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여전히 꿈꿀 수 있을까?
    [책소개]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조형근/창비)
        2022년 08월 20일 10: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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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사회를 갈구하는 어느 지식인의 자기성찰
    내가 권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

    2019년에 칼럼 「대학을 떠나며」를 발표하며 정규직 교수를 사직해 화제를 일으켰던 사회학자 조형근의 저서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가 출간되었다. 대학을 떠난 이후 3년여 동안 ‘동네 사회학자’로 활동하며 고민한 바를 담았다. 그사이 우리 사회는 조국 사태, 코로나19 대유행, 대통령 선거 등 큰 사건들을 겪으며 균열과 갈등으로 나아갔다. ‘촛불정부’는 불평등과 약자 문제에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세상을 바꾼 줄 알았던 촛불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대학은 점차 진리의 보루라는 권위를 잃어가고 있으며, 세대와 젠더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한 듯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성찰은 무엇인가.

    한때 세상을 바꾸려 했으나 어느새 ‘기득권’이 되어버린 진보 지식인 엘리트의 자화상을 돌아보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86세대’로 불리는 진보진영의 주역들은 20대 시절 독재와 자본에 맞서 세상을 바꾸려고 투쟁했지만, 민주화가 정착해가는 과정에서 투쟁을 경쟁으로 대체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불평등 재생산에 앞장선 것이다. 이는 오늘날 세대갈등과 진보-보수 지형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이 책에서 86세대, 진보, 남성, 엘리트, 지식인인 자신을 먼저 성찰하고자 한다. 유독 글을 쓸 때만 정의로워진다는 저자의 자기반성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지식인의 죽음과 대학의 위기
    청년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1부는 오랫동안 대학에 몸담았던 지식인으로서 대학과 지식인의 역할을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대학의 과거와 미래를 점검하고 대학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한다. 대학은 사회 변혁의 주체적 공간이고 지식인은 그곳의 주역이라는 말이 오늘날에는 성립하지 않음을 뼈아프게 통찰한다. 이제 대학을 떠나 마을에 머물게 된 지식인으로서 우리의 지식 생산과 소비의 제도 및 관행이 가진 문제를 짚기도 한다. 우리 대학과 지식생산체계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아탑 내의 인정과 문법에 자족하지 않고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의 청년세대와 지난날의 청년세대에 대한 고민, 그들 사이 불화에 대한 생각도 담았다. 이른바 ‘20대 남성 보수화론’과 ‘86세대 책임론’은 지난 대통령 선거를 관통하며 더욱 첨예해졌다. 저자는 보수화된 20대 남성을 매도하기보다 이 현상을 초래한 사회 구조를 분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득권이 된 86세대의 일원으로서 동년배들이 지나온 시대를 회고하며 지금 져야 할 책임을 묻기도 한다. 또한 ‘보수화된 20대 남성’이나 ‘86세대’로 묶일 수 없는 그 세대의 다양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중산층 민주주의를 넘어 몫 없는 자들에게로
    다시 희망을 말하다

    2부에서는 민주주의를 갱신하기 위한 고민을 말한다. 세월호 사건의 사회적 의미, 합리적 보수를 바라는 미망에 대한 경계, 주거 빈민의 삶에 대한 고민, 촛불행동의 희망과 공정한 경쟁을 향한 욕망에 깃든 중산층 민주주의에 대한 자기반성 등을 담았다.

    세월호 사건에서 촛불로 이어지는 변화의 시기에 우리는 민주주의가 만개했음을 느꼈다. 그러나 이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한 듯하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불평등의 구조와 가난의 대물림에 충분히 주목하지 못하고 있으며, ‘선을 지키는’ 중산층 민주주의에 만족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공정’이라는 잣대로 경쟁을 내면화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발언을 ‘개․돼지’ 취급하는 비민주적인 사회 분위기도 문제 삼는다. 우리 민주주의가 한단계 나아가기 위해서는 몫 없는 자들의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주목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3부에서는 그간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사회 담론을 검토한다. 먼저 기존의 역사에서 제시되었던 유토피아주의를 통해 새 세상을 꿈꾸는 희망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어서 저자의 주된 관심 중 하나인 ‘행복경제학’과 ‘사회적 경제’의 핵심 논지를 점검하고 그 한계를 따져본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고민의 대상이자 주체인 민중과 소수자가 어떻게 만나야 할지도 고민한다. 어떤 대안이든 낙관은 쉽지 않고 과제는 많아 보이지만, ‘희망이라는 원리’를 붙잡고 나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갈등의 시대, 우리는 여전히 꿈꿀 수 있을까?
    공동체의 위기를 돌파하는 삶과 지식의 재결합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조롱받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저자는 냉소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계량화된 기준에 매몰되지 않는 삶, 갈등을 해결하려 노력하되 손쉬운 길로 회피하지 않는 토론, 삶을 전환하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골몰하지만 그것의 미진함을 돌아볼 줄 아는 공부가 바로 그것이다. ‘위선’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위선은 역겹지만 위선마저 사라진 세상은 야만”이기 때문이다(칼럼 「위선, 악이 선에 바치는 경배」).

    1988년 사당동, 저자는 철거민을 내쫓기 위해 동원된 폭력의 현장에서 도망쳤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연대는 공권력과 자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우리가 다시 연대사회를 꿈꾸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 모든 동료 시민들을 동등한 대화와 연대의 주체로 인정하고, 정당한 발언권과 정의로운 배분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곳이 새로운 희망을 위한 현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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