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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겉모습만 보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림책] 『마일로가 상상한 세상』(크리스티안 로빈슨(그림)/ 북극곰)
        2022년 05월 30일 10: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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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입은 하지 않고 수출만 하는 출판사

    2011년 처음 해외 도서전에 갔을 때 일입니다. 영미권 출판사와 수입 미팅을 마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 출판사 책을 검토해 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자기네 출판사는 수입 미팅은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땐 처음 겪는 일이라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이후에도 꽤 많은 영미권 출판사들이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한편, 같은 해 도서전에서 본 영국의 어느 대학원의 졸업 작품 한국어판을 계약해서 이듬해 출간했습니다. 그러자 그 대학원에서 해마다 저를 대학원 졸업 작품 부스에 초대했습니다. 한 졸업생 작가의 작품을 골랐고 출간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러자 그 작가의 에이전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은 영어권 출판사와 계약하고 싶으며, 우리가 그래도 계약을 원한다면 한국어판에 한정해서 계약할 의향이 있다는 메일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출판사가 비영어권 출판사라 계약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다음부터 저는 그 대학원 부스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마일로는 어떤 상상을 할까?

    지하철 타는 곳에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곳에는 연두색 모자를 쓴 마일로와 분홍색 외투를 입은 마일로의 누나도 있습니다. 이윽고 불빛을 반짝이며 지하철이 들어옵니다. 문이 활짝 열립니다. 마일로와 누나는 지하철에 올라탑니다.

    마일로와 누나가 자리에 앉자 다시 지하철이 움직입니다. 마일로 옆에 앉은 수염 난 아저씨는 깊은 생각에 빠져있습니다. 누나 옆에 서 있는 회사원 아저씨는 왠지 외로워 보입니다. 문 옆에 웨딩드레스 입은 아가씨는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마일로는 한 달에 한 번 일요일마다 지하철을 탑니다. 지금 마일로의 마음은 마구 흔든 사이다처럼 터질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언제나 그렇습니다. 마일로는 터질 것 같은 마음을 달래려고 둘러선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이 사는 모습을 상상해서 그림을 그립니다.

    마일로는 수염 난 아저씨의 얼굴을 보고 어떤 상상을 할까요? 회사원 아저씨는 어떤 사람일까요? 또 웨딩드레스 입은 아가씨는 지하철을 타고 어디로 가는 걸까요? 과연 마일로가 상상한 모습은 얼마나 실제 모습과 비슷할까요? 무엇보다 이런 상상하고 있는 마일로는 실제로 어떤 아이일까요?

    사실은 수입도 하는 출판사

    해외 도서전에 꾸준히 참가하며 창작 그림책을 출간해서 여러 나라로 수출했습니다. 물론 수입 미팅도 꾸준히 했습니다. 영미권 출판사들의 파티에 초대받고 따로 식사할 만큼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출만 한다던 담당 직원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출판사의 카탈로그를 자기네 출판사 수입 담당자에게 전달해도 괜찮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기쁘기도 하지만 당황스럽기도 한 순간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는데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는 세계적인 영국 에이전시가 우리 출판사에게 독점 에이전시에 되고 싶다며 계속해서 요청을 해왔습니다. 저희는 이미 다양한 출판사와 에이전시를 통해 일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독점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에이전시 대표가 직접 찾아와 설득했습니다. ‘그동안 관계하고 있는 출판사와 에이전시와는 지금까지처럼 협력해 달라, 다만 최종 계약 절차만 자신들에게 맡겨 달라.’고 했습니다. 요지는 우리 출판사가 수출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시아 출판사라는 이유로 너무 저렴한 가격에 수출되고 있으니 제값을 받게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영국 에이전시는 영미권 출판물을 아시아 출판사들에게 비싸게 판매하는 것으로 아주 유명했습니다. 마침내 우리 출판사는 그 영국 에이전시와 독점 계약을 맺었습니다.

    어느 순간, 마일로는 자신의 상상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사실 외로워 보이는 아저씨에게도 화목한 가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마일로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웨딩드레스 입은 아가씨도 남자가 아니라 어떤 아가씨와 결혼하러 가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누나들도 경비원에게 쫓겨나는 거리의 반항아들이 아니라 경비원들이 지키는 고급 주택에 사는 자녀들일 수도 있습니다.

    마일로는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는 자신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 서로의 겉모습만 보고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겉모습만 보고 상상하고 판단하고 차별합니다.

    실화가 주는 당당한 아름다움

    『마일로가 상상한 세상』은 그림 작가인 크리스티안 로빈슨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로빈슨의 어머는 마약 문제로 자주 교정 시설에 수감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엄마를 면회하러 가는 길은 흔들어놓은 사이다처럼 흥분되는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마일로와 누나가 교도소에서 엄마를 면회하는 장면은 크리스티안 로빈슨의 그림 가운데 가장 밝고 가장 충격적인 장면일 것입니다. 하지만 장소가 어디든, 그리운 엄마와 아이가 만나는 장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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