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 이대로는
    인플레이션에 쓸려 내려갈 것이다
    [기고] 현 상태로는 '진보'도 함께 떠내려간다
        2022년 07월 05일 10: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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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가폭등 문제가 모든 이슈를 압도하는 상황이다. 물가폭등은 민생 악화를 의미한다. 윤석열 정부의 대처 방안 그리고 진보진영의 비판과 대안에 대한 논쟁적 글이다. 반박과 비판의 의견을 적극 환영한다. 특정 이슈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경제상황 전체와 흐름에 대한 분석, 전망을 둘러싼 토론이 필요한 때이다. <편집자>

    윤석열 정부는 지지 기반이 취약하다. 취임 50여 일인데 여론 지지율이 벌써 50% 아래다. 국회는 야당이 지배한다. 심지어 정치 경험이 짧은 윤 대통령은 여당에서 ‘객식구’다. 여론이 돌아서면 그를 지키겠다고 나설 사람이 많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물가폭등 문제가 정부 앞에 나타났다. 물가는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그야말로 심대하다. 실질 소득 감소를 견딜 수 없는 저소득 계층부터 빚으로 자산 투자에 나선 중산층까지, 아주 민감하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복합위기’에도 세계적 수준의 물가폭등이 핵심에 있다. 물가 대책에 실패하면 대통령에게는 다음이 없다. 바로 레임덕이다. 내년 하반기부터 시작될 총선 국면에 대통령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윤 정부는 이런 경제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할 역량을 가지고 있는 걸까? 6월 16일 발표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이하 ‘경제방향’)은 올바른 해법인가? 윤 정부를 비판하고 나선 진보진영은 보수의 대안이 될만한 처방을 제시하고 있는가? 나는 이 글에서 이 질문들에 답해보고자 한다.

    보수적 관점에서 봐도 뜬금없는 소득세 인하

    ‘경제방향’에서 가장 눈에 띄고, 언론도 부각해서 보도한 건 소득세(법인세, 종부세, 배당세 등) 인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소득세를 올린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어봤어도, 인플레이션 비상 상태에서 소득세를 내린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미국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대책으로 부자 증세를 추진해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증세가 인플레이션에 효과가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쟁점은 그 부작용이라 할 투자감소와 경기침체다. 윤 정부의 부자 감세는 진보/보수를 떠나 경제학적 관점에서도 뜬금없는 정책이다.
    더욱이 한국은행은 지속해서 기준금리를 인상 중이다. 한국은행은 경기침체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금리를 한동안 올리겠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윤 정부가 세금 인하 깃발을 들어 올렸다. 이는 금리 인상의 효과를 상쇄하는 조치다. 이자 비용 증가를 소득세 감소분이 메워주는 꼴이니 말이다.
    재정 측면에서도 윤 정부 말은 앞뒤가 안 맞는다. 윤 대통령은 반복해서 재정수지 균형을 말했다. 하지만, 감세로 생산이 증가해 세입이 증가하는 현상(래퍼 곡선)은 정부가 말한 ‘복합위기’ 상황에서 나타날 수 없다. 더군다나 비상경제에서는 정부가 민생 구제를 위해 써야 할 돈이 늘어난다. 재정수지는 악화할 수밖에 없다. 정부를 예의 주시하는 시장은 인플레이션 기대를 키울 것이다.

    말로만 복합위기, 행동은 천하태평, 결국 사달이 날 것

    경제학계 최근 논의에 따르면, 20세기 후반 이후 물가 상승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대 심리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필립스 곡선으로 설명하는 인플레이션, 즉 실업률 하락, 명목 임금 인상, 물가 상승의 연쇄 작용은 좀처럼 관찰되지 않는다. 노조 약화와 세계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후반부터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 기대 인플레이션은 안정적이었다. 정부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물가 안정이 최우선이라고 합의한 덕분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신자유주의 컨센서스다. 미국 연방준비은행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Ben S. Bernanke)는 이 컨센서스가 만든 시기를 ‘대안정의 시대’(Great Moderation)라고 불렀다.
    최근의 물가폭등은 대안정의 시대가 끝났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물가 상승의 단기적 요인인 공급 부족만이 아니라, 장기에 걸쳐 해결이 필요한 화폐 위기와 관련이 있어서다. 세계금융위기에 이어 코로나19 사태 때도 시행된 양적 완화와 천문학적 재정적자가 원인이다. 미국 연준의 경우 2007년과 비교해 2022년 발행된 현금이 7배나 많다. 유럽은행, 일본은행, 영란은행 등도 사정이 비슷하다. 더욱이 선진국들의 코로나19 이후 정부 부채비율은 2차 세계대전 때보다 높아졌다. 중앙은행이 천문학적 현금을 뿌렸고, 정부가 민간 저축을 대거 빌려와서 소비한 셈이다. 화폐수량 방정식에 따르면, 유통되는 현금이 생산보다 더 빨리 증가하면 물가가 상승한다. 사실 물가는 이미 한참 올랐어야 정상이다.
    그럼에도 2009년부터 최근까지 십여 년간 물가가 낮게 유지된 건 극도로 불안정한 미래 탓에 현금을 보유하려는 사람이 크게 늘었고, 여기에 더해 거대하게 거품이 일어난 자산시장이 현금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실제 소비와 투자에 유통되는 현금은 매우 적었다. 단적인 예로 다단계 사기와 다를 바 없는 비트코인의 2021년 시가총액이 2007년 달러 발행 총액과 같을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주가는 코로나19 기간에 단숨에 50% 가까이 뛰어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도권 아파트 가격 폭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금 보유와 자산 거품이 대안정 시대의 관성, 즉 저물가 저금리가 ‘노말’ 상태라는 상상을 지속시켰다.
    물론 중앙은행은 가능한 한 빨리 현금을 다시 거둬들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테이퍼링(tapering)로 불리는 긴축 정책이 시행될 때마다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심지어 바이든 정부는 코로나19 후유증을 수습하느라 작년에 사상 최대규모의 재정지출을 단행했다. 얼마 전까지도 긴축은커녕 확장이 대세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터질 문제는 결국에는 터지고야 마는 법. 올해 마침내 큰일이 터졌다. 공급 둔화로 물가가 폭등하자 대안정 시대의 관성에 제동이 걸렸다. 무서울 정도로 커져 버린 자산시장 거품도 공포를 키웠다. 비트코인, 주식, 부동산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현금의 가치를 끌어올리지 못하면 기대 인플레이션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었다.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금리를 올리니 자산시장 거품이 더 빠르게 꺼졌다. 거품이 꺼질수록 잠겨있던 현금도 더 많이 유통됐다. 이것이 바로 인플레이션 회오리였다.
    물론 기대 인플레이션의 안정성이 완전히 깨진 것은 아니다. 만기가 다른 국채를 이용해 측정하는 금융 시장의 인플레이션 심리는 대안정 시대의 관성을 여전히 따른다. 예로 5년 만기 일반 국채와 물가연동 국채의 격차(스프레드)는 여전히 2005년 수준이다. 시장이 5년 후 물가와 금리에 대해 낙관적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올해 인플레이션을 정확히 예측한 래리 서머스(Lawrence H. Summers)는 이런 기대 심리가 착각이라고 확언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물가 지수는 과소 측정되고 있다. 실제 상황은 우리가 지표로 보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현재는 1970년대와 비슷하며, 상황을 수습하려면 1980년대 초 급격한 금리 인상보다 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당연히 대규모 실업을 동반하는 경제침체는 피할 수 없다. 연준과 행정부가 과감한 긴축에 나서지 않으면 조만간 과소평가된 물가의 실제 상태가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기대 인플레이션도 고삐가 완전히 풀릴 것이다. 장기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물으나 마나 온전하기 어렵다. 한국의 금융 시장은 미국에 종속되어 있다. 미국이 재채기하면, 한국은 앓아눕는다. 더군다나 미국발 위기는 항상 원화의 가치 폭락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주의가 필요하다. 예로 2009년 한국 금융시장에는 별다른 사건이 없었지만, 미국발 금융위기에 원화 가치가 폭락했다.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더라면, 당시 한국은 제2의 외환위기를 겪었을 가능성도 크다. (참고로 현재는 한미 통화 스와프가 없다.)
    이런 조건에서 윤 정부의 ‘경제방향’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 시국에 감세를 꺼냈고, 재정수지를 두고도 말과 행동이 다르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폭풍이 밀려오는데, 한국은 만사태평 정도가 아니라 아예 스스로 또 다른 폭풍을 일으키는 형국이다. 물론 부자 감세가 대기업과 수도권 아파트 소유자의 지지를 일시적으로 가져올 수는 있다. 이들에게 가는 현금 이득이 상당하다. 하지만 이런 지지는 일장춘몽이다. 인플레이션 통제에 실패하면, 다시 말해 자산의 실질 가치가 하락하면, 가장 먼저 윤 정부를 버릴 집단이 또한 저들이기 때문이다.

    공공성 뒤에 숨어 기득권을 챙기려는 진보

    한편,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의 ‘경제방향’ 비판은 내용이 다소 뻔했다. 6월 16일 발표된 정의당 정책위원회 논평은 국가 역할을 축소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는 비판이었다. 참여연대는 기자회견에서 효율성만 강조하지 말고 공공성이 담보된 국가책임 복지 정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두 논평은 2022년 경제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예로 두 단체는 물가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한 후에 윤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따른다고 비판했는데, 앞서 말했듯 기대 심리가 만드는 인플레이션 회오리를 오랫동안 잠재우는 데 혁혁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컨센서스였다. 두 단체는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도 요구했는데, 확장적 재정정책을 핵심으로 한 케인스주의는 1970년대 저성장 고물가 상황을 수습하지 못해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었다. 1980년대 레이건과 대처의 등장은 케인스주의 실패와 무관치 않다.
    아마도 두 단체가 바라는 정부의 롤모델은 미국구조계획(American Rescue Plan)’을 실행한 바이든 행정부일 것이다. 2021년 바이든 정부는 1조9천억 달러(약 2천1백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실시했다. 특별 실업 급여, 빈곤층 아동지원, 학비 지원, 소상공인 지원 등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요구한 복지 정책 대부분이 총망라되어 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는 올해 물가폭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인플레이션 책임론에 시달린다. 과도한 재정지출 탓에 물가가 다른 나라보다 더 올랐다는 비판이 많다. 11월 중간선거 전망도 어둡다. 그나마 성과가 적지 않았던 일부 복지 정책까지 정치적 패배로 모두 떠내려갈 판이다. 정의당과 참여연대는 1970년대의 역사적 실패만이 아니라 바이든의 곤란함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 같다.
    물론 물가폭등에 취약한 계층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구제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덮어놓고 정부가 다 해결하라는 식도 정답은 아니다. 참여연대가 말하는 “공공성이 담보된 국가책임” 하에서 지대(rent)를 추구하는 집단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예로 문재인 정부의 전국민재난지원금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직접적 손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배분되어야 할 정부 자원을 아무런 손해도 입지 않은 사람들에게 ‘용돈’처럼 나눠준 정책이었다. 보편적 복지, 기본소득 같은 말들로 포장됐지만, 선거를 앞둔 매표 정책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시 민주노총부터 정의당까지, 진보진영 대부분은 모든 국민에게 더 많이 지원금을 나눠주라고 요구했었다. 근본적 반성이 없다면, 이들의 물가 대책은 전국민재난지원금 모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최근 공공부문의 노조들이 느닷없이 민영화 정책 분쇄 투쟁을 조직하는 모습은 공공성으로 포장된 지대 추구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노조는 물가폭등 정세에서 서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공공요금을 통제하라고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려는 일체의 시도를 민영화로 프레이밍 해서 공격할 태세다. 공공기관의 유사 중복 업무를 정비하는 정책도 민영화, 재무 상태가 위험한 공공기관을 집중해서 관리하겠다는 정책도 민영화다. 2022년의 공공성은 물가폭등에 대처하는 공공기관의 역할이 최우선인데도 말이다.
    참고로 한국의 공공부문은 민간과 비교해 임금수준이 월등히 높다. 공공기관 평균 월 임금은 580만 원으로 대졸 평균 470만 원은 물론이거니와 대기업 평균 530만 원보다도 많다. 소득에 여유가 있음에도 물가폭등 시대에 어떻게든 공공요금을 낮춰보겠다는 시대 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공공운수노조는 올해 초에 기획재정부를 해체하라는 캠페인도 펼쳤는데, 재정건전성을 명분으로 공공기관 예산을 통제하지 말라는 것이 핵심 요구였다. 인플레이션 시대임에도 재정적자가 문제가 없다며 자신의 기득권을 손대지 말라는 이야기다. 공공성은커녕 최소한의 공익조차 찾아볼 수 없는 사익 추구의 전형이라 하겠다.
    참고로 나는 한국의 진보가 경계해야 할 모습을 최근 터키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우파 포퓰리즘의 희극적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부 기관이 발표한 물가 상승 지표를 믿지 말라고 선동하면서 서민 정책이란 명분으로 작년 말에 최저임금을 50% 인상했고, 금리는 5%포인트 인하했다. 당연히 서민들의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상승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올해 터키 물가상승률은 6월 현재 70%에 이른다. 최저임금의 실질 구매력은 하락했고, 자본은 해외로 도주했다. 한국의 진보가 말하는 민생 정책, 공공성 정책은 에르도안의 정책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물가폭등의 동역학을 무시하면서 정치적 의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윤 정부는 말로만 복합위기를 말할 뿐이다. 서머스의 예측대로 상황이 흘러가면 현재의 한국경제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감세 타령, 규제 타령으로 허송세월 보낸 윤 대통령은 총선 전에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 이때 진보진영이 대안으로 등장하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못할 것 같다. 감세, 규제 하소연만큼 진부한 신자유주의 타령도 민중에게 해롭다. 포퓰리즘을 견결하게 비판하면서 구태의연한 보수/진보 구도를 뛰어넘어 세계적 혼돈에 대처할 정치 세력이 필요한 때다.

    필자소개
    <대통령의 숙제> 저자, 노동‧경제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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