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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총기소유와 총기규제
    수정헌법 제2조의 역사, 배경, 전망
    [국방칼럼] 반복되는 총기참사, 그 해법의 어려움
        2022년 07월 13일 12: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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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방칼럼 연재 링크

    지난 7월 4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인근 하이랜드파크시에서 대규모 총격이 발생해 7명이 목숨을 잃고 46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체포된 21세 용의자는 미국 독립기념일 시가행진에 참가한 군중들을 향해 고성능 소총으로 70발 이상의 소총탄을 발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 참극은 일리노이주 역사상 최악의 총격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사건 직후 제이 로버트 프리츠커 일리노이주지사는 이러한 대규모 총기 폭력 사건(mass shooting)이 미국의 전통이 되어버렸다고 개탄했다.

    올해 들어 한국언론의 국제면을 장식한 미국의 총기폭력은 이번 사건을 포함해 모두 세 차례에 이른다. 첫 번째 사건은 5월 14일 백인우월주의자가 뉴욕주 버팔로 이스트사이드의 슈퍼마켓에서 총격을 가해 10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다. 두 번째 사건은 5월 24일 텍사스주 유밸디 소재 롭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격으로 22명이 죽고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특히 2012년 12월에 발생한 코네티컷주 샌디훅초등학교 사건 이후 미국 학교에서 발생한 가장 큰 총기 폭력 사건이자, 텍사스주에서 발생한 최악의 학교 총기 폭력 사건(school shooting)이다.

    유밸디 사건을 계기로 미국 의회는 6월 24일 ‘초당적인 더 안전한 지역사회법(Bipartisan Safer Communities Act)’을 전격 통과시켰다. 1994년 반자동 살상 무기를 10년간 금지하는 ‘연방 살상 무기 금지법(AWB)’을 통과시킨 지 30여 년만에 연방 차원에서 총기 규제를 가장 강화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 법안에는 21세 미만 총기 구매자에 대한 신원조회 강화(10년 한시)와 법원이 위협으로 지정한 무기를 일시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붉은깃발법(red flag law)을 주가 채택하도록 장려하기 위한 연방보조금 지원, 무기밀매와 대리구매 처벌 강화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총기폭력을 근절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크리스 월츠 “AR-15는 미국의 소총이다. 금지되어서는 안된다.” 대 라이언 부스 “AR-15는 미국을 파멸시킨 소총이다.’

    그런데 같은 시점에 미국 대법원이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를 제한하는 뉴욕주 법에 위헌 결정(6대3)을 내림으로써 미 의회의 새로운 총기규제법안은 향후 법원에 의해 무력화될 수도 있게 되었다. 뉴욕주는 지금까지 거주자가 ‘은닉 소지(Concealed Carry, 공공장소에서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보이지 않게 총기를 휴대)’를 신청할 경우 적절한 사유가 없다면 허가해 주지 않았다. 대법원은 공공장소에서 개인이 방어를 위해서 ‘흔히 사용되는(commonly used)’ 총기는 소지할 권리가 있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총기 권리의 확대에 힘을 실었다.

    총기규제를 강화한 의회와 총기권리를 확대한 대법원의 상반된 견해차 이면에는 1791년에 제정된 10개 조항의 권리장전 가운데 하나인 ‘연방헌법 수정조항 제2조’를 둘러싼 치열한 힘겨루기가 있다

    [연방헌법 수정조항 제2조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 주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므로, 무기를 보유하고 휴대할 국민의 권리는 침해당하지 않는다.]

    예컨대 아담 스미스는 1776년 국부론에서 국왕의 첫 번째 임무이자 의무는 군사력을 가지고 다른 독립사회의 폭력과 침략과 불의로부터 그 사회를 방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군사력의 핵심을 직업적 전문성을 갖춘 군인들로 구성된 ‘잘 규율된 상비군’으로 생각했다. 반면에 윌리엄 블랙스톤은 1765년 영국법 주해에서 “자유의 나라에서 군인이라는 별도의 직업을 창설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직업군인은 절대군주제에서 국왕의 안전과 공포통치를 위해 필요할 뿐이라며 상비군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윌리엄 블랙스톤의 견해는 미국에도 강한 영향을 미쳤다.

    1763년 ‘7년전쟁(프랑스∙인디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경쟁자가 없어진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영국이 7년전쟁의 전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1765년 식민지에 병영법(Quartering Acts)과 인지법(Stamp Act) 등을 만들면서 영국군인에게 숙소와 급식을 제공하는 것이 법제화하고, 각종 인쇄물에 직접세인 인지세를 징수하게 되었다.

    이에 영국의 통치를 왕의 폭정이라고 생각하는 식민지인들이 세력화하기 시작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자유국가와 절대왕권의 통치수단인 상비군이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왕권의 폭압에 맞서 독립을 쟁취한 ‘건국자들’은 외부의 위협에 대한 방어수단인 상비군이 대규모로 조직될 경우 권한을 남용하고 자유의 골칫거리가 되는 상황이 재현될 것을 우려했다.

    1791년 12월 비준된 ‘연방헌법 수정조항 제2조’의 ‘잘 규율된 민병대’(well regulated Militia)’는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조항의 목적은 주정부가 연방정부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었다. 연방헌법의 수정조항들이 ‘권리장전’으로 불린다는 점에서 ‘수정조항 제2조’는 1689년 명예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영국의 권리장전이 평화 시에 의회 동의 없이 상비군의 모집 및 보유를 위법으로 정한 사실에 영향을 받았다. ‘수정조항 제2조’는 민병대를 유지할 수 있는 주 권리를 보호함으로써 연방의회가 연방에 저항할 수 있는 주의 수단을 박탈하기 위해 헌법 제1조 8절 ‘연방의회에 부여된 권한’에 근거하여 주 민병대를 해체하는 압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다.(듀크대 법학 조셉 블로허)

    이 같은 관점을 주의 권리 이른바 ‘집단 권리’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서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권리는 민병대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자기방어를 위하여 총을 사용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는 미국 헌법에 나와 있지 않다.(예일대 법학 레바 시겔).

    민병대를 둘러싼 정치적 타협에는 노예제도가 있었다. 독립전쟁의 경험으로 전투력이 떨어지는 민병대가 국가방위를 전담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던 연방주의자들은 1787년 제헌회의에서 연방의 권한을 강화한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 연합규약을 대체하려 했다. 반면에 영토가 가장 넓고 전체 인구의 20%가 살던 버지니아주는 민병대에 대한 연방정부의 권한을 강화시킨 새 헌법에 반대했다. 버지니아주에는 노예제도가 있었고, 노예의 반란을 막기 위해서는 민병대가 반드시 필요했다. 독립전쟁에도 민병대를 파병하지 않을 만큼 노예 주들은 노예제도의 유지가 중요했다. 이들은 민병대가 무력화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임스 매디슨- 미국 4대 대통령이자 헌법의 아버지이다. 연방주의자를 대표하는 그는 헌법 안에서도 연방과 주가 공존할 수 있다고 버지니아주 지도자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그들은 냉담했다. (백악관)

    격렬한 갈등 끝에 버지니아주 의회는 1788년 6월 헌법을 비준하는 대신 ‘무기소장권’ 등의 권리선언과 연방의회가 주에 민병대를 무장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을 포함한 다양한 헌법 수정조항의 대거 채택을 요구했다(로저 윌리엄스대 법학 칼 보거스). 하워드 진에 따르면 미국혁명 당시 거의 모든 백인 남자는 총을 가지고 있었고, 사격을 할 줄 알았다. 민병대를 무장시킨다는 것은 주가 민병대 소집령을 내렸을 때 백인 남자들이 자신의 무기를 들고 부름에 응하라는 의미였다.

    1792년 제정된 민병대법은 18~45세의 자유롭고 신체 건강한 모든 백인 남성 시민의 민병대 등록을 의무화했다. 이 당시 백인은 인구의 대부분을 구성했던 앵글로색슨과 튜튼계 백인을 의미했다.

    1865년에는 연방헌법 수정조항 제13조의 채택이 공표됨으로써 미국은 노예제도를 폐지하였으나, 남부 주들은 총기규제 강화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통제를 대신했다. 뉴욕주는 1911년 유대인,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중국인, 그리스인 등 여러 이민자들에 대한 총기규제를 강화하는 설리번법을 시행했는데, 이탈리아인 이민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어야 했다 이처럼 미국의 『총기규제』 역사는 대단히 복잡하고 미묘한 사실들이 불편하게 얽혀 있다.

    수정조항 제2조가 민병대를 유지하는 주들의 집단적 권리만을 보호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2백년 넘게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미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첫 번째는 ‘총을 든 좋은 남자’라는 환상의 출현이다. 19세기 후반 싸구려잡화점(Dime Store)에서 판매하는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서부 카우보이, 무법자, 도적, 열차 강도를 주제로 한 허구적인 이야기는 권선징악이 담긴 영웅 모험담이었다. 서부의 많은 주들이 총기규제를 철저히 하여 ‘오케이목장의 결투’와 같은 총격전은 실제 드물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부가 매우 폭력적이었다는 환상은 미국의 총기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역사가 파멜라 하그).

    1920년대에는 이른바 ‘하드 보일드’ 범죄 소설이 등장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대개 챙이 넓은 중절모를 쓰고 트렌치코트를 입은 옷차림에 담배를 입에 문 외톨이 탐정으로 정형화됐다. 주인공은 악당에게만 총을 쐈으며, 좀처럼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마피아와 조직범죄, 부패가 판치던 금주법 시대(1919~1933)에 비열한 거리에서 용감하게 악의 무리에 총으로 맞서는 주인공은 서부활극의 주인공과 더불어 세월이 흘러서도 잡지, 영화, 티비, 게임 등 다양한 문화채널에 단골로 등장했다. 실제 카우보이의 25%가 흑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티비는 카우보이는 백인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줬다. 백인 영웅의 문화적 등장은 민병대라는 집단의 힘으로 공동체의 안전을 도모하던 시대가 끝나고 총을 든 개인들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두 번째는 총기의 발달이다. ‘수정조항 제2조’를 만든 근대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총기류가 기술적인 혁신을 지속했다. 민병대법 제정 당시 법이 지정한 민병대의 제식화기는 부싯돌을 격발장치로 사용하는 ‘머스킷’이었다. 이 총은 19세기 중엽에 금속 격발장치인 퍼커션 캡으로 진화했고, 19세기 후반에는 화기 후미에 탄피형 탄약을 장전하는 후장식 소총(라이플)이 새로이 나타났다. 제1차 세계대전에는 기관단총(Submachine Gun)이 출현하여 금주법 시대 마피아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조직범죄의 출현과 그 후유증으로 1934년 연방 최초로 총기법이 제정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구경 탄환을 사용하는 돌격소총인 ‘슈트름게버어44’가 탄생했고 미국에서도 AR-15 반자동소총(군제식명 M-16)이 등장했다. 부시 행정부가 ‘연방 살상 무기 금지법’의 시한을 연장하지 않아 AR-15가 급속히 퍼져나갔고 대규모 총기 폭력사건이 증가하게 되었다.

    브라운 베스라고 불렸던 머스킷이다. 1722년 개발된 영국군의 제식화기였다. 1815년 워털루 전투를 포함하여 100년 이상 사용되었다. 미국독립전쟁의 민병대도 사용하였다. (히스토리넷닷컴)

    세 번째는 민권운동의 신장이다. 1951년 대표 당사자인 올리버 브라운이 캔자스주 토피카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인종분리 교육 철폐에 대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1954년 만장일치로 ‘분리하지만 평등하다’는 기존 판례를 뒤엎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중심으로 민권운동과 인종차별 철폐운동이 봇물처럼 터져나왔으며 레바 시겔은 이 사건을 개인의 무기소장권에 대한 지지운동의 시발점으로 평가했다..

    1958년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아메리카원주민인 럼비족과 KKK단이 무장 충돌한 ‘헤이스 폰드 전투’가 일어났다. 민권운동은 마틴 루터 킹을 중심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표방하면서도,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으로부터 자기방어를 위한 총기 사용을 부정하지 않았다.(민권운동가 찰스 콥 주니어).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총을 들고 활동가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목숨을 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이런 흐름을 이끌었다.

    1966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흑표범, 이른바 블랙팬더(Black Panther Party for Self-Defense)가 탄생했다. 말콤 엑스의 영향을 받은 블랙팬더당은 남북전쟁 이후 남부주에서 제정된 총기규제법안을 백인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부당성을 공격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연방헌법 수정조항 제2조’가 개인의 무기소장권을 부여하므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자기방어를 위해 무장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캘리포니아주는 공공연하게 총기 소지를 노출시키는 이들의 활동을 막기 위해 1967년 총기의 은닉 소지를 금지하는 멀포드법을 제정함으로써 총기규제를 강화했다.

    사회가 진화했다. 민병대의 역할은 축소됐고, 총기가 고도로 발달해 살상력에 대한 충격을 사회가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총기규제는 필요했지만 총에 대한 백인의 지배력이 확고한 가운데 여전히 미국 사회에는 국가가 폭력으로부터 나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소수인종들이 존재했다. 한편에서는 블랙팬더의 주장을 빌미로 백인 총기소유자들의 총기권리 확대 욕구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미국 사회는 이제 총기를 규제에서 자율로, 그리고 집단 권리에서 개인 권리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들은 2008년 대법원 판결을 기점으로 새로운 통념을 만들어 냈다. ‘수정조항 제2조’를 개인의 무기소장권에 대한 인정으로 재해석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다.

    1967년 캘리포니아 주의회 의사당에서 일명 ‘경찰 순찰(policing the police)’을 벌이는 블랙팬더들이다. 산탄총과 선글라스로 상징되는 블랙팬더는 이른바 ‘경찰점령군’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잔혹성을 폭로하려고 했다. (엔피알)

    첫 번째는 1960년대에 ‘법과 질서’를 옹호하는 우파의 움직임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 ‘법과 질서 운동’은 보수적 가치와 관련이 깊었다. 1963년 존 F 케네디를 필두로 말콤 엑스(1965), 마틴 루터 킹(1968), 로버트 F 케네디(1968)가 차례로 암살당했다. 1967년에는 디트로이트와 뉴저지주 뉴어크 등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159차례나 폭동을 일으켰다. 196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도시화와 탈산업화 영향으로 범죄율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치안 불안으로 총기 판매가 급증했다. ‘법과 질서’의 회복에 개인의 총기 권리를 결부시키는 관점이 싹텄고, ‘합법적인 총기소유자(law abiding gun owner)’와 범죄자를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개인이 총이 있어야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논리로 발전됐다.

    두 번째는 전국총기협회(NRA)의 방향 전환이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 신병들의 저조한 사격실력에 불만이 많았던 예비역 장교들이 1871년에 창립한 엔알에이는 총기안전교육, 사격술 훈련, 사냥 등 오락용 사격 활동에 중점을 두었고, 정부의 총기규제에는 협조하는 관변단체였다. 1968년 새로운 총기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단체 내부에 총기규제 자체를 반대하는 흐름이 세력화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1977년 집행부를 장악하게 되면서 엔알에이는 총기권리를 옹호하는 정치단체로 탈바꿈하고, ‘연방헌법 수정조항 제2조’의 재해석을 주도했다. 엔알에이는 1980년 대통령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을 지지하게 된 것을 계기로 하여 공화당의 중요한 지지기반이 되었고, 총기권리 확보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어내기 위해 막대한 정치자금과 연방로비자금을 지출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총기 소유가 보수의 정치적 정체성을 상징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정치에서 총기소유는 유권자의 후보자 선택 모델에서 중요한 변수이다. 캔자스대학교의 마크 조슬린은 총기소유가 정치적 행동과 태도에 미치는 영향력의 차이를 ‘총기 격차(Gun Gap)’라고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총기소유자(63%)가 비소유자(57%)보다 투표율이 6% 더 높았으며, 총을 4개 이상 보유한 사람의 투표율은 68%에 이르렀다. 버나드 칼리지의 매튜 라콤은 이 현상이 총기소유자의 정체성을 ‘애국자’이자 ‘자유수호자’에 초점을 맞춰 온 엔알에이의 전략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한다. 마크 조슬린은 총기 소유가 공화당으로의 투표 확률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고 말한다. 실제 총기소유자는 공화당의 헌신적인 지지 기반이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총기 소유자에게 61%의 지지를 획득한 반면, 비소유자의 지지는 26%에 불과했다. 그는 총기소유자가 반복 구매를 할수록 공화당 지지성향이 강화된다고 주장했다.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후보에게 투표한 총기소유자와 총기비소유자 간의 총기격차 추이가 계속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72년 대통령선거에서 리처드 닉슨은 총기소유자의 66%, 비소유자의 55% 지지를 받아 ‘총기 격차’는 11%에 불과했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미트 롬니는 총기소유자의 56%, 비소유자의 26% 지지를 받아. ‘총기 격차’는 30%에 이르렀다. (복스)

    네 번째는 총기산업(firearm)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미국에서 총기산업은 고성장 업종이고, 경제 전반에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과시한다. 총기산업무역협회(NSSF)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총기∙탄약산업의 총 경제 효과(total economic impact)는 2020년 635억달러에서 2021년 705억2천만달러로 증가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총기판매점, 총기 제조업체, 그리고 사격장을 코로나19 방역 기간 동안 병원, 식료품점, 약국과 같이 필수 사업장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미국 총기시장은 수익성이 좋은 공격용 무기 중심으로 군사화되어 왔고,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 대규모 전쟁을 통해 실전 경험을 쌓은 예비역 민간인들은 총기회사의 중요한 고객 기반이 되었다. 사실상의 군용무기인 반자동 공격 소총을 “스포츠용 소총”으로 “재브랜드화”하려는 총기회사들의 로비는 총기규제 완화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섯 번째는 법조계∙법학계의 보수화이다. 1960년 연방헌법 수정조항 제2조가 개인의 총기권리를 인정한다는 논문이 처음 발표된 이래, 1990년대에는 이 견해를 지지하는 논문의 양이 민병대를 유지하는 주의 집단적 권리만을 보호한다는 논문의 수를 압도하게 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과거 미국에서만 유독 총기를 주제로 한 학술 연구가 급증했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흐름의 변화를 ‘무기소장권’의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전국총기협회(NRA)의 치밀한 계획과 풍부한 연구비 지원의 결과물로 이해한다. 자유지상주의 성향 학자들의 통념을 바꾸려는 지적인 욕망과 정치권의 지원도 복합적인 역할을 했다.

    미 대법원은 1970년대부터 보수가 통제해 왔으나 공화당이 지명한 중도 성향의 대법관들인 존 폴 스티븐스(포드, 사망)와 앤서니 케네디(레이건, 퇴임)의 조력으로 진보적인 판결들이 명맥을 이어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세 차례 대법관 지명을 한 결과, 그동안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던 중도 성향의 대법관들이 사라짐으로 인해 대법원에서 진보적인 판결들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현재 대법원의 정치성향은 공화당 6명 대 민주당 3명이다. 개인의 총기권리 확대에 긍정적인 연방대법원의 판례가 쌓임에 따라 하급법원에서도 이를 인용하는 사례가 늘어남으로써 법원이 총기규제를 강화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미국은 총의 나라이다. 스위스의 소형 무기 조사(small arms survey) 연구에 따르면 미국(민간)에는 2018년 기준으로 3억9천3백여 만 개의 총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인구 대비 120.5%의 총기 보유율은 2위인 예멘(52.8%)의 두 배 반에 가까운 엄청난 수치이다. 미국에서는 2021년에 54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애 처음으로 총기를 구입했다.

    2020년 한 해에 미국에서는 45,222명이 총기로 사망했다. 살인사건의 79%는 총기를 사용한 것이며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대규모 총기 폭력 사건(mass shooting)이 2000~2020년 사이에 345건이나 발생했다. 이처럼 미국에서 총기 사고가 많은 것은 총기 보유율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미국의 총기규제 여론은 현재 사회적 파장이 크고, 여론의 주목을 받는 대규모 총기 폭력 사건에만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총기사망자 중에서 대규모 총기 폭력 사건으로 인한 총기사망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총기보유율이 높은 국가들의 전반적인 실태는 자살로 인한 총기사망자가 총기범죄로 인한 총기사망자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미국의 특징은 총기범죄로 인한 총기사망자의 비율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데 있다. 노르웨이나 핀란드와 같이 총기범죄로부터 안전한 국가들도 총기로 인한 자살만은 줄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총기보유율이 높아 총기를 이용한 자살의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총기사망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총의 숫자를 대폭 줄이는 수밖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궁극적으로 미국인들은 18세기 사고에 입각해 채택된 ‘연방헌법 수정조항 제2조’를 폐지해야 할 것이다. 총기 권리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미국 사회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존 폴 스티븐스 전 대법관의 생전 주장대로 이 조항은 총기 관련 업체들을 법적 규제로부터 보호하는 장치로 전락해 버렸다. 전국총기협회(NRA)가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이 조항을 폐지함으로써 총기규제 강화에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엔알에이의 영향력을 차단해야 할 것이다.

    2014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총기규제 강화 여론은 하락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 지지층과 무당층의 지지여론이 대폭 하락했다. 공화당 지지층에게 총기권리는 양보할 수 없는 핵심적인 가치이다.(갤럽)

    총기에 대한 규제는 강화되어야만 하나, 이것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 이유는 이 사안을 두고 미국이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미국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의 91%가 엄격한 총기규제를 지지한 반면,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는 불과 24%만이 이에 동의했다. 특히 이번에 통과한 ‘초당적인 더 안전한 지역사회법’을 두고 총기 소유를 없애기 위한 운동의 1단계라고 비난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동적인 발언들은 총기와 무기소장권이 현재 공화당을 지지한다는 강력한 정치적 정체성의 표현임을 보여주고 있다. 공화당이 수십년간 보수화되어 오면서, 전국총기협회(NRA)로 대표되는 총기소유자들의 개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은 공화당 연합의 핵심적인 기반이 되었다. 이 동맹에 균열이 생기지 않는 한 미국의 총기문제는 해결이 난망할 것이다. 공화당은 총이 많이 팔릴수록 자당에게 유리한 것이라는 당파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필자소개
    국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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