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시민, 공공의료 팔아버린 장관 되려나
        2007년 01월 30일 04: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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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29일 보건복지부는 예정되었던 의료법 개정안 발표를 연기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의사협회의 강력한 반발 때문이었다. 29일 예정된 발표 대신 보건복지부는 의사협회,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가 "참여하는 TF팀을 만들어 쟁점이 되는 안에 대해 다시 협의하고 결정이 나는대로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사가 나간 직후부터 인터넷에는 ‘특정 이익단체에 끌려다니는 유시민 장관’과 ‘국민건강보다 자신의 밥그릇만 주장하는 의사집단’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29일 하루 뉴스와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던 것과는 달리 문제의 발단이 된 ‘의료법 개정’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정작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것은 ‘의료’라는 것이 전문적이고 국민들에게 낮선 이유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보건복지부의 ‘의료법 개정’ 추진 과정이 비민주적이고 졸속적이었기 때문이다.

    의료법은 의사들의 법?

    우리나라 의료법은 1951년 ‘국민의료법’으로 제정되고 1962년 의료법으로 전면 개정된 이후 지금까지 총 25회에 걸쳐 개정이 이루어져 왔다. 의료법은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법률로서 의료비용의 조달과 운영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법과 함께 우리나라의 주요 의료관련 법률 중 하나이다.

    이 의료법을 전면 개정하겠다면서 보건복지부는 2006년 7월 외부단체가 참여하는 ‘의료법 개정 실무추진반’을 구성했다. 그 후 6개월 여의 의료법 개정 작업 끝에 2월 정기국회에 맞춰 입법예고할 계획이라는 것과 함께 의료법 개정의 내용이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간 의료법 개정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던 것은 ‘의료법 개정 실무추진반’의 구성 및 운영과도 관련이 있다.

    보건복지부가 구성한 실무추진반에 참여하고 있는 외부단체는 의사협회와 함께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조산사협회, 간호사협회, 병원협회, 경실련, 녹색소비자연대, 대외법률사무소, 서울대법의학교실 등 10곳이다.

    의료공급자단체가 6곳, 소비자단체 2곳, 전문가 2곳으로 실무추진반의 구성이 의료공급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머지 소비자단체 2곳과 전문가단체 2곳도 비교적 정부 의료정책에 협조적이었거나 의료공급자와 관련이 있는 곳들이다.

    공급자 중심의 실무추진반 구성

    사적 이해관계가 분명한 민간의료공급자들에게 정부의 의료정책을 맡긴다는 것은 의료의 공공성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런 이유로 2006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실무추진반 참여를 요청받은 모 시민단체는 실무추진반의 비민주적 구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참여를 거부한 바 있다.

    왜 보건복지부는 의료공급자 중심의 의료법 개정 실무추진반을 구성했는가? 의료법이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 간을 조율하는 법률이므로 법률 개정에서도 이들이 이해당사자이며 이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인가? 하지만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현행 의료법 제1조 목적에도 ‘이 법은 국민의료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의료의 적정을 기하여 국민의 건강을 보호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의료법이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대해 규정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민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번 의료법 개정에 포함된 ‘환자 및 환자보호자에 대한 의료인의 질병 설명의무’나 ‘의료기록의 열람권’은 병의원을 이용하는 국민들의 권리에 대한 것이며, ‘병원 합병’에 대한 조항은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고용과 노동조건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보건복지부의 의료공급자 중심의 실무추진반 구성은 편파적이며, 의료소비자와 병원노동자의 목소리가 배제된 이번 의료법 전면개정 논의는 비민주적이다.

    물론 녹색소비자연대와 경실련이 실무추진반에 참여하면서 의료소비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노력하였을 것이다. 현재 공개된 의료법 개정안에서 그나마 긍정적 조항은 이러한 노력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료공급자 중심의 실무추진반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부수적이었거나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이렇듯 비민주적으로 구성된 실무추진반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의료법 전면개정 논의는 그 주요의제조차 공개되지 않은 채 진행되었고, 그간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선택진료제(특진제) 폐지’ 등은 의제에서 제외되었음이 드러났다.

    유시민 장관의 계산 착오

    보도에 따르면 유시민 장관은 실무추진반에 참여하고 있는 의사협회 등의 공급자단체들과 29일 ‘의료법 전면개정 합의서’를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회에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의사협회, 정확히는 의사협회 소속 회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이 계획은 유보되었지만, 유시민 장관의 의료법 개정과 관련된 구상을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유시민 장관은 당으로 복귀하기 전 의료법 개정안을 성공적으로 발의했다는 또 하나의 성과를 만들길 원하고 그 절차로서 의료공급자를 중심으로 하고 소비자단체를 들러리 세운 ‘이해당사자간 합의’라는 모양새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실무추진반에 참여하는 소비자단체 관계자조차 ‘의료법 개정의 방향과 내용에는 동의하나 절차상 비민주적’이라고 지적하는 배경에는 유시민 장관의 이러한 성과주의, 조급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유시민 장관의 이런 구상이 성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무추진반에 참여하면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합의 직전까지 갔던 의사협회 집행부와 달리 의사협회 소속 회원들이 강경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익집단으로서 당연한 반응이다. 근본적으로 의료공급자에 기대 의료법 개정을 추진한 유시민 장관의 계산이 애초부터 잘못되었던 것이다.

    ‘간호진단’이라는 용어를 개정안에 포함하는 것을 간호사와 의사 집단이 합의 할 수 있을까? 의료행위에 ‘투약’을 제외하는 것을 약사와 의사 집단이 합의할 수 있을까? 질병별 의료행위의 절차 및 방법을 규정하는 ‘표준진료지침’ 제정에 의사 집단이 동의를 할 수 있을까?

    보건복지부는 의사협회 등과 함께 TF팀을 구성해 현재의 쟁점을 논의하겠다고 하지만 결과는 ‘합의 무산’ 또는 ‘누더기 야합 법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합의 무산을 피하기 위해 밀실에서 이익집단들끼리 개정안을 주무르는 야합의 결과는 지금도 감지되고 있다.

    1월29일 보건복지부가 발표 예정이었던 의료법 개정안의 내용은 1월12일 공개된 개정안에서도 수정된 것이었다. 그간에 의사협회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으니 수정의 배경은 충분히 짐작이 된다.

    당사자인 국민들의 힘을 받지 못한채 진행되는 의료법 개정의 당연한 귀결이다. 언론과 네티즌들이 지적하는 ‘특정 이익집단에 끌려다니는 보건복지부와 유시민 장관’이라는 지적도 자업자득이다. ‘보수교육 강화’, ‘표준진료지침’ 등의 외국에서는 보편화된 제도도입조차 의료전문직에 대한 통제라며 반발하는 의사협회도 문제지만 이러한 사태를 불러온 1차적 책임은 밀실에서 졸속적인 의료법 개정 논의를 추진해온 보건복지부와 유시민 장관에게 있다.

    의협의 반발, 유시민 장관의 발표연기보다 중요한 것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의사협회의 반발이 인터넷 포탈사이트의 머릿기사를 장식하고 의사들에 대한 네티즌들의 막연한 불만이 수백개의 댓글로 표현되는 현실 속에서 정작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정책적 논의는 오히려 묻히고 있다. 문제는 그간 민주노동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의료양극화와 국민의료비 상승을 이유로 반대해온 의료기관의 영리활동 허용 등의 내용이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의료법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의료행위 개념 신설- 투약 제외’, ‘표준진료지침 제정’, ‘의료인의 환자에 대한 치료 설명 의무’, ‘간호진단 용어 사용’, ‘의사 보수교육 강화’ 등이다. 모두 다 의사협회에서 반발하고 있는 개정안의 내용들이다.

    사실 보건복지부에서 마련한 의료법 개정안은 현행 60여 개 조항을 120개 이상의 조항으로 신설, 변경하는 것으로 전체 내용은 방대하고 복잡하다. 국민들이 이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료시민사회단체들조차 이제야 이 내용을 파악하고 분석하느라 분주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개정의 방향과 주요내용, 조문해설 등을 포함한 공식발표를 한 차례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러니 언론에서 흥미위주로 보도하는 의사협회의 반발기사 내용에 국민들의 시선은 고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보자. ‘간호진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갖고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대립하는 것이 서민들과 노동자 건강에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의사 보수교육 강화’는? ‘의료행위에 투약’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 이 내용들은 의료체계에서 중요한 부분이며 노동자의 정당인 민주노동당은 당연히 이에 대한 입장을 가지고 발언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내용은 빠진 채 의사집단과 보건복지부간에 형성된 왜곡된 쟁점만이 부각되고 있는 것은 문제이다. 이럴 경우 보건복지부가 의사협회와의 합의 속에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게 되면 나머지 부분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병원 영리법인화 우회로 ‘병원경영지원회사’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는 정부가 작년 12월 발표한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중 의료산업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제시한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병원경영지원회사(Management Service Organization) 활성화’, ‘병원의 영리사업 범위 확대’, ‘의료기관에 대한 유인, 알선행위 규제 완화’, ‘의료 광고 허용’ 등이 그것들이다.

    이 중 ‘병원경영지원회사’는 이를 매개로 다수의 중대형 의료기관과 민간보험회사가 체인화되어 거대한 자본 투자 네트워크가 현실화되는, 사실상 영리법인병원으로 가는 중간단계가 될 것이다. 영리법인병원은 현 정부의 의료산업화 정책의 핵심 내용이다.

    그간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로 영리법인병원의 입법화가 어려워지면서 정부 내 의료시장주의자들이 선택한 우회로가 ‘병원경영지원회사’로 보인다. 영리법인병원이 어려운 상황에서 민간의료기관은 ‘병원경영지원회사’를 통해 의료기관의 자본조달과 영리사업을 확대하는 방법을 모색할 것으로보인다.

    이와 함께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는 병원의 영리사업 범위를 현행 장례업, 주차장업에서 호텔, 온천 등 관광숙박업, 병원경영회사 등의 체인사업, 사회복지사업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민간보험회사가 자신의 고객에게 특정 의료기관을 알선하고 그곳으로 유인하는 행위를 용인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의료기관, 민간보험회사, 병원경영지원회사 간에 카르텔이 형성될 것이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현재의 국민건강보험-의료기관 체제를 약화시키고 민간의료보험과 민간의료기관의 지배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국민의 의료비를 상승시키고 의료이용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위험한 내용들이다. 2007년 대통령의 신년연설에서도 밝힌 ‘의료를 산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현 정부의 의료정책이 변함없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에 이처럼 심각한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법 개정 실무추진반’에 참여한 누구도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정부의 의료산업화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은 배제한 채 의료공급자와 몇몇 소비자단체를 들러리 세워 의료법 개정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유시민 장관은 지금이라도 졸속적인 의료법 개정을 중단하고 당사자가 참여하는 의료법 개정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유시민 장관은 2007년 새해부터 의료급여법 시행령 규칙 개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파스마저 빼앗은 복지부 장관’으로도 모자라 ‘한국의 그나마 있는 10%의 공공의료마저 자본에 팔아버린 복지부 장관’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전에 유시민 장관은 스스로 당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국민에 의해 물러나게 되는 복지부장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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