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랜드가 된 최초의
    아티스트 엘비스 프레슬리
    [Come&See] 영화 '엘비스'의 시선
        2022년 07월 27일 10: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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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글 “한국이라는 로컬리티 재현을 못한 거장의 범작 <브로커>의 아쉬움”

    영화 <엘비스>는 재현과 체험의 영화이다. 영화는 마치 지금의 관객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엘비스 프레슬리(오스틴 버틀러)의 무대를 직접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한때 지구상 최고의 스타였지만, 이제는 박제된 이미지가 강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과 삶을 현재의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함과 동시에 그 시대를 몸소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타임머신의 가이드는 전대미문의 엘비스 프레슬리 매니저 톰 파커(톰 행크스)이다. 영화는 톰 파커의 시선과 언술을 통해 ‘위대했던 엘비스 시대’를 회고한다.

    영화는 임종 직전의 톰 파커가 침대에 누워 휘황찬란한 라스베가스의 인터내셔널 호텔을 바라보면서 시작된다. 톰 파커의 나레이션을 통해 화려했던 옛 영광을 음미하던 미장센은 곧 톰 파커의 눈으로 빠져들더니 우리를 1950년대 미국의 팝 신으로 인도한다. 영화 서두는 마치 감독 바즈 루어만의 대표작인 <무랑루즈>(2001)의 도입부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MTV 스타일의 질주하는 카메라와 짧은 교차 편집을 통해 엘비스 프레슬리의 열기를 고스란히 소환한다.

    서두의 열기가 사라지고 나면 영화는 좀 더 진중한 모습으로 엘비스의 시대와 그의 음악적 자취를 쫓는다. 보드빌(일종의 순회공연) 프로모터인 톰 파커는 백인의 외모와 흑인의 목소리를 지닌 트럭 운전수 엘비스의 열광적인 공연을 보고는 직감적으로 성공을 예감한다. 이제 영화는 뮤지션을 다룬 영화들의 전형적인 서사의 길을 걷는다. 만남, 성공, 갈등, 재결합, 이별(죽음) 등으로 구성된 서사의 진행은 멤피스 흑인 커뮤니티에 뿌리를 둔 엘비스의 음악적 궤적을 추적함과 동시에 톰 파커와 엘비스의 관계에 포커스를 맞춘다.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르와 모차르트의 관계처럼 둘은 애증의 관계로 점철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살리에르와 모차르트는 같은 뮤지션이었던 반면, 톰 파커는 엘비스와는 다르게 뮤지션이 아니라 메니저였다는 것이다. 톰은 엘비스의 천재성을 질투하는 대신, 그 재능을 어떻게 마케팅하고 머천다이징 할 것인가에만 골몰해 엘비스의 삶을 통째로 지배한다.

    문제는 톰 파커가 전대미문의 악당 캐릭터라는 것이다. 그의 이름도 거짓이고, 이력인 대령도 거짓이고, 심지어 미국인 국적도 거짓이다. 이러한 사기 캐릭터가 전도유망한 뮤지션을 조련해 팝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아티스트를 만든다는 스토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여기에 이 영화의 함의가 있다. 영화는 단순히 엘비스의 삶을 재현하고 그 열기를 체험하는 것을 뛰어넘어 쇼 비즈니스에 대한 의미심장한 코멘트를 남긴다.

    결국, <엘비스>에서 톰 파커 캐릭터는 단순히 하나의 빌런 캐릭터가 아니라, 쇼 비즈 산업 그 자체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다. 바즈 루어만은 데뷔작 <댄싱 히어로>(1992)에서부터 <로미오와 줄리엣>(1996)을 거쳐 <무랑루즈>(2001)에 이르기까지 춤과 음악에 특별한 재능을 선보인 바 있다. 그는 <엘비스>를 통해 전 필모그래피를 통해 관심을 가졌던 춤과 음악이라는 소재에서 한 발 더 들어가 그 이면의 총체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프로듀싱되고, 마케팅되고, 브랜딩되는 음악과 뮤지션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엘비스>인 것이다.

    159분의 러닝타임은 전편 내내 흐르는 엘비스의 노래들(Baby, Let’s Play House로 시작해 In The Getto로 끝을 맺는다)과 에미넴, 도자 캣을 비롯한 유수의 팝과 예의 그 화려한 카메라워크에 힘입어 지루할 틈이 없이 지나가 버린다. 다만 영화의 양대 축인 톰 파커와 엘비스가 악덕 매니저와 허수아비 스타 캐릭터로 단순하게 묘사되어 관객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필자소개
    영화감독. <고백할 수 없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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