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예 한미FTA를 체결하라
        2007년 02월 02일 12: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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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우리 국민 눈과 귀는 피곤하다. 보고 싶지 않아도, 듣고 싶지 않아도 TV와 라디오, 전철 안내 광고까지 이른 새벽부터 밤 늦도록 한미FTA가 안 되면 나라가 곧 망할 것마냥 떠들어댄다.

    한미FTA 체결지원위원회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발간하여 친절하게 우편으로 보내주는 컬러판 <한미FTA 궁금하시죠> 1월 18일자는 ‘국내 노동 입법의 자율권 보장이 관건’이라는 제목 아래, 노동 분야 협상이 얼마나 자주적이고 주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선전한다.

       
      ▲ 1월 18일자 <한국FTA 궁금하시죠>
     

    “미국은 …… 현재의 노동권 보호 수준을 저하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 한국측은 국제적 보호수준을 존중하는 한, 국내노동법의 노동권보호수준의 조정이 가능해야 하며 노동입법의 자율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미국은 노동법의 효과적 집행이 실패할 경우에 분쟁해결절차를 도입하고 연간 1,500만 달러 한도에서 벌과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한국은 노동법 미집행과 관련해 분쟁이 발생하면 정부간 협의를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요약하자면, 미국은 현재의 노동법을 지키고, 어길 경우 벌금을 매기자는 입장이고, 한국은 노동법을 바꿀 수도 있고, 법을 안 지키더라도 제재를 가하지 말자는 입장이다. 젖은 문창호지처럼 뻥뻥 뚫리던 한국 정부가 노동 문제에서만은 이처럼 견고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는 <궁금하시죠>에서 “국내 노동법 노동시장 유연성 저해 …… 노동권 보호수준 조정 가능해야”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미국 입장처럼 노동법을 ‘법대로’ 지킬 의사가 없고, 대량해고를 가능하게 할 개악 계획이 가로막힐까 노심초사하고 있음을 실토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기업의 근로자 대량해고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측면이 있는 등, 미국보다 노동권 보호수준이 더 높다. 또한 이는 한국의 노동시장이 미국만큼 유연하지 않고 경직된 여러 요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 유럽, 특히 프랑스의 경제가 활력을 잃고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는 반면에 미국 경제는 성장을 계속하고 실업률도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프랑스의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전세계 CEO들의 필독서’임을 내세우는 <포브스> 2003년 발표에 따르면, 정부의 엄살과는 달리 한국의 노동유연성은 OECD 3위이다. 김유선의 2004년 연구(‘한국과 미국의 노동유연성 비교’)에 따르면 미국보다 한국의 노동유연성이 더 높아, OECD 국가 중 1위다. 한국 노동자의 고용, 노동시간, 임금 변동성이 미국보다 더 높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궁금하시죠>는 전제 사실부터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OECD 표준실업률
     

    설사 한국의 노동유연성이 낮다 할지라도, 노동유연성이 실업률과 연동된다는 정부의 주장은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노조의 지지를 받는 미국의 민주당 행정부(93년~01년) 때보다 대자본의 지지를 받는 공화당 행정부에서 실업률이 더 높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인가?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노동유연성이 낮은 한국의 실업률이 미국보다 높아야 하는데, 사실은 정반대이지 않은가?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한국이 노동유연성이 낮기 때문에 실업률도 낮은 것이고, 그렇다면 오히려 노동의 유연성을 더 낮추어야 한다는 결론이 성립된다.

    노동법을 준수하자는 미국의 주장이 한국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님은 물론이다. 노동법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는 노동권을 이용해 한국 자본에 대한 비교우위와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목적이 숨어 있다.

    하지만 웃기지 않은가? 다른 것은 다 내줘도 노동조건을 개악시킬 권리는 내주지 않겠다는 한국 정부, 자국 노동자를 더 착취해 미국 자본과 경쟁하겠다는 한국 자본, 그리고 그런 의도를 ‘자율권’이라고 주장하는 한심한 태도. 아예 미국 측 입장대로 한미FTA를 체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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