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년 만의 인플레이션,
    기업의 역할은? 임금상승이 문제?
    [정의 경제] 시장 지배력 커지면 인플레 증폭될 수도
        2022년 06월 16일 10: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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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임금 협상을 앞두고 더 커진 인플레이션 우려

    연초부터 걱정해온 물가상승이 예상보다 더 높게, 더 길게 이어질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정점을 지난 것 아니냐는 기대를 뒤엎고 미국 소비자물가는 1981년 12월 이후 최고수준인 8.6퍼센트까지 올랐다. 지난 15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장 제롬 파월)는 금리를 한번에 0.75퍼센트 포인트 올려버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는 처음으로 5.4퍼센트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락다운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교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가격과 곡물가격 폭등, 기후위기로 인한 곡물가격 증폭, 그리고 실업이 줄면서 구인난으로 타이트해진 노동시장 요인까지 거명되고 있다. 물론 최근 2년간 유례없는 정부의 대규모 소득지원 정책까지 물가상승 요인으로 지목되면,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제법 많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확실히 미국을 기준으로 보면, 지난 40년 신자유주의 시대에 볼 수 없었던 물가상승률이고,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이후에는 드문 사례다(외환위기 이전에는 5~10퍼센트 물가상승이 오히려 통상적이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최근 경제에서 가장 예외적이었던 것은 ‘물가’라기보다는 ‘금리’였다. 2008년 이후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이 15년 동안 제로 금리에 가까운 수준을 지속시킨 것 말이다. 우리나라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로 금리는 아니더라도 기준금리가 1.25~3.25퍼센트라는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앉았으며 심지어 코로나19 재난 기간에는 0.5퍼센트로 떨어졌다. 돈 빌리는 값을 이렇게 싸게 장기간 지속시켰는데, 정작 소비자물가는 오르지 않고 자산가격만 올랐던 것이 더 이례적인 현상이었단 말이다.

    어쨌든 유례없이 완화적인 통화정책과 낮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2퍼센트를 밑도는 인플레이션이 유지되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고,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 정책 담당자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것 같다. 더 나아가 고물가의 지속 – 빠르고 큰 폭의 금리인상 – 경기침체라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로 특징지워지는 ‘복합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이 와중에 최저임금 협상을 앞두고 임금인상이 물가상승을 부추길 것이라면서 경영계에서는 임금동결을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재난을 핑계로 2020년부터 3년 동안 2.9퍼센트–1.5퍼센트–5.1퍼센트라고 하는 낮은 수준의 임금인상이 3년을 끌어왔는데도 말이다. 특히 1970년대 유행했던, 임금상승이 생산성 향상을 뛰어넘어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Wage-Price Spiral)’을 만들 수 있다는 1970년대 버전의 오랜 레토릭이 다시 부활할 조짐이다.

    노동자의 임금보다 기업 이윤이 더 문제다?

    그런데 최근 물가상승과 임금이 아니라 물가상승과 기업이윤의 관계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어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노동친화적인 진보경제연구소로 알려진 미국의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는, 낮은 실업률과 타이트한 노동시장 여건이 임금인상 압박을 낳고 다시 물가상승을 증폭한다는 세간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오히려 기업이윤이 인플레이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는 “5가지 인플레이션 신화의 폭로(Debunking 5 top inflation myths)” 등 웹사이트에 게시한 자료를 통해서, 단위노동비용과 (원자재, 에너지 등) 비(非)노동생산요소 투입비용, 그리고 그 위에 얹어지는 기업이윤으로 제품/서비스 가격의 구성요소를 분해해보자고 제안한다. 최근 2년 동안 연평균 생산자물가가 6.1퍼센트 올랐는데, 그중에서 노동비용이 기여한 비중은 고작 1/10 미만(7.9퍼센트)이고 절반이 넘는 53.9퍼센트는 기업이윤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그림 참조). 그리고 1/3(38.3퍼센트) 가량은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에너지 비용상승 등 비노동 투입비용 상승 탓이라는 것이다. 관련해서 연구소는 과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가격인상이 아니라 노동비용삭감(임금삭감) 등으로 대처했는데, 이번 코로나19 국면에서는 기업이윤을 올리기 이해서 가격인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실 기업 매출에서 임금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일반인의 예상과 달리 10퍼센트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조사하는 기업경영분석 지표상에서 매출액 대비 임금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기준으로 제조업만 보면 11.71퍼센트였고, 전산업으로 확대해도 13.36퍼센트 수준이다. 산술적으로 임금이 10퍼센트 인상을 한다고 해도 물가는 대략 1퍼센트 남짓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시대에 물가상승–임금상승의 악순환을 과장해서는 안되며 기업 역시 물가상승 부담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도 진지하게 질문해야 한다. 물가인상 압력을 최저임금 협상에 악용해서도 안된다.

    시장이 독과점되면 인플레이션에 악영향을 준다?

    한편 기업의 책임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서, 거대 독과점 기업들이 특정 산업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게 되면 인플레이션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실증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 보스턴 연방준비은행이 지난 5월 공개한 조사 보고서(“Cost-Price Relationship in a Concentrated Economy”)에 따를 때, 시장의 집중/독과점이 커지면 기업들이 비용상승 부담을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시키는 경향이 크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지난 2005~2020년 사이 경제력 집중도가 50퍼센트 정도 높아졌는데, 그 결과 에너지나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기업의 비용부담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는 정도가 보수적으로 잡아도 약 25퍼센트 포인트 정도 더 상승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다시 말해서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원자재가격 상승 부담과 경기회복으로 인한 실업률 하락-노동자들의 협상력 강화 압력에 대응해서, 독과점 기업들은 독점이윤에 손상을 가하지 않고 손쉽게 비용충격을 소비자 가격으로 이전시켜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시대에 그 부담을 소비자나 노동자에게 선택적으로 전가시키려는, 거대 시장지배적 독과점 기업들에 대한 감독과 모니터링이 각별히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 역시 에너지 과점 기업들이나 대형 플랫폼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이 대단히 크고 이들은 최종소비품목의 가격을 세팅할 능력뿐만 아니라, 이른바 수요독점(Monopsony)의 위치에 있다는 점까지 감안해야 한다. 즉 중소기업의 원자재가격 상승분을 납품가에 반영하는 ‘납품가 물가연동제’가 여전히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중소기업들부터 독점적으로 납품을 받는 수요독점 기업들은 원자재나 에너지가격 인상을 모두 중소납품업체에게 전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거래위원회를 포함한 정부가 인플레이션 시대의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인플레이션은 정부의 방만한 재정이 초래했나?

    한편 기업들이 인플레이션을 정부 탓으로 전가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간략히 덧붙여 보자. 미디어나 일부 식자들 사이에서는 2020~2021년 각 국가가 통화완화정책과 함께 확대재정정책을 써서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국민들)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자 소비가 폭발”했다는 것인데 사실 이는 엄청난 과장이다. 통계청 가계조사에 따르면 정부가 재난지원금 등으로 지급한 현금(공적 이전소득)이 코로나 이전 2019년에 비해 2020년과 2021년 연평균 40퍼센트 가깝게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근로소득이 줄었기 때문에 전체 경상소득은 겨우 연평균 2퍼센트 수준의 증가에 그쳤다. 소비가 폭발할 정도의 돈이 생긴 게 전혀 아니란 말이다.

    더욱이 23년 만에 가계저축률이 두 자리 수로 급등하는 등 소비보다 저축으로 불확실한 경제상황에 대처하려는 경향까지 얹어졌으니 ‘소비폭발’은 상당한 어폐가 있다. 다만, 코로나19 거리두기와 영업제한 등으로 인해 서비스 지출이 줄고 대신 내구재 등 제조업 상품지출이 늘어난 데다가, 마침 글로벌 제조업 공급망이 교란되면서 제조업 상품가격이 상승하는 계기는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은 현실이 되었지만, 원인을 제대로 짚고 부담을 제대로 공유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다.

    * <정의로운 경제> 연재칼럼 링크

    필자소개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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