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가 나를 살해하려는 이유
[진보, 야] “내 성공에 방해되면 모기처럼 죽일 거야”
    2012년 05월 02일 09: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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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고 2학년 이가진 학생은 같은 반 친구였던 아사희 학생을 살인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이 학생은 왜 친구를 죽이려고 할까? 이 학생의 살인을 말릴 방법이 있을까? 이가진의 살인을 말리는 것이 이 미친 성과사회를 멈추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가상의 이 이메일을 작성했다.

나는 위선자 너를 죽일 거야

이메일 제목 : 나는 위선자인 너를 살인할 거야.

보낸 이 : “이가진” ——–@naver.com

받는 이 : “아사희” asahi0607@naver.com

안녕, 아사희. 나 가진이야.

니가 대안학교로 전학을 간 이후 오랜만이다. 그치?

음. 내가 수학을 잘 하니까 수학 얘기로 시작해볼까. 너가 수학을 못하긴 하지만 수학의 ‘기본’이 정확성과 스피드라는 건 그래도 알지? 그런데 너 이거 알아? 가끔(내 생각엔 자주인데) 우리 수학이 계산을 틀릴 때가 있었잖아. 기억해? 그럴 때마다 나는 꼭 모기에 물린 듯 짜증이 나곤 했어. 그와 함께 저 모기를 살려두는 건 결코 정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왜 사람들이 흔히 자기 피를 빨아먹는 모기를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죽이잖아.

사희야, 어떻게 보면 이건 이 사회의 중요한 법칙을 말해 주는 거라고 생각해. 시끄럽게 파업 농성 중인 저 사람들은 끌어내야 하고, 밤에 시끄럽게 울어대는 동물들처럼 중성화시켜버려야 하듯, 방해되는 것은 모조리 쓸어버리면 돼.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짧은 18년 인생동안 내가 쌓아온 각종 경시대회 수상, 1(등급이나 점수 모두)의 향연인 내 성적표의 이력들을 너도 알지? 난 자랑스러워. ‘성공’의 의미를 아는 우리나라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내 성적을 부러워할 거야.

근데 내 이 자랑스러운 승리는 당연히 ‘그냥’ 이루어진 게 아냐. 희생이 따르지. 그건 바로 나 자신과의 싸움? 뭐 그런 성스러운 게 아니야. 바로 나를 방해하는 모기 같은 것들과의 싸움이지.

나와 우리들의 승리법

누가 내 길을 방해하면 간단히 무시하거나, 그게 무시할 수 없는 것일 땐 제거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승리한 방법이었어, 지금까지 말이야. 사희야, 근데 요즘 너가 날 방해해. 니가 자꾸 내 귓가에서 윙윙, “이 사회는 잘못 되었다, 변해야 한다.”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어떻게 할까? 방법은 간단해. 난 내 인생의 모기인 너를 없애버릴 거야.

그래, 사희야. 죽기 전에 니가 한 말들이 왜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인지나 한 번 들어볼래? 내가 널 죽이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뭔지 말해준다는 얘기야.

아, 그 전에 하나. 예전에 너 우리 집에서 너랑 나랑 같이 슈퍼스타케이를 보던 거 기억 해? 예선에서는 잘 나가던 한 팀이 있었는데 본선에 와서 자기가 처음에 받은 곡을 다른 팀에게 양보해주고는 아깝게 탈락을 했지.

그 탈락한 팀의 리더는 탈락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 “양보하지 말 걸 그랬어요. 난 그동안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어왔는데. 역시, 그래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된다는 거였어. 이제 알겠어요. 정말 너무 후회 돼요. 날 믿은 다른 팀원들에게 미안하고.”

그 때 너는 이렇게 말했지. “저 사람 너무 성급하게 결론짓네.” 니 말을 듣고 나는 잠자코 있었지만 사실 나는 니 말에 조금도 공감할 수 없었어. 그 리더가 성급하다니? 난 그의 말이 분명히 맞단 걸 알고 있다고! 이런 치열한 사회를 살면서 괜히 사람들한테 인정받으려고 양보 같은 것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세상에 없어!

난 분명히 말할 수 있어. 내가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아이들 틈에서 우리 반 1등을 당당히 지키고 있는 건 다 내가 양보 같은 위선을 떨지 않기 때문이야. 난 누가 나에게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면 솔직하게 말해. “너한테 그런 거 알려줄 시간이 없어”라고. 사실이잖아? 그 시간에 내 공부 하는 게 더 효율적이거든. 그게 지금의 나, 이가진을, 저 높은 빌딩처럼 넘볼 수 없는 능력자로 만든 거라고.

근데도 넌 마치, ‘양보’라는 게 대단히 중요한 가치인 것처럼, 그걸 그 리더나 나 같은 사람들이 ‘아직 모른다’는 식으로 말하더라? 너의 그런 태도가 이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나에게는 몹시 거슬려. 넌 지금 너 스스로를 속이고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이 사회의 핵심적인 공식, 혹은 이 공식을 완전히 이해한 나 같은 성공하는 인간들을 부정하고 있는 거라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열심히 잘 살고 있는 내가 보기에 넌 아주 짜증나는 위선자일 뿐이야!

왜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척’하는 거니?

자, 그럼 이제 니가 날 방해했던 두 가지 사건, 그러니까 내가 널 죽이고 싶은 이유를 알려줄까?

첫째. 몇 달 전에 우리 반 Y가 죽었지. 넌 그 때 어떻게 했어? 니가 그 아이의 죽음과 관련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심하게 슬퍼했었지. 넌 걔랑 평소에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넌 도대체 뭐가 그렇게 슬펐어? 난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학원에 갔고 시험을 봤고 다시 또 1등을 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는 동안 너, 너는 혼자서 모든 슬픔을 끌어안은 표정으로 매일 우울해 있다가 조퇴를 하곤 했어.

성적? 당연히 니 성적은 초라하게 곤두박질 쳤지. 그러더니 결국엔 대안학교로 전학을 가더라? 하하. 야. Y가 죽은 거랑 너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기에 그렇게 하는 건데? 넌 왜 니가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척을 했던 거냐고? 내가 왜 ‘척’이라고 하는 지 설마 이해 못하지는 않겠지, 아사희, 인간이라는 동물 자체가 원래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같이 느낄 수가 없는 존재라고. 모르겠어? 잘 봐.

만약에 인간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이걸 어떻게 설명할래? 야, 멀쩡한 사람들이 철거당할 위기에 놓인 자기 집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집을 지키고 있다가 불에 타죽었어. 철거민들의 아픔을 느낀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놓아 뒀겠어, 응? 우리가 이런 인간들이라고! 서로의 아픔에 징그럽도록 무심한 ㅋ. 다들 혹시나 자기한테 피해가 오지는 않을까, 문제가 있는 곳에서 열심히 고개를 돌리는 게 바로 우리라고 ㅎ.

Y가 죽었을 때를 생각해봐. 너 빼고 다른 애들 다 멀쩡하게 학교 잘 다니고 있는 거 몰랐어? 선생님들은 또 어떻고? 자기 반, 자기 학교에서 그런 일 생겼다고 쉬쉬하려고나 했지, 너처럼 오버 떠는 인간이라도 어디 있었냐고?

자기 회사에서 일하던 누가 죽든 말든 상관없어! 사장의 관심은 어디 가 있는 줄 알아? 시시각각 오르고 내리는 주가, 부동산 가격. 내가 내 점수에만 관심 있듯이, 사장들은 자기 재산 증식에만 관심이 있다고. ‘남’의 아픔? 그건 그냥 ‘남’의 아픔이지.

이게 세상이고 이게 세상 사람들이야. 너만 아닌 척 하지 말라고, 아사희. 정말 역겨워. 짜증나.

대안학교, 그거 패자들의 선택 아니니?

둘째. Y가 죽고 나서 얼마 뒤에 니가 대안학교로 전학 갈 때. 너가 그 때 가면서 나에게 했던 말 기억나? “지금 우리나라 교육은 너무 위험해. 경쟁에서 도태된 학생들은(아마 죽은 Y를 포함한 낙오자들에 대한 얘기겠지) 실패감을 느끼고, 경쟁에서 이긴 학생들 역시 황폐해지고 있어. 더 이상 나는 견디지 못하겠어.”

푸훗. 야, 무슨 청소년 성장 드라마 찍고 있냐. 미안한데 니가 나보다 열등하다는 게 바로 여기서도 드러나. 니가 한 번도 나를 제치고 1등을 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고!

일단, 니가 경쟁에서 제대로 못 이겨봐서 이런 오해를 하나본데, 경쟁에서 승리하는 나 같은 애들의 마음에는 황폐함 따위가 자리할 시간이 없거든? 우리 승리자들의 마음은 증축 공사 중인 빌딩건물처럼 시시각각 더 높은 승리의 흔적(성적)을 쌓아 올리는 증축 공사 중이라고. 황폐함? 그건 Y가 죽을 때 니가 느낀 ‘슬픔’이니 하는 감정처럼 너 같은 낙오자들이나 느끼는 쓸모없는 감정이라는 걸 알아둬.

그리고 나 있잖아. 니가 대안학교 간 진짜 이유를 안다? 무슨 소리냐고? 내가 너보다 똑똑해서 미안한데, 사실 너 경쟁에 자신이 없어져서 다른 머리 굴린 거잖아. 나 다 알고 있어. 너 요즘 거기서 봉사활동 한다고 했지? 내년엔 스웨덴에 복지국가 형성 과정을 주제로 한 탐방에도 따라간다고? 야, 그거 다 너가 머리 굴려 짜 놓은 ‘스토리’잖아. 이 예리한 이가진 님의 눈엔 다 보이거든요? 내가 좀 예리해서 미안한데 어쩌면 너조차 모르던 무의식을 내가 읽은 걸 수도 있을 거야.

어쨌든 니 의도가 그런 거잖아. 내가 성실하게 공부해서 성적 내는 동안 너는 경쟁에 자신이 없으니까 잔머리 굴려서 ‘스토리’라는 스펙을 쌓겠다, 이거 아냐 지금. 어쨌든 인정할게. 너가 솔직하진 못했지만 니 ‘스토리’라는 스펙 쌓기 전략, 제법 영리했단 건 인정해준다고.

나의 성공은 너의 죽음에 관심이 없어

야. 너 진짜 웃긴 얘기 해줄까?(물론 넌 죽을 거니까 이런 미래는 없겠지만.)

나중에 몇 년 뒤에 말이야. 너가 어느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되는 거야. 그 때 넌 아마 세상의 ‘잔인함’을 알지 못한다는 듯 순수한 눈으로 말하겠지. “저는 경쟁이라는 잔혹한 시스템이 싫어 대안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제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봉사활동도 했고…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국가, 복지 국가가 어쩌고, 저쩌고.”

그러면 너의 ‘남다른 스토리’에 감동한 면접관이 너의 ‘경쟁력’을 인정해서 너를 채용할 수도 있겠지? 너무 좋아하지 마. 너 그게 무슨 말인 줄 알아? 결국 넌 또 다른 경쟁력을 인정받기 위해 경쟁을 떠난 척했다는 거야. 하하하하하. 너무 웃기지 않니?

아사희. 사람은 죽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가야 한다는데, 이제라도 솔직히 인정하는 게 어때? 어차피 이 사회에서 경쟁을 피하는 방법 따위, 없다는 거. 그리고 양보, 그딴 건 개나 줘야 할 거라는 거. 다른 사람의 아픔? 우리는 절대 그 딴 거 알 수 없다는 거 말이야.

아마 이 글을 누구 다른 사람이 읽는다고 해도 말이야. 소용없을 거야. 아마 다들 니가 죽든 말든 별 관심도 없을 거거든. 다들 자기 안의 성공 빌딩을 증축하느라 바쁘셔서 너 같은 unknown people의 목숨 따위엔 관심이 없다고.

아사희, 이게 바로 현실이야. 알겠어?

필자소개
현재 요가 강사이며, '자칭 소설가, 작사가, 일러스트레이터 & 래퍼'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과 사물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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