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금보다 더많은 과제 안겨줬다
By tathata
    2007년 01월 18일 04: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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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 성과금 지급을 둘러싼 현대차 노사갈등이 사태발생 20여일만에 노사 합의로 타결됐다. 현대차노조는 이번 파업투쟁을 ‘승리’로 평가하고 자신감을 얻은 모습이다. 보수언론은 “현대차가 강성노조의 ‘생떼쓰기’에 밀려 물러섰다”고 보도했다.

노조는 승리했고, 현대차 측은 파업으로 맞선 노조에 밀리기만 한 것일까. 현대차의 이번 노사분쟁은 표면적으로는 임금협약에 명시된 성과금 지급과 관련한 합의와 별도로, 노사가 구두합의를 통해 생산목표와 관계없이 성과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해온 기존의 관행을 회사 측이 뒤집은 것이 발단이다.

“이번에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해 성과금을 줄 수 없다”는 회사 측과 “약속한 성과금은 반드시 줘야 한다”는 노조가 정면충돌 하면서, 결국 회사 측이 생산목표의 만회를 조건으로 미지급된 성과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사태는 마무리됐다.

   
  ▲ 지난 17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1층 아반떼룸에서 현대차 노사 대표들이 최종 협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회사 무리수와 조합원의 단결이 승리 요인

현대차가 구두합의를 부인하며 차등 성과금을 지급하겠다고 ‘치고’ 나온 데에는, 현대차노조의 주장대로 ▲노조의 민주노총 총파업의 봉쇄 ▲올 해 두 번에 걸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선거에서의 온건노선 지도부 당선 ▲금속노조 산별교섭의 무력화 등의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노조도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미지급된 성과금 50%를 지급하라는 요구만으로 현장 제조직과 조합원들의 투쟁동력을 이끌어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회사가 노조 간부 26명에 대해 고소고발을 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강력하게 나오자, 오히려 노조 내부의 단결력과 동력은 높아지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이번 사태를 성과금 문제를 넘어 노조에 대한 도발로 진단하기 시작했고, 노조가 나눠주는 아침 선전전 유인물을 받아들면서 “수고하십니다”라고 말하는 등 적극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현장 조직들 또한 노조 상집위원들에게 고소고발과 함께 손해배상이 청구되자 ‘판’이 커졌음을 직감했고,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서더라도 이 문제를 안고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 지부장 선거를 연기하고 파업지도부 구성을 결의한 것도 이같은 상황인식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회사 측의 ‘도발’에 현장조직은 물론이고 조합원들이 단결된 힘을 보임으로써 노조 내부의 동력은 충전됐고, 이는 이번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안현호 현대차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위기 때마다 단결로 극복해온  현대차노조 조합원들의 저력을 이번에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87년 노조를 만든 이후 조합원들은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하면서 노조가 없으면 방어할 힘이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노조를 살려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의지를 믿고 싸웠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회사 쪽의 ‘준비되지 못한’ 도발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차가 차등 성과금 지급을 계기로 노사간 힘의 관계를 역전시키기 위한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한 점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윤여철 현대차 사장은 이미 지난 15일 오전 노조 사무실을 방문하여 박유기 현대차노조 위원장에게 “미지급된 성과금을 줄 것”이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부터 노사는 성과금 지급 시기와 방법, 그리고 고소고발 건 취하 문제 등을 놓고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노조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결심공판에 맞춘 규탄시위를 법원 앞 1인 시위 수준으로 축소했다.

배규식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차가 노조의 기를 꺾기 위해서는 노사가 둘 다 ‘망하는’ 것을 각오할 정도로 엄청난 준비가 필요한데, 현대차는 노무관리 인사를 자주 교체하는 등 노조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섣부르게 공격했다”고 평가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공금횡령과 비자금 조성에 대한 검찰의 6년 구형, 그리고 김동진 부회장이 이헌구 현대차노조 전 위원장에게 건낸 2억원의 금품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기아차노조의 성과금 투쟁 결의 등도 현대차가 성과금 문제를 조기에 해결할 것을 결정하게 한 ‘돌발변수’로 작용했다.

그러나 회사도 “챙길 것은 챙겼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회사 쪽도 ‘챙길 것은 챙겼다’는 분석이다. 배 연구위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현대차는 노사간 이면합의가 아닌 투명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계기를 마련했고, 생산성을 회복시키는 조건으로 성과금을 지급하는 한편, 여론을 통해서는 노조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효과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울산지역 시민사회단체의 현대차노조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 그리고 현대차 불매운동까지도 불사하겠다는 네티즌의 여론은 노조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서보연 현대차노조 정책실장은 “‘집단 따돌림’ 수준으로 여론은 갈수록 노조에 불리하게 전개됐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서는 이미 파업의 본질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노조를 흠집 내기 위한 보도만이 난무했다”고 말했다. 빗발치는 여론의 뭇매 속에서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노조로서도 사태가 더욱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론전 참패한 노조, 시민사회 인식 바꾸는 노력해야

노조에 대한 적대적인 여론은 앞으로 더욱 노조를 압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올해 노조가 임금단체협상 과정에서 파업을 하게 될 때, 여론은 또다시 노조를 비난하게 될 것이다. 금속노조 산별교섭을 요구할 때도, 민주노총 총파업을 수행할 때에도 여론은 노조에 차가운 시선을 보낼 것이다.

여론이 노조에 등을 돌린 이유는 보수언론의 무차별적인 공세가 가장 크지만, 비정규직이 확산되는 추세 속에서 대공장노조의 파업을 ‘배부른 노동자의 이기주의’로 보는 시선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현대차노조는 여론전에서는 ‘참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은수미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차노조는 금속산별노조를 이끈 모범적 노조로서 시민사회를 설득하고 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과 시민단체가 비난하고 있는 취약점, 즉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배려 없는 투쟁, 비정규직 노동자를 외면한 투쟁에 대해 정확하게 노조의 논리를 세워 시민들의 인식을 바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현대차노조가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성과금 50%를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투쟁 기금으로 사용할 것을 발표한다거나, 지역시민단체를 초청해 노조의 입장을 전달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등 이런 대응을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물론 87년 민주노조 운동이 출발한 시점부터 현재까지 노조에 대한 언론, 특히 보수언론들의 악의적 왜곡보도 행태가 달라진 것은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번 교섭과 투쟁 과정에서 노조 집행부에서는 "언론 때문에 교섭 못하겠다"라거나 "여론은 아예 신경을 안 쓴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문제는 교섭과 투쟁은 노조의 기본적 활동으로 하기 싫다고 안해도 되는 게 아니며, 여론은 무시하고 싶다고 해서 무시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보수언론 기사 먹히는 환경도 주목해야

실제로 노조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 여론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이러한 여론을 오로지 보수언론의 보도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보수 언론의 논조가 먹혀들어가는 환경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갈 수 있는 싸움이 중요하다는 것이 노동계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노동자 내부의 분열과 갈등이 자본의 노동유연화 정책의 결과이긴 하나, 이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은 노동운동 내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7년 새해 벽두를 뒤흔들었던 현대차노사의 성과금 사태는 노사합의를 통해 마무리됐지만, 노조가 마냥 기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다. “성과금은 받아냈지만, 과제를 더 많이 안겨준 투쟁이었다”고 금속노조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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