법’도 한정없이 미루고 있는 정치권이 청년들의 투자실패를 개인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지 의문이다.

    가계부채에 대처하는 정부재정정책에 대해서도 되돌아봐야 한다. 2022년 1분기 기준 가계부채가 2,271조원(자금순환표)다. 이미 국민경제규모(GDP)를 한참 넘어섰음은 물론 1년 전에 비해서도 8%가 늘어난 수치로 세계 최대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이 와중에서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흑자를 내겠다면 가계나 기업 등 다른 경제행위 주체는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여전히 가계가 더 많은 적자를 내면서 버티는 사이 정부가 건전재정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책임 있는 일일까?

    * <정의로운 경제>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전 정의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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