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파선에 탄 조조군사들의 비극
        2007년 01월 22일 01: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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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우리당 비대위원회 (사진=연합뉴스)
     

    난파선에 탄 ‘조조 군사’들이 어쩔 줄을 모르고 헤매고 있는 꼴이다. 다들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배에에 내린다거나, 배를 지킨다거나 하지만, 가라앉는 배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을 정도로 비극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집권 여당이다.

    청와대와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던 여당의 이런 ‘몰골’은 이론적으로만 보면 불가사의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동안 줄기차게 보여주었던 당청과 당내의 끊임없는 엇박자를 기억해낸다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제 100년 정당을 자신하던 열린우리당이 본격적인 해체 수순에 접어들었다.

    비대위를 중심으로 통합파와 사수파를 봉합하려는 시도가 힘겹게 이어졌지만 지난 19일 기간당원제 폐지안에 대한 법원의 무효 판결 이후 사태가 급변했다. 

    달라진 점은 두 가지다. 먼저 당의 대주주들이 ‘탈당’을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 이들이 당 사수파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최고조로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당헌개정 문제를 논의하는 29일 중앙위가 당의 향배를 가르는 최대 고비처가 될 전망이지만 정서적으론 이미 ‘분당’이 이뤄진 상태로 보인다.

    전면에 나선 대주주들

    지금껏 여당의 탈당론은 일부 강성통합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그런데 이제 대주주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선도탈당론’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정동영 전 의장은 21일 "소수의 개혁 모험주의자의 방해로 (통합신당이) 좌초된다면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결단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소수 개혁 모험주의자들의 기득권 지키기 정치가 계속된다면 같이 갈 수 없다"며 "29일 중앙위원회(의 당헌 개정 여부)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이는 29일 중앙위에서 기간당원제 폐지안이 의결되지 않으면 탈당을 강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 전 의장은 22일에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29일 중앙위는) 분열없는 신당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비상구 같은 느낌이 든다"며 "(여기서도 기간당원제 폐지안이) 좌초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결단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다,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도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만약 29일 치러지는 중앙위원회가 기간당원제를 부활시킨다면 지도부 전원과 전국당원 대부분이 합의한 내용을 뒤집는 것"이라며 "만약에 이번 전당대회가 기간당원제에 의해서 치러진다면 정치적인 퇴행 이외에 어떤 의미 부여가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김근태 의장측 이목희 당 전략기획위원장도 이날 ‘시선집중’에 출연해 "중앙위원회 전에 일부 의원님들이 탈당할 것 같고, 만약 중앙위에서 (기간당원제 폐지안이) 부결되거나 중앙위가 무산되거나 하는 상황이 오면 대거 탈당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당내 양대 주주인 정동영계와 김근태계가 조건부이긴 하지만 탈당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통합파와 사수파 "정신적으론 이미 분당"

    당 사수파에 대한 통합파의 공세도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그 동안 상대적으로 말을 아껴왔던 통합파 중진들도 당 사수파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정동영 전 의장은 이날 "우리 국민은 우리당의 당헌당규에는 관심이 없다"며 "정당의 문제를 법원에 끌고 간 것, 이유 여하를 떠나서 부끄러운 일이고 해당 행위"라고 당 사수파를 겨냥했다. 또 "(당 사수파는) 당에 대한 동지애가 없다"며 "끊임없이 기득권과 지분 정치를 해왔다"고 맹비난했다.

    정 전 의장은 당 사수파를 "소수의 고립주의자, 소수의 개혁모험주의자, (이들에겐) 개혁이란 말을 붙이기도 적당치 않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김한길 원내대표도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우리당의 창당시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당내 권력 지분 투쟁에 몰두하면서 당을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일부 세력 있는 것"이라며 "이들이 또다시 기간당원제를 고집한다면 수구기득권 지키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당 사수파를 강도높게 비난했다.

    이들의 십자포화는 당 사수파와의 결별을 기정 사실로 보고 그에 대한 명분을 쌓으려는 것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기간당원제 폐지 "산 넘어 산"

    당 비대위는 29일 중앙위에서 당헌개정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목희 위원장은 현재 중앙위원 분포상 당헌개정 의결정족수인 2/3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해외에 나가 있는 중앙위원들이 일부 있지만 불러들이면 된다고 했다. 반면 당 사수파는 자신들이 당헌개정의 저지선인 1/3 이상을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어렵사리 당헌개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당 사수파는 중앙위에서의 당헌 개정 자체가 불가하다는 입장이어서 이 문제가 또 다시 법정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목희 위원장은 "중앙위원회가 의결한 당헌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이런 것을 또 낼 가능성도 있다"며 "그것이 걱정"이라고 했다.

    결국 29일 중앙위에서 당헌개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완전히 장담하기도 힘든데다, 당헌 개정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 법적 효력을 두고 또 다시 지루한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즉 비대위의 기도대로 ‘깔끔하게’ 당헌개정이 이뤄지기는 힘든 상황으로 보인다.

    ‘천정배 – 선도탈당, 정동영 – 29일 이후 탈당, 김근태 – 탈당행 막차’

    기간당원제 폐지안이 난항에 봉착할 경우 열린우리당은 본격적인 해체수순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탈당을 공식 선언안 천정배, 염동연 의원, 탈당을 저울질하고 있는 재선의원 그룹, 수도권 초선 의원들과 호남출신 의원들, 재야파 일부 의원들에 이어 정동영계가 탈당에 가세할 경우 잔류파와 탈당파의 세력 관계는 단박에 뒤집어질 공산이 크다.

    여기에 당의장이라는 직책에 발목 잡혀 ‘통합’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김근태 의장측도 탈당행 막차를 탈 가능성이 높다.

    이목희 위원장은 김 의장의 거취와 관련, "(김 의장의 뜻은 모르겠지만) 이런 성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 된다면 (당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겠죠"라며, 다만 "현재 당에 대해 상대적으로 책임이 큰 당직자들은 행동을 하더라도 끝 순서에, 마지막까지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상당히 뒤에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탈당파 내부의 연쇄 핵분열 가능성

    현재의 상황은 일부 당 사수파를 제외하곤 전원 탈당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는 탈당파의 내부가 균일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당을 깨고 나가서 누구와, 무엇을 만들 거냐는 문제에서는 이들간에 서로 다른 그림이 나온다. 일각에선 탈당파 내부의 핵분열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목희 위원장은 "나가는 분 중에 이른바 개혁적인 색채가 강한 분들과 보수 색채가 강한 분들이 같이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개혁성향 의원들과 보수성향 의원들이 사실상 활동을 달리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렇게 본다"고 전망했다.

    천정배 의원은 개혁과 보수가 몸을 섞되 개혁파가 주도권을 쥐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임종인 의원 등 일부 진보파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세력을 갈라쳐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동영 전 의장은 "시민사회를 포함해서 김대중, 노무현 양대 정부를 탄생시키고 안타까워하는 많은 분들이 각 분야에 많이 계시다"며, 통합신당의 목표가 꼭 민주당과의 합당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호남권을 중심으로 한 탈당파 의원들은 민주당을 통합의 유력한 파트너로 보고 있고, 개혁파 의원들에 의해 ‘비토’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보수파’ 의원들도 거취가 유동적이다.

    이들의 감동없는 몸부림이 어떤 모습으로 귀결될지 현재로서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보통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을 한껏 짊어진 채 닻을 올린 ‘노무현-열린우리당호’는 이제 아무런 비장미도 없이 침몰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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