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냉전 시대의 도래?
    글로벌한 세계, 다시 블록화로 갈까?
    [정의 경제] ‘상호의존성의 무기화’와 우리의 처지
        2022년 07월 01일 10: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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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한 하나의 세계가 깨지고 블록화가 진행되나?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아시아의 대표적 친서방 국가들과 함께, 지금까지 유럽 지역의 군사동맹이라고 인식되어 온 나토 정상회의에 한국도 참여하여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윤석열 대통령실은 나토 회의에 참여하면서 ‘규범연대’, ‘신흥안보 협력강화’,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세 가지 컨셉을 제시했다. 대통령실은 일단 성과가 크다고 홍보하는 반면 중국과 북한은 일단 대단히 민감하게 한국의 나토 회의 참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기도 했다.

    과연 앞으로 세계는 하나로 얽혀있었던 기존의 글로벌 경제네트워크를 깨고, 다시 미국-EU를 주축으로 한 서방세계와 중국-러시아(또는 브릭스까지)를 다른 축으로 한 비서방 세계로 대분열하는 신냉전 시대가 오고 있는 걸까? 그리고 한국은 이제 아시아 지역을 넘어 글로벌 차원에서 서방 블록에 참여하는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일까?

    아마도 냉전의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의 눈에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세계의 블록화에 매우 친숙하기 때문에, 최근의 경향을 신냉전 또는 재블록화로 쉽게 프레임할지 모르겠다. 반면 처음부터 글로벌 시대를 살아온 젊은 세대는, 이미 서로 뗄 수 없게 깊이 상호의존으로 하나된 세상이 분절화되어 진영 대결로 치닫는 미래가 사실 잘 상상이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은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 지난 30년간 이어온 글로벌화도 지속되지 않겠지만 과거 냉전시대의 블록화 회귀도 불가능할 것이란 얘기다. 블록화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깊고 다양하게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직면하여 러시아 에너지에 깊게 의존해온 유럽이 곤경에 빠진 사례가 단적으로 그 상황을 보여준다. 한국 역시 러시아와 다양한 무역, 투자 관계로 얽혀있어서 진영논리로 끊어내기가 쉽지 않다.

    복잡하게 얽힌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

    동구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단일한 세계 네트워크로 통합된 글로벌화는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수준으로 지난 30여년간 깊어져 갔다. 이는 자본주의 200년 역사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다(아래 그림 참조). 특히 경제 분야가 그러한데, 국가를 넘어 세계를 하나로 통합해간 금융, 정보통신과 인터넷, 생산 공급망 등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현재 외형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수년째 IT 핵심기술로 갈등을 빚고 있는 모양새이지만 그렇다고 양국 간 IT분야 교역을 차단할 수는 없다. 컴퓨터나 전자장비의 40% 내외를 중국에서 수입해온 미국이 갑자기 대체 공급망을 찾기도 쉽지 않은 데다가, 사실 중국에서 수입하는 관련 제품 가운데 40% 가량은 중국에 소재한 미국기업의 제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림 세계 개방화 정도의 장기추이(1830~2014)

    이런 사정 때문에 2010년대 중반까지는 네트워크화된 세계는 워낙 공고해져서 아무도 이를 깨는 수준까지는 서로 갈등할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 이후 미-중 갈등으로 촉발된 신냉전 국면이, 우연히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차질,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갈등와 겹치면서 블록화와 진영대결 양상이 급속히 전개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평평한 글로벌 경제는 처음부터 없었다. 비대칭적인 글로벌 경제구조

    그런데 이 대목에서 세계의 글로벌화의 실체를 좀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통상 경제적 측면에서 글로벌화는, “지난 30년 동안 기업들과 금융 자본들이, ‘경제적 효율성’만을 고려해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자본이동과 투자를 단행하고 글로벌 생산기지, 공급망, 금융망, 지식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해온 것을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결과 다양한 차원(금융, 인터넷, 에너지, 곡물, 기술)에서 복잡한 글로벌 경제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특히 다중의 행위자들이 다중의 이슈를 가지고 상호의존하는 ‘상호의존 네트워크의 복잡성’은, 만약 네트워크가 단절되었을 때, 한쪽에만 유리하고 한쪽은 불리한 상황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불리한 상황이 만들어지거나 단절 비용이 너무 커지게 된다는 점을 많은 이들이 주목했다. 미국이 대중국 수입품 제재를 하면 미국에 수출하는 중국 소재 미국 기업도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는 식이다.

    이처럼 글로벌화는 이해관계와 힘의 상호의존, 또는 분산을 가져오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복잡한 경제네트워크를 어떤 국가도 먼저 파괴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 결과 경제의 글로벌화가 군사 외교적 평화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 있고, 이제부터 세계적 차원에서 권력이란 ‘다른 국가에 대한 지배권력(power over)’이 아니라 ‘함께하는 권력(power with)’이 될 것이라는 환상도 일부 조성되었다. 물론 이런 식의 낙관은 이미 트럼프 정부의 미국과 푸틴의 러시아가 보기 좋게 산산조각냈지만 말이다.

    그런데 사실 네트워크 이론 분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동등한 노드(국가 또는 기업)들의 수평적 네트워크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잘 입증되었다. 네트워크가 깊숙이 진행됨에 따라 여기에 참여하는 컴퓨터/기업/국가 사이에 권력이 분산되거나 평평해지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특정 중개자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등 특정 중개자 혹은 허브에 연결이 집중되는 것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이미 더 많이 연결된 노드에 새로운 연결이 계속 추가되는 방식의 ‘네트워크 효과’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불균등한 노드들의 네트워크 개념도 사례

    컴퓨터 네트워크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네트워크는 이런 현상이 훨씬 더 불균등하게 나타나는데, 이를 대칭적이고 수평적인 시스템과 대비시켜 ‘바퀴의 중심과 바퀴살 모양의 시스템(hub and spoke system)’이라고도 표현한다. 즉, 글로벌 경제사회 네트워크도 외형적으로는 각 국가들 사이에 수평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로 보이지만, 그들 사이에는 중심노드가 형성되어 정보를 집중하고 있고, 이렇게 만들어진 구조는 ‘잠김효과’가 발생하므로 이를 일개 국가가 변경하기는 매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중심노드는 특히 금융과 지식정보 분야에서 미국이 될 것이며, 여기에 더하여 최근 글로벌 공급사슬 측면에서는 중국의 허브 역할이 급속히 중요해지던 중이었다.

    상호의존성의 무기화와 그 남용?

    한창 미-중 갈등이 증폭되던 2019년, 정치학자 핸리 패럴(Henry Farrell)과 아브라함 뉴먼(Abraham Newman)이 네트워크 이론을 국제 정치,외교에 적용한 “무기화된 상호의존성(Weaponized Interdependence)”라는 논문을 발표해서 글로벌 시대의 갈등과 대립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비대칭적인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중심국가들이 상호의존 네트워크를 평화가 아니라 강압의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개념을 새롭게 구성한 것이다. 저자들은 경제 네트워크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네트워크의 중심/허브 국가들이 특정 분야 네트워크 지배력을 가질 수 있으며, 이 국가가 자신의 이익을 강제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무기로 네트워크 상호의존성을 이용할 수 있음을 설파했다.

    논문 저자들은 구체적으로, 네트워크상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서 네트워크에 참여한 다른 국가들에 대해 정보 우위를 장악하는 판옵티콘 효과(panopticon)와 네트워크 지배력을 이용해서 특정 국가를 해당 네트워크에서 배제시키는 관문 효과(chokepoint effect)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로 미국이 금융지배력을 기반으로 이란이나 북한 등 일부 국가의 금융자산을 동결시키거나 제재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고, 중국 화웨이 5G 장비 도입을 미국이 통제해온 사례도 마찬가지 범주에 속할 수 있다.

    상호의존성의 무기화라는 접근은, 글로벌화냐 블록화냐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벗어나서 최근의 흐름들을 다차원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해주는 통찰을 제공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 여전히 미국은 금융과 첨단기술 등을 주축으로 글로벌 경제네트워크에서 부동의 중심국가이며, 이를 기반으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상호의존성을 무기화하고 있는 중이다. 동시에 글로벌 자원과 부품의 일정한 허브 역할을 하는 중국 역시 무기화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최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영역인 에너지와 곡물의 글로벌 상호의존성을 매우 지능적으로 무기화함으로써 유럽을 어려움에 빠뜨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한국이 대일부품 의존도를 국산화로 대체하는 등 리쇼어링이나 자국산 대체화 등으로 네트워크 의존성을 줄이려는 시도도 일어나고 있다. 또 미국이 IT분야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핵심산업이라고 판단하는 분야에서 글로벌 공급망을 복수로 구성함으로써 네트워크의 분할을 시도하고 있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단기간 안에 이런 시도들이 결실을 보기는 쉽지 않다.

    특히 과거 트럼프 정부의 무리한 국제갈등 유발이 국제적인 지지를 얻지 못했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 푸틴의 러시아가 위태위태하게 에너지를 무기로 전쟁을 지속시키고 있는 것처럼, 상호의존성의 무기화를 남용하는 행태는 자칫 네트워크에 참여한 다른 국가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실패할 개연성도 얼마든지 있다. 이점이 과거의 블록화와 다른 점이다.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섣불리 선과 악의 이분법에 갇혀 A~Z까지 특정국가와 획일적인 동맹을 맺기에는 한국경제도 매우 다차원적으로 미국, 중국은 물론 유럽, 아시아, 그리고 기타 지역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 과거와 달리 반도체를 포함해서 일부 영역에서는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일정한 허브 역할을 수행할 역량도 가지고 있다. 바퀴 중심을 지탱해주는 미미한 바퀴살에 불과했던 시절은 이제 영원히 과거가 되었다.

    아울러 블록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평화나 민주주의, 그리고 특히 기후위기 대처와 같은 보편적 가치도 여전히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중요하다. 중국과 러시아가 스스로 보유한 네트워크의 허브 역량에도 불구하고 고립을 자초하는 것은 보편가치를 위반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블록화의 어느 한쪽에 줄 서는 식이 아니라 다층적인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어느 중심국가 편을 들기보다는 보편가치의 편에 서서, 경제 사회 네트워크의 각 측면에서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각각 허브 역량을 강화하는 차별적 대응을 하는 방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정의로운 경제> 연재칼럼 링크

    필자소개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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