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공항, 21세기 파시즘의 발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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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30일 07: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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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 보안검색의 일등국가라면 단연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공항에서는 승객들 모두가 잠재적인 테러분자들이다. 보안요원들은 승객들의 인적사항을 낱낱이 묻고 이스라엘 내에서의 일정과 활동 등 모든 것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

    사실상 질문이 아니라 경찰의 심문 이상으로 까다롭고 위협적이다. 조금이라도 의심 가는 대목이 있으면 특별조사가 실시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독방으로 인계돼 소지품 모두가 점검 대상이 된다. 나체로 만든 뒤 물품 하나 하나가 정밀하게 조사된다. 조사 뒤에는 휴대용컴퓨터는 압수되고 다음 비행기로 배달되는 것이 상례이며, 어떤 경우에는 배달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지난 해 말, 아르헨티나에서 그리스로 가는 도중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로마공항에 내렸다. 장거리 여행에 지친 수백 명의 승객들이 줄을 서서 보안검색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나도 열 세 시간의 장거리 여행으로 지친 몸을 가누고서 수백 명 중의 한 명으로 줄 가운데 서있었다.

    이미 아르헨티나 공항에서 철저한 보안검색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내린 뒤 곧 바로 보안검색을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물론 공항당국이 승객들의 불편함을 고려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한 시간 이상 보안검색을 받기 위해 줄을 늘어서는 것 자체가 어지간한 고역이 아니었다.

    보안요원들의 검색은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승객들의 몸을 더듬는 것은 물론이고 보안문제와 하등의 상관도 없는 물품에까지도 질문하는 무례를 보였다. 들고 있던 물과 음료수까지 모두 수거해갔다. 검색지대를 빠져나가자마자 상점이 나타났고 버젓이 물과 음료수를 판매하고 있었다.

    갈증에 시달린 모든 승객들은 불평을 털어놓으면서 호주머니를 뒤져 다시 음료수를 사야 했다. 보안검색을 통과한 뒤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승객들의 모습도 보였다. 대단한 시험을 통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항의 보안검색은 승객들을 모두 잠재적인 테러분자로, 승객들이 들고 있는 물과 음료수는 모두 폭탄을 제조할 원료로 만들었다.

    검색이 있기 전, 한 보안요원에게 물을 들어보이면서 “이게 폭탄으로 보이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단지 명령을 따를 뿐”이라고 했다. 사실 공항의 검색요원들 대부분도 승객들이 물로 폭탄을 만들어 비행기를 폭파할 것이란 허무맹랑한 사실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떨어진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미국이나 유럽의 보안검색은 보안자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업적인 목적까지도 내포돼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물과 음료수를 수거하는 보안검색대를 지나면 곧 바로 상점에서 음료수를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음료수 판매에서 남기는 이익이야 큰 덩치는 아닐 것이다. 이보다 공항을 테러와의 전쟁터로 만들어 남기는 이익은 ‘공항세’라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항의 보안검색이 강화되면서 비행기표에는 항공료보다 훨씬 덩치가 큰 공항세를 포함시켜놓았다. 이는 모두 승객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다. 공항세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비행기표를 살 수 없게 만들어놓았다. 가령 아테네에서 파리까지 비행기표 가격이 250유로라면 100유로가 항공료이고 공항세는 150유로나 된다.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보안산업이 가장 급속히 발달하는 현대산업으로 주목 받고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왜 허무맹랑한 일이 가장 문명이 발달하고 교육수준이 높고 민주적 의식이 발달했다는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나?

    2001년 9.11사태는 세계를 전쟁의 늪 속으로 끌어당겼다. 미국과 영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물론 미국과 영국은 두 나라만을 침공하고 끝낸 것은 아니다. 전세계를 ‘테러와의 전쟁’으로 끌어들였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석유를 빼고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먼 곳에 위치한 한국이나 일본까지도 이라크로 끌어들였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과 탈리반의 전쟁이 아니라 나토와 탈리반의 전쟁으로 구도가 바뀌었다. 즉, 미국은 아프간으로 유럽 전체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만 끝난 것도 아니다. 미국과 영국은 전세계의 공항까지 ‘테러와의 전쟁’으로 교묘하게 끌어들였다.

    이전의 공항은 전쟁터가 아니라 여행을 즐기고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다. 그러던 곳이 어느 날, 9.11사태가 터진 뒤, 테러와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곳으로 변해버렸다. 지난 해 여름, 영국에서는 파키스탄 출신의 무슬림교도 몇 명이 체포됐다.

    영국정보부와 경찰은 이들이 액체를 기내로 반입해 폭탄을 즉석에서 제조해 비행기를 폭발하려 기도했다고 발표했다. 곧 이어 런던의 공항에서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들이 취소되고 승객들은 물품 중 액체는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고 휴대용컴퓨터까지 반입이 취소되고 휴대품을 낱낱이 검색 당해야 했다.

    이러한 조치는 영국시민들을 모두 공포에 떨게 만들었고 공항출입을 두려워하게 만들기도 했다. 몇 달 뒤 영국에서 실시된 승객들에 대한 검색모델은 유럽전체의 공항으로 확대됐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신냉전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공포체제를 해체된 냉전질서체제를 대체시키려는 시도이다. 공포를 조장시켜 시민들을 통제하려는 지난 세기의 파시스트적인 통치방법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재의 세계의 권력은 미국이나 유럽의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테러와의 전쟁’을 철저히 이용하고 있다. 지금 전세계의 공항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시민들의 인권이나 자유가 생생한 증거이다.

    파시스트적인 통제체제는 과거처럼 급속하게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줄기차게 시민들의 삶의 영역으로 파고 들고 있다. 공항이 첫 단계의 시험영역이며, 공항에서의 통제모델이 성공적이라는 판단이 들면 시민들의 사생활 영역으로까지 전면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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