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과 싸우는 걸 두려워 말라"
        2007년 01월 17일 09: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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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7월24일 성균관대 유림회관에서 열린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이날 민주노총은 한국 진보정당사에 뚜렷이 남을 결정을 내렸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각계 민주세력과 함께 새로운 정당의 기초가 될 공동선거대책기구 구성을 추진, 그해 연말에 치러지는 대선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96~97년 총파업 투쟁을 촉발시킨 노동법 날치기 통과를 목도한 민주노총으로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이날 대의원대회 결정으로 민주노총은 전국연합, 진보정치연합 등과 함께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을 만들었고 초대 위원장인 권영길을 대선후보로 출마시켰다.

    이처럼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양 조직의 관계는 예전 같지 않다. 더구나 양 조직은 지금 공히 ‘위기’ 상황이다. 지난 2005년 10월에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지도부가 며칠 사이로 모두 사퇴하고 각각 비상대책위가 꾸려지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는 17일 문래동 당사 대회의실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를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동반파산이냐, 동반성장이냐”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이날 토론회는 정영태 인하대 교수(정치학)의 사회로 당에서는 김선동 사무총장, 이용길 전 충남도당 위원장이, 민주노총에서는 김태일 사무총장, 이영희 정치위원장이, 외부에서는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 박영환 경향신문 기자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회를 주관한 집권전략위원회의 최규엽 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이 위기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당이 정체상태에 있고 위기적 징후가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며 “반성하는 입장에서 솔직하게 논쟁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진단을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용길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위기에 처한 배경에 대해 “창립 이후 기업별 노조체제로 너무 오래 있었다. 이제 산별노조의 틀을 갖췄을 뿐이다. 타성화, 관료화, 권력화 되는 과정에서 비리 문제 등으로 도덕성이 추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비정규직을 끌어안는 사업을 못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13% 지지와 10명의 의원을 만든 핵심의제였던 부유세와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무책임하게 사장시키는 과정이었고 거점이라 할 수 있는 울산에서 여당 역할을 하면서 진보정치의 완결된 실험을 제출하기는커녕 대안도 만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선동 사무총장도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자 중에 5% 정도의 조직률에 그치고 300인 이하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이 배제된 상황”이며 “민주노동당은 지역에서 생활정치, 진보정치의 상을 마련해 제시하지 못하고 한국사회의 변화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집권전망,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민주노총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하는 중앙위원 대의원 할당제는 당이 필요로 해서 만든 것임에도 어느 순간엔가 부담스러워 하는 상황”이라며 “할당제를 활성화하고 다만 민주노총은 그 선출과정을 민주적으로 해서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희 정치위원장은 “스포츠 경기를 보면 자신의 주특기는 살리고 상대편의 주특기를 봉쇄해야 이길 수 있다. 정치도 스포츠 경기와 마찬가지로 수구보수는 우리의 주특기인 도덕성에 대해 비리를 폭로하고 국민들로부터 고립시키고 있다. 우리의 주특기는 노동인데 민주노동당에 노동이 없다. 노동부문 최고위원 선거를 해도 투표를 안 해버린다. 의결기구 할당도 없애자고 난리다. 노동이 빠지면 어떻게 집권하겠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김태일 사무총장은 “민주노총이 법제도 개선 투쟁을 어떻게 벌여야 할지에 대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경험이 대단히 일천하다”며 “민주노동당이 의회활동을 통해 대중투쟁을 강화해야 하는데 너무 의회전술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홍형식 소장은 정치를 스포츠에 비유한 이 위원장의 말에 “스포츠는 선수가 결판을 내지만 정치에서 결판을 내는 것은 선수가 아니라 관중(유권자)”라며 ”정치와 스포츠는 다르다“고 반박했다.

    홍 소장은 “정치이념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보면 진보와 보수가 각각 약 30% 정도를 차지한다. 최근 2~3년 동안 변화가 없다. 이는 진보를 표방하는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켜보고 있는데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이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국민들은 교육문제, 부동산 문제, 노후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민주노동당은 선거때만 이런 얘기를 할 뿐 평소엔 민주노총, 남북관계에만 집중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 못하는 정당으로 인식한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의 박영환 기자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친구 관계인 것 같다. 초기만 해도 ‘내 뒤에 민주노총 친구 있다’고 자랑했는데 요즘 보면 옷도 잘 안 갈아입고 냄새나니까 자랑하긴 좀 그런 애매한 관계인 것 같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박 기자는 “민주노총 홈페이지를 가끔 들어가 보는데 초기화면에 사회적 이슈에 대한 내용은 없다. 비정규직 문제 취재 때문에 전화했을 때 민주노총 입장이 없으니까 교수 연락처를 알려주던데 그렇게 해서는 대중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노중기 교수는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에서 10석을 얻고 ‘거대한 소수’ 전략이 나왔는데 그런 문제제기는 잘못됐다”며 “10석 얻은 이후에 한 계단 올라가기 위해 준비하고 냉정하게 되돌아보는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위기에 대한 진단 이후 토론은 노동운동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방안의 모색으로 이어졌다.

    먼저 김태일 사무총장은 법제도 개선 투쟁을 펼치는 데 있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정확한 역할분담과 일상적 투쟁계획 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민주노총의 투쟁은 대규모 사업장 임단투에서 법개정 투쟁을 옮아가고 있다”며 “당과 민주노총이 정세토론을 통해 주요한 의제를 뽑아내고 조합원을 교양시키고 광범한 대중투쟁 동력과 결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희 정치위원장은 “당이 사회연대전략을 얘기하지만 첫 번째 단추는 단협적용률을 확대하는 것이어 한다”며 “산별교섭의 제도화를 위해서도 민주노동당이 해야 할 일은 단체협약의 지역적, 일반적 구속력 확대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길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과 당이 사업계획부터 서로 공유하고 양 조직의 최고지도부가 만나 사회적 의제에 대해 뭔가 중요한 결정을 해서 이 회동이 뉴스거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위원장은 “노조 비리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비겁함이 아니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전직 지도부들이 당에 있지만 사회적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선동 사무총장은 이영희 정치위원장의 단협 적용률 개선투쟁에 동의하면서 “국민연금 지원방안과 관련해서도 당과 민주노총이 함께 한다면 노동자 계급을 단결시켜내고 동반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중기 교수는 단협 적용률 확대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엄청나게 적대적인 국회의원 290명이 있는데 가능하냐”는 것. 노 교수는 또 “유권자들이 표로 찍어줄 것 같지도 않다”고도 말했다.

    노 교수는 대신 “민주노동당이 산별시대를 맞아 조직하는 과정에 개입해야 한다”며 “산별노조의 지역조직 건설에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당이 같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교육”이라며 “민주노총 조합원이 일년에 12만원 당비만 내는 것이 아니니기 위해서는 또 제대로 된 산별노조를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이 정치의식을 높여나가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은 2004년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이 표방한 ‘거대한 소수’ 전략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먼저 김선동 사무총장은 “거대한 소수의 핵심개념은 의원 10명이 소수라 하더라도 대변하고자 하는 이해는 거대한 다수의 이해와 요구이고 거대한 대중투쟁을 통해 그 힘으로 입법투쟁을 관철해내자는 것이었지만 이는 관념적인 개념이었고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강력한 대중투쟁을 촉발시킬 것으로 기대됐던 의원들이 선도적인 투쟁이 부족했고 밖에서 거대한 대중투쟁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실망과 무력감이 증폭했다는 얘기다.

    김태일 사무총장은 “옳은 관점이었지만 집행하는 데 실패했다”며 “올바르게 집행하기 위해서는 당과 민주노총이 한해의 투쟁과제를 합의해서 이를 중심으로 대중투쟁과 의회전술을 세밀하게 준비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용길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에 잘 막아달라고 하고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 전국적 총파업을 조직해달라고 서로 아쉬운 핑계를 댔다”며 “9명의 국회의원 대중투쟁과 유기적으로 결합하거나 선두에 서서 역할분담 하는 것을 포기했던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영희 정치위원장은 “지금 대선후보 선출시기, 방법을 놓고 여러 이견 있었는데 민중참여경선제를 실시해야 한다. 당선도 안 될 진보정당이 선출권한도 민중들에게 나눠주지 못하고 왜 이렇게 대범하지 못한지 답답하다”며 “이번 대선에서 표도 되고, 돈도 되는 ‘거대한 소수’ 전략으로 위기를 돌파하자”고 제안했다.

    노중기 교수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는 서구 사민당의 양날개와는 다르다. 정당은 정책을 만들고 노총은 투쟁하는 길에 빠져서는 안 된다. 사회운동성을 갖는 유기적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또 “민주노동당의 시야는 민주노총에 있으면 안 된다.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를 위한 당이 돼야 한다. 협력과 연대 이런 얘기만 했는데 당이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민주노총과 많이 싸워야 한다. 부패사건은 사소한 것이지만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대해 태클 걸고, 개입하고, 싸우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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