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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당의 어제, 오늘을 돌아보며
    진중하고 차분히 혁신을 준비·추진하자
    [기고] 비례대표 의원 논란과 심상정 그리고 정의당
        2022년 07월 11일 10: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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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과 지방선거 이후 정의당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뜨겁다고도, 냉소적이라도 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이다. 지금의 현재를 그대로 지속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지만 어디로, 어떻게에 대해서는 아직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다. 사회운동조직 ‘전환’의 공동대표이자 정의당 대표 선거에서 심상정 의원과 경선을 치르기도 했던 양경규 당원(전 공공연맹 위원장)이 기고글을 보내왔다. 개인 기고의 성격임을 명확히 했다. 토론과 논쟁이 더 진척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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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다른 사람들과 엄청나게 다른 새로운 담론이나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닌 주제에, 대안이 없어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집행이 더 문제인 상황에서 말을 보태는 것이 큰 의미가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환>이라는 사회운동조직의 한 귀퉁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조직의 공식입장을 넘어 개인의 의견을 내는 것도 운동에 대한 예의는 아니라 생각했다. 그저 당을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차분하게 모아지고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든 것은 이후 당의 진로를 놓고 논의되는 양상이 조금은 궤를 벗어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비례의원에 대한 사퇴 문제가 현안이 되고, 이 문제와 연동하여 이름 석 자가 오르내리니 어떤 입장이라도 한마디는 해야겠다 싶었다. 전환의 공식입장은 아니다.

    비례대표 의원들을 위한 변명

    비례의원 사퇴에 대해 반대한다. 사퇴에 대한 대중적 요구가 있음은 알고 있고 또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의 잇따른 부진의 이유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중앙당의 역할에 대한 평가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역정치에서의 실패를 이야기하지만 정의당의 지역활동은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정당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조건의 차이를 무시하고 함부로 재단할 일이 아니다. 중앙당의 역할과 맞물릴 때 지역정치도 확장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진보정당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정의당의 후퇴가 중앙당의 실패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중앙당 역할의 상당 부분은 당 대표단을 비롯한 지도부의 노선과 실천에 달려있고 또 의원단의 활동도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최근 정의당의 지지율 하락에 의원단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점에 대해 의원단의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임이 온전히 비례의원들의 몫이냐 하는 것, 또 그 책임이 의원직을 사퇴해야 할 정도냐는 점에서는 동의가 되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의원들이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한다. 청년 혹은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 과감하고 분명하게 접근했던 모습들, 권위에 찌들고 찌든 국회라는 거괴의 한복판에서 퍼포먼스를 했던 용기, 보수정당이라면 침소봉대 되었을 일들이 묻히고 있음에도 소외된 자들, 노동자들을 위해 노력해 온 의원들의 노력에 대해 나는 충분히 평가한다.

    청년의 패기가 철없음과 경박함으로 폄훼되고,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가 대중성의 몰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은 오늘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 우리를 향한 비판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당원들이 기대했던 청년정치, 페미니즘을 위한 진보정당의 역할을 2명의 청년 의원은 나름 최선을 다해서 수행했다고 본다. 의석이 20석이 넘고 50석이 되는 정당이라면 이런 의정활동은 당의 외연을 더 넓히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의석수가 많지 않은 조건에서 이런 일들이 도드라져 보이고 이것이 이들의 족쇄가 되는 것은 어쩌면 이들 청년의원에게 억울한 일일 것이다. 당원들이 이들을 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바로 이런 영역에서 진보정당의 새로운 역할을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나?! 이들에게 한국의 정치.경제와 한국사회 전반을 모두 책임지는 역할을 요구한다면 이는 과도한 요구이다. 이들 청년은 이제 성장하는 정치인이고 이 경험을 통해 진보정치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들이 자기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정적인 언론에 의해 왜곡된 부분을 그대로 받아들인 당 내부의 비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이들은 이들의 활동이 도드라지고 이로 인해 당의 이미지가 편향되어 보이게 되었음을 지적하며 다른 의원들의 활동 부진을 탓하기도 한다. 이 또한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올바른 분석은 아니다. 나머지 의원들의 활동 또한 그 어느 보수정당 의원들보다 활발하다. 작은 것 하나도 침소봉대되는 보수정당의 의원들의 활동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비록 언론에 한 줄도 나지 않지만 그들의 의정활동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회찬과 심상정과 비교하지만 시대가 변한 것을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들이 의정단상에 처음 섰던 2004년, 당시의 언론, 그때의 기자들, 사회적 분위기, 그렇게 진보정당에게 쏟아졌던 플래쉬, 그 속에서 성장한 그들의 조건은 들여다보지 않고 이를 단순히 역량의 차이로 환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언론이 진보정당 의원의 의정활동을 보도하는가? 이미 민주당의 기관지로 변질한 유사 진보 한겨레와 경향이 정의당 의원들의 활동을 실어주던가? 정의당 의원의 의안 발의에 관심을 가지던가? 치열한 지방선거 과정 중 가장 큰 선거라는 서울시장 선거에 대해 어떤 언론이 정의당의 권수정 후보에 대한 기사를 한 줄이라도 실어주던가? 예전에는 없던 일이다.

    선거 과정에서 딱 한 번 정의당의 기사를 실어준 한겨레의 기사 제목은 “존재감 없는 정의당”이었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선거기간 내내 정의당을 무시한 한겨레가 존재감이 없다고 기사를 실고 있는 것이 오늘 소위 그나마 진보라는 한겨레이다. 민주당의 승리가 진보의 승리라고 믿는 한겨레와 경향 같은 언론이 진보매체라고 우기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 진보정치의 척박한 현실이다. 단 한 차례도 보도를 하지 않던 한겨레가 선거 이후 한겨레 21을 빌어 처절하게 패배를 맛 본 진보정치, 정의당에 대한 특집을 세 차례나 연이어 실고 있는 것을 보면 실소를 넘어 분노마저 생긴다. 언론 탓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것은 상수이니 아쉬울 것도 없다. 이런 현실에서 보다 더 철저하게 고민하면서 내일의 진보정치의 전망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왜 그 본질을 보지 못하고 그 책임의 근원을 비례의원에게 물어야 한다고 하는지 그 정서를 이해한다해도 이는 지나치다.

    사진=정의당

    지난 시기 당 지도부의 책임이 더 커

    우리는 당의 민주적 결정에 의한 제도를 설계하고 거기 입각하여 청년의원을 선출했다. 우리는 진성당원제와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당원 직선으로 비례의원을 선출했다. 비례의원의 문제를 지적하려면 비례선출제도 문제를 지적해야 할 것이다. 위성정당이 뻔히 예상되는 시점에서, 그래서 기껏해야 비례 5-6석이 예상되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선거제도를 그렇게 설계한 사람들의 책임이 거론되어야 한다. 지금의 문제를 지적하려면 보다 근본적인 책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지난 5-6년을 경과하며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서 성장하지 못하고 후퇴했다면 그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들, 더 이상 이야기하기도 싫은 일련의 정치적 결정들에서 의사결정을 책임졌던 심상정, 이정미, 김종철, 여영국으로 이어졌던 지도부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비록 당시에 전환이라는 조직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전환 조직과 연결되어 있던 김종철을 당 대표로 세웠던 전환 입장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오늘의 정의당의 추락에 대해 평론하듯이 이야기할 입장은 아니라는 것 충분히 통감한다. 비록 그 시간이 4개월 남짓의 기간이었지만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태가 당에 끼친 해악이 컸다는 점에서 전환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스스로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또 그래서 늘 이런 이야기가 조심스럽다.

    이 책임을 전제하고 말한다. 오늘의 당의 추락이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누적된 실패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오랜 기간 당의 지도부를 형성해 온 사람들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심상정이라는 진보정치의 대표 정치인이 갖는 책임은 너무나 크다. 제도권 정당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는 대중정치인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당 지지의 일정 부분은 대표정치인의 활동에 영향을 받게 되고 이를 통해 진보정당의 외연이 넓어지고 성장할 수도 있다. 따라서 당은 대표 정치인의 활동공간을 넓혀 주고 권한을 인정하면서 그를 중심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전략을 갖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심상정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그래서 거꾸로 이야기하면 오늘의 실패의 가장 큰 책임은 심상정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당이 그에게 최대한의 권한을 부여했음에도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대의 책임은 심상정에게 있다

    심상정은 자신의 성장이 당의 성장과 연결된다는 측면에서 대중정당인 정의당을 사유화했다. 입버릇처럼 무슨 일만 생기면 심상정 책임이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라고 했지만 그는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실제 지난 5-6년의 결정에 그의 생각이 아닌 방향으로 이루어진 결정이 있는가 싶다. 어떤 사안이 문제가 되면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시도당 위원장이 결정했고 또 당원이 결정했다고 뒤로 숨지만 실제 그가 가진 당의 직책, 혹은 직책이 없었을 때라도 그의 당내 위상으로 인해 모든 결정에서 그는 그의 입장을 관철했다. 그런 결정들을 당의 성장을 위한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나도 동의한다. 당이 잘되라고 한 일이지 망하라고 한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5-6년 그가 결정한 모든 방침, 전략은 하나같이 실패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심상정에 대한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당원들은 당의 자산이 심상정 뿐인데 그에게 흠집이 나는 것은 소수정당 정의당의 흠이라고 생각해서 말을 아껴야 했다. 당 대표에 출마해서 그와 경선을 하던 때조차 당원들은 대표 후보였던 나에게 심 후보를 그렇게 비판하면 당이 어떻게 되냐고 다그치는 판이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늘 당에 대한 비난으로 환원했다. 민주당 2중대 논쟁은 그렇게 당을 끌어온 자신에 대한 비판이었지만 그는 이를 당의 자긍심에 상처를 주는 발언이라며 자신에 대한 비판을 당에 대한 공격이라며 슬쩍 비켜갔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곧 정의당이었다.

    문제는 그가 늘 당의 성장을 자신의 정치적 성장과 동일한 반열에 놓고 사고했다는 점이다. 자신이 성장해야 당이 성장하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그는 원내 쟁점에 대한 결정이나 혹은 당 운영과 관련해서 늘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우선 고려했다. 실패를 거듭한 일련의 당의 정치적 결정에 대해서는 너무나 회자된 이야기인지라 다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는 정의당이라는 대중정당의 운영에서도 진보정당의 민주주의 원칙이나 당의 토대를 강화하고 발전하는 장기적 전략보다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 당 운영과 관련한 결정을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비례의원 선출은 진보정당에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 우선이었고 그마저도 임기 후에는 끝까지 당의 자산으로 남게 만들지도 못했다.

    현재 계속 당을 논쟁으로 밀어 넣고 있는 비례의원 문제는 비례의원 선출제도에서 비롯되었다. 당내 비례후보 선출제도를 논의하던 시점은 이미 미래통합당(국민의 힘)이 위성정당 창당이 확정된 시점이었고 모두들 민주당 또한 위성정당 창당은 시간문제라고 보던 때였다. 이 시점에서 열린 전국위에서 심상정은 청년비례 1,2번을 들고 나와 이내 자신의 의사대로 통과시켰다. 최소한 15석 아니면 20석의 교섭단체도 가능하니 청년 1,2번이 쟁점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대표단을 거치지도 않고 현장에서 불쑥 제안한 그의 독단도 문제였지만 결국 5-6석에 그칠 수밖에 없는 선거지형이 거의 확정되어 가던 시점에서 그렇게 판단한 것은 당 대표로서 매우 심각한 정치적 판단의 오류였다.

    후에 그는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했지만 이는 자신의 무능력을 확인시키는 말에 다름아니다. 아마도 그는 한참 떠오르는 한국사회의 새로운 의제, 청년과 페미니즘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의 조건, 자신의 자리 뒤편의 병풍으로 갖고 싶은 마음이 더 급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또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비례후보에 대한 시민평가단 구성 문제이다. 평가단장으로 선임된 사람은 그날로부터 1달이 채 되지 않아 민주당 위성정당 창당의 주역이 되었다. 위성정당을 만들어 한국 정치의 퇴행은 물론 정의당에게 치명타를 날린 사람이 바로 진보정당의 의원 자질을 평가하는 평가단의 단장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치욕스러운 일이다.

    여전히 그는 현재의 당내 책임 논쟁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여전히 그 책임은 자신의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의 잘못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어떤 발언도 내놓은 적이 없다. 오히려 최근의 상황이 자신의 지도력의 공백 때문에 생긴 것처럼 또 다시 한 발 비켜선다. 비례의원 사퇴 논쟁 뒤에 숨어 지금의 당의 혼란을 어물쩍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 사태는 심상정의 책임이 가장 크다. 대표 정치인으로서의 책임 있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 책임이 항간에서 이야기하듯 의원직 내려놓고 정계은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

    나는 심상정이 여전히 진보정치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대표적인 진보정치인으로서, 지난 20년 진보정치를 일구어 온 사람으로서 겸손하게 후배들이 가야 할 길을 여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 역할의 첫 번째는 반성과 성찰이다. 심상정의 반성이 곧 당 혁신의 시작이며 그 반성이 지금과는 다른 진보정치의 길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숨지 않기를 바란다. 비례의원과 당에 가해지는 비판의 검을 내가 맞겠다고 나서야 한다. 이제 개인의 정치적 전망은 내려놓았으면 싶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태도도 가지지 않았으면 싶다. 오직 정의당이 이 위기를 넘어 진보정치의 또 다른 행장을 꾸릴 수 있게 하겠다는 낮은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진보정치의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심상정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의당의 지난 5-6년을 이어 온 지도부의 리더십이 그랬다. 볼 좀 찬다고, 골 좀 넣는다고 해서 손흥민이 안토니오 콘테가 될 수는 없다. 국회의원이니까 지명도가 있으니까 당연히 당 대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그래서 위험하다. 그저 이름 하나로 진보정당의 당 운영을 책임지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위태롭다. 진보정당의 지도부는 그저 이름 하나로 버텨도 그 든든한 인프라가 받쳐주는 보수정당의 지도부와는 다르다. 다양한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의 경험을 통해 진보정치의 노선과 철학을 당원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 대중조직의 책임자로서 의결기구의 소통과 진보정치의 풀뿌리 단위인 지역정치를 강화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정의당의 위기가 중앙당의 실패로부터 왔다고 할 때 바로 이런 당 중앙의 리더십의 부재는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었다. 제대로 된 리더십, 모든 당원들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비례의원 사퇴, 10일의 효과, 10년의 후과

    비례의원 사퇴를 주장하는 당원들은 비례의원 사퇴가 당이 비상한 결단을 했음을 당 내외에 확인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퇴를 통해 당의 책임 문화가 형성되고 당 혁신의 엔진이 되어 새로운 출발의 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내가 비례의원 사퇴에 반대하는 것은 이 주장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단언한다. 비례의원의 사퇴가 10일의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10년의 부정적 후과를 겪을 것이라고 본다. 비례의원의 사퇴가 실제 벌어졌을 때 무슨 효과가 있을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당의 위기가 지난 10년의 누적된 문제의 결과라고 진단하고 있다. 당의 혁신의제로 노선과 철학의 문제, 이를 받치는 구체적인 정책과제의 문제, 당의 지역정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인 문제, 민주당과의 전략에 있어서의 차별성의 문제, 당내 민주주의와 소통의 문제, 당의 공직 당직 선출제도 문제, 당의 대중적 토대의 확장을 위한 사회운동과의 관계 문제, 당의 연대전략 혹은 진보정치의 재구성에 대한 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당 비대위의 혁신과제 또한 이 범주에 있다. 비례의원의 사퇴가 이 문제를 해결할 동인이 될까? 사퇴하면 당의 혁신이 보다 가속화 될 것인가? 일견 무언가 충격적인 해법인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당의 과제와는 직접 연결도 되지 않는 부분이다.

    사퇴는 오히려 이후 진보정당 운영에서 만만치 않은 부정적 후과로 작동할 것이다. 의원들은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과감한 의정활동에 앞서 늘 자기검열에 열중하게 될 것이고 진보정치의 비전에 앞서 당원 대중에 대한 추수를 고민부터 할 것이다. 한 번 길을 낸 의원들에 대한 소환 요구가 회의 때마다 안건으로 저울질 되는 일도 우려스럽다. 이후 진보정당 운영에 있어 의원과 당과의 관계가 소통과 조화의 모습으로 발전되기보다는 불화와 반목의 모양으로 나타날까 우려스럽다.

    아울러 가시적인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비례의원 사퇴가 2명의 청년의원으로 대표되는 청년, 페미니즘과의 관계에 긍정적인 효과로 작동하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이 사퇴함으로써 당에 대해 그동안 부정적이었던 진보적 기반이 정의당으로 수렴되는 효과는 불확실하고 반대로 그나마 갖고 있던 기반마저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 문제가 계속 현안으로 당을 혼란스럽게 할 때 당의 혁신작업도 더디고 당내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점이 더 걱정이다. 사퇴권고 당원총투표 발의는 모든 사안을 빨아들이며 비대위의 혁신작업을 무위로 만들 것이다. 걱정이다.

    나는 비례의원 사퇴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 입장이지만 이런 논의가 당의 향후 성장을 위해 의미 있는 논쟁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당과 의원단과의 관계에 대한 진보정치의 전형이 새롭게 모색되는 계기가 되고 의원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당에서의 역할을 고민하고 자기 책임이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면 의미 있는 논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례의원 사퇴를 주장한 당원들 또한 사퇴 그 자체 보다는 이러한 요구가 갖는 의미를 더 크게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사퇴요구를 접한 의원단의 태도이다.

    의원단의 책임의식 여전히 아쉬워

    쉽지 않았을 텐데 의원들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과 향후 활동에 대한 계획을 말하는 것을 나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 발본적인 성찰로 접근하기보다는 조건을 들어 자기변호를 앞세우거나, 자신들에 대한 책임요구를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으로 환원하거나, 난데없이 정파 문제를 들고 나와 본질을 흐리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고 당혹스럽다.

    지난 6월 12일 의원단이 제출했던 5가지 반성의 지점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기대했건만 의원 1인당 당원 2000 조직과 당비 조정을 이야기함으로써 의원단이 지향하는 당의 혁신이 지금 우리 당의 위기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나를 확인해 주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또 의원단의 권한이 아니라 당의 권한이며 당 지도부의 전략적 대책이 요구되는 차기 총선과 지선에 대해 별다른 구체성도 없이 내놓은 대목에 이르면 정말 무엇이 문제이고 왜 사퇴를 요구하는 당원들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는 것인지를 모르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태도가 다시 불을 지피고 다시 당의 혼란을 끝없이 불러오고 있음을 직시했으면 좋겠다. 의원단 입장에서는 말을 안 하면 안한다고 비난하고 말을 하면 그 내용이 문제라고 비판한다고 하겠지만 겸손한 반성의 침묵과 성찰의 발화를 조율하는 것도 중요한 지점임을 잊지 말았으면 싶다. 어려운 주문인 줄 안다. 계속되는 사퇴 요구에 대해 할 말이 많겠지만 지금은 당의 혁신 작업을 지켜보고 듣고 더욱 더 현장과 지역으로 발로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반기 의정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당원들에게 설명하고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위한 다양한 실천활동을 전개하는 일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당의 혁신을 몇 가지 제언

    당의 혁신을 위해 현재의 조건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나는 당초 제대로 된 혁신을 위해 당직선거를 연기하더라도 보다 무게 있는 그리고 그 책임이 충분히 주어지는 비대위가 구성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은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제한된 범위의 비대위 활동과 예정된 당직선거를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분명히 유감스러운 결정이지만 나는 당의 공식 의결단위의 결정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좀 더 당의 미래를 장기적으로 바라보면서 당의 혁신을 위해 각급 당부와 당원 개개인이 차분하게 각자의 생각을 내놓으며 혁신안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할 때이다. 멀리 있는 물이 가까이에 있는 갈증을 풀어 줄 수 없기에 무언가 획기적이고 충격적인 대안을 갈급해 하는 당원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지금 우리 당은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이야말로 당의 주요한 활동가들이 진중하고 차분한 자세로 각급 당부에서 당의 혁신을 위해 당원과의 소통을 강화하면서 우리의 과제를 하나씩 도출해 내는 활동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 지금 우리의 할 일이다. 혁신을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1. 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자

    정의당은 진보정당이고 진보정당은 과감하고 급진적으로 기성 체제의 뿌리를 바꾸자는 사람들의 정당이다. 만성적인 양극화 문제에 기후위기까지 겹쳐 있으니 진보정당의 필요성은 더 큰 시기다. 특히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기득권 정당이 87년 이후 한국사회의 지배적, 주류적 정당의 위치를 한 번도 위협받지 않으면서 오늘까지 왔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혁신을 경험한 적이 없다.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회가 미증유의 경제위기와 기후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주류 기득권 정당의 철학과 확실히 구분되는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의 철학과 색깔을 분명히 보여주는 이념적 정체성을 과감하게 보여주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분명하고도 과감하게 제시하자. 민주당과의 관계로 우리 당의 정체성을 보지 말자. 오늘의 세계와 우리의 현실에서 진보정당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눈치 보지 말고 분명하게 정립했으면 싶다. 에둘러 가지 말자. 어떤 수사도 우리의 가치를 에두르는 순간 민주당의 종속변수로서의 프레임을 쉽게 극복하기 어렵다. 그렇게 보낸 지난 10년의 패배를 인정한다면 이제 보다 분명한 이념적 지향성을 제시하고 중단기적으로 당의 성장전략을 가져갔으면 좋겠다. 서구 사민주의 정당의 전반적인 후퇴를 뚜렷하게 확인하면서도 불평등과 차별의 자본주의 극복의 대안으로 사민주의라는 어정쩡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시대를 읽지 못하는 일이다. 박갑주 동지가 정의정책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제기한 ‘자본주의 너머’에 공감한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주의라는 말에 주눅들지 말고 민주.생태 사회주의의 이념적 지향과 이에 기반한 의제를 과감하게 던져 나갔으면 좋겠다. 87년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정치.경제의 프레임, 6공화국 체제를 넘는 전혀 다른 나라, 전혀 다른 사회를 지향하는 7공화국 운동을 당의 공식적인 지향으로 정립할 때이다.

    2. 지역 중심으로 당 운영을 전면적이고 파격적으로 전환하자

    정의당의 지역위원회 상황은 참담하기 이를 수가 없다. 고작 몇 십만원 운영경비를 가지고 진취적인 지역의제를 발굴해서 주민을 조직하고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기획을 하는 것은 고목나무에 꽃 피기를 기다리는 일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당비 수입 전체를 시도당으로 분할하여 교부하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당원 증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지금의 중앙당 규모를 좀 더 줄이더라도 국고보조금 일부를 지역위원회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추가로 배분해야 한다.

    지역중심의 당 운영을 하나의 운동으로 전개해 나가자. 역동적인 지역정치를 단순하게 재정의 배분 문제에만 국한해서 사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재정배분의 문제를 넘어 시스템 자체를 지역 중심의 정당체제로 전환하자. 지역에 기반한 독립적인 지역정당을 세우자는 것이다.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를 포함한 다양한 진보적 세력들과 토론하여 지역현안과 의제를 가지고 지역정당을 세우자는 것이다. 정의당의 서울시당, 부산시당이 아니라 서울정의당, 부산정의당의 총합으로 중앙당을 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앙과 지역의 인력배치 문제에 대해 관성적인 사고를 넘어 과감하게 기존 시스템을 해체하여 지역중심으로 전환하자. 이 시스템의 해체를 통해 지역의 책임정치가 강화되고 아래로부터, 지역으로부터 역동성을 발휘하는 당내 민주주의의 새로운 기풍을 만들어 나가는 방안을 만들어보자.

    3. 사회운동과의 결합을 전면적으로 확대하자

    정의당은 원내정당이지만, 원내정당화의 수렁에서는 빠져 나와야 한다. 최근 약탈적 금융기관들에 의해 미래를 저당 잡힌 청년들의 문제를 고민하는 광주의 청년단체가 몸부림치듯 분투하고 있다. 풀빵노동공제회에서 일하는 한영섭 당원이 청년학자금 부채 탕감 운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보았다. 진보정당이라면 분연히 일어나서 뛰어 들어야 하는 일이다.

    진보정치의 지형이 예전보다 훨씬 더 척박하다. 소수정당으로 의회정치의 한계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의 기본전략으로 사회운동, 대중운동과 의회정치의 결합을 상정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획을 수립하자. 사회운동과의 결합을 운동권 정당이냐 대중정당이냐는 이분법으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 보수정당조차 그 사회운동적 기반을 부정하지 않는 조건에서 진보정당이 사회운동과의 결합을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진보정당은 필연적으로 운동정당이며 대중정당이다. 이 두 가지 전략의 고리가 사회운동과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결합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의원들 하나하나가 사회운동의 하나의 축이자 허브가 되어야 한다. 지역조직이 지역운동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기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정적인 연대에서 동적인 공동행동으로 나가야 한다.

    7월 8일 거제에서 열린 영남권 노동자대회 (사진=금속노조)

    4. 진보정치 재구성을 위해 열린 자세로 고민하자

    현재의 진보정치의 위기는 정의당만의 노력으로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통합진보당의 실패, 정의당의 오늘은 전체 진보세력의 어느 한 집단만의 문제가 전혀 아니기 때문에, 진보정치의 재도약을 기획하는 일도 공동의 노력이 전제되어야 그 단초라도 찾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한계가 엄연한 진실로 통용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국가와 자본세력은 더욱 복잡한 금융자본주의와 기술발전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술만능주의에 의지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이론적, 정치적, 운동적 대안을 함께 찾아야 한다.

    제3정치세력이 기득권 정당에 완벽하게 편입된 상황에서 기득권 양당 이외의 사회정치적 실체가 조직되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은 정치적으로 대변되지 않을 것이고, 소외와 배제, 착취와 혐오는 더욱 깊게 뿌리를 내릴 것이 분명하다. 진보정치세력이 정치적 공백상태에 빠진 정치적 제3지대의 중심을 형성하기 위한 진보정치 재구성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진보당과의 통합으로 단순화시키지 말았으면 한다. 잘 안되니 통합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진보정치의 재구성은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진보의 이념과 가치를 재구성하고 그 기반을 새롭게 구축하는 일이다. 그 여정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이런 전망을 가지고 정의당은 열린 자세로 시민사회와 대중운동과 그리고 진보정당들과 새로운 진보정치를 위한 논의, 진보정치 재구성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비대위 산하에 ‘진보재구성위원회’를 구성하여 내부적 토론을 시작하고 다른 사회운동과 진보정치 세력에게 이 문제를 협의하는 ‘진보정치 재구성을 위한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면서 시작하자.

    필자소개
    '전환' 공동대표, 전 공공연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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