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10년차 농부가 들려주는
    시골살이의 재미와 특별한 공동체
    [책소개] 『슬기로운 시골 생활』(차남호/ 사우)
        2022년 06월 18일 01:45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귀농·귀촌을 꿈꾸는 도시인들이 많다. 하지만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생계의 방편을 어렵사리 해결했다고 해도 ‘관계’의 문제가 남아 있다. 알차게 준비를 해 귀농·귀촌을 실행하고도 지역민과 갈등을 빚어 고립되거나 결국 시골을 떠나는 이들이 있다. 현지인의 텃세나 왕따 따위 문제가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귀농 10년 차 저자에 따르면 시골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있어서 ‘관계의 기술’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느슨한 네트워크 형태의 공동체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기자기한 일상을 들려준다.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일대에는 ‘가치 있는 삶’을 ‘재미있게’ 꾸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벼농사두레’라는 이름으로 더불어 농사짓고 수시로 잔치판을 벌이는 사람들. 전업농, 취미로 한두 마지기 농사를 짓는 ‘레저농’, 언젠가는 벼농사를 지어보겠다는 잠재적 농부 80여 명이 그 주인공이다. 전업농 2명을 빼고는 주말에만 농사를 짓는 ‘레저농’이거나 그저 유기농 벼농사의 가치에 동조해 함께 어울리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논농사는 생태적 가치를 지키는 삶이다. “논은 천연의 만능 댐으로서 홍수를 조절하고, 지하수를 길러내며, 여름철 뜨거운 공기를 식혀준다. 또한 토양 유실과 지하수 오염을 막고, 수질과 대기를 정화하는 등 환경을 보전한다. 나아가 자연경관을 유지하고, 오염과 공해를 줄이는 효과가 있어 지구생태계를 보호한다. 논이 인류에게 보탬이 되는 일은 이밖에도 헤아릴 수가 없다. 따라서 벼농사를 짓는 것만으로도 공익에 크게 기여하는 셈이다. 게다가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이니 두말할 나위가 없는 선택이었다.”_ 본문 ‘내가 지긋지긋한 논농사를 선택한 이유’ 중에서

    아무리 생태적 가치를 중요시한다고 해도 유기농 벼농사는 품이 많이 들고 고된 일이다. 논농사,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내겠지만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함께하면 힘겨운 노동이 놀이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네 일 내 일 가리지 않고 함께하니 힘들기는커녕 즐겁기만 하단다. 일하다가 갑자기 장기자랑이 벌어지기도 한다. 새참과 술 한잔을 나누며 웃고 즐기다 보면 피곤이 싹 가신다. 일이 없을 때도 수시로 온갖 핑곗거리를 만들어 잔치판을 벌인다.

    대부분이 직장인이어서 주말이나 공휴일에 파종, 모내기, 김매기같이 일손이 많이 필요한 두렛일을 진행하게 된다. 농사를 짓지 않는 회원들도 기꺼이 일손을 보탠다. 어느 집 논에 피가 너무 많이 올라왔다는 공지가 뜨면 다들 출근하기 전 1~2시간씩 김매기를 돕는다.

    이 동네에서는 벼농사가 ‘가치 있는 삶’을 체현하는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들이 ‘가치’를 공유하면서 독립적이되 서로 연대하며 사는 모습은 시골 공동체의 새로운 모델로서 주목할 만하다.

    384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누리며 즐겁고 여유롭게 사는 방법

    이곳에서는 “시골은 문화적 소외 지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벌어진다. 번듯한 전시회와 음악회가 수시로 열리고, 유명한 강사의 초청 강연도 줄을 잇는다.

    “다들 자그마한 면소재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공연실황을 전한 페이스북에 달리는 댓글은 하나 같이 ‘(개)부럽다.’ 이곳에는 고산의 문화 중심지라 할 만한 ‘읍내카페’가 있다. 이 카페는 공연이나 강연이 잡힌 저녁 시간에는 눈물을 머금고 장사를 접는다. 공연뿐 아니라 전시공간으로, 강연장으로 읍내카페는 이 동네 ‘문화의 전당’이라 불러 손색이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핵심은 카페라는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괜찮은 공연과 강연, 전시를 할 예술가와 작가를 데려와야 한다. 그거 아무나 못 한다. 그걸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이들이 이 동네에 있다는 얘기다. 더 길게 쓰지 않겠다. 읍내카페에 오면 그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다.”_‘시골은 문화적 소외지역이다?’ 중에서

    이곳에서 공연이나 전시회, 강연만 수시로 열리는 게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일상에서 예술을 생산하고 누린다. 누구네 집들이는 작은 음악회라는 콘셉트로 진행되고, 별다른 용건 없이 모이는 친목 자리에서 ‘몰래카메라’를 찍어 단톡방에 올려 회원들을 즐겁게 해준다. 회원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강사로 나서는 인문학 강좌도 성황을 이룬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살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할 터이다. 거창한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기보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를 선택한 삶이기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마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마을을 넘어 가치를 공유하는 시골 공동체의 새로운 모델

    전통 사회의 농경 공동체는 사라진 지 오래다. 대부분이 논농사나 밭농사로 생계를 꾸리면서 일손이 많이 필요할 때 품앗이를 하는, 그런 마을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농촌의 모습도 완전히 달라졌다. 축산, 시설 채소, 과수, 특용작물 등등 저마다 한 분야에만 매달리는 상황이다. 그러니 두레를 조직해 협업을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전통적인 ‘마을’이 해체된 상황에서 마을을 다시 만들자고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자체마다 마을 공동체 지원 센터를 개설하고, 마을을 다시 만들자고 지원금을 주고 여러 사업을 벌인다. 하지만 ‘마을 만들기’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농촌 경제 구조가 바뀌어버린 상황에서 마을 공동체를 다시 복원할 수 있을까? “마을 주민들은 경제 활동 영역이 분야별, 작목별로 분화된 지 오래고, 이는 생활양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태에서 같은 행정구역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꼭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나? 그저 ‘사이좋은 이웃’으로 지내면 그만 아닌가? 우리 벼농사두레가 마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핵심은 유기농 벼농사라는 공동의 경제 활동, 함께 추구하는 생태 가치다. 공동 노동(두레)이 가능한 권역이고, 지향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교통-통신만 충분히 뒷받침된다면 마을, 리, 면 따위 행정구역은 문제가 아니다.”_‘마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중에서 그리하여 ‘벼농사두레’ 사람들은 행정구역상 마을 단위를 넘어 벼농사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이들과 더불어 일하고 놀고 나누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이 책은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자리 잡고 싶은 이들에게, 시골 생활의 새로운 지평을 구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하나의 실마리가 되어 줄 것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