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념적 ‘타락’을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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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23일 03: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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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은 <월간 헌정>을 통해 ‘정치 지도자에 띄우는 공개편지’라는 제목으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그리고 민주노동당 대표 앞으로 편지를 보낼 예정이다. 이 잡지  2월호에 실릴 예정인 첫번째 편지는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에게 보내는 것이다.

    남 전 장관은 보수적인 정치 행보를 걸어온 인사로서는 진보진영에 대한 이해와 관심 그리고 애정을 가지고 있는 흔치 않은 인사다. 그는 이 글이 문성현 대표뿐 아니라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천영세 의원 등 모두를 향해 쓰여진 편지라고 밝히고 있다.

    남 전 장관은 이 글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발언 이후 청와대 회동에 불참한 민주노동당의 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실사구시 정신에 토대를 둔 정치를 추구할 것을 민주노동당에 주문했다.

    남 전 장관은 또 ‘화해와 상생’을 강조하는 시민운동가들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하고 있는데, 그는 각 정파 간의 정책 경쟁과 대립이 선명하게 제시돼야 할 현 단계에서 ‘화해와 상생’을 강조하는 것은 마치 "정원에 꽃이 피기도 전에 정원사가 가위를 갖다 대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과거 진보당의 사례와 ‘간첩’ 사건을 예로 들며 민주노동당 안에 외부의 공작이 스며드는 것에 대한 주의도 당부하고 있다. 그는 또 당 기관지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남 전 장관은 10~1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레디앙>은 월간 헌정과 필자의 양해를 얻어 남 전 장관의 공개편지를 전재한다. <편집자 주>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에게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친분이지만, 문제를 국민 앞에 제시하여 본다는 뜻에서 이렇게 공개편지를 띄워봅니다. 이 글은 문대표에게 향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권영길 원내대표, 노회찬,  심상정, 천영세 의원 등등 어느 누구에게 보내져도 되겠습니다.

    역풍 맞고 있는 민주노동당

    나는 민주노동당의 여러 지인들을 존경하고 있다고 우선 말하고 싶습니다. 문대표만 하더라도 서울대학 상과대학의 후신인 학과를 나오고 밑바닥 노동운동에 뛰어 들어 고생고생 오늘에까지 온 분이 아닙니까. 서울상대와 그 후신이라면 경제의 시대인 요즘엔 법대와 의대를 능가하는 출세 코스로 관계, 학계, 정계, 재계의 상층들에 그 출신이 포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공장의 막노동에 뛰어들어 노동운동을 했다니…

    민주노동당은 요즘 역풍을 맞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인기가 바닥을 헤메고 있으니 여하튼 비슷하게 진보 진영으로 간주되고 있는 민주노동당도 동반 추락을 할 수 밖에 없는 일이지요. 민주노동당으로서는 노정권을 신자유주의적이라고 비난하며 차별화하고 있지만, 일반 국민들의 인식은 ‘초록은 동색’ 정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언어의 과잉 살상 시대’라는 표현도 있지만, 히스테릭하다 할 수 있는 분위기에 말려드는 것입니다.

    그러한 국민의 인식과 관련하여 정치적 이름 붙이기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익, 특히 극우진영에서는 노정권을 포함한 진보진영을 비난할 때 ‘반미친북좌파’ 등의 표현을 자주 씁니다. 여기서 ‘반미친북’의 문제는 따로 생각하기로 하고 ‘좌파’란 표현만 두고 생각하여 보아도 일이 까다롭습니다.

    본래는 좌파, 우파 또는 좌익 우익이라고 말하는 것이 별스럽게 문제될 것은 없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남북이 분단되어 비극적인 일들을 겪은 우리나라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게 엉뚱한 함축을 갖는 것으로 번져 갑니다. 좌파, 좌익, 좌경을 거쳐 용공, 친공, 빨갱이라는 데까지 의미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교섭단체 구성할 수 있을만큼 커야 정치 진일보

    예전에는 ‘혁신계’ 운운이라고만 했었습니다. 그때는 革新의 革자가 가죽을 뜻하기도 함으로 농담 삼아 ‘가죽신’ 운운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여하간 이러한 이름 붙이기의 피해를 보수 진영보다는 진보진영이 더 많이 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민주노동당도 대도시를 벗어나 소도시나 농촌으로 들어갈수록 그런 찬 분위기를 더욱 느낄 것입니다.

       
      ▲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나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입장을 글로써 분명히 밝힌 바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국회에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의석(지금은 20석)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정치의 구조로 볼 때 그래야 정치는 진일보하리라 보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은 나의 정치적 상상력을 벗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런 비교적 호의적 입장을 밝히면서 최근에 있던 노대통령의 개헌 제의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반응에 관해 쓴소리를 해야겠습니다. 한나라당이 앞장서서 청와대에서의 각 당 회담을 거절했는데, 다른 당은 모르겠으나 왜 민주노동당까지도 덩달아 회담 참가를 거절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헌의 내용보다는 시기가 안 맞는다고 부정적인데, 비록 민주노동당이 개헌에 반대한다 하더라도 회담은 수락하고 참석하여 반대하는 것이 정치를 하는 바른 행동규범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은 약자입니다. 밑에 깔려있는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대통령에(노대통령 뿐만 아니라 누구든 대통령에) 많은 요구를 하여야 할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정치루트에 훼손이 가게 하는 충동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잘못인 것 같습니다.

    청와대 개헌 회동 불참은 잘못된 충동 반응

    최근에 내가 관심을 갖는 일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화해와 상생’이라는 시민운동가들의 움직임입니다. 대부분 나도 알고 있는 좋은 사람들이어서 그들이 선의를 갖고 그런 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조선조 때의 사화(士禍)를 보면 때로는 하찮은 일들을 트집 잡아 피를 보기까지 했지요. 요즘의 지식인 사회의 이른바 실명 비판 현상을 보면서 혹시라도 그런 사화의 재판이 되는 게 아닌가 얼핏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론 기우겠지요. 아무튼 ‘화해와 상생’ 운동이 그 비슷한 불행을 막는데 역할을 한다면 굳이 나쁘다고 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운동이 선진 서양사회에는 없는, 어쩌면 한국 특유의 운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구조적인 갈등이 분명히 있기에 의견의 대립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닙니까. 그래서 정파간의 대결로까지 되는 것이지요. 다만 페어프레이를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필요한 의견의 대립이 명확한 윤곽도 잡지 못하고, 더군다나 분명한 정책적 선택지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으며, 애매한 상태에서 미분화의 혼돈을 헤매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화해와 상생’이라니요. 그것은 싹이 자라서 꽃을 피우기도 전에 정원사의 가위를 갖다 대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요.

    우리의 상황은 정책적 선택지가 더욱 분명해지고, 국민들이 알고 판단하여 선택할 수 있는 장래 한국의 모델들이 분명하게 제시되는 일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전에 NGO업자(요즘엔 NGO꾼이 너무 많습니다만)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흔히 택했던 슬로건을 우리나라의 알토란같은 엘리트들이 선택했다는 것은 아쉽습니다.

    미래 한국의 훌륭한 모델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민주노동당과도 중요하게 관련이 됩니다. 민주노동당이 장래 한국의 훌륭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지요.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요. 민주노동당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고 모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청사진이랄까 하는 것이 잘 보이지 않아 분발을 당부하는 것입니다.

    앞서 ‘반미친북’이라는 이름 붙이기에 관해 이야기를 뒤로 미루고 전개하지 않았는데 그러한 우파의 공격은 노정권에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에게도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안에도 여러 계파가 있고 또한 잡다한 사람들이 있어 밖에서 보기에 혼란스럽습니다. 문 대표도 그런 혼선 속에 살고 있고 그런 것을 정리하느라 애쓰고 있을 것이기에 시시콜콜 이야기는 않으려 합니다.

    다만 최근에 민주노동당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이론과 실천> 작년 12월호에서 홍승하 최고위원의 ‘북한인권결의안과 북인권’이란 글을 읽고 신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진작 그런 비교적 균형 잡힌 이야기가 나와야 할 것이 뒤늦었다는 생각도 있지만 말입니다.

    “북한인권 결의안과 북 인권 문제를 단순 등치시키거나 대립되는 문제로 보는 이분법은 이제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는 결론인데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런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기획탈북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탈북이 기획탈북이라는 논리는 놓여진 현실을 애써 보지 않으려는 것으로 문제 해결 능력을 의심받게 된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대북 봉쇄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북의 핵 실험과 인권 문제도 비판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인권 문제의) 원인이 전적으로 미국의 봉쇄정책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의 통치체제에도 문제는 있는 것이다.”

    좋은 미국, 나쁜 미국 양면성 유념해야

    위에 인용한 홍승하 최고위원의 의견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당 안에 없지 않아 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홍최고위원의 의견과 같은 생각을 잘 발전시키고 그러한 견해가 대세를 이룬다면 민노당의 대국민 이미지도 크게 향상되리라고 믿습니다. 미국에는 ‘좋은 미국’ ‘나쁜 미국’의 양면이 있음을 유념하기 바랍니다. 나 자신은 ‘좋은 미국’에 더 무게를 두지만 말입니다.

    문대표에게 여러 번 되풀이한 이야기이지만, 전날에 진보당을 했던 전세룡씨의 회고담을 다시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죽산 조봉암 전집>에 수록되어 있는 글인데 전씨는 그때 진보당을 출입하던 사람들 중 3분의1은 죽산계, 3분의 1은 동암(서상일씨 아호)계,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각종 정보기관에서 나오는 정보계라고 술회하고 있지요.

    정보계에서는 국내 각종 정보기관은 물론 미국 측도 포함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전씨는 언급 안했지만 거기에 북한의 정보원이나 공작원이 포함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각별히 주의하라고 전세룡씨의 회고담을 자주 거론한 것이지요. 민주노동당에도 가끔 간첩 관련 사건이 생기고 있는데, 당세가 커질수록, 시국이 혼란해질수록 더욱 조심에 조심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기관지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정성희씨가 <이론과 실천>에 몇 번 글을 실었는데 민주노동당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듯 하여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나는 좀 엉뚱한 말을 하고 싶습니다. 충격요법이 있듯이 충격화법이라는 것도 성립되지 않을까요. “민주노동당은 이념적으로 타락하라.” 거칠게 이야기 하면 그런 것입니다. 지난날의 이데올로기에 너무 매달리지 마십시오. 이데올로기도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시대에 흐름에 따라 효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진보세력 단일후보’ 압력에 승복하면 안돼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 내려와 실용의 차원에서 발을 굳건히 디디십시오. 영국의 블레어 수상이나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참고로 하십시오. 모두가 노동자 정당의 지도자들이지만, 얼마나 현실적, 실용적 입니까. 흔히 말하는 이치대로 실사구시(實事求是)입니다.

    정성희씨도 그의 글에서 “국정 담당 세력으로서의 포지쇼닝에 실패했다”고 분석하고 있고, 최근 어느 토론회에서 정대화 교수가 “민주노동당은 국가 경영 마인드가 없다”고 비판했는데 그런 차원에서의 실사구시를 말합니다. 최근 신문에서 김대중씨(전 대통령-편집자)의 인터뷰를 읽다가 재미있는 용어를 발견했습니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란 말입니다. 음미하시기 바랍니다.

    올해에는 대통령선거도 있고 하여 모두들 정치의 해라고 말합니다. 민주노동당은 서서히 준비를 해야겠지요. 대통령 후보도 선출하고…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생각됩니다. 하나는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진보세력 단일후보’ 운운하는 압력이 거세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열린당이 지리멸렬한 상태이고 한나라당이 초강세이니 그럴수록 단일화의 압력은 커질 것입니다. 그 압력을 견디어내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에 단일화 압력에 승복한다면, 민주노동당은 내다 볼 수 있는 장래에 있어서는 후보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이 됩니다. 백년하청(百年河淸)이란 문구가 떠오릅니다.

    또 하나는 꼭 정치의 고양기라서만 아니고 평소에도 그래야 하겠지만 기관지들을 보다 다듬고 대중화하여 국민 속에 파고들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긴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당과는 별도로 독립적인 인터넷 언론, <레디앙>도 있지요.)

    당 기관지 다듬고 대중화해야

    월간 <이론과 실천>, 주간 <진보정치>가 한 때는 해방공간에서 읽었던 좌익 이론과 같은 류의 글들이 자주 실려 네안데르탈인이 회생하여 온 듯 사람을 놀라게 하더니, 요즘은 상당히 향상된 것 같습니다. 더욱 수준은 있되 대중성을 갖는 매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당원들이 한푼 한푼 모은 당비로 당을 운영하는 민주노동당의 각고의 노력에 거듭 경의를 표합니다. 보수의 길은 쉽고 진보의 길은 지난한 것입니다. 밖에서 관찰하는 사람은 잘못 알기가 쉽습니다. 안에서 부딪쳐 실천하는 사람들의 현장 판단이 대개 정확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국외자의 말도 허튼소리라고 생각마시고 참고로 들어 두십시오.

    문대표와 민주노동당 여러분들의 한 발 한 발 행군하는 보병과도 같은 노력에 격려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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