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당과 1인2표제,
    안주하지 말고 극복해야
    [기고] 위기의 정의당에 대한 조언
        2022년 06월 28일 04: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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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선거 참패 이후 정의당의 진로와 방향에 대해 비대위를 비롯하여 논의가 활발하다. 이름도 혁신비대위이고, 차기 당 지도부 선거도 혁신지도부 선거라고 표현한다. 경호 정의당 마포당원의 기고 글도 그런 위기에 대한 해법과 방향에 대한 의견을 담고 있다. 다른 이들의 기고도 환영한다. <편집자>

    지금 많이 거론되는 정의당의 문제들은 사실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당의 이름과 강령은 당원들에게나 중요하지, 국민들이 강령을 읽어보고 정의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한 것은 아니다. 지방선거 때 메시지가 어땠고, 대선의 캠페인이 어떻고, 민주당 2중대니 국힘 2중대니 하는 이야기들도 사실 그 뒤에 더 큰 원인이 있다. 그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짚을 수 있겠지만, 2002체제에 안주한 것, 내지는 포박당한 것은 별로 논의되지 않는다.

    2002체제의 특징은 1인2표제로 요약된다. 한 표는 지역구에서 인물을, 한 표는 전국 단위에서 정당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을 바탕으로, 전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는 정당들도 정당명부에서 표를 얻어 비례의석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8.13%를 얻어서 광역에서 비례 9명과 지역구 2명, 기초단체장 2명을 배출했고(기초는 당시 정당추천이 아니었다), 겨울의 대선 TV토론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2002년 대선에서 무상급식 등의 정책과 당의 존재감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것을 토대로 2004년에는 비례 8명, 지역구 2명을 당선시키면서 ‘최초로’ 원외정당이 원내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때까지 모든 신당은 기존 정당의 의원이 빠져나와 만든 것이지, 당부터 만들고 나서 의원을 배출한 것은 없었고, 민주노동당이 처음이었다.

    이후 2008년 총선 직전 비례명부 구성방식과 당의 지향을 둘러싸고 결국 민주노동당은 분당되었는데, 돌이켜보면 사실 그 씨앗은 2004년의 성공 때부터 이미 뿌려진 것이 아니었나 싶다. 지역구 2명은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노동조합의 전폭적 지원 덕분에 가능했고, 다음은 수도권도 뚫어야 한다는 ‘지역구 돌파’의 과제 속에, 인지도 높은 정치인을 지역구에 출마시키겠다는 (불가피한) 전략이 전면에 등장하며, 비례명부의 작성은 당내 민주주의라는 명분 속에 정파 간 세 대결의 결과에 맡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1인 2표제의 성공 공식에 안주해버린 셈이다.

    진보정당의 지역구 돌파는 아주 특수한 경우에나 가능했다. 사천은 후보 개인의 노력도 있었지만 상대 당이 헛발질을 한 덕분도 컸다. 관악은 민주당과의 선거연합 덕분이었다. 독자적으로 도전한 경우들은 당시 진보정당이 배출한 최대치의 걸출한 정치인들도 떨어지기 일쑤였다.

    2004년까지의 여러 번 선거에서 새로운 당의 이름을 알리고 비례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낙선이 뻔히 보이는 지역구 선거에 출마한 숱한 당원들이 있었다. ‘너희는 당도 아니고 시민단체도 아니네’라는 말을 들으면서 처음엔 희생플라이를 치기 위해 나섰어도, 노력이 쌓이면 다음이나 다음 타석에서는 안타나 홈런을 기대한 이들은 청춘을 갈아 넣었다. 그러나 제3당의 ‘박스권’을 벗어나긴 힘들었다. 3번 이하의 기호를 이리저리 배정받거나, 이전보다도 낮은 득표에 좌절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니 더욱 비례를 잘 구성했어야 하고, 다음 단계로 당을 발전시키고 정치인들을 키웠어야 하는데, 2002체제를 뛰어넘지 못하고 결국 민주노동당은 쪼개지는 사태를 맞았다. 그러나 몇몇 정파들의 욕심이나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아니었더라도, ‘진보다당’시대의 도래는 시간문제이자 필연이었다. 1인2표제 덕분에.

    위기의 세 가지 측면

    진보정당은 ‘표의 비례성’을 강조하며 비례대표제 확대를 외치고, ‘국민을 닮은 국회’를 만들자고 하였다. 그런데 자신의 비례대표 명부는 국민을 닮았던가? 그래도 거대 양당에 염증을 느낀 이들의 표를 얻어, 미래에 투자할 이들의 선의에 기대어, 그럭저럭 명맥은 유지했다. 1인2표제 덕분에. 이것이 문제의 원인(1)이다.

    2020년에는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되며 전기가 마련되는 듯했다. 결과적으로는 위성정당 때문에 제도개혁 효과는 없었다. 비례명부를 정파들의 동원력의 순서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결정하려던 시도도 실패했다. 위성정당으로 인해 전체 당선자가 쪼그라들면서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은 참작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위성정당이 없어서 서너 명 더 당선되었다고, 비례 명부 작성 방식이나 선출 과정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긴 힘들다. 이것이 문제의 원인(2)다.

    물론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열심히 의정활동을 했다. 노동이나 불평등의 의제를 외면했다는 지적은 허수아비 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의원들의 노력만으로 앞서 문제의 원인(1), (2)를 극복하긴 힘들었다. 아니, 오히려 이들이 잘 할수록 (1), (2)의 문제들은 더 은폐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많은 (예비)정치인들이 당을, 혹은 당 활동의 전면에서 떠났고, 지역구 출마든 당직선거 출마든 결국 나중에 비례후보 선출 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삼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이것이 문제의 원인(3)이다. 지난 지방선거와 비대위도 이 원인의 자장 아래에 있다. 2002체제의 포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사를 옮기는 것은 재정난 타개를 위해 필요하고, 지난 10년 평가도 중요한데, 더 중요한 것은 이 포박에서 벗어날 기획이다. 이 포박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총선 때 2~3명이라는 고만고만한 숫자의 의원을 배출하는 소수정당 지위야 유지할 수 있을지언정, (비례의석이 훨씬 적은) 지자체에서의 의미 있는 세력화도 힘들고, 각자는 차별성을 주장하지만 국민들이 볼 때는 별로 다르지 않은 고만고만한 ‘진보정당’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며, 내부 활동가들을 갈아넣어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이다. 양당에게 실망하거나 미래에 투자하고 싶은 국민의 표는 이슈에 따라 쉽게 비껴가거나 어느 쪽이든 더 나쁜 악당을 막아야 한다는 협박에 굴복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당의 정체성을 확실히 다시 세우는 것은 기본이겠지만, 사실 지금 정체성도 원내 정당 중에서는 제일 낫다. 진보정당의 국가론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다른 정당은 제대로 된 국가론이 있는가? 지역구에 갑자기 나타난 후보들도 거대 양당에 더 많다. 자기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으니 사안별로 비슷한 입장을 보이면 2중대로 몰린다는 지적은 귀 기울여 들어야 하지만, 역시 다른 정당들도 정체성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유독 정의당을 안 찍었을까?

    애초에 ‘이번보다는 미래를 위해’ 찍는 당이라는 것은 모든 소수정당들이 초창기에는 겪게 되는 과정이다. 한 후보는 당선권에 있어도 당 전체는 그런 상황이다. 어떤 당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투자할 의미가 없어서 안 찍은 것이라면 투자환경도 바꾸고 효능감과 신뢰를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문제의 원인들을 다시 보자.

    앞서 지목한 문제의 원인 (1)은 1인2표제라는 외부의 제도, 원인 (2)는 지역구 돌파와 비례 명부에서의 당내 민주주의라는 명분과 연동된 내부의 공직후보 양성 제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 원인 (3)조직문화와 당원들의 행동전략이다.

    여기서 (1)은 그 자체로 부정적이라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넘어서야 할 장벽이다. 한때는 원외정당의 원내 진출을 도왔지만, 지금은 딱 현재의 수준에 포박하고 있는 제도다. 연동형 비례제도를 제대로 도입하든,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든, 어찌 되었든 게임의 규칙을 바꿔야 한다. 물론 어렵다. 하지만 이것을 바꾸지 못하면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이다. 따라서 국민의 지지가 의석수에 비례하는 상황으로 지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비상한 수를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2)공직후보 양성 제도도 바꿔야 한다. 그래야 (3)도 바뀐다. (2)는 지역구와 비례로 나뉘는데, 우선 지역구 돌파는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거대 양당들도 특정 지역구가 아니면 당선이라는 결과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어렵고, 전체 분위기나 출마 구도에 따라 보너스로 주어지는 것이다.

    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수한 의정활동으로 이름을 날린 현직의원들도 낙선했다. 평소 우호적인 지역조직이나 지지집단이 튼튼해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만들어져도 인적 구성은 계속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를 수권하기 위해서라도 지방자치단체의 운영권한과 경험은 꼭 필요하다. 지자체에서의 예비의원들이 선거와 선거 사이에 활동할 수 있는 공간과 생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그건 ‘지역구 출마자에게 다음 선거 비례명부에서 가산점 부여’를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비례대표 전문정당’이라도 제대로 해야

    지역구 돌파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비례전문정당’이라는 평가를 오명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비례대표제 전면 확대를 바라는 정당답지 않다. 문제는 오히려 ‘비례전문정당조차도 제대로 되지 못한 지금의 모습이다. 당내 민주주의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가 국민들 앞에 ‘국민을 닮은 국회’를 만들 명부를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지혜를 짜내야 한다. 지역구 출마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비례명부 작성방식은 지자체에서의 예비의원 양성이나 전략적인 총선 비례명부를 만드는 목표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지역구 출마자에 대한 보상은 다른 방식이어야 하고, 지역구 출마자가 비례 후보가 된다면 그간의 고생에 대한 보상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한다.

    선호투표제라는 것도 있다던데, 정당민주주의나 선거제도 전문가들이 좋은 제안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짧은 소견으로는 일단 1) 당내 찬반투표로 명단을 확정한 개방명부를 만들면 국민참여 선거인단에서 순위를 정하던가 2) 대의 조직에서 명부를 만들어 당원 총투표로 확정하던가 하는 방안이 떠오른다. 전자는 좀 더 대중적이고, 후자는 좀 더 전략적인 것이 특징일 텐데, 물론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환영이다.

    총선 비례 명부에서 앞 순위를 받기 위해 활동가들이 당 내외 활동을 거기에 맞추고, 지역구에서 오래 고생한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지역구 당선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비례로 몰리고, 그러다가 비례 명부 중 일부는 급히 외부인을 모셔오고, 그 결과 한번 비례를 하고 나면 지역구에서 장렬히 산화하거나, 다른 활동공간을 찾아 떠나가는 모습이 반복되면, 아무리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당으로 재창당해도 영원히 2002체제에 갇힌 채로 조금씩 시들어갈 것이다.

    20년 전 1인2표제를 도입할 때처럼 헌법소원을 걸든 장외투쟁을 하든, 이놈의 2002체제를 바꿔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 단계가 언제 올지, 2024년까지 사활을 걸고 제도개혁 투쟁을 해도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더더욱 당 내의 공직후보 양성제도를 바꿔서 진보정당의 정치인들이 어려운 형편에서도 예측 가능하고 지속가능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활동가들의 행동전략들과 조직 문화도 바뀌고, 애정을 가진 개개인 예비 정치인들이나 당원들의 노력도 빛을 발할 수 있게 당이 일신될 것이다.

    국민을 닮은 국회를 만들겠다는 정당이라면 국민의 대표로 뽑아달라고 후보를 내세우는 방식도 그에 맞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아, 비례제 확대가 좋은 것이구나, 국힘당 2중대이든 민주당 2중대이든 비례는 정의당을 찍어줘야겠구나’ 하고 제도개혁을 지지해주거나, 현 제도에서도 정의당을 지지해 줄 것이다.

    2002체제의 역할을 역사 속으로 보내고, 2022체제에 대한 실패한 시도는 딛고 넘어, 2024체제를 기획하는 것은 특정 정당의 사활을 넘어,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그래야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정신을 차리고 다른 정당들도 힘이 커질 것이다. 배도 문제지만, 항해술도 바꿔야 한다. 난파한 정의당이 제 항로를 찾기를, 건투를 빈다.

    필자소개
    정의당 마포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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