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정상회담-쿼드-IPEF,
    뚜렷한 전략적 변화와 불안정한 미래
    [국방칼럼] 지정학적 혼란 속 각국의 치열한 외교전
        2022년 05월 30일 10: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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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결과는 ‘이명박2.0’과 ‘오바마2.0’으로의 회귀로 요약된다. 윤석열 행정부가 내건 ‘글로벌중추국가(Global Pivot Korea)’구상에서는 이명박 행정부의 외교안보전략인 ‘성숙한 세계국가(Global Korea)’가 연상된다. 한미 간의 ‘포괄적 전략동맹’은 2009년 6월 이명박, 오바마 정상회담에서 시작된 것이다.

    포린어페어즈를 발행하는 ‘미국외교협의회(CFR)’ 한국전문가인 스콧 스나이더는 5월 초 윤석열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진단하는 글에서 김성한, 김태효 등 이명박 전 대통령 보좌관들의 귀환으로 인하여 한국에서 ‘이명박2.0’의 시작은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바이든 행정부의 성격이 ‘오바마2.0’인지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논쟁의 영역에 속하지만, 바이든 외교의 중심인물들인 커트 캠벨, 토니 블링컨, 제이크 설리번은 모두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실무자들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다룬 기사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관여하지 않는 ‘오바마 시대’의 ‘전략적 인내로’ 회귀하는 것 같았다고 보도했다.

    이번 한미정상 간의 공동성명에 포함된 상당수 의제들은 작년 문재인∙바이든 공동성명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작년과 올해 발표된 미∙일 정상 공동성명이 보여준 것처럼 전체적으로 정책의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공동성명은 정권교체를 실감할 만큼 1년 전의 공동성명과는 단절의 성격이 짙다. 전통적인 국내 한미동맹론자들은 동맹 조정론자들과는 다르게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입장에서 미국에 대한 양보는 불가피하다거나, 그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정서가 일반화되어 있다. 작년 정상회담 모두발언과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타났던 대로 문재인∙바이든 간에는 일부 이견이 존재했었으니, 이제 성격이 다른 정권을 상대하게 된 미국으로서도 부담 없이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변화된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① 남북관계의 중심은 ‘약속에 기초한 대화’에서 ‘억제를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완전히 전환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은 ‘비핵 번영’으로 대체되었다. 두 정상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을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갈음했다.

    ② 한미동맹의 범위를 기존의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확장시켰다. 작년 성명에서도 한미동맹이 한반도를 넘어서는 것으로 정의하고는 있으나, 그 범위는 아세안과 인도를 넘어서지 않았고, 국제관계에서는 포용을 강조하였다. 반면 금번 성명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 차례 언급함으로써 규범 기반 국제질서의 수호가 신남방지역에 한정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③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했다. 문재인 행정부는 신남방정책을 앞세워 특정 진영에 가담하는 것을 공개석상에서는 경계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 반면, 윤석열 행정부는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및 번영의 핵심 요소라고 이전보다 강도 높게 규정하는 등 미국의 전략을 공식적으로 환영했다.

    ④ 한∙미∙일 삼각협력이 강화될 것임을 예고했다. 한∙미∙일 협력은 기존의 안보관계에서 경제관계로까지 확장하기로 하였다.

    김정은 총비서가 5월 18일 조선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주재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당조직이 심각한 보건위기를 극복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미래의 위협과 도전에 전방위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물질적, 기술적 준비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질적, 기술적 준비는 핵실험에 대한 의지로 해석되고 있다.(비확산리뷰 조슈아 폴락)

    미국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권이 이와 같은 ‘이명박2.0’ 외교를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 향후 많은 제약이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들이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윤석열 행정부의 취약한 권력기반이다.

    미국진보센터 아시아 담당 선임연구원인 토비어스 해리스는 대선 기간에 쓴 글에서 보수 약세가 끝났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한국정치는 진보와 보수 간에 경쟁이 더 한층 격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대선에서 만약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다면 적어도 2024년 총선까지 한국은 ‘분단정부’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분단정부(divided government)’는 1980년대 이후 미국 정치에서 빈번하게 발생한 ‘대통령이 민주당(또는 공화당)일 경우, 의회는 공화당(또는 민주당)이 장악하는 정치구도를 말한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 직후에도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여전히 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한 상태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였다.

    미국외교협의회 스콧 스나이더도 비슷한 견해였다. 그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탄생한 윤석열 행정부는 이명박 행정부보다 운신의 폭이 좁은 상태에서 출발한 데다가, 정부의 시행착오는 비좁은 활동공간을 더 압박할 것으로 보았다.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대통령의 리더십이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북한,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외교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중국과의 관계에서 보복을 자초하는 행동을 피하는 절제력, 북한과의 관계에서 갈등 고조를 자제하면서도 북한의 공세를 차단할 수 있는 위기관리력,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개선에서 정치적 반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대중적인 지지 확보와 같은 것들이다.

    웨스턴 켄터키대학교 티모시 리치 교수는 대북포용정책에서 탈피하려는 윤석열 행정부의 접근방식은 대중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윤석열 정권은 남북 긴장이 고조될 경우 그 책임을 이 정부의 정책에서 찾게 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노력을 함으로써 지지기반의 이탈을 막아야 한다.

    윤석열 행정부의 허약한 기반은 바이든 행정부로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미 인도∙태평양조정관인 커트 캠벨의 저서(The Pivot)에 따르면 한국 내 반일 감정은 대중의 감성일 따름이지, 한국 엘리트들의 정서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는 한국 정치인들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반일 감정을 이용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식은 독일 기민당식 과거사 해법인 ‘독일의 침공과 학살을 인정하고, 홀로코스트 생존자에게 배상은 하되, 사죄는 하지 않는’ 이른바 ‘아데나워 모델’에 근거한 ‘위안부 합의’의 배경이 되었다. 커트 캠벨은 이 과정에서 단기적으로는 긴장감이 고조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한∙일이 ‘방위 협력’이라는 새 국면에 적응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펴고 있었다.

    이 같은 그의 예상과 다르게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한일 갈등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를 촉발하여,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가 관여했던 또 다른 중대사안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이 종료 문턱까지 가는 아찔한 순간을 맛봐야 했다.

    한편 미의회조사처(CRS)가 지난 2월 작성한 ‘한미관계’ 보고서는 친미의식 이면에 가려져 있는 한국인들의 어떤 독특한 정서를 거론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의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의 85%가 한미동맹을 지지하고, 70% 이상이 미국을 긍정적으로 응답해 왔으며, 적어도 2014년 이후 여론조사마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 미국을 지목해 왔지만, 한국인들은 막상 정치지도자들이 미국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인들의 ‘안미경중’이라는 뚜렷한 관념이 가리키는 미중 경쟁에 대한 우려와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미일동맹 강화에 대한 의구심 어린 시선 같은 것들은 한국의 국력 신장과 지정학적 상황이 맞물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 간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견되고, 한∙미∙일 군사협력의 장애물인 반일 정서의 정치적 위상이 건재한 데다가, 한미동맹이 한반도 범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 재구축이 필요하다는 싱크탱크들의 제언에 대해 미국도 한미관계에서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문재인∙ 바이든 통화’와 같은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필요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바이든의 5월 23일 대만에 대한 군사개입 발언에 대한 기사를 산케이∙아사히∙니케이는 24일 1면 주요 헤드라인에, 마이니치∙요미우리는 1면 사이드 헤드라인에 배치했다. 강성우익인 ‘사토 마사히사’ 자민당 의원은 미국이 대만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넘어섰다고 만족해했다. 24일 바이든은 대만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에 변화가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로이터통신 스기야마 사토요시)

    바이든 대통령의 동아시아순방 일정의 핵심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이하 IPEF)’ 출범에 있다. IPEF는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도∙태평양전략국이 인도∙태평양전략 시행계획의 일환으로 기획한 것이어서 단순 경제협정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 지역에서 중국은 RCEP, 일본은 CPTPP라는 다자 간 무역협정을 주도하고 있지만 미국은 독자적인 경제블록을 갖고 있지 않다. 미 인도∙태평양전략의 최대 약점인 경제전략의 부재는 미국이 IPEF를 출범한 배경이다.

    IPEF가 출범은 하였지만 각 분야의 세부계획은 확정된 것이 없어, 여전히 추상적이고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IPEF는 ‘무역’, ‘공급망’, ‘청정에너지, 탈탄소화 및 사회기반시설’, ‘세금 및 반부패’ 4개 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미라 랩후퍼 미 엔에스씨 인도·태평양전략국장은 4월 26일 ORF America 주최 세미나에서 4개 분야를 각각 연결경제, 탄력경제, 청정∙녹색경제, 공정경제로 설명했고,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기자들에게 IPEF가 미국 노동자들을 중심에 두고 설계되었다고 말했다. 이는 디지털, 노동, 공급망, 청정에너지, 글로벌조세협정 등 미국의 경쟁력이 우수한 분야의 규범을 세계표준으로 제정하는 것이 미국 중산층에 대한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고에 기반한 것이다.

    예컨대 연결경제는 미국이 디지털 경제 표준과 규칙을 제정해서 디지털무역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IPEF의 무역분야는 자유무역협정(이하 FTA)을 배제함을 의미한다. 미국은 안정적인 수출시장을 원하는 국가들을 유인할 수 있는 시장개방, 관세인하 같은 수출접근성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규범기반 국제질서를 준수한 대가로 다른 국가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무역정책의 부재는 많은 전문가들이 IPEF의 순항 가능성에 반신반의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한편 중국은 작년 11월에 아세안에 15억 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반면에 바이든 행정부가 IPEF를 출범시키기 위해 동아시아 순방 전 아세안 7개국과 가진 특별정상회의에서 약속한 금액은 지난 10월 최대 1억2백만달러에 이어, 청정에너지 기반시설 투자 4천만달러를 포함해서 최대 1억5천만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이 금액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원조패키지’로 투입하게 될 400억 달러와는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고, 중국이 아세안에 약속한 액수에 비해서도 너무 적은 금액이다. 이같은 저조한 투자금액은 갓 출범한 IPEF의 미래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탄력적인 공급망 구축은 세련된 경제제재이자 봉쇄정책으로 국가안보적 관점에서 공급망을 인식한다. 4월 13일 대서양협의회 초청 강연에서 재닛 앨런 미 재무부장관은 ‘공급망의 프렌드쇼어링’을 말했다. 그녀의 발언 취지는 앞으로 미국은 원자재, 기술, 제품에 대한 시장지배력 남용과 지정학적 영향력에서 자유롭고 안전한 국가들과 무역을 하자는 것이다. 자유안전무역은 미국이 믿을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인 이른바 ‘프렌드’하고만 하는 것이다.

    많은 국가들이 IPEF에 관심을 보인 것은 미국의 의도와는 다르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자국의 수출시장이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였지만, 4월부터 5월 초까지 5주간 동아시아에 방문조사를 다녀온 미 CSIS 중국비즈니스 책임자인 스콧 스나이더는 동아시아에서 IPEF에 열광적인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하였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그에 따르면 동아시아국가들의 2021년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만이 42%, 한국이 31%, 일본은 26%에 달한다.(미국 8.6%). 그는 중국시장의 대체지를 찾을 수 없는 각국의 불안감을 확인했다. 미국과 회원국들은 중국 수출 비중의 큰 차이로 인하여 공급망을 둘러싼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는데 난관이 많을 것이다.

    특히 미국이 말하는 ‘프렌드쇼어링’은 ‘리쇼어링(제조업 본국회귀)’과 큰 차이가 없다. 미국의 논리대로라면 공급망과 기술의 안전을 위해서는 첨단 제조업들의 생산기지가 대만처럼 중국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지역보다는 미국과 같이 중국으로부터 먼 곳,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동아시아 순방에서 바이든이 미 언론에 적극적으로 강조한 것이 현대, 삼성, 도요타의 미국 투자로 인한 일자리 창출인데, 현재 미국인들이 공급망 문제로 인해 가장 심각한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제품이 분유라는 점에서 공급망 재구축이 중국 견제라는 미명 아래 미국만의 첨단산업 활성화를 위한 명분으로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5월 12일의 ‘미∙아세안특별정상회의’의 공동성명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과 같은 정치적 성격의 안건들은 아예 거론되지 않았으며, 미 행정부 고위관리는 백그라운드언론브리핑에서 아세안국가들에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고 말했다. 또한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미국 주도 공급망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대만이 IPEF 출범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자들에게 미리 밝혔다. CSIS의 4월 IPEF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국가들이 대만의 참여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중국을 배제하고 견제하기 위한 IPEF의 역할에 장애가 될 것이다.

    중국과 솔로몬제도가 4월에 체결한 안보협력협정은 태평양제도에서 미국의 영향력 추락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커트 캠벨은 태평양에서 중국이 꿈꾸는 야망을 가리켜 ‘전략적 놀라움(Strategic Surprise)’이라고 지칭했다. 5월 26일 피지의 14번째 IPEF 가입은 솔로몬제도 사태에 대한 미국의 대응책이다. 그런데 태평양제도에는 지정학적 위협보다 기후변화, 해양오염, 불법어업(IUU Fishing), 해적 등의 심각성을 더 큰 안보위협으로 간주하는 정서가 존재한다. 지정학적 경쟁은 이러한 문제를 제쳐두고,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입각하여 지역을 바라본다는 문제가 있다.

    표- 지역국들의 경제협정 체결 중복 현황(CSIS, Regional Perspectives on the IPEF)

    위 표에서와 같이 대부분의 IPEF 참가국들이 RCEP(중국)와 CPTPP(일본)에도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국가들이 중국경제와의 분리(디커플링)를 염두에 두고 IPEF에 참가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CPTPP의 전신인 TPP에서 미국이 탈퇴했던 사실은 IPEF의 신뢰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일본도 내심 자국 주도의 CPTPP에 미국이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미국의 CPTPP 참여를 말했다. 미국이 결국 군사안보에만 치우쳐 있는 인도∙태평양전략만을 가지고 이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노리겠다는 발상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RCEP, CPTPP, 그리고 일대일로와의 경쟁에서 IPEF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회원국들에게 확실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RCEP와 CPTPP 모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인도가 IPEF에 참여한 것은 미국이 거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대선국면에 빠져 있던 순간에 세계 각국은 ‘지정학적 혼란’을 돌파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쳐왔다. 세계관계를 자유와 독재의 대결로 바라보는 바이든 행정부의 국제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점으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같은 이념형 자유주의자들이 러시아의 패배가 ‘자유의 새로운 탄생’과 세계민주주의 부흥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관을 뒷받침한다. 윤석열 정권도 취임 초부터 한국이 특정 진영만 편애하는 대외관계를 지향하는 듯한 인상을 주변국에 심고 있다. 과연 진영 대 진영으로 나뉘어지는 것이 지금의 시대조류인 것일까? 꼭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

    금번 일본에서 개최된 쿼드 제2차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희망한 한국의 가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니케이신문은 그 이유로 ① 한일 갈등과 ② 인도 이 두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쿼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단합을 목표로 인도와의 견해 차이를 해소하는 데 먼저 주력하기로 했고, 인도에 이어 한일 갈등이 쿼드에 약점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었다. 인도는 지난 4월 인도적 물품을 싣고 우크라이나로 향하겠다는 일본 군용기의 뭄바이 경유계획을 승인하지 않음으로써 쿼드가 대러 견제로 이용되는 것에 반대했으며, 미국, 영국, 호주, 일본의 거듭된 대러 제재 동참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인도 자와할랄 네루대학의 스와란 싱은 이같은 인도의 입장을 ‘선도적 중립(Proactive Neutrality)’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용어에는 분쟁의 어느 한 편을 지지하지 않는 중립을 선택하는 것이 최소비용으로 최대이익을 볼 수 있다는 냉전 이후 인도의 외교철학을 담고 있다.

    3월 22일 파키스탄에서 열린 이슬람협력기구(OIC) 외무장관회의에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참석하였다. OIC 주요 회원국들은 파키스탄의 중국 초청을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높은 관심을 보였다. 공동성명에서는 팔레스타인, 인도령 카슈미르에서의 무슬림 탄압과 서구 이슬람혐오증을 비판하는 내용은 채택되었으나, 중국 신장 위구르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탈하 압둘라작(영국 엑스터대)은 미들이스트아이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현실에 대해 무슬림 블록이 여전히 서구 궤도 안에 있지만 중국이 대두하는 새로운 지정학적 현실에 직면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실용주의노선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도∙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우방인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는 대러 제재에는 참여했지만, 3월 29일 바이든 대통령과의 공동성명에서 채택된 ‘인도∙태평양’ 용어를 기자회견에서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 대신 ‘아시아∙태평양’을 줄곧 사용하였다. G20 의장국인 인도네시아는 올해 11월 발리에서 열리는 G20정상회의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초청하였다. 커트 캠벨이 미래 미국 지역전략의 ‘대단히 중요한 파트너’로 지목한 베트남은 러시아 관련 유엔투표에서 일관되게 기권하였다. 커트 캠벨은 5월 9일 미 CSIS 등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인도∙태평양국가들의 관여 수준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호주총선에서 76석을 확보한 ‘노동당’이 69석을 확보한 ‘자유당∙국민당연합’을 누르고 의회 과반수를 확보했다. 호주의 외교정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Sky News Australia)

    인도, 중국, 브라질, 남아공 등 브릭스 국가들은 전략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를 다극화된 국제질서로의 전환의 계기로 삼으려 하고 있고, 그 이외의 많은 국가들은 기존의 미중 경쟁이라는 현실에 더하여, 새롭게 떠오른 미러 분쟁이라는 부담까지 떠앉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러 제재에 나토와 미국 동맹국들 이외에 선뜻 동참하려는 국가가 없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이들 국가들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미국 등 서구와의 섣부른 공조는 오히려 자국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미시간대학 존 시오르시아리 교수의 경우 강대국 간의 분열이 심해질수록 비동맹운동이 다시 활성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오르시아리는 비동맹운동의 활성화가 국제안보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필자가 한국이 비동맹노선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작금의 현실에서 많은 국가들이 섣불리 행동하지 않고, 상황을 관망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가 예상됨에도 5월 26일 제 9048회 유엔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북한 추가 제재안을 상정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러∙중 압박의 빌미로 활용하고 있다. 북한의 예정된 7차 핵실험도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양새이다.

    만약 7차 핵실험이 단행된다면 한∙미는 북한에 대한 당면한 인도적 지원은 어떻게 처리할 셈인가? 핵실험과 인도적 지원은 무관한 것인가? 아니면,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인도적 지원도 철회할 것인가? 만약 인도적 지원을 철회한다면 북한의 지정학적 힘이 오히려 강화되는 것은 아닌가?

    미라 랩후퍼는 동맹국들과 파트너국가들은 사치품(luxury)이 아니라 ‘전략적 필수품(strategic necessity)’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이 말이 동맹국들과 파트너국가들은 사치품이든, 필수품이든 강대국 경쟁을 ‘대리(proxy)’하는 것으로 활용되어질 공산이 크다는 것처럼 들린다.

    * <국방칼럼> 연재 링크

    필자소개
    국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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