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사람을 죽였다
        2007년 02월 02일 04: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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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속적인 경영악화와 눈덩이처럼 커지는 부채의 현실 앞에,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중압감에 어찌할 수 없는 길을 선택합니다.(중략) 저희 제조업 단가 현실과는 너무나 힘이 듭니다. 바보같은 인간이지만 저혼자 호의호식하려하지 않았습니다. 제조원가 너무나도 현실성이 안되네요."

    납품단가 인하로 인한 경영악화에 시달리던 영세업체 사장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1일 오전 8시께 경남 창원시 대산면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업체 사무실에서 이 회사 대표 송모(48·창원시 동정동)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출근한 회사 직원 김모(28·여·김해시 진영읍)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조사결과 숨진 송씨는 지난 2000년부터 창원시 대산면에 직원 10여 명을 두고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소규모 하청업체를 경영해왔다. 최근 경영악화로 인한 자금압박에 시달리던 중 1일 두 장의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을 매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숨진 송씨의 바지 주머니에서 발견된 유서는 최근 중소영세업체 사장들이 환율인하와 납품단가로 인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가 적혀 있었다. 유서에서 송씨는 "제조원가가 현실과 터무니없이 맞지 않아 경영악화가 지속됐다"고 적었다.

    경찰에 따르면 송씨는 지난해까지 비교적 잘 판매되던 부품을 생산하다가 그 수요가 줄어 외국업체로부터 하청을 받기 시작했는데, 최근 환율이 급격히 내리고 원자재비도 갈수록 높아져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오히려 납품 단가는 낮아져 적자폭이 계속 늘어났다.

    송씨는 어려운 회사 상황에서도 직원들의 임금체불을 막기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송씨는 "누구든 저와 같은 전력은 밟지 마세요. ○○야 정말 할 말이 없다"며 숨을 끊는 순간까지도 직원들부터 걱정했으며 "외국인 꼭 챙겨주세요. ○과장 부탁해요"라고 적어 평소 송씨가 가진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끝도없는 대기업 납품단가 후려치기

    송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다. 지난 2005년 1월 현대자동차는 ‘비상경영’을 선포하면서 제주도에 하청업체 임원들을 불러놓고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해 현대자동차노조와 부품업체인 금속노조가 강력하게 항의했었다.

    지난 1월 29일 ㈜만도는 2007년 사업계획 설명회에서 "지난 현대자동차에 납품단가 인하를 800억 맞은 게 맞느냐?"는 노조 간부의 질문에 "CR을 맞은 건 맞지만 액수를 알려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하청업체에게 얼마나 때렸냐?"고 묻자 "현대차에 맞은 50%의 단가인하를 요청했다"는 대답을 들었다.

    즉, 현대자동차가 환율인하를 이유로 1차 하청업체에게 단가인하를 때리면 1차 업체는 1차 업체에게, 2차 업체는 3차 업체에게, 3차는 4차 업체에게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하고, 결국 영세업체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금속노조 만도지부는 회사에게 "하청업체에 납품단가 인하를 하지 말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해왔다. 죽음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해 4월 19일 현대·기아차 그룹 계열사 노조와 자동차 부품사 노조, 금속노조 등 1200여명의 노동자가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 모여 ‘납품단가 후려치기 중단’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현대·기아차 그룹은 수년 째 계속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노조 매도에 고결한 죽음마저 이용하는 중앙일보

    송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환율하락과 제조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납품단가 인하다. 해마다 계속되고 있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와 불공정거래로 인한 경영악화를 견디지 못해 그는 결국 목숨을 끊었다. 2장 짜리 그의 유서에도 명백하게 씌여있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2일자 ‘현대차 협력업체 사장 목매-주변선 `귀족노조 파업 등으로 자금난’이라는 제목을 달아 그의 죽음이 노동조합 파업 때문이라고 왜곡했다. 유서 어디에도 노동조합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그러자 <중앙일보>는 친구의 말을 인용해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노조를 매도하는 데 고인의 죽음까지 이용한 것이다.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악의적인 보도를 한 곳은 네이트다. 네이트는 이 뉴스를 눈에 ‘화제기사’ 머리에 올려놓고 제목도 굵은 글씨로 뽑았으며, <중앙일보>의 제목 ‘현대차 협력업체…’ 앞에 ‘파업’을 붙여 마치 현대차 파업 사태가 협력업체 사장의 자살과 관련이 있는 듯한 편집 태도를 보였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대해 ‘불공정거래’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할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지난 해 12월 28일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표자를 청와대로 불러 상생회의를 한다고 했지만 대기업의 범죄행위를 눈감아주고 있다.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막기 위해 결국 노동자가 나서야 한다. 원청노동자와 하청노동자가 하나의 산별노조로 뭉친 금속노조는 올해 중앙교섭을 통해 ‘원하청 불공정 거래 중단’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산별교섭에서 불공정거래 중단 요구할 계획"

    금속노조 김창한 위원장은 "중소기업 육성은 전체 산업을 건강하게 하는 힘인데 하청업체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노동자들의 고통뿐만 아니라 회사의 기술개발이 이뤄지지 못해 큰 문제였는데 이제는 사람까지 죽게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원청회사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면 하청회사는 더 옥죄려고 할 것"이라며 "자본의 몫을 줄이면 원하청 불공정거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재벌의 배를 불리고 불법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계속되고 있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노동자의 힘으로 근절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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