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이사제 시행...
    노동조합 탈퇴 필수조항?
    기재부 경영지침 통해 무력화·훼손
        2022년 08월 03일 05: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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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에 내일인 4일부터 노동이사제가 시행된다. 그러나 노동계와 일부 정치권에선 기획재정부가 법 취지와는 다른 지침을 통해 노동이사제 자체를 누더기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정의당 장혜영·이은주·강은미 의원 주최로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사측 거수기 노동이사, 누더기 노동이사제,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공공운수노조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정부가 경영지침으로 노동이사제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노동자의 대표로 들어간 노동이사의 노동조합 탈퇴를 강제하고, 노동이사의 기본적인 권한과 역할조차 모두 제한하거나 훼손하고 있다”며 “이는 경영지침으로 노동이사로서의 손발을 묶는 것이며, 노동이사제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공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공기업·준정부기관 130개 사업장에 4일부터 노동이사제가 도입될 예정이다. 문제는 기획재정부가 지난 6월 3일 발표한 ‘공기업·준정부기관의 경영에 관한 지침’이다. 이 지침은 공운법 시행령 개정안과 노동이사의 임명과 운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획재정부는 노동계로부터의 의견 수렴은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노동이사제 도입 및 운영 내용을 발표했다”며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그 출발부터 도입취지를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지침 내용 중 ‘노동이사의 노동조합원 자격 박탈’ 문제를 지적했다. 공운법에는 노동이사가 조합원의 자격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나, 기재부는 지침에서 노동이사로 임명되는 경우 노조법에 의거해 조합원 신분 유지가 불가하도록 규정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이사회 내에서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이사의 기본취지조차도 부정하는 발상”이라며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취지가 노동자의 권익과 관점을 기관 운영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고,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노동이사가 노동조합원의 자격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이사가 노조와 상호결합이 느슨해지거나 단절될 경우 이사회에서 노동이사가 홀로 고립되면서 사측에게 포섭되거나, 사용자측 이해 대변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독일, 스웨덴 등 노동이사제를 채택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노동이사의 조합원 신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유럽의 노동이사들은 노조 혹은 노사협의회의 추천으로 후보자가 된 뒤 직원 직선, 노조 임명 등의 방식을 거쳐 노동이사로 최종 임명·선출되고 있다. 이는 노동이사의 활동이 그만큼 노동조합, 노사협의회 활동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노동이사의 권한 제한 규정도 반발을 사고 있다. 기재부는 노동이사에 대해 임원추천위원회의 위원은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기존 비상임이사도 한 달에 한 번 정도의 이사회에 참석해 심의·의결하는 권한밖에 없는 등 현실적으로 권한이 제한적인데, 권한 행사에 있어 사실상 다른 일반 비상임이사들보다 더 많은 제약을 가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노동이사는 ‘직원’과 ‘임원’의 이중적 지위를 통해 유효한 견제와 감시 기능을 행사해야 하는데, 오히려 양쪽 지위의 어느 한쪽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 모두 권한을 제한 당한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수준의 노동이사제는 이사회에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기 어렵다. 오히려 노동자를 경영에 참여시켰다는 사용자의 명분만 세워주거나 사용자의 의사결정을 합리화시켜주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계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의 개선방향으로 ▲노동이사의 노동조합 조합원 자격 유지 ▲노동이사의 정수 확대 ▲당연직 임명 방식으로 변경 ▲노동이사에게 강화된 권한과 책임 부여 ▲노동이사의 역할과 책임 재정립 등을 제안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도 노동이사에 대해 권한 확대와 노동조합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노동이사제가 시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강은미 의원은 “노조법상 사용자의 이익을 대변하니 노조를 탈퇴해야 한다고 하면서 공운법상 공공기관의 직원 신분을 유지하기 때문에 임원추천위원회 참여는 제한된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지침”이라며 “한참 부족한 노동이사제를 아예 껍데기로 만들고 있는 것”고 비판했다.

    강 의원은 “임원추천위원회 참여도 문제될 것이 없다. 정권 바뀌면 낙하산 인사가 임명되는 공공기관을 견제하는 핵심적인 역할 중 하나가 임원추천위원회 참여”라며 “오히려 권한은 확대하고 노동조합의 대표성은 강화해야 한다. 노동이사 인원도 늘려서 공공기관을 제대로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혜영 의원은 “여러 왜곡과 달리, 노동이사제는 2021년 기준 OECD의 38개 회원국 가운데 절반이 넘는 21개국이 노동이사제를 시행하고 있고 그 중 13개국은 민간 기업까지 노동이사제를 확대 운영하고 있다”며 “한국은 노동자의 의견이 경영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생기는 갈등이 심각하다는 점에서 노동이사제를 제대로 시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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