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도 못주고 절망도 못하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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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30일 10: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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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때였다. 정치를 할려면 정치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치학을 전공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 왜 하필 콜롬비아였는지 모르지만, 당시 남미 민주주의 국가의 전범으로 소개되었던 콜롬비아가 대충 그렇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나서였던가.

    중2 때인가, 제대로 읽혀지지도 않는 카바나흐의 <정치문화론>을 사서 읽으며 스스로를 정치학도가 되도록 독려했다. 당시 나 같은 친구들이 몇 있었던지라 함께 돌려가며 채문식의 <육사졸업생>, 리처드 닉슨의 <세계를 움직인 거인들>, 김대중의 <행동하는 양심> 같은 책들을 주섬주섬 챙겨 읽기도 했다.

    정치 그 참을 수 없는 지겨움

    세상이 어디 마음대로 되어 그랬던 것이겠는가마는 어떻게 어떻게 정치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고교 시절 중간에 연극 영화 혹은 철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까지 포함하여 약 25년 간의 정치학도의 길을 밟아오는 과정에서 주기적으로 인문학에 대한, 아니 예인으로서 살고픈 욕정이 스물 스물 꿈틀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난 정치학도로서 살고 있다.

    새삼 이런 자조어린 말투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무엇인가? 지겨움. 참을 수 없는 지겨움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더 나아가 환멸스럽기 때문이다. 정치학이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그 정치에 대해 이런 저런 주장을 해대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라는 자문의 늪에 빠져들고 만 것이다.

    누군가 우스개 소리로 그랬다. 정치학은 정치에 학 띤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인가 정치에 대한 오만과 편견이라는 이름으로 센 척하고 들이댔지만, 문득 알아채고 말았다. 내 삶이 정치에게 수모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정치학도로서의 인생에 대한 반추인가.

    (나의 진술은 비약한다) 까는 소리다. 지겹고 환멸스러운 것은 정치가 아니다. 내 삶을 능욕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문제는 나 자신이다.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서성거리고 있다. 그것이 검은 손이든 하얀 손이든 간에 ‘정치의 심장’을 움켜잡고 있지 못하다.

    뜨겁든 차갑든 물컹한 그 놈이 나의 손아귀 틈새로 핏물을 토해내게 할 만큼 꽉 쥐고 있지 못하다. 아니, 심장은커녕, 발가락 사이사이를 갈라진 혓바닥으로 핥고 있다고나 할까. 왜?

    ‘정치의 심장’은 내 손아귀 밖에서

    (나의 진술은 또 다시 비약한다) 진보정치의 이름으로도 나는 정치의 가슴팍으로 바짝 들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묻자? 왜 다가붙지 못했는가? ‘진보정치의 이름으로도’가 아니라 ‘진보정치의 이름 때문에’는 아니었던가? 진보정치, 도대체 그것은 뭐란 말이냐? 그 빌어먹을 것의 실체가 있기는 한 것이더란 말이냐?

    그 어떤 권위에의 의존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네 몸뚱아리로 부대끼며 살아온, 그런 너의 삶이 단련시킨 너의 혀로 답하라. 오로지 너의 혀로.

    ‘의식의 과잉’에 빠져든 것일까? 답을 결코 추구하지 않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기된다. 미치고 싶어진 것인가? 그래, (비약과 비약의 끝에) 난 미치고 싶다. 눈에 붉고 푸른 빛이 돌고 정수 끝에서 열기가 솟아 오르는 호랑이의 뾰족한 이빨과 단단한 발톱으로 용서할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물어뜯고 할퀴어대고 바스러뜨리고 싶다. 그 피묻은 품새로 내가 지켜내고자 하는 것들, 내가 지켜낸 것들을 꼬옥 끌어안고 싶다.

    그래, 난 파괴하고 싶은 것이다. 정치의 주변을 맴돌며 용서할 수 없는 것들에게 단 한 차례의 치명타도 날리지 못한 내 안의 진보정치라는 이름의 허상을. 맴도느라 그 어떤 것도 절실하게 품지 못하는 그 회쳐먹을 내 안의 진보정치라는 이름의 허상을 (순간 진보정치라는 용어가 왜 이리도 느끼하게 느껴지는가).

    난 파괴하고 싶다, 내 안의 허상 ‘진보정치’를

    망치는 어디 있는가? 망가진 망치라도 찾아야 한다. 허상을 부숴내고, 용서하지 못할 것들을 고스란히 용서하지 못할 것들로 영원히 남겨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는. ‘호민’, 오로지 그 하나의 정신으로 숨쉬는 진보정치. 그래서 단순하고, 그 때문에 용맹스러운 ‘킬러본능’으로 숨쉬는 진보정치. 대안은 모든 것이 철저히 허물어지며 뱉어내는 찟어질듯한 절규 속에서 찾아진다는 것을 입증하는 진보정치. 이를 부숴내야 한다.

    딜레마를 해결하는 것은 계산이 아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내려친 알렉산더의 칼, 결단이다. 결단. 부러지지 않고 죽어있는 날렵한 가지들을 쳐내야 한다. 희망도 못주면서 절망도 못하게 하는 것들은 내려 쳐야 한다.

    (아, 나의 진술은 급강하한다) 다독이자, 온갖 비유로 가득차 비겁한 진술을 이제는 진정시켜라. 아직 넌 진보정치의 이름으로 걸어온 길이 걸어갈 길 보다 더 짧다. 더 나아가 보라. 진정 진보정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할 ‘검은 사자’를 만날 때까지 생략없는 발걸음으로 일단 걸어가 보아라. 감당할 수 없는 나날들은 아직 저 멀리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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