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남미통합에 견제구 던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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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26일 12: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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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글에 들어가기 전에 전제를 밝히고 싶다. 한 사회 체제에 대한 언급은 필연적으로 은유가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중남미라는 거대한 대륙에 대한 담론이라면 더욱 그렇다.

    올해 1월 18일~19일 브라질 리우에서는 제 31차 남미 공동 시장, 즉 메르코수르 정상회담이 열렸다. 여기서 남미 통합의 프로젝트들과 반신자유주의 대안 정책들이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우선 중요한 것은 볼리비아의 정회원 가입 승인이다. 물론 정식 가입까지는 절차가 남아있다.

    좌파 블록 강화된 메르코수르

    잘 알다시피 볼리비아는 현재 베네수엘라 주도의 반신자유주의 남미 통합의 대안 체제를 지향하는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의 회원국으로 차베스의 강력한 우군이다. 그런 볼리비아가 메르코수르의 정회원이 된다는 것은 메르코수르 안의 좌파 블록이 강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자유무역 협정에서 ‘정치적 통합’의 방향으로 들어서는 초기 단계로 보인다.

    그 동안 가입국이 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에 지나지 않아 상징적 차원에 머물던 ALBA에 니카라과가 가입하기로 하였고 여기에 에콰도르도 합류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소위 중남미 정치 지형에서 좌파 부상의 흐름이 점점 더 구체화 되어가고 있다.

    이들 좌파 블럭은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구축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에콰도르의 경우 전임정부에서 미국과의 FTA를 추진해왔으나 원주민 농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그 추진이 이미 물 건너가기도 하였다.

    에콰도르에서 좌파 후보 꼬레아가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신자유주의의 전략적 거점인 콜롬비아를 바로 밑에서 견제하는 국면이 형성된 셈이다. 최근 콜롬비아 정부는 남부의 코카 재배 지역에 유독성 제초제를 살포해서 에콰도르 국경지역도 피해를 입었고, 이 때문에 양국 관계가 긴장되기도 하였다.

    니카라과와 에콰도르에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차베스 정부와 협력 협정을 맺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 중동의 강국인 이란까지 차베스 정부와 연대하고 있어 이들과 연계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이란과 원유, 가스, 석유화학, 건설, 농업부문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 지난 1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정상회담에 참가한 정상들. 왼쪽부터 에보 모랄레스(볼리비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브라질), 미첼 바첼렛(칠레), 우고 차베스(베네수엘라), 니카노르 두아르테(파라과이) 대통령.  
     

    중동과 남미의 연대

    언론 보도에 의하면, 남미를 관통하는 대형 가스관 공사 중에서 우선 5,000km 구간의 공사를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양국이 2009년에 착공한다는 의향서를 교환했고 IMF를 대신할 수 있는 ‘남미은행’ 설립에 베네수엘라가 일차적으로 40억 달러를 출연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두 가지 프로젝트 모두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의 국제적 정치, 경제 지형이 매우 복잡하고 위기적인 상황이 충분히 예측되는 마당에 중남미에 자체적인 에너지 협력망이 가동될 수 있다는 점은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남미은행’의 중요성은 쉽게 알 수 있다. CNN에 맞서 문화적 정체성을 통한 남미 통합을 달성하기 위해 ‘텔레수르’를 창설하였듯이, 이제 그 동안 오랫동안 병 주고 약 줘온 IMF의 대안으로 경제 유동성 위기에 스스로 대처하려는 구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텔레수르 보도에 의하면, 메르코수르 국가들 사이의 경제적 격차 문제가 구조적으로 큰 문제였는데 이를 완화하기 위한 ‘메르코수르 구조 통합기금'(FOCEM)을 창설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기금 규모는 1억 달러 정도로 하고 브라질이 7천만 불을 출연하기로 하였다. 이 기금을 이용하여 파라과이와 우루과이의 인프라 투자 지원을 하게 된다. 과거에 이런 융자는 IMF가 맡았었다.

    신자유주의 흐름에 맞선 남미 대륙

    또한 역내 무역대금 결제를 탈 달러화하기로 하여 ‘공동 화폐’를 사용하기로 추진하였지만 이 결정은 파라과이와 우루과이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결정될 뻔하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알다시피 파라과이와 우루과이는 메르코수르 가입국 중 소국들이다.

    이들은 미국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 강국들은 위 제안에 찬성하였다는 것이니 무엇인가 암시되는 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왠지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와의 국경 부근에 환경오염이 우려되는 대형 펄프공장의 투자 프로젝트를 추진해 양국 사이에 심각한 마찰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 프로젝트의 투자에는 스페인과 핀란드의 다국적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결국 신자유주의 추진의 흐름과 남미 통합의 생태 보호의 대안적 흐름이 충돌하는 양상을 보인 셈이다. 우루과이는 미국과 FTA를 추진할 것이란 소문이 계속 있어 왔으나 실제 추진하지는 않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브라질 외교부 장관은 "차베스 대통령이 주장하는 ’21세기형 사회주의’ 라는 국가모델이 중남미 다른 국가로 수출될 수 있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이는 하나의 구호이자 슬로건일 뿐 현실적인 실현 가능 여부와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어느 나라든지 외교부 고위 관료들의 말은 주의 깊게 관찰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상식이라고 본다. 그들은 신중하면서도 전략적 고려가 담긴 말을 전하기 때문이다. 브라질 외교부 장관이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 국가모델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언급했지만 남미 통합을 폄하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브라질이 남미 통합에 소극적인 진짜 이유 

    브라질이 남미 통합에 소극적이라면 위에서 언급한 대 가스관 공사와 남미은행 프로젝트에 베네수엘라와 적극적으로 협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다만 정치 경제 체제가 베네수엘라와 다른 브라질로서는 베네수엘라의 신사회주의 모델의 영향권에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국내의 기업가 등 친신자유주의 세력에게 밝힐 정치적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브라질은 남미 최대 강국이다. 단지 인구와 영토가 크다는 점에서만이 아니라 마치 중화사상 못지않게 낭만적인 차원에서 브라질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다. 물론 자본주의 발달 수준과 과학 기술 발전에 있어서도 강국이다. 그런 브라질이라 당연히 신자유주의 추종 세력이 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룰라 정부는 사회적 공공성 정책에 있어서나 남미 통합에 있어서나 남미 좌파의 흐름과 코드를 같이 하고 있음을 주목하고 싶다. 예를 들어, 볼리비아와의 대형 고속도로 건설에 합의하여 볼리비아의 숙원인 바다로의 출구를 도와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차베스 혁명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왔다고 본다. 예를 들어 남미의 대안적 위성방송인 ‘텔레수르’ 에도 참여하고 있지 않고 차베스 정부가 추진하는 미션 사업,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 무료 수술 사업인 ‘미션 기적’에도 참여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의 주도적 국가들의 신자유주의 추종 지배세력과 지식인들이 베네수엘라 혁명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그것의 중남미 파급 영향력이 자신들이 기대한 속도보다 너무 빨리 진행되는 것에 놀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메르코수르 역내 국가들 사이의 탈 달러화 결제는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유럽으로서는 예민한 주제라고 본다. 이에 브라질로서는 외교부 장관이 나서 유럽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약간의 견제구를 던질 필요성이 있었지 않았나 싶다.

    남미 혁명의 주역은 가난한 사람들과 원주민들

    현재 소위 ‘21세기형 사회주의’ 모델을 추진하는 나라는 중남미에서 베네수엘라밖에 없다. 그러나 볼리비아가 바짝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예를 들어 볼리비아도 베네수엘라처럼 제헌의회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제 니카라과와 에콰도르도 그 모델을 참고하려 하고 있다.

    이들 세 나라는 공통점이 있다. 무지하게 가난하다는 점과 국내 인구분포에서 원주민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가난한 사람들과 원주민들이 차베스 혁명의 주역임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을 선동해 소위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추진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 대한 과감한 무상 교육, 무상 진료의 사회적 연대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강조해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 모델 안에 남미 통합의 전략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모델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남미 통합을 통해 세계 정치 경제 체제에서 독립적인 진지를 확보해야 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차베스가 궤도 수정을 해서 ‘사회주의 앞서 경제통합’에 우선하기로 한 것 같다는 지적은 별 의미가 없다.

    21세기 사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신자유주의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안적 정치 경제 체제를 모색하여 사회연대, 사회적 공공성의 확보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현실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21세기 사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목표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장/반시장의 이분법이 아니다. 이분법을 강조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지향의 스페인 신문 ‘엘 빠이스’ 같은 곳의 시각이다. 스페인은 멕시코에서부터 아르헨티나에 이르기까지 중남미에 광범한 투자를 하고 있다.

    선험적, 보편적, 관념적 현실이 아니라 중남미의 일상적 현실에서 대안은 이미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 바로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 시에서부터 시동되어오고 있는 ‘세계 사회 포럼’과 ‘라틴 아메리카 민중 정상회의’가 상징하는 밑바닥 중남미 대중, 민중의 요구 때문이다.

    이번의 메르코수르 정상회의에서도 소농지원, 조합형태의 소기업 지원, 지방정부 활성화 등이 주요 의제 중의 하나였다

    신자유주의 정책 방향은 원하든 원치 않든 사회적 포용 대신 사회적 배제로 나아간다. 따라서 차베스 혁명에서 국유화가 중요한 전략이 아니고, 사회적 포용을 철학으로 하는 ‘주민 위원회’와 ‘노동자 공동경영’에서 보이듯이 일반 시민, 대중, 민중의 직접 민주주의가 핵심 전략이다. 그런데도 서구 매체들이 오로지 국유화 운운하는 것은 서구의 대중을 의식해서라고 본다.

    물론 2007년 1월 차베스 정부는 전력과 전화 등 전략 부문의 국유화를 추진할 것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더라도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폭적인 민영화 흐름을 지키려는 신자유주의 정책 방향과는 어긋나지만.

    베네수엘라 사회주의 혁명의 애매성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대중적 선입견이 많이 작용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애매하다. 왜냐하면 이마누엘 월러스틴도 자신의 책 『역사적 자본주의, 자본주의 문명』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류 역사상 사회주의 혁명이 현실화 되었던 적이 없다고 하는 그 사실 때문이다

    서구의 언론 매체들이 남미에 대한 유럽의 다국적 기업들의 무차별적인 신자유주의적 투자의 전망이 흐려지는 점에 대한 비판을 위해 이와 같은 대중적 선입견을 이용하고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메르코 수르에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가 가입하게 됨으로써 그들로서는 불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볼리비아의 석유회사 국유화 조치가 대표적이다. 차베스 혁명의 영향으로 남미 여러 나라에서 마치 국유화 열풍이 불 것처럼 국면을 과장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일반적인 선입견과 달리 베네수엘라는 국영기업에 비해 민간기업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국내총생산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국영기업 31%, 민간기업이 69%이다. 그리고 노동자 공동경영제도가 정착된 기업은 불과 5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2006년 5월 현재 약 150만 명 이상이 조합에 고용되어 있지만 전체 경제 활동 인구 중 차지하는 비율은 약 5%에 이를 뿐이다.

    현재의 남미 좌파 블록의 반신자유주의 철학에 대해 요약한 발언을 보자.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2006년 12월 볼리비아의 코차밤바에서 열렸던 ‘남미 공동체’ 정상회의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다.

    "우리는 단지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서나 세계 시장과 긴밀하게 연결된 부문에게 주로 이익이 돌아가는 차관 획득을 위한 연합 정도로 남미 공동체를 축소시킬 수 없다. 우리의 목표는 ‘잘 살기 위해’ 진정한 통합을 형성하는 데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잘 살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자와 자연을 희생하는 무제한(이라 잘못 불리는)의 발전의 직선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상호 보완해야지 경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이웃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잘 산다는’ 것은 단지 일인당 GDP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 공동체, 우리와 우리 지구의 조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식보다 훨씬 빨리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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