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원총투표 단상...
    민주당보다도 더 퇴행적인
    [기자생각]“정의당 비례의원 사퇴 권고 총투표는 압도적 부결이어야”
        2022년 08월 30일 02: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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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원투표를 당 대의원대회 위의 상위 규범으로 두려고 했던 민주당 당헌 개정이 제동이 걸렸지만 친명계 일각에서는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당원투표의 경우 일반 회의 규정과 같은 과반 참여 등이 엄격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어서 소위 개딸 등 강성 지지자들을 동원하여 필요한 입장이나 정책을 밀어붙이는, 포퓰리즘 정치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우려하는 게 비판적 시각이다. 친명과 비명계의 입장 차이가 비교적 뚜렷한 쟁점이기도 하다.

    이미 민주당은 과거 귀책사유가 자신에게 있을 경우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을 권리당원 투표를 통해 개정 찬성 의사를 확인하고 개정하여 후보 공천을 한 바 있다. 이 경우는 그래도 당원투표가 곧바로 효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당원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였고 당헌 개정은 별도의 과정과 규정을 거쳐 진행되었다. 또 민주당은 2020년 총선 시기 논란이 많았던 비례대표 위성정당 참여 여부에 대해서도 당원투표를 통해 참여를 결정하기도 했다. 위성정당을 만들려는 판단을 이미 당 지도부는 내리고 있었지만 정치적 명분이 없었던 상황에서 당원투표에서의 찬성이라는 알리바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당원총투표는 당헌에 어떻게 규정되었든 진성당원제라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정당 민주주의의 최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보통 창당, 해산, 통합 등 정당이라는 결사체의 진로, 진퇴와 관련한 결정은 당원총투표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그 정당의 대통령 후보나 지도부를 선출할 때에는 당원투표만이 아니라 여론조사 등의 다양한 장치를 함께 구성하여 선출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직의 진로 결정에서 여론조사를 반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당원총투표는 남발되지 않는다. 남발되어서도 안된다. 정당의 일상 활동이나 운영은 당헌당규라는 규범에 근거하여 책임 있는 당 기구에서의 결정을 통해 진행된다. 직접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모든 결정을 당원투표 혹은 당원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그럴수록 당 대의기구의 의미와 권위, 대의기구에서의 숙의와 토론을 통한 수렴과 조정 등이 사라지거나 주변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원총투표의 특징은 선택을 강요한다는 점이다. 찬성하냐 반대하냐, 좋아하냐 싫어하냐와 같은 흑백 논리로 단순화시키고 선택하게 한다.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그 목표, 대상이 뚜렷해야 한다. 조직의 진로 결정은 비교적 선택이 뚜렷하다. 이것과 저것 사이의 경우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과 입장의 경우는 이것과 저것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토론하고 숙의하고 조정하고 새로운 대안 등을 모색하는 복합적 과정을 거치는 게 많고 또 맞다. 그래서 정책과 입장을 당원총투표로 결정한다는 것은 포퓰리즘 정치의 우려를 낳는다. A입장, B정책 등에 대해 찬성과 반대를 강요하는, 실제로는 특정한 입장이 있지만 이것을 포장하고 알리바이로 만들어줄 당원투표라는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소수의 강성 지지자들을 동원하여 의사결정기구를 우회하거나 압박하는 장치로 활용되는 것이다. 이런 지점이 민주당 당원투표 당헌 개정에 대한 쟁점이기도 하다.

    당원투표에 대한 민주당 내의 논쟁이나 입장을 보면, 그래도 의미 있는 정치적 학습은 된다. 재보선 무공천 당헌을 우회하기 위해 당원투표라는 당내 여론정치를 활용한 것이 정치적 진보인지 퇴보인지, 위성정당 창당과 참여가 당원투표의 찬성이라는 것으로 알리바이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 당원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치는 게 그 내용을 정당화시키는지 등에 대한 비판적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민주당의 당원투표 논란보다 훨씬 퇴행적이고 어처구니 없는 게 지금 진보정당이라는 정의당에서 진행되고 있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총사퇴 권고’ 당원총투표이다.

    위에서의 언급은 당원총투표라는 절차에 대한 단상이었다면 정의당의 비례 총사퇴 권고 당원총투표는 두 가지가 핵심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무수한 쟁점과 비판 지점이 많지만 두 가지로 압축한다.

    하나는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이다.

    민주당 위성정당 참여 여부 당원투표는 그래도 찬성과 반대라는 선택지가 분명하고 그 실천적 함의도 명확했다. 찬성과 반대의 논지도 비교적 뚜렷했다. 얄팍하게 당내 여론정치로 당원투표를 활용했다는 비판과는 별개다. 그런데 정의당 당원총투표는 총사퇴 ‘권고’이다. 가결되면 권고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권고의 규정력이 무엇인지를 둘러싼 혼란이 대기 중이다. 가결이 된다면 논리적으로는 권고에 대한 규정력을 둘러싸고 또 다른 당원총투표가 제기될 것이다. 즉 총사퇴 권고는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퇴하고 그 다음 순번의 후보자에게 승계시키는 것이라는 내용으로 또 총투표를 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 당원소환이라는 절차를 우회하려는 꼼수가 내포한 문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런 당원총투표는 보이콧하고 참여하지 않는 게 논리적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당원총투표라는 정당 민주주의의 최대치를 코메디로 만드는 것이기에 총투표 자체가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 20%의 최소요건도 갖추지 못하게 만드는 게 맞다고 본다. 하지만 이게 논리적 결론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총투표 참여율이 20%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보이콧은 총사퇴 권고 찬성측의 행위를 지지하는 역설로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총투표에 참석하여 이런 어처구니 없는 정치행위를 주도한 세력들의 행위를 압도적으로 반대하여 부결시키는 게 정답이라고 본다.

    두 번째는 비례대표 총사퇴 권고라는 내용의 의미이다.

    이번 총투표 행위의 출발은 대선과 지방선거에서의 저조한 성적과 실패에서 출발한다. 당연히 선거라는 전장에서의 패배에 대해서는 그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찾는 것, 정치적 측면과 조직적 측면 모두에서 다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단기 과제와 장기 과제를 마련하고 실천하는 건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 과정, 실패와 패배의 원인과 대안 모색의 결론이 비례대표 국회의원 총사퇴를 권고하는 것이라니…단순화시키면 누군가에게 선거 실패와 당원들의 우울함의 책임을 떠넘기고 화풀이를 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 대상을 비례대표 국회의원 5명으로 설정한 것이다. 소수자들이나 특정 외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악마화하여 내부의 분노를 돌리는 행태와 구조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비례 총사퇴 권고’라는 걸 통해 정의당 내부의 무의식적 심성을 확인하게 된다. 비례대표 전문 정당이라는 비판에 반발하지만 스스로 정의당은 비례대표 전문 정당이라는 것을 자백하고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정의당이라는 정당이 당의 공식 지도부보다 국회의원이라는 지위가 더 상위에 있다고 하는, ‘의회주의’라는 규정보다 더 참혹한 자기규정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젠가부터 당 지도부보다 국회의원이 더 상위의 인사들이고, 당직자들에게는 중앙당의 핵심 일꾼이라는 권위보다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게 더 꿀이고 또 꿈이라는 지적이 아픈 비판이 아니게 되었다. 나에게는 슬픈 현실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담담하고 건조한 현재일 뿐이다.

    냉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판과 분노는 그래도 우리를 행동하게 한다.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장, 전 진보신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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