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정당 '불륜정치' 보기 역겹다
        2007년 01월 18일 03: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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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오랜만에 드라마 <주몽>을 온 가족이 함께 시청했다. 주몽은 부여의 봉쇄 전략을 무마하기 위해 해적 두목 부위염을 설득하기 위해 조선 유민을 통합하는 고구려 건국의 ‘대의’를 제시했다. 죽어서도 묻힐 땅 없는 부하들에게 재물 대신 대의를 품게 해주자는 말이었다.

    고건 불출마와 우울한 정치 현실 

    문제는 다음 장면이었다. 부위염은 고심 끝에 주몽의 제안을 수락하며 자신의 아버지가 ‘다물군’이었다고 고백했다. 빈곤한 상상력=.=. 더불어 부하들의 목숨을 거는 이유가 자신의 가족사라니. 어차피 역사의 빈 자리를 메우는 상상력이라면, 차라리 부위염이 아무런 말없이 부하들의 열악한 처소와 그 식솔들을 둘러보는 모습 정도가 더 설득력을 갖지 않았을까.

    최근 정치권을 보면서 드라마 <주몽>을 보며 느낀 어이없음이 되살아난다. 대선후보 지지율 3위로 그나마 여권의 얼굴이라도 세워주던 고건 전 총리가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벌어지는 정치권의 논란과 이를 보도하는 언론은 우울한 우리 정치 현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고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 후 정치권과 보수언론의 가장 큰 관심은 그 지지층 표가 어디로 쏠릴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한나라당의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최대 수혜자라는 분석(?)이 나왔다. 김근태 여당 의장은 고 전 총리의 표가 다시 여당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또한 여권 주자들과 관련해서는 ‘무주공산’인 호남에 누가 깃발을 꽂을 것인가 하는 기사들이 이어졌다.

    여권 일각에서 포스트 고 전 총리로 상대당인 한나라당 대선주자로 나선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거명하는 것에 이르러서는 어처구니가 없다. 여당 대선후보로도 거명되는 천정배 의원은 18일 “손 전 지사는 근본적으로 한나라당 정체성에 맞는 분”이라면서도 “신당의 노선에 동의하고 함께 하겠다고 하면 배제할 이유가 없고 대통합이 그런 과정이어야 된다”고 말했다. 또다른 드라마 <황진이>에서 등장한 ‘물색 없는 놈’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른바 여권의 ‘러브콜’에 손 전 지사의 대답은 “고맙다”였다. 여권에서도 자신을 통합의 정치 적임자로 보기 때문이라는 ‘홍보성’ 해석을 달아서다. 그리고 “글쎄, 뭐, 지금은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고 했다. 그래도 명색이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걸 인식했는지 손 전 지사는 곧이어 "니가 와라, 한나라당"을 외쳤다. 물론 “절이 잘 되고 도량이 풍부하면 스님들이 따라오지 않겠냐”는 고상한 말로.

    이 웃지 못할 시나리오를 강하게 부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는 “정치인이 절대 아니다고 말하면 더 믿음을 못 준다”고 말했다. 

       
      ▲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 (사진=연합뉴스)
     

    통합이라는 이름의 기회주의 정치

    이쯤 되면 우리가 아는 ‘정치’ ‘정당’ ‘정치인’의 개념은 중고등학교 교과서 속으로 박제가 된다. ‘정당’은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아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라고 배웠다. 하지만 ‘집권’의 목표는 보이되, 그 너머 각 정치세력이 실현하겠다는 ‘정치적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여당과 한나라당이 따로 정당을 꾸리는 이유가 되어야 할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의 차이도 잘 모르겠다. 의견의 강약은 있으되 그들의 정책과 법안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한미FTA, 비정규법안, 이라크파병 연장 등 이슈들에서 그들은 우리 사회 서민들의 고통과 무관한 동지 의식을 보여줬다. 언제 누더기로 내몰릴지 모르는 ‘사학법’ 정도가 겨우 남았을까.

    각 정치세력의 차이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야 할 대선을 앞두고도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보수 정당들은 하나같이 ‘통합’을 강조하며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추파를 보내고 있다. 다른 정당의 대선후보가 자신들의 구심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도 창피한 줄 모르고, 한 정당의 대선후보가 다른 정당의 ‘러브콜’에 분노하기는커녕 고맙다 하는 현실이다. 결국 ‘통합’은 지역주의와 이념 대결 탈피라는 깃발과 무관하게 보수 정당들의 집권을 향한 몸집 불리기로 그 의미가 퇴색했다.

    다행히 손학규 전 지사가 여당으로 가든, 보수정당들이 어떻게 이합집산을 하든 드라마 <주몽>에서 부위염의 고백 장면만큼 실망스러울 것 같지는 않다. <주몽>이야 작가의 상상력인 부위염의 ‘과거사’를 몰랐으니 그 ‘통합’의 전개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권의 이합집산과 또 손학규의 통합 명분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포장하기에 여념이 없는 소위 민주화 세력이 수십년째 불러온 철지난 유행가라는 것을 이미 온 국민이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미래와 희망은 그곳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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