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과 에너지 위기,
    재생에너지 전환의 기회? 위기?
    [정의로운 경제]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위기
        2022년 06월 09일 09:38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에 어떤 영향을 줄까?

    장기화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석유가격과 곡물가격이 폭등하면서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비교적 덜 주목받고 있는 이슈가 있다. 바로 기후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관계다.

    당연히 전투기나 육상, 해상 수송 무기체계를 포함해서 각종 군사장비들은 지독히 석유집약적이다. 따라서 전쟁 자체가 이미 가장 반인륜적 행동이자 동시에 탄소집약적인 반지구적 행동이다. 그런데 이런 원론적인 직접적 관계를 넘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석유와 가스가격을 단기적으로 폭등시킨 결과 각국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추가로 알아봐야 한다.

    러시아군의 폭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키이우 한 시설물[CNN 홈페이지]

    “전쟁이 길어진다면 지구의 추가온도 상승 제한 목표 1.5도 이내로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기후위기 대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거듭 경고한 이가 있다.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다. 그는 6일부터 16일까지 독일 본에서 열리고 있는 기후변화 컨퍼런스에 참석하면서, “만약 각국이 전쟁을 구실로 석탄에 대한 의존도를 유지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경고한다. 이보다 앞서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자리에서도, 일부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국 화석연료 기반시설 신규 건설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경고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석유, 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 가격이 단기적으로 폭등하면 불가피하게 기후위기 대처가 어려워지는 걸까? 지난 역사적 경험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세계 최고의 풍력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풍력과 태양광 발전 비중이 50%를 넘는 덴마크가 그 산증인이다. 덴마크는 1차 석유파동이 있었던 1973년부터 석유 의존을 줄이기 위기 풍력에너지 가능성 타진을 시작했고 1979년에 상업적 풍력터빈을 처음으로 구축했다.

    풍력기술을 향상시킨 덴마크는 2002년에 세계 최대의 해상풍력단지를 건설하는가 하면 지금까지 꾸준히 확대해가고 있는 중이다. 석유가격 폭등과 에너지 위기를 풍력에너지로의 전환의 계기로 삼았던 것이다(관련 링크). 그렇다면 이미 오래전에 석유가격 폭등의 위기를 재생에너지 전환의 계기로 삼은 전례가 버젓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거보다 재생에너지의 기술이나 비용여건이 훨씬 좋은 현재 시점에서 왜 반대로 역진을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

    석탄화력으로 되돌아가려는 유럽의 딜레마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 충격을 가장 심대하게 직접 받는 유럽을 좀 더 들여다 보자. 현재 유럽은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인해 ‘기후위기 대처, 에너지 안보, 감당 가능한 에너지 비용 유지’라는 세 가지 이슈에 동시에 직면하고 있다. 2019년 겨울 유럽의 ‘그린딜’을 발표하고 지난해 7월에 탄소배출 감축입법안인 ‘Fit for 55’를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유럽은 사실 기후위기를 최우선 순위로 두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프랑스 경제학자 마티아스 레몽(Mathias Reymond)의 말대로,ㅡ “몇 주 만에 에너지 안보 문제가 무대 전면에 등장해 기후 문제를 덮어 버렸다”(르몽드 드플로마티크 2022년 6월).

    유럽은 전체 가스 소비의 40% 이상을 러시아로부터 공급되는 가스관에 의존하고 있다(그림 참조). 하지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제재하자는 미국의 압력을 수용하려면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을 대폭 줄이거나 중단해야 할 판이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지난 5월 “러시아산 원유 공급은 6개월 후, 정제유 공급은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올해 발표된 ‘리파워이유(REPowerEU)’ 정책 패키지 역시, 명목상으로는 감당 가능하고 에너지 안보를 보장하며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한다고 공표했지만 사실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독립이 초점이다.

    유럽의 가스에너지 소비 분포(출처:Enerdata)

    문제는 에너지 안보를 위해 러시아산 가스 의존을 중단한다고 해서 대체 수입선이 곧바로 생기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미래의 에너지 파트너로 유럽이 새롭게 미국, 아제르바이잔, 이집트, 카타르를 거명하고 있지만, 당장 이들 나라로부터 러시아 의존을 끊을 정도의 가스 공급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 마티아스 레몽의 분석이다. 설사 공급받을 수 있다고 해도 예를 들어 미국산 가스를 프랑스로 수송한다고 했을 때 러시아산의 CO2 발생량은 23g/kwh인데 반해 미국산은 그 두 배가 훨씬 넘는 58g/kwh가 발생한단다(만약 미국식 수압파쇄 방식의 부정적 효과까지 감안하면 85g/kwh까지 상승).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단기적으로 유럽국가들은 급등한 가스가격 탓으로 갑자기 비용경쟁력이 생겨버린, 하지만 탄소배출 측면에서는 가장 문제가 많은 석탄화력발전의 조기 가동중단을 지연, 심지어는 폐쇄한 화력발전소를 재가동시키려는 유혹을 받게 되는데 이탈리아와 독일이 실제 이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여름 가스 가격은 2달러/mBtU 미만이었지만 2022년 3월 기준으로 32달러를 넘어가고 있을 정도로 폭등했으니 왜 안 그러겠는가? 심지어 독립분석기관인 기후행동트래커(Climate Action Tracker)는 온난화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가는, “화석연료개발 신규 프로젝트를 향한 열풍(Gold Rush)”이 불고 있다는 강한 경고를 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가 기후위기 대처를 압도해버릴 국면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한발 더 나아가서 석유와 가스가격 급등으로 유럽 각국의 서민들의 부담이 가중되면서, 자동차 연료나 난방연료 등에 대한 세제완화, 또는 보조금 지급 등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 역시 화석연료 감축을 지연시켜 기후위기 대처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요약하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안보, 감당 가능한 에너지 비용유지’라는 긴급사안 때문에 ‘기후위기 대처’가 완전히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앞서 인용한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 발언도 이 맥락에서 볼 때, 자국이 이런 상황을 초래한 원인이었으면서도 적어도 말로는 ‘기후위기 대처’ 지연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화석연료가격 폭등을 계기로 에너지 전환을 가속시킬 계기는 없나?

    물론 현재의 에너지 가격 폭등을 잘 이용하면 오히려 에너지 전환에 가속도를 내서 기후위기 대처를 앞당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 수입이 당장 오늘내일 완전중단되는 것도 아니므로, 건설기간이 짧은 태양광과 풍력등 재생에너지에 대해 훨씬 공격적으로 투자하면서 활로를 모색할 수 있다. 유럽의 ‘리파워이유(REPowerEU)’ 정책 패키지 실행계획에 들어있는 ‘수입선 다변화, 에너지 절약, 클린 에너지 가속화’ 전략 안에 이런 내용이 일부 들어가 있기는 하다.

    또한 운송 교통 측면에서도 단기적으로는 가격폭등으로부터 소비자를 지원하기 위해 화석연료 보조금정책(유류세 인하 등)을 하고 있고 이는 전환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겠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치솟는 석유가격에 대처하기 위해 내연기관 자동차 사용을 더욱 줄이고 전기차나 대중교통 중심체계로 갈 수 있다(Enerdata 경영자용 브리핑 2022년 5월).

    이 대목에서 독일이 시민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한편에서는 유류세 인하를 하면서도, 동시에 전국적으로 대중교통을 ‘월 9유로 정액 티켓’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새로운 정책추진을 눈여겨 볼 필요도 있다. 물론 단거리 시내구간 버스와 지하철이 중심인데 신호등 연정에서 녹색당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티켓은 지난 5월 30일자로 7백만개가 사전 판매가 된 것으로 알려졌고 관계당국은 약 3천만개가 판매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오스트리아는 하루 3유로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기후 티켓’이라고 이름붙은 대중교통 감액정책을 이미 2021년부터 시행하고 있단다.(파이낸셜 타임즈 2022년 6월 1일자).

    한국은 화석연료가격 폭등을 전환의 계기로 삼고 있나?

    이제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자.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석유, 가스가격 폭등으로 가장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 것이 유럽이기는 하지만, 한국 역시 가솔린과 경유가격이 세제감면에도 불구하고 리터당 2천원을 오가고 있으며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5%를 넘어갔다. 그나마 유럽연합은 2021년 전체 평균으로 풍력 14%, 태양광 6% 등 재생에너지가 20%, 석탄이 16%, 가스가 18%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재생에너지가 고작 7% 남짓이고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다. 화석연료가격 폭등에 따라 전기요금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한국은 현재 단기적으로는 탄력세율을 적용해 7월까지 30% 유류세 인하를 시행하고 있는데, 유류가격 폭등이 길어지면 앞으로 기간도 10월까지 3개월 더 연장하고 인하율도 37%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금감면으로 단기적 위기를 모면하려는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그 조차 탄소배출을 줄이기 보다 늘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별도로 대중교통으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정책고려 소식은 없다.

    또한 중기적 차원에서도 정책으로 특별한 것이 검토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은채, 최소 5년~15년이 소요되는 핵발전 투자 얘기만 무성하다. 최근 기후행동트래커(Climate Action Tracker)가 “에너지위기에 대한 글로벌 대응이 탄소제로 전환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면서, 당면의 에너지 위기에서 각 국가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는데, 최소한 우리도 이런 항목들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아래 그림 참조).

    * <정의로운 경제>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