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얼리티를 포기하고
    판타지를 얻다···범죄도시2
    [Come&See] 한국형 마블의 도래!
        2022년 05월 25일 01:59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시리즈의 운명은 전작과의 비교를 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근 개봉한 <범죄도시2>도 마찬가지이다. 2017년 개봉해 688만 관객이라는 예상치 못한 흥행을 기록했던 <범죄도시>와 후속작 <범죄도시2>의 가장 큰 차이는 영화의 시공간이다. 석도(마동석)를 위시한 주요 캐릭터와 범죄 액션 장르라는 점은 대동소이하지만, 이러한 시공간의 차이는 전작과 후속작에 미묘한 균열을 만든다.

    영화 이미지 캡처

    강력계 형사 석도와 최근 ‘나와바리’를 개척한 흑룡파 보스 장첸(윤계상)의 숨 막히는 대결을 다룬 <범죄도시>의 시공간은 2004년 서울 금천구 가리봉동이다. 영화 대부분의 서사는 유입과 탈출의 공간 인천공항을 제외하고는 ‘가리봉동 옌벤 거리’로 수렴된다. 모든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나고 이곳에서 해결된다. 영화는 20004년이라는 시간과 가리봉동이라는 공간을 통해 2000년대 초반 서울 서남부에서 일어났던 이주민들의 디아스포라 현상과 이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적 갈등을 액션 장르의 틀에서 풀어냈다. 즉 <범죄도시>의 시공간은 2004년 ‘In Korea’ 인 것이다.

    반면 <범죄도시 2>의 시공간은 2008년 ‘Out Korea’ 이다. 가리봉동 사건이 끝난 4년 뒤, 2008년 석도는 해외로 도주한 살인 용의자를 인도하라는 명을 받고 팀장(최귀화)과 베트남 호치민으로 출장을 떠난다. 석도는 용의자를 통해 한국인들을 상대로 흉악한 범죄를 일으키는 강해상(손석구) 일당의 존재를 알게 되고, 호치민과 서울을 오가며 이들의 뒤를 쫓는다. 영화는 한참 베트남으로의 경제적 영토 확장이 일어나던 2008년이라는 시공간에 주목하면서 한국인들의 해외 범죄를 하드코어한 방식으로 묘사한다. 자연스럽게 가리봉이라는 로컬 공간은 호치민이라는 국제적인 공간으로 확장된다.

    공간의 차이는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후속작에서는 좀 더 영화적 스케일을 키우고, 이국적인 스펙터클을 강조하려는 대개의 할리우드 프랜차이즈가 그러하듯, 제작진의 전략일 것이다. 하지만 해외로의 공간 확장에도 불구하고 공간의 질감은 별 차이가 없다. 이른바 ‘양꼬치 느와르’가 횡행했던 가리봉동 옌벤 거리나 호치민의 데땀 거리나 어둡고 공포스럽기는 매한가지이다. 무법과 무질서가 판을 치는 무정부적인 공간이다.

    두 공간의 차이는 이미지가 아니라 공간을 바라보는 시점에 있다. “베트남은 처음이야!”라는 대사처럼 석도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호치민을 바라본다.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의 시선처럼 호치민의 거리와 풍경은 마치 악몽을 꾼 것처럼 판타지화된다. 그래서 전편의 석도의 대사 “나도 여기 주민이잖아”는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전편이 석도가 정주하는 현실의 공간 가리봉에서 자신과 이웃의 안위를 위협하는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생존의 액션 서사’라면, <범죄도시2>는 석도가 파견된 판타지 공간에서 악당을 일소하는 ‘정의의 액션 서사’인 것이다. 마치 동네지구대와 지구방위대의 차이처럼 말이다. 그래서 호치민 건물과 복도, 거리에서의 다소 과잉처럼 느껴지는 액션은 한국형 마블의 단초가 될 법한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리얼리티를 버리고 판타지를 꾀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범죄도시2>는 이주민과 원주민의 공간적 갈등이라는 사회적 함의를 내재했던 전작의 길을 가는 대신, 호쾌한 액션과 단순명료한 서사를 선택했다. 전작의 공식을 따른다면 한국인의 해외 범죄 실상과 원인이 제시되었겠지만, 이러한 사회적 이슈는 서사의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뿐 더 나아가지 못한다. 대신 석도와 미스테리한 악당 강해상과의 대결에 초점을 맞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씬과 액션씬을 전경화해서 전편을 보지 않은 관객들도 무리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석도가 강해상과의 혈투를 끝낸 다음 터널을 빠져나오는 라스트 씬이다. 롱 쇼트로 잡아낸 어둠을 헤치고 나오는 고독한 히어로의 뒷모습은 쉴새 없이 달려왔던 영화가 잠시 멈추는 지점임과 동시에, 관객들이 캐릭터에 깊게 감정이입 하는 순간이다. “사람 죽인 놈 잡는 데 이유가 어디 있어? 나쁜 놈은 그냥 잡는 거야!”라는 철학으로 무장해 말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석도는 입만 살아있는 여느 지식인과는 달리 행동으로 증명하는 울림이 큰 캐릭터이다. 오랫동안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한국형 마블의 효시가 될만한 캐릭터 아닐까?

    P.S 대부업체 회장 최춘백 역을 맡아 열연한 고 남문철 배우님의 마지막 연기 투혼에 경의를 표합니다.

    지난회의 글 “기괴하고 슬픈 <스펜서>”

    필자소개
    영화감독. <고백할 수 없는> 등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