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노력 전혀 이해 못한 책소개"
    By
        2007년 02월 02일 08:56 오전

    Print Friendly

    정성진 교수의 책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 대한 서평 형식으로 쓴 이재영 씨의 글은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는 그 동안 스탈린주의(NL과 PD)와 각종 포스트스탈린주의(포스트모더니즘, 자율주의, 케인스주의 등)에 맞서 트로츠키를 지렛대로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전통을 새로운 대안으로 구체화하려는 정 교수의 노력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물론 정 교수의 문제의식과 논의 과정, 그리고 잠정적 결론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 교수의 노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 정도는 할 수 있을 법한데, 이재영 씨가 찾아낸 이 책의 장점이라곤 “한국 사람이 쓴 트로츠키에 대한 책”, 혹은 엉뚱하게도 “요즘은 찾아 보기 힘든 경제사상사 책”이라는 것뿐이다. 그런 다음 이재영 씨는 “서평이 아닌 책 소개”를 하겠다는 자신의 말을 어기고, 정 교수와 그가 지지하는 ‘다함께’를 “트로츠키와 다른 한국의 트로츠키주의”라며 비난하는 것으로 지면을 채웠다.

    이재영 씨는 “정성진의 책에는 눈에 거슬리는 과장이 적지 않다”며 먼저 “요즘 세계 진보진영의 화두는 (…) 21세기 사회주의”라거나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다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고 보는 것은 ‘다함께’나 정 교수와 같은 “국제사회주의자들(IS) 끼리의 유행”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1991년 소련, 동유럽 붕괴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본주의 이외 대안 부재론’(TINA)이 득세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듯했던 ‘마르크스의 유령’이 지난 1997~98년 세계경제 위기와 함께 다시 살아나면서 ‘마르크스로 돌아가자’(Return to Marx)가 지난 세기말 “세계 진보진영의 화두”였음은 이재영 씨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1999년 시애틀 전투 이후 반신자유주의 대안세계화 운동, 그리고 21세기 들어 반전 반제국주의 운동이 고양되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차베스를 비롯한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마르크스로 돌아가자’에서 더 나아가 ‘21세기 사회주의’가 요즘 세계 진보진영의 화두로 되고 있음은 마르크스와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인터넷을 조금만 서핑해도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21세기 사회주의’를 제창하고 있는 차베스의 인기가 전세계적으로 높은 사실에서 뿐만 아니라, 올 가을 예정된 ‘제5차 국제마르크스대회’(Congress Marx International V)의 대회주제가 ‘대안 세계화/반자본주의’이고, 우리나라 좌파 논객들의 대표적 연합체인 ‘맑스코뮤날레’의 올해 대회주제 역시 ‘21세기 자본주의와 대안 세계화’인 데서 알 수 있다.

    게다가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2006.12.28)나 <중앙일보>(2007.1.4) 같은 대표적인 국내외 보수 언론들조차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마르크스주의, 특히 트로츠키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도한 데서 알 수 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옛 소련식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민주노동당이 등장했다. 물론 ‘민주적 사회주의’의 내용에 대한 이해는 저마다 다르지만, 한국 사회의 대안 사회 모델 중의 하나로 사회주의가 거론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이재영 씨는 정 교수가 “~주의”라고 낙인을 찍는다고 힐난하지만 정 교수의 책, 특히 제3부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의 자원들’을 조금만 훑어보아도 정 교수가 자신과 다른 이론적 정치적 입장들에 대해 풍부한 논거에 입각한 논리적 비판을 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재영 씨가 계획경제의 불가능성을 반박하는 정 교수의 주장을 1930년대의 사회주의 계산 논쟁과 비교하고 더 나아가 이와는 무관한 1921년의 신경제정책과 연결시키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

    그러나 정 교수는 이재영 씨가 주장하듯이 “사회주의를 계산 가능성으로 치환”하고 있지 않다. 정 교수는 오늘날처럼 고도로 발달한 복잡한 현대 경제에서는 시장 없이는 계산이 불가능하다며 시장 폐지(즉, 사회주의)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자본주의 이외 대안 부재론’을 논박하기 위해 시장의 매개 없이도 참여계획경제 방식으로 계산과 경제의 조절이 가능함을 보였을 뿐이다.

    또,이재영 씨는 레닌과 트로츠키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신경제정책을 정 교수가 경제주의라고 비판한 것을 거론하며, 트로츠키 자신과 정 교수의 트로츠키주의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20년대 소련의 신경제정책과 관련하여 정 교수가 문제삼은 것은, 이 책 14장에서 보듯이, 신경제정책의 시장사회주의론적(부하린) 혹은 일국사회주의론적(스탈린) 정당화였으며, 당시 혁명의 고립과 노동자계급의 해체의 조건에서 신경제정책과 같은 전술적 후퇴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또,이재영 씨는 “레닌이나 스탈린보다 ‘아래로부터’를 더 많이 강조한 트로츠키는 1921년 크론슈타트 반란의 파괴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 당시 트로츠키는 우랄산맥 지방에 출타 중이었고, 그곳에서 곧바로 모스크바로 가서 제10차 당대회에 참가했다. 진압 책임자는 서부전선 담당 적군 사령관 미하일 투하체프스키였다.

    1917년 10월 혁명 당시 혁명의 최정예 부대였던 크론슈타트 수병과 1921년의 수병은 계급 구성이 달랐다. 페트로그라드의 공업 노동자들과 가장 선진적인 농민들로 이루어진 1917년의 수병들은 내전 동안 혁명을 방어하며 전투를 이끌었기 때문에 대부분 죽거나 부상당했다. 반면 1921년의 수병은 새로 징집된 농민 신병들이었다.

    1921년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은 반혁명 위협이 사라진 뒤 노동자와 농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소비에트 내에서 볼셰비키를 제거하자고 주장하는 크론슈타트 수병들의 요구는 반혁명 세력의 복귀를 부르는 신호나 다름없었기에, 볼셰비키가 이를 들어줄 수는 없었다. 더욱이 백군과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계급들은 크론슈타트 수병들의 반란을 반혁명의 발판으로 여기고 있던 참이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을 진압한 것은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노동자 혁명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비극적 결정이었고 불가피한 폭력이었다.

    이재영 씨의 논법은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 맥락에서 떼어내 그 자체로만 파악하고 논의해야 한다는 역사적 추상주의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사람이 죽은 뒤 앙상한 뼈만 남은 것을 두고 ‘같은 뼈조각이니 사람과 원숭이가 같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트로츠키에게도 약점과 실수가 있었고 또 1956년 헝가리혁명에 대한 소련의 진압을 옹호하거나 1989년 톈안먼 항쟁을 진압한 중국 지배자들을 옹호한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국제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 자기해방이라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정수를 보존하고 후대 사회변혁 운동가들에게 전수하려 한다는 점에서 트로츠키와 정 교수는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한편, 이재영 씨는 ‘다함께’가 “주체사상파와 어울려 논다는 추문” 운운하며, ‘다함께’가 “트로츠키의 주장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함께’가 북한을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한다는 사실과 북한 지배자들의 억압에 반대하고 탈북자들을 환영한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남한의 범자민통 동지들은 대체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고 피착취·피억압 대중의 민주적 권리를 옹호하며 사회 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우리 운동의 일부다. ‘다함께’가 이들의 전략과 사상에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이들과 함께 연대해서 투쟁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다함께’는, 이재영 씨의 주장과 달리, 트로츠키가 말한 공동전선 정신에 부합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이재영 씨는 또 “자유게시판도 없는 ‘다함께’의 독특하고 해괴한 문화” 운운하며 ‘다함께’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는 것처럼 몰아갔다. 그러나 자유게시판이 없는 것이 ‘다함께’만의 “해괴한” 특징인가? 또,자유게시판이 없다는 것이 ‘다함께’와 그 정치적 청중 사이의 관계가 민주적이지 않다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자유게시판이 있는 그 수많은 단체와 기관들이 과연 ‘다함께’보다 민주적인가?  ‘다함께’ 홈페이지에는 대표 연락처와 메일 주소가 있고, ‘다함께’의 주장과 그 청중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맞불>을 발간하고 있다.

    오히려,정치 사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쑥덕공론을 펼치거나 지지하고 연대해야 할 운동을 그 지도 세력의 정치사상을 핑계되며 지지하지 않는 종파주의가 진정한 문제가 아닐까?

    물론 진보진영 내부에도 다양한 차이들, 상충되는 정치적 노선들이 존재하며, 이들 간의 비판과 토론은 역사의 진보를 앞당기는 것으로 존중되고 고무되어야 한다. 『마르크스와 트로츠키』가 입장이야 어떻든 우리나라 진보 학계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정말 오랜 만에 나온 역작임은 이재영 씨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영 씨는 자신이 지지하지도 않는 트로츠키의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척하며 너스레를 떨 것이 아니라, 최소한 “24 시간 쯤”은 투자해서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우선순위였을 것이다.

    그런 다음 자신이 속한 사회민주주의 혹은 케인스주의의 입장에서 ‘다함께’에 대해서든 정 교수에 대해서든 인식과 대안에서의 차이와 논리적 비판을 분명하게 제기했더라면, 21세기 우리나라 진보의 대안 모색을 위한 토론의 발전에 약간이라도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