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당의 '보수적' 대선 기획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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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2월 01일 08: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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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도 우파 정당인 열린우리당이 산산조각나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파 정당인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견고한 것도 아니다.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가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도 한나라당 지지자 가운데 40퍼센트가 지지 정당을 바꿀 수 있다고 응답했다.

    경제정책으로 ‘복지강화’를 꼽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의 주요 경제 정책인 감세를 꼽은 이들보다 많았다. 부자에게 세금을 더 부과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82.2%에 달했다.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들이 한나라당이 끔직하게 싫어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형국이니, 한나라당이 “대선 전략 비상” 운운할 만하다.

    열린우리당이 붕괴하고 한나라당이 정권 탈환을 안심할 수 없는 지금 상황은, 민주노동당 앞에 상당한 기회가 널려 있음을 뜻한다. 다소 이례적이긴 하지만 2007년 1월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15.7%를 기록한 것도 한 예라 할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에 배신감을 느껴 이반하고 있는 사람들을 진정한 진보의 편으로 끌어 당길 수 있는 여러 정치적 실험과 도전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대선기획단이 내놓은 대선 첫 목표는 “당의 위기 극복”이다. 보수적이고 내향적인 목표 설정이다. 이런 태도는 대선 후보 선정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대선기획단은 당원 직선으로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당헌을 개정해야 하는 부담감을 의식해서인지 후보 선정 방식에 관한 진취적인 고민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붕괴가 낳은 정치적 공란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정치적 실험과 도전을 시도하기보다는 보수주의에 갇혀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물론 ‘대선 승리 기획안’에는 현 시기에 대한 적절한 인식도 담겨 있다. “당이 대선 국면에서 진보진영 전체의 조직적 역량을 하나로 모으고,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여 사회양극화 해소와 서민 대중의 생활상의 고통을 해결하고 제대로 된 개혁을 바라는 민심을 결집시켜 나간다면 당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대선, 총선이라는 역사적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려면 ‘진보진영 단일후보안’ 같은 정치적 실험 제안에 귀기울이고 전당적인 토론에 부치는 등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일찍이 12월 28일 대선기획단에 제안된 ‘진보진영 단일후보안’이 광역시도당 토론 자료에서 누락된 것은 매우 아쉽다.

    한편 대선기획단은 “정치 이슈보다는 경제 이슈, 민생 이슈 즉 먹고사는 문제가 중심적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한미FTA와 부동산 그리고 사회연대전략, 대안경제 정책 등을 중심 의제로 꼽았다. 한미FTA와 부동산 거품 붕괴 등은 기성 보수 정당 모두가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처방이 가져올 재앙이다. 이 모두 민주노동당과 기성 보수 정당의 차별성을 분명하게 보여 줄 수 있을 만한 의제다.

    그러나 사회연대전략을 대선의 중심 의제로 잡는 것은 위험하다. 대선기획단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민주노총의 당이라는 당의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라며 “양대 노총 등 이해 당사자 설득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 현안에 대한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경우에 따라 민주노총 및 기존 연금가입자와 당의 갈등 관계를 회피할 필요가 없다”고도 덧붙였다.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설득해 민주노동당의 영향력을 입증해 보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연대전략은 저소득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가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들 탓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고, 부자·기업주들의 양보를 강제할 수 있는 계급 내의 단결과 투쟁을 멀어지게 할 수 있다.

    사회연대전략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당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지지율을 떨어뜨릴 계급 분열 전략일 뿐이다. 그뿐 아니다. “일면적 요구가 아니라 참여에 기초한 요구”를 내세우는 사회연대전략은 “이건희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군비를 축소해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아무리 봐도 ‘부유세와 군비감축을 통한 무상의료·무상교육’이라는 민주노동당의 본색에서 명백히 후퇴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부유세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82%를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연대전략이 당의 주요 대선 방침이 된다면 당은 도리어 주변화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레디앙>에 실린 조희연 교수의 주장은 매우 경청할 만하다. 조희연 교수 말처럼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치세력은… 사회를 구성하는 대중들을 급진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부유세’를 제출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중도자유주의적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를 급진적 열망으로 전환하는 쟁점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대안 경제 정책에 관해서는 “성장과 분배에 대한 이론적 기초를 정립하고 근거를 세워야 한다”며 얼마 전 진보정치연구소가 제출한 ‘사회연대 경제성장 전략’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사회연대 경제성장 전략’은 “분배를 통한 성장”에 대해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며 이제 민주노동당도 성장을 말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사회연대적 성장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경영 참여를 통해 투자 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게 핵심 취지다. 사실상 노사정위 참여 등을 권고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외의 모든 관측이 올해의 핵심 이슈를 중동과 이라크로 꼽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선에서 ‘정치 이슈보다는 경제 이슈가 중심’이 될 거라는 예상도 지나친 단견이다. 2002년 대선 막판에 여중생 사망 사건과 반부시 정서가 선거 판도를 크게 흔들었던 것을 돌이켜 본다면 민주노동당이 제국주의와 전쟁 문제를 소홀히 여기는 것은 자신의 무기 중 하나를 내려놓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전히 반전은 당의 중심 의제 가운데 하나가 돼야 한다. 미국의 패권 정책과 중동 전쟁은 여전히 세계 정치의 핵심 의제다. 더욱이 부시가 이라크 주둔 미군을 증파했고 이란 위협이 고조되고 있으며 레바논에서 긴장은 계속되고 있다.

    이 곳 모두에 한국 군대에 주둔해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은 위와 같은 반전 의제들을 주요 의제로 쟁점화시켜야 한다. 그렇게 봤을 때, ‘대선 승리 기획안’에서 제국주의 문제가 철저하게 한반도 문제로만 한정돼 있는 것은 안타깝다.

    민주노동당 앞의 정치적 기회를 움켜잡기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의 ‘대선 승리 기획안’은 재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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