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 사회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장송곡
        2007년 01월 20일 07: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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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여름 프로그레시브록의 유행이 저물어 갈 무렵 저 멀리 스웨덴 밴드의 앨범 한 장이 국내에 지각 발매됐다. 밴드의 이름은 ‘인터내셔널 하베스터International Harvester’, 앨범의 제목은 “잘 자거라, 로즈마리Sov Gott Rosmarie”였다.

    ’92년은 노태우 정권의 마지막 해였고, 가수 정태춘이 음반사전심의 폐지를 위해 투쟁에 나서려면 일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87년 이후 수많은 금지곡이 해금되고 심의의 기준이 완화됐다고 하지만 국내 가요에 대한 사전심의와 외국음반에 대한 수입추천 제도는 엄연히 살아있었다.

    그런 가운데 인터내셔널 하베스터의 앨범은 용케 심의를 통과해 국내발매됐다. 아마도 심의위원들이 이 낯선 스웨덴어 노래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거나 국내음반사가 통과를 위해 심의자료를 허술하게 제출했던가 아무튼 그런 이유일 거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어쩌면 국내 발매를 맡은 음반회사도 자기들이 지금 찍어내는 레코드가 정확히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일례로 음반 안에 들어있는 한글 해설지에는 “스웨덴 진보음악계의 역사적 명반”이라고 이 앨범을 소개하고 있지만 왜 역사적이고 왜 명반인지는 설명이 없다. 각각의 노래에 대해서도 ‘이 곡은 분노를 담고 있다’ 식의 지극히 추상적인 설명만 덧붙여져 있다.

    인터넷도 없었고, 해외여행 자유화도 시행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무슨 곡절이 있었던지 간에 1968년에 만들어진 이 앨범은 20여년의 시간여행 끝에 한국 땅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잊혀졌다.

    * * *

       
    "Sov Gott Rosmarie"
    International Harvester
    1968년
    Side A
    1 Dies Irae
    2 I Villande Skogen
    3 There Is No Other Place
    4 The Runcorn Report on Western Progress
    5 Statsministern
    6 Ho Chi Minh
    7 It’s Only Love
    8 Klockan Ãr Mycket Nu
    9 Ut Till Vänster
    10 Sommarlåten
    11 Sov Gott Rose-Marie
    Side B
    1 I Mourn You
    2 How To Survive
     

    록은 앵글로색슨의 음악이다. 비틀즈 이후 전 세계의 젊은이들은 밴드를 결성했지만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고 록이라는 음악형태가 그 나라 대중음악 시장의 주류는 고사하고 의미 있는 세력으로 성장한 경우는 단 한 나라도 없다.

    이유야 나라마다 조금씩 사정이 다르겠지만 공통적인 원인은 언어의 장벽이었다. 독일어로 부르는 록이나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록은 어쩐지 부자연스럽고 또 ‘쿨’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나라 밴드들 보다 영국이나 미국의 그것을 더 선호했다.

    이들 나라에서 록이 비주류의 음악,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에서 아트록이라는 비상업적인 음악형태가 널리 퍼졌는지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이들 나라에서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오르는 젊은이들이 영국이나 미국처럼 명성과 부를 기대했더라면 유럽의 아트록이라는 것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모든 아트록 밴드들이 정치적인 지향을 가졌던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팀들이 좌익적인 성향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들이 주로 도시와 대학 출신들이고 거기에 60~70년대 유럽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이는 후에 ‘록은 저항의 음악이다!’라는 잘못된 믿음과 신화를 만드는 기반이 됐다.

    인터내셔널 하베스터도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구상음악에 자극을 받은 스톡홀름 왕립음악아카데미의 학생 안데르스 페르손은 동급생들과 스톡홀름대학교의 음대생을 모아 미니멀리즘 음악을 추구하는 밴드를 구성했다. 1년간의 준비 끝에 이들 집단은 이름을 ‘인터내셔널 하베스터’로 확정하고 첫 번째 앨범을 녹음했다. 그 음반이 바로 “잘 자거라, 로즈마리”다.

    인터내셔널 하베스터는 리더인 페르손이 기타와 보컬을 맡고 베이스와 드럼 같은 기본적인 록밴드의 악기에 첼로, 바이올린, 관악기 멤버가 추가된 다소 이질적인 형태로 구성됐다.

    “잘 자거라, 로즈마리”의 앞면은 1분이 채 안되거나 길어야 3분을 넘지 않는 11곡이 조곡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 11곡은 1968년 8월의 3일간 어쿠스틱 악기만을 사용해 녹음됐다.

    ‘분노의 날Dies Irae’은 보통 레퀴엠의 일부를 이루는 곡조로 아트록 밴드들이 자주 이용하는 형식이다. 분노의 날은 묵시록과 관련된 주제지만 정작 이어지는 곡 ‘경계가 없는 숲I Villande Skogen’은 새소리와 허밍만으로 만들어진 목가적인 음악이다.

    ‘다른 곳은 없다There Is No Other Place’와 ‘서구발전에 대한 렁컨 보고서The Runcorn Report on Western Progress’, 이 두곡은 특이하게도 영어로 가사가 써져 있다. 페르손은 음악을 공부하기 전인 60년대 초반 공대에 다닌 적이 있으며 이 때 영국 리버풀 근교의 작은 도시 렁컨의 발전소에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발전소로 인해 주변의 대기와 물이 오염되는 것을 보면서 산업사회와 기술문명에 대한 회의를 담은 노래가 ‘서구발전에 대한 렁컨 보고서’이다. 녹색당이 출현하기 10년 전에 이미 생태주의를 주제로 삼고 있다.

    이어지는 ‘총리Statsministern’는 물론 당시 스웨덴의 총리를 노래한 것이다. 68년 당시 스웨덴의 총리는 사민당 소속으로 1946년부터 정권을 지키고 있던 타예 에를란데르다. 전후의 혼란을 딛고 복지국가 스웨덴의 기초를 닦은 정치인이었지만 60년대의 혁명적인 젊은이들 눈에는 구체제의 상징이며 너무 오래 총리 자리에 앉아있는 노인네에 불과했다.

    특히 스웨덴에서 막 태동하고 있던 베트남 연대운동의 눈에는 제국주의에 대한 인식이 불철저한 총리로 비쳐졌다. 이런 대중적인 압력 속에서 이듬해 올로프 팔메에게 총리직을 이양하게 된다.

    ‘총리’는 19초에 불과한 극도로 짧은 곡이다. 가사는 딱 네줄이다. “총리께서는 읽을 줄도 알고, 쓸 줄도 알고, 숫자도 셀 줄 알지만, 우당탕 쿵다당 춤출 줄은 모른다네.” 사민당 소속의 총리는 신좌익 청년들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투쟁의 ‘대상’일 뿐이었다.

    ‘호치민Ho Chi Minh’은 60년대 유럽의 거리에서 시위가 벌어지면 항상 나오던 구호였다. 북소리에 맞춰 2분여동안 반복해서 호치민을 연호하는 이 노래 아닌 노래는 그 시절 혼란한 거리의 풍경을 재현하고 있다. ‘좌파로부터의 이탈Ut Till Vänster’도 정부와 스웨덴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 인터내셔널 하베스터의 공연 모습, 뒤에 걸린 현수막에 마오쩌둥, 미셸 푸코의 얼굴이 보인다.
     

    조곡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잘 자거라, 로즈마리’는 자장가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정작 노랫말은 어린 소녀의 죽음을 그리고 있다. 어머니는 영원한 잠에 빠진 아이의 머리맡에서 눈물로 담요를 적시고 있다. 자장가가 아니라 사실 장송곡인 셈이다. 어린 소녀 로즈마리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60년대 스웨덴 사회가 잃어버린 그 무엇을 가리키고 있다.

    11곡이 모여 있는 앞면과 달리 뒷면은 10분이 넘는 대곡 두 개가 실려 있다. 첫 번째 트랙 ‘너를 애도하며I Mourn You’는 68년 9월 23일에, 두 번째 트랙 ‘살아남는 법How To Survive’은 같은 해 여름에 각각 실황 녹음된 것이다. 원초적인 악기들의 반복적인 연주에 노래라기 보다는 구호의 외침같이 들리는 페르손의 보컬이 나른한 분위기를 그리고 있다. 특히 ‘살아남는 법’의 경우 우연히 함께 녹음된 공연장의 아이들 노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전혀 이질감 없이 마치 의도했던 것처럼 음악 속에 스며들고 있다.

    * * *

    그런데 정작 이 앨범은 스웨덴에서는 발매되지 못했다. 아무리 진보적인 사회문화를 건설하고 좌익의 시민권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하다고 해도 스웨덴은 고급승용차와 전투기를 만들어 수출하는 자본주의 국가일 뿐이다. 시장의 원리는 상업적인 가능성이 없는 음반이 세상에 선보일 가능성을 차단했다.

    “잘 자거라, 로즈마리”는 결국 이웃 핀란드에서 발매됐다. 스웨덴에서는 1984년이 돼서야 처음 생산됐다.

    이후 인터내셔널 하베스터는 보다 대중적인 포크에 근접한 음악으로 전환하고 이름도 ‘하베스터’로 축약했다. 1969년에는 스웨덴공산당 청년동맹이 소유한 스톡홀름의 마르크스 카페에서 녹음한 두 번째 앨범 “집Hemåt”를 발표했지만 오래 못가서 해산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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