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난 시 ‘집’이 ‘흉기’가 되고 있다
    취약계층 피해 막으려면 ‘주거복지 예산’ 확대해야
        2022년 08월 23일 10: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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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지하와 옥상, 고시원, 컨테이너 등 취약계층의 ‘집’이 재난 상황에 오히려 “흉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침수와 화재 등 반복되는 재난 피해를 막기 위해 주거복지 예산 확대와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및 취약계층에 대한 배분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23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지하 주거 실태 및 대책 마련 긴급 토론회’에서 “수재, 화재, 폭염, 한파 등 반복되는 재난 상황에서 집이 취약계층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흉기가 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그러나 지하 거주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 수립과 실행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고 짚었다.

    이날 토론회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 한국도시연구소, 재난불평등추모행동이 공동주최했다.

    지난 8일 수도권 폭우로 지하와 컨테이너 거주민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울 관악구 반지하에서 발달장인 40대 여성 등 일가족 3명, 동작구 지하에서 수급자 여성 1명, 경기도 화성시 불법 가설건축물 컨테이너에서 이주민 노동자 1명이 사망했다.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참사 피해를 겪은 것이다.

    실제로 2020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지하 거주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90만원 정도로 국내 전체 가구 평균 소득(317만5천 원)의 60%에 그친다. 지하 거주 가구 중 수급가구 비율은 15%이고, 기준중위소득 60% 이하인 비율은 38%, 차상위계층 기준인 기준중위소득 50% 이하 비율은 29%에 달했다.

    이번 반지하 폭우 참사 이전에도 폭염과 화재, 한파 등 재난으로 인해 고시원, 옥상 등에 거주하던 취약계층이 사망하는 사고는 빈번하게 벌어져왔다.

    2018년 종로 고시원 화재로 수급자 4명 포함 7명과 올해 4월 영등포구에서도 수급자 2명이 화재로 사망했고, 지난해엔 서울 서대문구 옥상에서 혼자 살던 장애인이 폭염으로 목숨을 잃었다. 2020년 12월엔 경기도 포천에서 난방이 안 되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거주하던 캄보디아 출신 30대 여성 이주 노동자가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정부는 재난으로 인한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대책을 발표했지만 제대로 추진된 사례는 없다. 2018년 고시원 화재 사고 당시에도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이번 폭우 참사와 마찬가지로 고시원 관리 감독 강화 등 대책을 발표했으나 현재까지 주무부처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2019년 영화엔 ‘기생충’이 흥행하면서 정부가 반지하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했지만 이 또한 대책 수립은 물론, 기본적인 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은영 소장은 “이번 수해로 많은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지하에 살다 생명과 재산을 잃었는데, 국토부와 서울시의 대책 약속이라도 한 듯 구체적 예산 투입 계획이 거의 없다”며 “서울시는 정부에 주거급여 개선을 건의하겠다고만 하고, 정부는 주거급여 지원대상과 금액을 확대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대책으로 내놓았다”고 비판했다.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및 취약계층에 대한 배분 강화 등이 꼽힌다. 국토부가 2020년 실시한 조사를 보면, 지하 거주 가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주거복지프로그램으로 장기공공임대주택(34.1)을 가장 높은 비율로 희망했다. 이어 월세 지원(19.8%), 분양전환 공공임대(11.8%) 순이었다.

    최 소장은 주거 취약계층을 우선으로 하는 공공임대주택 배분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소장은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전국 약 86만 가구가 ‘지옥고’(반지하·옥탑·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다. 이 외에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까지 포괄하는 주거빈곤 가구가 공공임대주택의 우선 정책 대상이 돼야 한다”며 “중앙·지방정부는 매입·전세임대주택 공급량을 확대하고 신속히 주거상향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정부와 서울시는 민간 개발과 분양 주택 위주의 정책에 집중하고 있어,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후퇴하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는 대선 과정에서 예고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축소 공약을 수정하지 않고 있으며, 수해 직후 발표된 270만 호 공급 계획에 공공임대주택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주거급여 보장 수준을 확대하되 주거 품질 연계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최 소장은 “주거급여 수급자가 지옥고에서 사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는 주거급여가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편, 주거품질과 연계되지 않고 지급되는 현행 제도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2022년 기준 서울에서 주거급여 수급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인가구가 최대로 받을 수 있는 기준 임대료는 32.7만원인데, 이 금액으로는 지옥고와 쪽방 등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정부가 주거권을 보장해야 하는 수급자가 화재와 수재로 사망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최 소장은 종합부동산세를 통해 주거복지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소장은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을 위해선 지자체 예산만으로는 공공임대주택 공급 및 주거비 지원 등의 프로그램 실행에 한계가 있어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 종부세 감면을 위한 시행령 개정에 이어 세율 인하를 위한 법률 개정까지 예고해 종부세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주거복지 재원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종부세 후퇴를 막아 주거복지 예산을 확대하는 한편,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철저히 시행해 환수된 부담금을 취약계층의 주거복지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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