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 사망 이후
    일본 정치권 동향과 전망
    [일본통신] 과잉 해석에 대한 경계
        2022년 08월 02일 10: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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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사망으로 향후 자민당 파벌 구도의 변화가 일본 정치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여론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 우익정치의 구심이 사라져 이후 자민당 역학관계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한편, 피습 사건 이틀 후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압승과 더불어 개헌 발의가 가능한 의석을 확보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추모 분위기로 강경파가 득세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다양하다.

    특히 강경파 득세론은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이 보수층을 결집시켜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세력이 압승하고 헌법개정이 현실화되어 군비 증강과 군국주의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 우려한다. 일본 내에서도 강경파의 준동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많이 부족하다. 사실 관계를 하나씩 살펴보자.

    피격 사건이 선거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직접적인 영향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는 사건 전후의 선거판세 비교로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다.

    “자민/공명 개선 과반 확보 기세” 참의원 선거 초반 판세 조사 (아사히신문 2022년 6월 24일)

    위 표는 아사히신문이 피격 사건이 일어나기 약 보름 전(6월 22~23일)에 실시한 선거 초반 판세분석이다. 각 당의 획득의석 추계치의 중간값을 구해 보면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각각 61석과 14석으로 나온다.

    실제 개표 결과와 비교하면 자민당 63석(추정치+2), 공명당 13석(-1)으로 추정치와 큰 차이가 없다. 야당의 경우도 입헌민주당 17석(-1), 유신회 12석(0), 국민민주당 5석(+1), 공산당 4석(-2), 레이와 3석(0), 사민당 1석(0) 등으로 마찬가지다. 다른 언론사가 내 놓은 예측치도 대체로 비슷하다.

    “참의원선거 투표율 추이” (도쿄신문7월14일) 이번 투표율은 지난 선거보다 3.25%포인트 늘어났지만 역대 4번째로 낮다.

    지지층의 결집도를 알 수 있는 투표율은 어떨까? 52.05%로 지난 선거의 48.8%보다 3.25%p 증가했지만 대부분 피습 이전 실시된 사전투표율 증가로 인한 것이고, 특히 자민당이 비례투표에서 얻은 약 1,825만표는 지난 선거 보다 0.94%p 증가에 그쳐 투표율 상승분을 크게 밑돈다. 사건 전후의 판세와 투표율 변화로 보수 지지층 결집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물론 아베 총격 사망 사건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선거에 영향을 주었다는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피격 사건이 선거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지 의견을 묻는 정도에 그쳐 실제 영향력을 설명하는 근거로 부족하다.

    어쨌든 개헌의석 확보는 큰 변화 아닌가?

    이번 선거로 개헌세력이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기 위한 요건인 중의원과 참의원 각각 3분의2 의석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다만 이러한 결과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선거로 개헌 발의가 가능해진 것은 2016년의 참의원 선거가 최초이다.

    2016년 선거에서 당시 개헌세력인 자민당과 공명당 유신회, 마음당은 각각 121석, 25석, 12석, 3석으로 도합 161석이 되어 개헌에 찬성하는 무소속을 더해 개헌 발의 의석인 162석(당시 의원정수는 242석)을 처음으로 넘겼다.

    2016년 7월 11일자 주요일간지 헤드라인. “개헌세력(4당) 개헌 발의 가능해져(3분의 2 넘겨/근접)”

    그후 2019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부진으로 개헌의석 유지에 실패하지만 이번 선거에서의 압승으로 다시 한번 개헌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개헌세력(자민 119, 공명 27, 유신 21, 국민민주 10)은 무소속을 제외하고도 177석을 확보해 개헌 발의 의석수 166석을 훌쩍 넘겼다(현 의원정수 248석).

    개헌세력이 크게 확대된 것은 우려할 만한 일 아닌가?

    의석수라는 양적 확대뿐만 아니라 야당 비중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개헌세력 4당의 중의원/참의원 의석수. 참의원(参院) 합계는 2022년 결과를 반영한 수치이다. (도쿄신문 2022년 7월21일자)

    이번 선거에서 개헌세력은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의 의석수만 놓고 보면 2016년과 차이가 없다. 오히려 의원정수 증가로 의석 비율은 1.4% 포인트 감소했다.

    연립여당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개헌세력 전체 의석수가 증가하게 된 데에는 야당 비중의 증가, 즉 유신회의 약진과 국민민주당이 새롭게 추가된 영향이 컸다.

    일본유신회는 이번 선거에서만 6석을 추가해 개선 의석 수를 두 배로 늘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비례투표에서 2012년의 중의원 선거에 이어 다시 한 번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주요 정당의 비례득표율 추이(지지통신 2022년 7월11일자)

    이번에 개헌세력으로 새롭게 추가된 국민민주당은 2020년 9월 (구)입헌민주당과 통합을 거부한 (구)국민민주당 잔류파들이 통합결의에 따른 정당 해산과 동시에 창당한 정당이다. 통합결의 당시 합류파가 40명, 잔류파가 14명, 무소속 선택 8명이었다. 잔류파 대부분 보수적 성향으로 개헌에 적극적이다. 의석수로만 보면 개헌세력은 2년 전에 이미 3분의 2를 넘긴 상태였다.

    추모 분위기로 자민당 강경파가 득세하지 않을까?

    사건이 사건이었던 만큼 추모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추모 분위기 속에서 망자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란 어렵고 한동안은 아베 전 총리의 업적을 추켜세우는 등 강경파의 목소리도 커질 것이다. 그러나 추모 분위기가 잠잠해지면 아베 전총리의 공백으로 생긴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등 정세가 유동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아베 전 총리는 모리토모학원과 가케학원, 벚꽃을 보는 모임 문제 등 집권기간 내내 각종 스캔들과 권력 사유화에 대한 비판에 시달리면서도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갈아치웠다. 퇴임 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일본 보수정치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기시다 총리와도 약간의 갈등은 있어도 큰 불화가 없었는데 이는 전적으로 아베 전 총리가 가진 힘 때문이다.

    기시다 정권은 기시다파와 아소파, 모테기파, 아베파 등 4개 파벌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아베는 자민당 최대 파벌(94명)을 이끌면서 맹우인 아소 다로 전총리(아소파 49명)와 아소파와 친밀한 모테기파(54명)를 더해 최소 자민당 국회의원 전체의 53%, 파벌소속 의원의 68%를 포괄한다. 기시다 총리가 자리를 보전하려면 아베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아베의 부재는 곧 자민당 내 힘의 공백과 권력투쟁 개시를 의미한다.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는 생전에 파벌 내 인물 중에서 시모무라 하쿠분(전 정조회장), 니시무라 야스토시(전 코로나담당상), 마츠노 히로카즈(현 관방장관), 하기우다 고이치(현 경제산업상)를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하면서도 후계자를 지목한 적은 없다고 한다.

    ‘포스트 아베’ 후보(마이니치신문 2022년1월14일) 왼쪽부터 시모무라 하쿠분, 마츠노 히로카즈, 니시무라 야스토시, 하기우다 고이치

    아베파는 아니지만 작년 총재 선거에서 3위로 선전한 다카이치 사나에(현 정조회장)도 아베의 측근 중 측근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2011년 마치무라파(현 아베파)를 탈퇴하는 과정에서 같은 파벌 의원들의 반감을 산 적이 있어 최근 아베 사망으로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리는 것으로 평가된다. 마치무라파는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파벌회장(마치무라) 지지파와 아베 지지파로 분열되었는데 다카이치가 탈퇴한 이유가 아베 지지 때문이었다고 알려진다.

    이렇듯 강경파들 중에서 아베 전 총리의 공백을 메울 인물이 부재하고 서로간 알력 관계도 만만치 않다. 물밑에선 이미 권력투쟁이 시작되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자민당 강경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자민당 주요 파벌 계보(2022년 6월 현재) (아사히신문 2022년 1월10일자를 일부 수정)

    세이와카이(현 아베파, 자민당 파벌은 통상 회장의 이름을 따서 ‘◯◯파’라 부른다)는 2000년 이후 모리/고이즈미/아베1・2차/후쿠다 총리를 연달아 배출하는 등 주류 중의 주류로 분류된다. 그러나 자민당 역사에서 오랜 기간 비주류 신세를 면치 못했다.

    자민당 내 전통적 주류파는 경무장과 경제발전을 중시하는 입장으로 ‘보수본류’라고 불리는 세력이다. 현재는 고치카이(宏池会, 기시다파)와 시코카이(志公会, 아소파), 헤이세이켄(平成研, 모테기파)가 보수본류 3파벌로 분류된다. 즉 기시다파와 아소파는 원래 한 갈래에서 나와 정책적으로도 가깝고, 같은 주류파 계보를 잇는 모테기파는 아소파는 물론 기시다파와도 우호적이다. 이 세 파벌이 힘을 합치면 소속 국회의원 148명이 되어 수적으로 아베파를 능가한다.

    도요케이자이 온라인판(7/28)에 따르면, 당내에서 “아베 사후에 (아베파가) 영향력을 유지하기 힘들 것(자민당 원로)”이라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고 “후계싸움의 장기화로 결국 분열될 것 (기시다파 간부)”이라는 관측이 많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강경파 주도권이 강해지기보다는 분열과 주류 파벌 간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필자소개
    일본 거주 연구자. 현대일본정치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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