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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 번째 대통령(12~18)
    그리고 크림합병과 푸틴
    대통령 대행에서 크림합병까지-⑤
        2022년 07월 08일 12: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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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대행에서 크림합병까지-④

    5. 세 번째 대통령 (2012~2018)

    1) 반푸틴 시위세력의 무력화

    푸틴은 세 번째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반정부 인사들을 단계적이고, 선별적으로 처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푸틴의 취임식 날, 모스크바 볼로트나야 광장에서 벌어진 시위의 주동자, 참가자들이 일차 목표였다. 알렉세이 나발니, 보리스 넴초프, 일리야 야신, 크세냐 소브차크(푸틴의 상관이던 아나톨리 소브차크의 딸) 등 야당 인사가 가택수색을 받았다.

    두마는 3월에 불법시위 참가자에 대한 벌금을 5천 루블에서 30만 루블(거의 1만 달러)로 인상했다. 또 7월에는 외국의 자금지원을 받는 단체에 ‘외국의 대리인’(foreign agent)으로 등록할 것을 요구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10월에는 국가반역죄의 범위를 넓혀서 ‘국가기밀’을 본의 아니게 외국 정부나 국제단체에 제공하는 행위도 반역죄로 처벌받을 수 있게 했다. 이 정보가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정보라 해도 처벌할 수 있었다. 정부 관리에 대한 비방이나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도 더 강화했다.

    또한, 2012년 여름, 나발니에 대한 수사가 재개되어, 횡령죄에 여타 혐의가 덧붙여졌다. 나발니는 법정 싸움을 벌이느라 다른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정부와 두마의 대응방침이 강경해지면서 반푸틴 활동도 점차 수그러들었다.

    [그림] 러시아의 여성 펑크록 집단 푸시 라이엇(Pussy Riot)의 2012년 2월 21일 반푸틴 성당 시위. 대선 직전 이들은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에서 성당 측의 허가 없이 푸틴에 반대하는 내용의 즉석 공연을 벌였다. 이들은 성당에서 노래를 부르며 테오토코스(마리아)에게 푸틴을 내쫓아달라고 청했다. 그러면서 총대주교 키릴이 신보다 푸틴을 더 믿는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이후 성당 측의 고발로 3명이 체포되었고, 검찰은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전 세계적 구명운동이 벌어졌는데 폴 매카트니는 “러시아 당국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당신들을 처벌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https://brunch.co.kr/@zenerkrepresent/213

    2) 2013년 시리아 화학무기 이슈에서 푸틴의 외교적 승리

    2013년 8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에서 신경가스를 장착한 로켓포 공격으로 1400명이 숨졌다. 오바마는 2년 전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사용한다면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었다. 미 국방부는 시리아군을 향한 보복 미사일 공격계획을 수립했다. 푸틴은 화학무기 공격이 있었는지, 있었다고 하더라도 누가 했는지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오바마는 미국의 공습 개시를 몇 시간 앞두고 입장을 바꿔 의회의 승인을 먼저 얻겠다고 했다.

    9월 G20 정상회담에서 다른 나라들의 정상은 아사드의 잔혹한 진압 작전을 옹호하는 푸틴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으나, 시리아에 대한 무력개입은 유엔안보리의 승인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푸틴의 입장에는 지지를 보냈다. 푸틴은 오바마와 개별 회담에서 시리아가 국제감시단의 입회를 받으며 화학무기 보유분을 공개하게 하자는 제안을 내놓았고, 미국 의회의 반대에 직면한 오바마는 이를 받아들였다. 재집권 이후 국내에서 강권 통치로 비난을 받던 푸틴이 갑자기 시리아에서 전쟁을 막은 영웅이 되었다. 러시아 NTV는 시리아에서 미국의 공습을 막은 공로로 푸틴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9월 12일 《뉴욕타임스》에 미국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기고문을 실었다. 아프간, 이라크, 리비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효과적이지 않고 무의미한 정책이었다고 비판하면서, 다른 나라에 대한 무력사용은 유엔안보리의 승인이 있어야만 가능하고,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공격은 침략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푸틴도 2008년 그루지야를 침공할 때나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무기를 지원할 때 유엔안보리의 승인을 받지 않았지만, 푸틴의 주장은 미국 내에서도 박수를 받았다. 10월 《포브스》는 오바마를 제치고 푸틴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했다.

    3) 푸틴의 유라시아주의와 2014년 크림 합병

    2013년 시리아 화학무기 이슈에서 외교적 승리를 거둔 푸틴은 유럽-대서양 국가들이 기독교적 뿌리를 버리고 위험스럽게 표류하고 있다면서 그들이 “민족, 문화, 종교, 심지어 성적인 가치마저 버리고 있다. 사탄을 믿으면서 하느님을 믿는다고 착각한다. 더 고약한 것은 이런 위험한 생각을 다른 나라에 주입하려 한다”고 말했다.

    푸틴은 대통령으로 복귀한 후, 유럽-대서양에 대항하는 유라시아주의를 제일의 정책으로 내세웠다. 그는 소련의 해체 후 표류해 온 연방공화국들을 다시 묶어 유라시아 경제연합이라는 광범위한 경제협력체를 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유럽연합과 나토에 편입된 발트3국은 제외하고, 유라시아와 흑해에서 중앙아시아, 시베리아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스텝 지대를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면서, ‘세계의 섬’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광대한 대륙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서 유라시아가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는 해퍼드 매킨더의 19세기 지정학 이론도 끌어왔다.

    (앞에서 언급했던 러시아혁명기 백군의 이데올로그) 이반 일린의 종교적 신앙과 군주제에 대한 신념, 유라시아 지정학 이론이 뒤섞여 러시아를 타락한 서방과 대립하는 진정한 문명의 중심국으로 내세우는 극히 복고적 정치이념이 푸틴의 핵심 이데올로기로 떠올랐다.

    푸틴이 유라시아연합에 가장 끌어들이고 싶은 나라가 바로 우크라이나였다. 푸틴은 2004년 오렌지 혁명 직전에 우크라이나 대선에 직접 개입했던 것처럼, 2013년에는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을 저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2013년 7월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되는 열차 객차와 로센이 만드는 과자류 수입을 금지했다. (로센의 소유주는 페트로 포로셴코였고, 그는 유럽과의 경제통합을 지지했다. 포로셴코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와중에 치러진 2014년 5월 25일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8월에는 벨라루스, 카자흐스탄과 맺은 관세동맹의 관세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우크라이나와의 모든 교역을 전면 중단했다. 푸틴은 10월, 11월 우크라이나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연거푸 만나 유럽연합 가입을 포기하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이때 푸틴이 어떤 압력을 가한 것이냐를 두고 많은 말들이 나왔다. 개인적인 협박을 한 것이 아니냐, 그에게 큰 이권을 안겨주는 비밀거래가 있던 것이 아니냐 등등.) 야누코비치는 이 회담을 거치며 입장을 바꾸었고, 11월 21일 유럽연합과의 협력협정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2004년 오렌지 혁명과 비슷하게, ‘유로마이단’이라고 불리게 될 대규모 시위가 폭발했다. 12월 푸틴은 러시아 국가복지펀드기금을 우크라이나 국채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150억 달러를 지원하고, 가스프롬은 천연가스 가격을 입방미터당 400달러에서 268달러로 할인해주겠다고 약속했다.

    2014년 2월 7일, 러시아 소치에서 동계올림픽이 시작되었는데, 푸틴은 올림픽 기간 중 러시아 내에서 시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다양한 선제조치를 취했다. 균형 있는 보도를 한다는 평을 들은 리아 노보스티 통신을 폐쇄하고, 민간 텔레비전 방송국 도즈드의 허가를 취소했다. 법원은 올림픽 준비과정에서 저질러진 환경파괴 사례를 모은 보고서의 발표를 막기 위해 북코카서스 환경워치 소속 활동가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하고 구금했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기 전, 2월 18일 유로마이단 시위가 다시 격화되었다.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프랑스, 독일, 폴란드 3국의 외무장관이 키예프로 달려와 중재안을 찾고자 했다. 야누코비치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의사를 보였으나, 푸틴은 전화를 걸어 그것은 매우 굴욕적이고 위험스러운 조치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결국 야누코비치는 유럽의 중재를 받아들였고, 2월 23일 푸틴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로 도주했다. 의회는 절차상으로 하자가 있기는 했으나, 야누코비치의 탄핵안을 처리했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임명했다.

    푸틴은 소치 올림픽 폐막식을 마칠 때까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2월 23일 비밀 작전명령을 내렸는데, 최측근 인사를 제외하곤 정부 각료도 그 사실을 몰랐다. 26일 러시아 서부에서 수만 명의 병력이 참여하는 훈련계획을 발표했다. 러시아 정예 특수작전 병력을 우크라이나 내부에 배치하는 것을 위장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27일 새벽 러시아군 크림반도 기지사령부 소속 병력이 크림반도 지역 의회를 비롯한 주요 건물과 비행장을 장악했다. 투입된 병력의 군복에는 아무런 식별도 없었는데, 이는 사전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접수한 비행장을 통해 24시간 안에 수천 명의 병력이 추가 투입되어 크림반도 전역을 장악했다. 긴급 소집된 크림지역 의회는 자치권 확대에 대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5월 25일에 실시한다고 선언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 헌법에 위배되는 결정이었다. 3월 1일 러시아 상원 격인 연방위원회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사용을 승인했으나, 이미 푸틴의 명령에 따라 침공이 벌어진 후, 공격을 승인한 꼴이었다.

    푸틴은 크림반도에 러시아군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4월에야 러시아군의 존재를 인정했다. 우크라이나 거주 러시아인의 폭력을 당할 위험 때문에 러시아군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미국, 유럽연합, G8 회원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영토를 빼앗으려 한다면 G8 회원국 자격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제재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크림반도 합병을 계기로 G8 체계는 해체되었다.) 새로 구성된 크림 의회는 일정을 앞당겨 3월 16일 주민투표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그림] 2015년 3월 18일, 크림 합병을 축하하는 집회와 콘서트에서 푸틴이 연설하는 장면.

    https://www.themoscowtimes.com/2017/03/03/the-kremlin-is-reportedly-abandoning-its-red-square-concert-to-celebrate-the-annexation-of-crimea-a57331

    3월 16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열려 “크림반도는 러시아 땅”이라는 구호가 쓰인 깃발로 뒤덮였다. 3월 18일 푸틴은 크림과 세바스토폴이 러시아연방의 새로운 부속 영토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날 붉은 광장에서는 집회와 콘서트가 열렸는데, 신성한 축일을 기념하는 국가적인 축제와도 같았다. 크림반도 합병으로 푸틴의 지지율은 85%를 넘어섰다. 푸틴은 불과 1년 전, 시리아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한 아사드 정권에 보복공격을 가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계획이 주권국의 권리를 보호하는 국제질서에 대한 위협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푸틴의 크림 침공 이전, 다른 국가의 영토를 합병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 가장 최근 사례는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뿐이었다. 이때는 유엔의 승인 아래 다국적군이 이라크군을 다시 몰아냈으나, 푸틴은 서방이 크림반도에서도 그때와 같은 대응을 하지는 못하도록 ‘회색지대’ 전략을 구사했다. 서방은 러시아군이 크림반도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는지 여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타이밍을 놓쳤다. (설사 러시아군이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도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듯이, 나토의 유럽회원국은 국외에서 막강한 러시아 육군에 대항해 대규모 군사작전을 펼칠 군사적 능력이 없었다.)

    크림반도 합병 며칠 뒤, 우크라이나 동부의 몇 개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시위대가 행정관서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 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5월에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몇 주 뒤, 푸틴은 새로운 러시아라는 뜻의 ‘노보로시야’라는 용어를 쓰면서 오데사에서 러시아와의 국경이 이르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영유권이 러시아에 있다고 주장했다. (회고해 보면, 이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예고하는 발언이었다.) 7월에는 동부지역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러시아가 정규군을 보냈다.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위한 군사지원을 결코 옵션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3월 유럽연합과 미국은 크림 관련 제재를 발표했는데 관련된 개인과 기업의 비자 발급을 금지하고 자산을 동결하는 조치였다. 미국의 제재에서 새로운 점이 있다면, 푸틴의 측근 중 네 명이 제재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앞에서 언급한 푸틴의 ‘경제공동체’) 코발추크, 로텐베르크 형제, 팀첸코다. 7월 동부지역에 러시아가 정규군을 밀어 넣자, 7월 16일 미국은 추가적인 부문별 경제제재를 발표했다.

    그다음 날인 7월 17일,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해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말레이시아 항공이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러시아제 미사일을 맞고 추락했다. 승객 283명과 승무원 15명이 전원 사망했다. 그에 따라 주저하던 유럽국가도 미국과 유사한 제재를 실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부문별 제재는 크게 세 부문을 타깃으로 삼았는데, 금융, 석유, 군사기술 분야였고, 주로 러시아 국유기업이 대상이 되었다. (2016년 국제조사단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자들이 점령한 지역에서 발사되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4) 러시아 경제와 크림반도 합병

    러시아 경제는 2009년 이후로 정체 상태를 극복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일인당 GDP는 1만 달러에 근접했으나 더는 치고 오르지 못했다. 러시아는 전형적인 ‘중위소득 함정’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중위소득 함정이란 지금까지 급속히 성장했던 경제가 중위소득 수준에서 정체 상태에 빠져서 고소득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을 뜻한다. 러시아의 공공재정이나 대외부채는 안정적인 편이지만 혁신을 달성하지 못하고, 생산성을 높이지 못했다. 러시아의 GDP는 2014년 이후로 유가 하락과 경제제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급락하기 시작하여 2020년 현재 1.48조 달러로, 한국 1.64조 달러보다 아래다.

    왜 그런가. 스웨덴의 경제학자 안데쉬 오슬룬드는 여기서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이론을 인용한다.(1) 부패와 권위주의가 결합한 러시아 모델은 (포용적이지 않고) 착취적이며 악순환에 빠져 있다. 러시아의 현 정부에서 경제개혁이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낮은데, 왜냐하면 이는 사법개혁, 정치개혁을 필요로 하지만, 현 정권이 이를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야 법치와 민주주의를 구축하기 위한 개혁을 실행할 가능성이 있으나, 새로운 정부라도 성공을 거둔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애쓰모글루에 따르면, 경제 규모가 크고 기술적 수요 수준이 높지 않은 경제에서, 과두제적 소유권(러시아식으로 말하면 올리가르히의 경제 지배력)은 경제발전의 초기 단계라면 빠른 성장을 낳을 수도 있다. 행정적 장벽이 경제발전의 주요 장애가 될 때, 대기업이 이를 쉽게 돌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강과 같이 전형적인 중간단계 산업에서 과두제적 소유권이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렇지만, 경제발전이 높은 단계에 들어서려면 법의 지배나 지적재산권의 실행이 경제성장에 더 중요해지는데, 그래야만 중소기업이 발전하고 혁신과 창조적 파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러시아의 국유기업과 올리가르히는 경제발전이 높은 단계로 진입하는 것을 저지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또한, 경제성장은 자본투자, 기술, 인적자본, 제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러시아에서는 자본도피 때문에 매년 GDP의 3~4%에 달하는 투자손실이 발생한다. (그런데 푸틴의 측근 집단이야말로 자본도피의 주역이다.) 반면 소유권 보장이 취약하고 크림합병 이후 경제제재로 인해 외국인 직접투자는 그러한 투자손실을 벌충할 만큼 유입되지 않는다. 또한, 러시아의 노동력 규모는 앞으로 10년간 연간 거의 1%씩 감소할 전망이다. 나아가 러시아의 교육투자는 아주 인색한 편이다. 또한, 러시아는 점진적으로 나타났던 제도의 파괴(권력의 사유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가 중간소득 함정을 벗어날 수 있는 제도적 전제조건이 부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러시아의 경제적 힘은 고갈되고 있는 반면, 여전히 군사적 힘은 막강하다는 불균형이 존재한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러시아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군비를 지출하는 나라로, 690억 달러를 썼다. (1위는 당연히 미국으로 6110억 달러, 2위는 중국으로 2150억 달러다.) 러시아는 2008년 이후로 군비지출을 늘리기 시작하여 재무장과 현대화를 추구했다. 군비지출은 2008년 GDP의 3.3%에서 2016년 5.3%로 그 비중이 늘어났다. 러시아의 군사력은 미국이나 중국과 경쟁하기는 어렵지만,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훨씬 더 강하다. 또한, 핵 무력이란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슈퍼파워로 남아 있다.

    다른 한편, 러시아의 지도자들은 2006년 국제유가가 급상승한 후 종종 ‘에너지 슈퍼파워’에 대해 언급하곤 했다. 그러나 2014년 에너지 가격이 급락한 후 이런 이야기는 힘을 잃었다. 러시아는 에너지 분야의 연구개발, 기술 측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줄 잠재력이 있었으나 측근들이 에너지 부문을 장악하는 과정을 거치며 그런 잠재력을 지닌 인사나 기업이 모두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종합해보면, 러시아의 자산은 매우 불균형적이다. 러시아의 경제력, 예컨대 GDP는 유가가 고공행진을 할 때 세계 6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한국보다 아래로 떨어진 상태고, 더 하락할 수도 있다. 반면 군사력은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경제력이 하락하면 군사비 지출도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강대국이 쇠퇴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상이다. 따라서 러시아의 지도자는 그 막강한 군사력을 아직 활용할 수 있을 때, 휘둘러 보고자 하는 강렬한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2014년 이후, 바로 그런 이유로 러시아는 전쟁을 벌였다. 크림반도 합병, 우크라이나 동부로의 침입, 시리아에서 군사개입이 이어졌다. 이는 바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5) 푸틴의 정치적 정당성과 크림반도 합병

    2000~2008년 푸틴 첫 번째 집권기의 특징은 생활 수준의 향상과 정치적 안정성이었다. 푸틴도 처음에는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그렇지만 그는 점점 더 민주주의가 주는 이익에 대해서 말하지 않게 되었지만 말이다.) 2008년 푸틴은 연방위원회 연설에서 자신의 성취를 이렇게 요약했다. “러시아는 강대국으로 세계 무대에 복귀했습니다. 우리가 달성한 가장 중요한 성과는 안정성입니다.” 1998~2008년 러시아는 기록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했는데, 연간 평균 실질 GDP 성장이 7%에 달했고, 생활 수준도 빠르게 상승했다. 러시아 GDP는 1999년 0.2조 달러에서 2008년 1.6조 달러로 급증했다. 푸틴에 대한 지지는 일차적으로 소비의 성장에 기초를 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2009년 이후로 러시아 경제는 정체 상태에 빠졌고, 경제성장은 1.5~2%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이는 푸틴 정권을 당장 무너뜨릴 수준은 아니더라도 열정적인 지지를 잠식할 가능성을 내포했다. 푸틴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실업을 최소화하는 거시경제적 안정을 추구했지만, 생활 수준을 더 높일 수는 없었다. 이제 푸틴은 점점 더 정치적 억압과 여론 조작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1차 집권기를 거치며 구축된 푸틴 정권은 기본적으로 푸틴 개인에 의존한 권위주의 체제였다. 푸틴의 개인적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정치적 정당성의 원천이 없었다. 푸틴은 공식적으로 정당에 속해 있지도 않았고, 사실상 여당이던 통합-러시아당도 뚜렷한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색깔이 없었다. 푸틴이 없으면 금방 무너질 거꾸로 세워진 피라미드와 같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체제는 무너지지 않았는데, 푸틴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푸틴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한 정치적 안정성을 대체할 정당성의 원천을 찾아야 한다고 정확히 인식한 듯하다. 또한, 러시아 주변국, 대표적으로 조지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에서 발생한 ‘색깔 혁명’이 러시아의 정치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보았다. 푸틴은 ‘외부의 적’들이 가하는 위협을 부각함으로써 정치적 정당성을 찾을 기회를 엿보았다.

    러시아 관리들이 자주 인용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소규모의 승리하는 전쟁을 필요로 한다.” 이는 차르 시대의 내무장관 플레베가 한 말이다. (이는 러일전쟁 직전에 한 말인데, 러시아로서 러일전쟁은 작은 전쟁도, 승리한 전쟁도 아니었다. 러일전쟁의 패배는 차르 정부에 막대한 타격을 가했다.)

    푸틴은 소규모의, 승리하는 전쟁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가 1999년 총리가 되었을 때 주도했던 2차 체첸전쟁은 그를 대통령의 길로 이끌었다. 2003년 유코스 오일의 호도르코프스키를 구속한 사건은 ‘올리가르히와의 전쟁’으로 묘사되었다. 2008년 조지아를 상대로 한 남오세티야 전쟁은 ‘소규모의 승리한 전쟁’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표본이 되었다. 그것은 실전이었으나, 기간도 매우 짧고 비용도 크지 않았다. 푸틴의 인기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유로마이단 시위 이후 우크라이나가 정치적으로 혼란한 틈을 타서, 전격적으로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푸틴의 인기는 또다시 최고치를 갱신했다.

    [그림] 푸틴의 집권 후 신뢰도

    출처: 최우익, 「2011-2012년 부정선거 규탄시위 이후 러시아 국민의식의 변화」, 《동유럽발칸연구》, 제39권, 2015, p. 156.

    푸틴의 신뢰도는 첫 번째 대통령 임기 때(2000~2004) 평균 75% 수준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임기 초, 2004년 9월 베슬란 인질 사태에서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하며 신뢰도가 하락하다가 2000년 중반 국제유가의 상승과 함께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가 나타났고, 2013년 11월에는 61%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신뢰도를 기록했는데, 이때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그러다가 2014년 크림반도 합병을 계기로 신뢰도가 다시 급상승했다.

    그렇지만 2015년 크림반도에 이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대한 개입은 뚜렷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두 지역을 제외하고는 장악에 실패했다. 두 지역에서도 러시아군이 지원 또는 지휘를 행하고 있지만, 명확한 해결책이 없이 저강도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소규모의 승리하는 전쟁’을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푸틴의 전술은 위험에 빠졌다.

    이는 러시아 경제에도 상당한 위험을 의미했다. 돈바스 지역의 저강도 전쟁에 소모되는 비용이 대략 연간 GDP의 0.3%를 차지하고, 크림합병 이후 경제제재에 의해서도 연간 1~1.5%의 GDP 손실이 나타났다. 그리고 2008년부터 2016년까지 군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GDP에서 2%p 상승했다. 이를 단순 합산하면 푸틴의 전쟁 정책에 의해 연간 GDP의 3~4% 정도 손실이 발생하는 셈인데, 연간 경제성장률이 1.5%인 나라에서 이 정도 비중이 결코 적은 게 아니다. 2018년 여름 러시아 정부는 은퇴연령을 남성은 60세에서 65세로, 여성은 55세에서 60세로 올리며, 부가가치세를 18%에서 20%로, 2%p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실질 가처분소득은 17% 하락했다. 이는 러시아 경제가 실제적인 어려움에 빠졌다는 증거이며, 동시에 푸틴의 정치적 정당성에 위협을 가하는 요소다. 따라서 푸틴은 돈바스 지역의 교착상태를 풀기 위한 결단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돈바스를 우크라이나에 돌려준다고 결정하지 않고,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러시아의 야당 정치가, 레오니드 고즈만은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국가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파괴될 수 있을 만큼 취약한 구조다. 즉 부패에 맞서는 싸움, 선거에 대한 독립적 감시, 도둑질을 하거나 무능력한 관리를 추방하자고 요구하는 시위 등등.” 국가의 결정은 “시민이 아니라 국가 그 자체에, 또는 국가자본가나 특수공무원에게 이익을 주는 식으로 결정되곤 한다. 그들은 ‘우리가 곧 국가’라고 말한다.” 그 결과 국가 예산은 점점 더 군사화되고, 과학, 교육, 보건을 위한 예산은 희생된다. 이러한 국가재정 할당을 정당화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는 외부의 위협(나토와 테러리스트)에 대해 말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대비하는 것은 러시아 인민의 공격이다.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 인민의 공격이 최종적 위험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6. 나가며: 크림합병 이후 푸틴과 러시아

    1) 선거마다 승승장구하는 푸틴

    2015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푸틴 체제는 선거결과만을 두고 보면 승승장구했다. 2016년 9월 총선(7대 두마)에서도 47.88%의 투표율에서 통합러시아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13년 만에 지역구 선거가 부활해서, 지역구 225석 중에서는 통합러시아당이 203석을, 정당명부 비례대표 225석 중에서는 통합러시아당이 54.20%의 득표율로 140석을 얻었다. 450석 중 도합 343석을 얻어 다시금 단독 개헌이 가능한 의석을 확보했다. 2016년 총선에서 통합러시아당이 압승을 거둔 이유는 무엇보다 ‘크림 컨센서스’였다. 즉 크림 합병 이후 푸틴 지지도가 치솟은 결과였다. 또한, 선거제도 개편도 통합러시아당에 유리하게 작동했다. 애초 지역구의 폐지는 야당이 두마에 진입할 경로를 차단하는 효과를 발휘했지만, 이제 지역구를 새로 부활하더라도 야당으로서는 13년의 기간을 거치며 지역조직이 사라졌고 새로이 이에 대응할 만한 역량이 없었다. 따라서 집권 여당이 지역구를 거의 싹쓸이할 수 있었다.

    한편 집권세력은 부정선거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투표소에 다수의 CCTV를 설치하고 대규모 참관인을 조직했으며, 선거법 위반에 대해서 강력히 조치한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그 결과, 적지 않은 부정선거 사례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2011년처럼 대규모 시위가 조직될 만한 상황이 연출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선거 그 자체에서 벌어지는 부정이라기보다는 선거에서 경쟁할 만한 세력이 출현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억제하는 억압적 정치 과정이었다. 크림반도 합병과 전쟁을 비판한 소수 정치인 중 하나인 넴초프가 2015년 2월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2018년 3월 대통령선거에서도 푸틴이 여유롭게 승리를 거두었다. 67.5%의 투표율에 76.69%를 득표했다. 선거 전 여론 조사에서는 줄곧 60% 중후반대를 기록하다가 선거에서는 더 높은 득표를 했다. 푸틴은 2018년 대선에서도 ‘크림 컨센서스’를 이어가려 했다. 원래 대선일은 3월 11일이었으나, 크림 병합 4주년인 3월 18일로 선거일을 옮겨버렸다. 또 선거 직전에는 러시아 본토와 크림을 연결하는 크림대교 건설현장과 세바스토폴항을 방문했다. 또한, 3월 1일 연례 국정연설에서는 미국의 MD 체계를 돌파할 수 있는 여러 전략무기를 직접 소개하며 핵 강대국으로서 러시아의 지위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승리를 바탕으로 2020년 광범위한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6월 국민투표에서는 67.97%의 투표율에 77.92%라는 압도적 지지율이 나왔다. 그 핵심적 내용을 살펴보면, 한 축으로는 푸틴의 초장기 집권과 대통령 권한 강화가 담겨 있었다. ① 푸틴이 앞으로 두 번, 즉 12년 더 대통령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동일인이 대통령을 최대 두 번만 할 수 있게 하면서도, 전, 현직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다시 수행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었기 때문이다. ② 재임 중 대통령에 대한 불소추특권이 전임 대통령으로 확장되었다. 불소추특권의 박탈은 탄핵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푸틴은 가장 강력한 안전보장 수단을 확보했다. (2020년 말에는 별도의 법이 통과되어 대통령 ‘가족’으로 면책특권이 확대되었다.) ③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해서, 총리가 장관을 제안하고 대통령이 승인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대통령이 국방, 국가안보, 내무, 법무, 외무, 비상사태 방지, 사회안전 문제를 담당하는 주요 장관을 직접 임명하게 했다. 총리는 경제사회 분야 장관의 후보안을 작성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또 한 축으로는 푸틴의 대외정책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① 연방 일부를 분리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호소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이는 크림반도 병합을 비판하는 행위를 전혀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품고 있었다. ② 국제조약에 기초한 국가 간 기구의 결정사항이 헌법에 배치되는 경우,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는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과 같은 경우를 무시하겠다는 의사의 표명이었다.

    또한, 푸틴 집권 2기부터 분명하게 나타난 반동적 복고주의, 문화적 보수주의가 헌법 곳곳에 들어갔다. 가장 놀라운 대목 중 하나는 ① ‘선조의 유산 보존’, ‘천 년의 역사’, ‘역사적으로 부여된 국가적 통합성’을 말하며 러시아가 ‘소련의 법적 계승자’라고 명시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조국 수호자의 유산을 존중’하고, ‘역사적 진실을 수호’하며 ‘조국 수호를 위한 민족적 공헌의 의미를 격하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자, 스탈린에 대한 긍정적 재평가를 동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② 러시아의 역사성을 강조하면서 ‘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표현이 포함되었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③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서 결혼제도를 보호’한다는 항목도 첨가되었다. 이를 종합해보면, (차르와 스탈린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유라시아주의 또는 유라시아 버전의 팽창주의, 애국주의, 종교적·문화적 선민의식 등등이 복합된 푸틴식 이데올로기가 헌법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덧붙여 개정헌법은 대통령, 상하원 의원, 총리, 장관, 법관, 검사 등 고위공직자의 자격조건으로 타국의 시민권, 영주권 미보유를 요구하고, 국외 외국은행 계좌 개설과 현금, 귀중품 보관을 금지했다. 대통령 자격요건으로 국내 거주기간을 10년에서 25년으로 늘렸다. 이는 정치적 경쟁자를 배제하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실제로 2021년 총선에서 공산당 후보 파벨 그루디닌은 국외자산 보유를 근거로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2)

    2021년 국가두마 선거도 통합러시아당이 51.72%의 투표율에 정당명부 126석(49.82%), 지역구 198석으로 도합 324석을 확보했다. 특히 이번 선거는 사전 여론조사에서 통합러시아당의 지지율이 30% 미만으로 나와서 지금까지와 다른 선거결과가 나올지 주목을 받았다. 크림 병합의 효과는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약화된 반면, 장기간의 경기침체, 2018년 은퇴연령을 5년씩 미루는 연금 개정(이 사안은 푸틴의 지지율을 60%대 초반까지 끌어내릴 정도로 파장이 컸다)에다가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거결과는 또다시 통합러시아당의 압승으로 나왔다. 2020년 개헌 국민투표 이후 전자투표, 원격투표가 도입되었는데, 사전 여론 조사와 실제 결과 사이의 큰 차이 때문에 조작 논란도 불거졌다.(3)

    조작 여부를 떠나, 이번 총선에서도 야권 세력의 활동을 제약하는 규정이 강화되었다. ① ‘외국대리인’ 규정이 강화되어, 외국에서 자금지원을 받는 후보는 외국대리인 기능 수행에 관한 정보를 의무적으로 선거홍보물에 공지해야 했다. ② 중범죄뿐만 아니라 중간수준의 범죄를 저지르고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피선거권이 제한되었다. 여기에는 ‘테러 정당화’, ‘집회개최 절차 반복 위반’도 포함되었다. ③ ‘극단주의’ 조직과 관련된 사람들도 피선거권이 제한되었다. 나발니와 관련된 단체들, 즉 반부패재단, 시민권리보호재단, 나발니 본부도 극단주의 단체로 지목되었다. 또한, 17개 언론단체와 기자를 외국대리인으로 규정하여 활동에 제약을 가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2021년 총선은 러시아 역대 선거 중 가장 ‘억압적’ 선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2) 푸틴 체제가 지속될 수 있을까

    통합러시아당은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던 2011년 총선 전후로 크게 흔들렸지만, 2016년, 2021년 선거에서 다시 단독 개헌선을 돌파함으로써 의회 내 독주체제를 다졌다. 푸틴 역시 2012년, 총리를 마치고 다시 대선에 출마할 때 상당한 저항에 직면했으나, 2018년 대선에서도 여유롭게 승리를 거두고 2020년 장기집권을 향한 개헌에도 성공했다. 푸틴과 집권당은 선거마다 승승장구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하여 푸틴 체제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까.

    앞에서 언급한 스웨덴 경제학자 오슬룬드는 푸틴이 네 가지 부류의 권력서클로 구성된 철의 비밀정원을 구성했다고 정리한다. 첫 번째 서클은 수직적 국가권력이다. 두 번째는 대형 국유기업이며, 세 번째는 그의 측근과 그들이 소유한 기업이다. 네 번째 서클은 앵글로-아메리카의 역외 은닉처로 푸틴과 그의 측근은 그곳에서 안전하게 자산을 보관할 수 있다.

    푸틴은 199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거시경제적 불안정이 곧 정치적 불안정을 낳는다는 사실을 깨우쳤고, 거시경제 안정을 중시했다. 그렇지만 러시아 경제는 사적인 관계를 기초로 특혜가 오가는 연고(crony, 측근) 자본주의, 또는 부패한 정치지도자가 정치권력을 바탕으로 부를 누리는 클렙토크라시(kleptocracy, 도둑정치)로 타락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러시아 경제는 성장잠재력을 소실하고 장기적인 정체 상태에 빠졌다. 오슬룬드는 이러한 푸틴의 체제가 되돌리기 어려울 만큼 굳어져서, 이제는 경제개혁이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며, 그보다는 차라리 정권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림] 흑해 겔렌지크 푸틴 별장. 2020년 8월 독극물 테러를 당한 후 2021년 1월, 귀국하자마자 구금된 야권 지도자 나발니가 옥중에서 대통령의 호화별장에 대해 폭로했다. 러시아 남부 흑해 연한 휴양지 겔렌지크에 위치한 7800만㎡ 규모 별장의 구글맵과 내부사진, 건축비용 등을 담은 보고서와 동영상을 공개했다. 나발니는 “도시 국가 모나코의 39배 크기인 궁전”이라며, “하나의 거대한 도시, 왕국에 단 한 명의 차르가 산다”고 말했다. 그는 “푸틴과 측근들은 나라를 파산 시킬 때까지 축재를 계속할 것”이라면서, “러시아는 석유, 가스, 금속, 비료, 목재를 판매하지만 푸틴 대통령 무리들이 그 돈을 다 써서 국민들의 소득은 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페스코프 대통령 대변인은 “겔렌지크 별장은 푸틴 대통령 소유물이 아니다”고 밝혔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120500129

    왜 그런가. 새로운 시스템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푸틴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지배집단을 해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건전한 선거 시스템을 통해서 정치지도자가 선출되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극도로 과대한 권한이 부여된 헌법을 대체하여 의회의 권한을 강화해 견제와 균형을 달성해야 한다. 둘째, 비밀경찰 FSB를 해체해야 한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국민을 감시하는 비밀경찰을 두는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외정보를 다루는 정보기관이 존재할 뿐이다.) 셋째, 새로운 사법체계를 구성하고 인적 교체가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정치적, 사법적 개혁이 선행되어야 러시아의 연고 자본주의 또는 클렙토크라시를 깨는 진정한 경제개혁이 시작될 수 있다.

    그렇지만, 푸틴 체제가 스스로 이런 선택을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푸틴 체제가 장기화될수록 러시아의 자산은 경제력이 아니라 군사력을 더 선호하는 방향으로 점점 더 불균형하게 배치될 것이다. 점점 더 고도화되는 러시아의 군사력은 자연스럽게도 푸틴 정권이 군사공격을 채택하도록 유혹하며, 그렇다면 푸틴 정권은 군사공격과 ‘승리하는 전쟁’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크림합병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를 장악하겠다는 시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수렁에 빠졌고, 2022년 전격적으로 단행한 우크라이나 전쟁도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 있다.

    푸틴 정권이 크림합병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이 치열한 바로 지금까지도 국내정치 측면에서 보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연고 자본주의, 클렙토크라시에 기초한 억압적이고 부패한 정권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고, 언젠가는 끝이 있을 것이다. <끝>

    <각주>

    1. Anders Åslund, Russia’s Crony Capitalism: The Path from Market Economy to Kleptocracy, Yale University Press, 2019의 결론을 보라.

    2. 이준용, 제성훈, 「러시아의 ‘중대 국면’과 푸틴 체제의 대응: 2020년 러시아 헌법개정의 배경과 의미」, 《국제지역연구》 25권, 2021.

    3. 예를 들어 모스크바의 한 선거구에서는 현장투표 결과 야권후보가 승리했는데, 전자투표 결과가 상당히 지연되어 발표되었고, 그에 따라 당선자가 뒤집히는 일이 있었다. 일부 러시아 통계학자들은 자체 분석 데이터에 기초해 광범위한 부정선거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장세호, 「2021년 러시아 국가두마 의원 선거 평가: 민심의 왜곡과 여당의 과대대표」, 《슬라브학보》 36권, 2021.)

    필자소개
    사회진보연대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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