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처-블레어가 망쳤지만 배울만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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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22일 08: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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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국가들 중에서 공공주택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는 순으로 따지면 영국은 하위권에 속해 있다. 선진그룹은 독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네덜란드 등 주로 북유럽 국가들이다.

    ‘카운실하우징(council housing)’이라 불리는 영국의 공공주택은 그 전성기였던 70년대 말에도 전체 주택 중 3분의 1 정도였다. 그나마도 80년대 대처 정부가 추진했던 공공주택의 사유화 정책으로 인해 그 비중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이후 신노동당을 표방하는 블레어 정부에서도 큰 틀에서 그 기조가 유지되어왔다.

    간단하게 이들 정책은 ‘저렴주택(affordable housing)’ 공급을 통한 소유거주자(owner-occupied) 중심의 주택 정책이며, 이를 중앙 정부가 아닌 지방 정부의 작은 단위인 지방자치단체가 관할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현실에서는 현재 영국의 주택 정책조차 부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현재 영국에서는 공공이 직접 주택 관리하는 것에서 멀어지고, 민간 주택 공급과 다주택 소유에 대한 규제가 적은 상태에서의 매매 활성화가 주택 시장을 주도하면서 주택가격이 폭등하는 악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는 별로 좋지도 않던 도시중심부의 학교 기숙사 월세가 우리나라로 치면 2억짜리 전세와 비슷하다.

       
      ▲ 영국의 council housing
     
       
      ▲ 하늘에서 본 council housing 지역
     

     

     

     

     

     

     

     사회주택의 공급

    도시 계획이나 주택 정책들은 19세기 후반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사람들이 한 곳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면서 발생한 위생과 건강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영국의 사회주택제도 역시 시작은 보다 건강한 노동력 공급을 위해서, 또는 전쟁에 필요한 병력을 위해서, 저소득층의 질병으로부터 귀족과 자본가 그리고 지주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였다.

    최소한의 시설을 갖춘 사회주택을 노동자들에게 공급하고 기존의 슬럼을 철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령들이 마련돼 시행되었고, 각종 자선 단체들도 비슷한 사업들을 추진하였다. 이들이 사업의 규모 차원에서 제한적이고 다분히 실험적이었던 것에 반해,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사정은 많이 달라진다.

    사회주의자 어나이린 베번(Aneurin Bevan)은 20세기 중반 영국 노동당 좌파의 상징적 인물로서 전후 내각에서 의료-주택 장관을 역임하며 현대 영국의 의료-주택 정책의 근간을 세웠는데, 이 시기부터 사회주택이 본격적으로 공급된다. 사회주택 건설에 대한 보조금을 늘리고 중앙 정부의 부담금을 늘리는 등 적극적인 사회주택 정책을 내놓은 결과 신규 건설 주택 중에서 80% 가까이를 사회주택으로 공급했다.

    이후 보수당의 재집권 이후 그 비율이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1979년 대처가 집권하기 전까지 그 비율은 40% 전후를 계속 유지했다. 그 결과 1979년 현재 카운실하우징이라 불리는 영국 사회주택의 규모는 600만 호에 이르고 사회주택에 거주하는 가구 수의 비율은 전체 가구의 30% 이상이었다.

    대처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세금을 감면하고 정부 지출을 줄이는 재정 적자 정책은 신자유주의 레이거노닉스와 대처주의의 공통된 특징이었다. 대처 정부 하에서의 사회주택 변화도 이러한 전체 기조의 영향을 받는다.

    우선 대처 정부는 의료와 주택 등 복지 부문의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사회주택 건설에 대한 보조금도 대폭 줄였다. 대신 주거급여 제도를 도입해서 저소득층 세입자들에게 직접 보조금을 지급한다. 또한 공공 부문 민영화 정책 하에서 가스, 수도, 통신, 탄광, 철도 등이 줄줄이 민영화되었으며, 사회주택 역시 민영화 정책의 영향을 받는다.

    주택기관(Housing Corporation)은 60년대에 만들어진 정부 기관으로 당시만 해도 주로 자선 단체들 위주였던 주택연합(Housing associations)을 관리하는 조직이었다. 대처 보수당의 사회주택 민영화를 위한 첫 번째 방법은 군 구 등 지방 정부의 직접 관할에 있던 사회주택의 건설 및 관리 업무를 바로 이 주택조합들에 넘기는 일이었다. 이른바 ‘자산이전’이라 불리는 정책이었는데, 79년부터 97년까지 18년 보수당 집권 기간 동안 주택 조합의 관리로 넘어간 사회주택은 100만 호에 이른다.

    두 번째 방법은 이른바 ‘매수권’이라는 정책으로서 사회주택에 일정기간 이상 거주한 세입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사회주택을 팔아 넘기는 방법이다. 이 방법 역시 해당 기간 동안 200만 호 이상의 사회주택을 개인 소유로 넘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보수당 같은 노동당 정부

    1997년에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라는 당 강령까지 바꾸면서 새로운 노동당을 내세웠던 블레어 정부가 들어선다. 주택 소유층은 대게 보수당을, 세입자 층은 노동당을 지지한다는 정치적 계산도 보수당의 매수권을 통한 사회주택 민영화 정책의 한 근거가 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노동당의 압승을 가져왔다.

    1997년 노동당의 승리는 말 그대로 압승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주택 부문에 있어서의 정책 변화는 감지되지 않았다. 블레어 정부는 이전 보수당의 주택 정책의 기본 틀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더욱 강화시켰다.

    기존 주택조합으로의 자산이전 외에도 PFI(private finance initiative, 민-관 합동 투자 기관을 통한 관리 이전), ALMOs(Arms length management companies, 지방 정부에서 출자한 회사를 통한 관리 이전) 등의 방법을 통해 사회주택의 관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민간에 넘긴다. 개인 소유로 팔려 나가는 사회주택의 수도 연간 7만 호 정도이며 2003년 현재 10만 호를 넘고 있다.

    한편 새로 지어지는 민간 주택이 연간 15만 호 정도에서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 반면에 정부는 아예 신규로 사회주택을 짓지 않고 있으며 그나마 사회주택 관리를 맡은 주택조합의 건설 주택 수도 연간 2~3만 호 내외 정도이며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이전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다.

    노동당 정부는 중-저소득층을 위한 저렴주택 공급을 주택 정책의 목표로 삼고 이를 민간 부분을 통해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런던의 경우 신규로 건설되거나 재건축-재개발되는 현장에 공급되는 주택 물량의 50% 정도를 저렴주택으로 공급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저렴주택 건설은 민간건설자본의 이윤을 줄어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민간 주택부문을 통해 저렴주택을 공급할 것인가가 현재 영국의 도시계획에서의 주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책은 계획 과정을 단순화시키고 유연화시켜서 인허가를 쉽게 내주고, 용적률을 상향 조정해서 민간건설부문의 이윤을 맞춰 준다거나 그린벨트를 조금 풀어버린다는 식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신규 주택 건설이나 사회주택의 시장 주택 전환 등으로 주택 물량이 많이 공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택 부문에 있어서의 이른바 물방울효과(trickling down effect. 확산 효과)는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발생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다주택 소유에 대해서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수십 채씩 집을 사서 어마어마한 임대료 수입을 올리고, 또 주택 가격 상승으로 돈 버는 사람들이 영국에는 많이 있다. 이른바 임대목적구매 즉, 거주 이외의 목적으로 집을 사는 방법은 너무나 보편화되어 있어서, 주택 물량이 풍족해짐에도 불구하고 주택 부문에서의 형평은 계속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 임대료 상승만 남는다.

    여러 가지 면에서 1979년은 영국 사회주택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그 전까지 매해 신규 주택 물량의 약 40% 정도가 사회주택으로 건설되었으며 누적 사회주택량은 1979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에 고층으로 지어졌던 사회주택 단지에서는 낙서, 주택 파손, 범죄 등의 부작용도 함께 나타나고 있었다. 1979년 대처 정부 이후 사회주택은 이후 줄곧 퇴조의 길을 걷게 된다.

    대처 정권 이후 신노동당 정권까지 이어진 주택 정책에 대한 결과는 여러 가지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사회주택 건설 시 보조금을 줄이고 직접 관리를 하지 않게 됨으로써 예산을 많이 줄였으며, 사회주택 관리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주택들의 질이 나아졌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정책에 대한 평가는 좀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일단 건설 보조금을 줄이는 대신 도입한 저소득 세입자에 대한 직접 보조금이 엄청나게 늘었다. 그리고 정부를 대신해서 사회주택 관리를 맡게 된 주택조합이 주택의 보수나 효율적인 관리 등의 명목으로 임대료를 엄청나게 올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올린 임대료를 가지고 주택조합의 임원이나 컨설턴트들에게 상당한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비판 지점이 되고 있다.

    세입자로 남아있게 된 저소득층에게는 임대료 상승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럴 경우 당연히 정부로부터 주택 보조금을 받으려고 할 것이고 이 부분에 대한 정부 지출은 필연적으로 늘게 되었을 것이다.

    매수권 정책으로 사회주택을 시가보다 싸게 구매할 수 있었던 계층들 중 어느 정도가 계속 그 주택을 잘 관리하며 자립했을까? 아마도 상당수가 구매 후 시장가격으로 이를 되팔아 차액을 챙기고 다시 세입자가 되었을 것이다. 정부는 이들의 자립을 기대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정부의 부담으로 돌아왔을 것이 분명하다.

    현재 상대적으로 저렴한 정부 관리하의 사회주택에 들어가기 위해 신청을 하고 기다리는 수십만 가구들의 존재가 대처 정부 이후의 주택 정책의 성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회주택 개혁의 명분만 놓고 본다면 현재 영국 정부는 벼룩 한 마리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는 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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