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민주당, 부시 극복 대안인가?
    By tathata
        2007년 01월 30일 03: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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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그 주요 근거 중 하나로 현 5년 단임 대통령제의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을 들었다.

    제도적으로 다음을 기약하기 힘든 대통령이 임기 말 1~2년 동안 도무지 아무런 정치적 영향력이 없어서 국정을 정상적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행 헌법 체제에서 첫 대통령이었던 노태우에서부터 김영삼, 김대중 모두 임기 말에 심각한 레임덕 현상을 겪었고, 노무현 대통령 역시 그게 언제부터였는지가 모호할 뿐이지 장관 한명 임명하는데도 힘겨워 할 정도로 권위가 실추된 지 오래다.

    하지만 노대통령이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과 유사한 4년 중임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보면 한 번의 임기를 더 할 수 있다는 것이 레임덕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누군가도 지적했듯이 4년 중임제의 경우 재선에 성공한 직후부터 바로 레임덕이 시작된다는 평가도 있으니 말이다. 이 경우 산술적으로 보면 레임덕이 5년 단임제의 후반 1-2년이 아니라 4년간이나 계속 되는 것이다. 너무 단순화한 도식이긴 하지만 작금의 부시 대통령을 보면 그게 막연한 과장만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지난 10일 대국민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21,500명에 이르는 병력을 추가로 이라크에 파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바로 그 이라크 전쟁에 대한 비판여론에 의해 중간선거에서 역학관계가 바뀐 미 의회와 여론의 시각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지지율 30%로 역대 제일 인기 없는 대통령 대열에 합류한 부시는 그런 비판적 분위기를 고려하여 24일 연두 교서에서는 에너지-환경정책, 이민정책, 의료 개혁 등 의회 다수파인 민주당의 관심을 갖는 의제들을 먼저 제시한 후 말미에 이라크 추가 파병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다음날 상원외교위원회는 보란 듯이 부시의 계획에 대한 반대결의안을 통과시켜 전체회의에 제출했다. 하원에서도 상원의 결의가 끝나는 대로 같은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 한 미국인이 머리에 ‘PEACE'(평화) 쓴 채 반전평화를 소망하고 있다
     
     

    의회의 움직임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 토요일인 27일 워싱턴 디시에 모인 수 만 명의 시위대들은 부시의 이라크 병력 증파 계획에 반대와 이라크전의 즉각적인 중단과 병사들의 철수를 촉구했다.

    부시 대통령뿐만 아니라 새롭게 상원과 하원의 다수파가 된 민주당을 압박하기 위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작된 집회와 행진에는 민권운동가인 제시 잭슨 목사나 민주당 정치인들 외에도 영화 ‘데드 맨 워킹’ 주인공으로 유명한 숀 펜과 수전 서랜든, 그리고 열렬한 베트남전 반전운동으로 한 때 ‘하노이 제인’으로 불렸던 제인 폰다 등 많은 유명 인사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9.11을 계기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시작으로 해서 이란과 북한 등 미국의 패권주의적 세계 지배 체제에 저항하는 나라들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려던 일방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신보수주의 국제 전략이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미국, 국제 환경협약 줄줄이 거부

    미국의 일방주의가 군사 분야에서만 드러나는 건 아니다. 지구적 규모의 환경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 역시 미국의 독선적 거부 행위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국제 환경 협약이라 할 수 있는 기후변화협약, 생물다양성 협약, 그리고 독성 폐기물의 국가 간 이전을 금지하는 바젤 협약 모두 미국의 거부로 인해 실효성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기후협약의 경우,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거부하던 것을 클린턴 행정부에서 겨우 협약 비준을 했으나 지금의 부시 행정부가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량을 규정한 교토의정서에 대한 비준을 거부함으로써 감축 계획의 실행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이 참여하지 않는 감축 프로그램이란 게 허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부통령 모두 에너지 산업 출신인데다, 그 기업들의 막대한 정치 후원금에 힘입어 지금의 자리에 오른 탓에 에너지 산업에 누가되는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한사코 거부해 온 것이다.

    알맹이 없는 부시의 에너지 환경정책

    하지만 최근 들어 이라크전이라는 수렁에 빠져 지지율이 급락하고 상하 양원 모두를 지배하게 된 민주당의 압박이 현실화 되면서 부시행정부는 에너지와 환경 관련 계획을 연이어 제출하고 있다.

    23일의 국정연설에서 바이오 연료를 중심으로 한 대체에너지 개발 및 사용의무화와 자동차 연비 기분 강화를 통해 2017년까지 휘발유 소비를 20% 감축하고 핵심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0% 줄인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다음 날인 24일에는 델라웨어주에 위치한 세계적 화학 기업인 듀폰을 방문하여 바이오 에너지인 에탄올 생산에 대한 관심을 표했고, 연방정부 기관의 에너지 및 물 절약과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행정 명령도 발표했다.

    정말 부시 정부의 에너지-환경 정책이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25일자 뉴욕타임즈의 사설을 보면 미국인들은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는 듯하다. 지난 6년 동안 부시가 몇 차례 비슷한 계획을 발표했지만 실제로 드러난 건 더욱 심화되는 에너지 해외의존도, 심각해지는 기상이변, 그리고 커가는 대중들의 냉소주의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사설은 부시 정부가 여전히 지구 온난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자동차 연비 향상과 대체 에너지를 통해서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어느 정도 줄일 수는 있지만 실제로 승용차가 이산화탄소 발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이고 대체 에너지라는 것도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의 결과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옥수수 에탄올의 경우 곡물 가격 영향 등을 고려할 때 대체 에너지 목표를 달성하는데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그간 많은 관심을 쏟았던 석탄 액화 가솔린의 경우 기존 가솔린에 비해 이산화탄소를 두 배나 더 발생시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회나 산업 부문에서는 부시 행정부의 화려한 수사에 기대지 않고 별도의 구상과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상원에는 최근 온실가스 감축 의무화와 관련된 4개의 법안이 제출되었으며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는 기후변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부시 행정부 뿐만 아니라 그간 지루한 토론만을 계속해온 의회 역시 압박하기 시작했다.

    온실 가스 감축을 위한 세계적 추세를 외면할 수만 없는 다국적 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 세계적 알미늄 제조회사인 알코아 등 10대 대기업들이 총량거래제 도입 등 기후변화 관련 국제 정책의 도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민주당, 공화당 넘는 ‘진보세력’ 될까?

    이제 군사 외교, 에너지 환경 정책 등과 관련한 미국의 정책 방향에 대해 부시 행정부만 비판하고 바라보던 시기는 지나간 느낌이다. 의회의 권한이 막강한 미국에서 상하 양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어떤 결정을 해 나갈 것인가가 중요해진 것이다.

    그들이 비록 공화당과 권력을 놓고 다투지만 대내외 정책에 있어서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일방주의를 답습하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세력임을 드러낼지, 아니면 국제적 협력과 평화, 환경 분야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달성해 내는 진보적 역량을 지닌 세력임을 과시할지 두고 볼 일이다.

    한국 사회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전쟁 위협, 생태적 위기, 양극화 문제 등 이 시대 주요 모순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다. 특히 북한 핵, 이라크 파병, 그리고 한미 FTA 등 미국의 국제 전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우리의 국제정치적 현실은 이러한 미국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무심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소위 개혁진보 세력의 지리멸렬로 인해 우리 내부적으로 평화와 생태, 그리고 경제정의라는 가치를 향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갈 가능성이 미국만큼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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