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치·정당의
    고참 당원들에 대한 헌사
    [기자생각] 고참에게는 정년이 없다
        2022년 06월 08일 07: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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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해 선생의 타계 소식을 들으면서, 나이 듦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선생의 명복을 빈다.

    1.

    지난 3.9 대선과 6.1 지방선거는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에게 상당한 실망과 열패감을 안겨줬다. 일부에서 지방선거에서의 정의당과 진보당 성적을 비교하며 진보당의 선전을 추앙하기도 하지만 질적으로 큰 의미는 없다는 생각이다. 다르게 생각한다면 그 또한 존중한다.

    당선자 숫자와 정당 지지율의 저조함도 문제이지만, 그 수치보다 더 중요한 건 “정의당과 진보정당은 우리 갈 길을 제대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선거정치는 흐름과 구도, 정치역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그 정치적 풍향의 미묘함을 감지하지 못할 때 선거 결과는 엄청난 격차로 나타난다. 그 미묘함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거대정당 선거운동과 선거기획의 핵심이다. 대형트럭의 좌회전 우회전은 그 미묘한 작은 각도를 조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급하게 핸들을 틀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뿐이니.

    반면 진보정당의 선거정치는 그런 선거 시기의 섬세한 핸들링에 의해 좌우되지도, 좌우되어서도 안된다. 진보정당이 기반하고 있는 계급, 지역, 세대 등 속에서 튼튼한 뿌리를 내리는 장기전의 태세를 갖추고 적절한 단기전을 행하는 게 진보정당의 선거정치이어야 한다. 그때그때 단기전의 축적이 장기전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말이 있듯이 그와 유비한다면 “조직력과 조직관계”라는 말도 가능하다. 정의당(진보정당)의 조직력은 어떤 조직관계를 필요로 하고 어떻게 서로 침투하면서 발전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선거시기의 캠페인을 뒷받침하는 계급적 이념적 조직적 기반의 단단함 혹은 허술함 혹은 부재, 그것의 현실태에 대한 평가와 진단이 출발점인 이유이다.

    2.

    정의당의 많은 당원과 지지자들이 힘들어한다. 낙선한 후보자들도, 선거운동에 참여하고 헌신했던 이들 모두에게 어려운 시간들이다. 오늘 바닥을 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밑에 더 떨어질 수 있는 무저갱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무력감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아니 이미 그런 조짐이 엿보이기도 한다.

    나는 정의당, 나아가서는 모든 진보정당 당원들의 힘을 믿는다. 강한 표현을 사용하면 나는 신참 당원, 청년 당원보다는 진보정치의 고단한 역사를 함께 견뎌왔던 고참 당원들의 힘을 믿는다. 그들이 진보정당의 연륜과 지혜와 내공을 대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참과 청년 당원을 불신하는 게 아니라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헤쳐나가고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와 이성의 힘을 좀 더 담지하고 있는 게 그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고단하고 험난한 진보정치의 역사가 몸과 마음에 짙은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이 잘 나갈 때 참여했다가 어려울 때 빠져나가는 이들, 진보정치가 새로움과 참신함의 상징이었을 때 그것을 훈장처럼 내세우다가 낡고 고루한 꼰대의 이미지로 비칠 때 과감하게(^^) 탈출하여 다른 배로 올라탔던 이들, 뭔가 있어 보이는 이미지에 혹해서 당원으로 들어왔다가 저조한 성적표에 당황하는 이들에 진보정당이 휘둘려서는 안된다.

    파도의 격랑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런 격랑에도 작지만 탄탄한 배의 키를 쥐고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하는 이들이 고참 당원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이 진보정치의 본령이고 골간이고 중심축이라고 생각한다. 이들 고참 당원들의 지혜와 내공이 새로운 세대의 청년 당원들에게 전달되고, 서로에게 긴장과 자극을 주는 관계가 될 때 우리는 나아갈 수 있다. 세대 간의 갈등과 내전 혹은 새로움과 고루함의 대비는 전진과 기회가 아닌 퇴행과 몰락의 징표일 뿐이다.

    3.

    고참 당원은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의 저조함과 처참함을 단기적 시야가 아닌 장기적 시야에서 조망하게 된다. 민주노동당의 창당과 성장, 분당과 위기, 통합진보당과 그 후과들, 정의당과 다른 진보정당들의 병립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재를 평가하고 진단한다.

    과거의 반복인가? 과거보다 더한 고난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건가? 미래는 가능한가?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잘못한 것인가? 등을 질문하게 된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22년 지방선거 그리고 그 사이의 선거정치 성적표를 떠올리고 어떤 하나의 흐름을 읽고 위기의 진단과 처방을 고민하게 된다. 고참이라는 의미는 단순한 나이듦이 아닌 그 역사의 숨결과 내밀함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소중하다. 그리고 지금 그 소중함이 필요한 시기이다.

    민주당의 자장 속에서 움직였다는 게 진보정당 정치노선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냉정한 진단 아닌가? 이런 진단이 맞는가? 그렇다면 그에 걸맞는 처방과 방향은 무엇인가?

    진보정치의 재편과 통합이라는 방향이 어쩔 수 없는 방향 설정 아닌가? 그러나 정치적 방향에 대한 공감대와 접근이 없다면 혹시 더 큰 민주당 2중대로 가는 건 아닌가? 이 양자의 충돌과 긴장은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까?

    더 세고 강한 것을 말하고 주장하는 게 좌파와 진보다움의 징표인가? 혹시 내용과 방향성에서의 동요와 애매함을 감추는 수식어 정도의 의미인 것은 아닌가?

    지역 정치와 노동 정치, 페미니즘 정치, 녹색 정치를 다 이야기하지만, 그 이름으로 모든 게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 않나? 하나의 방향으로 걸어가더라도 좌충우돌, 좌우편향이 존재하는 게 일상인데, 그런 지점의 논점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외면한 것은 아닌가?

    본능적으로 고참 당원들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을 것이다. 고참당원인 나의 질문이기도 하다. 이 오래된 질문과 화두에 대한 고참당원들의 고민이 새롭고 참신한 신참당원들의 접근법과 어울릴 때 우리는 위기를 기회의 길로 만들 수 있다. 고참에게는 정년이 없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장, 전 진보신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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